미션잇 멤버들이 시각장애인분과 함께 미술관을 관람하고 있다.



“사람마다 작품을 보는 방식이 다른데,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않을지 정하는 건 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자유롭게 이야기해줘.”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는 저자 가와우치 아리오가 선천적 전맹인 시라토리 겐지와 함께 일본 전역에 있는 미술관을 방문하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한 순간을 담은 기록들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니. 모순적인 개념의 충돌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만 같지만 책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함께 작품을 관람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미술관은 ‘시각’을 주요 감각으로 필요로 하는 공간이다. 시각장애인은 들어갈 수 없다는 편견으로 채워진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편견의 공간을 여기저기 누비며 다양한 예술 작품을 ‘함께' 본다. 전맹인 시라토리를 위해 작품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에 대해 묘사와 생각을 가감 없이 쏟아내고, 시라토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작품을 감상한다. 장면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미술관에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임을 실감하게 된다. 


포용적 접근의 시작 : 당사자의 시선으로부터

  시각장애인분과 함께 미술관을 관람하고 있는 모습

미술관 접근성이란 장애 유무, 연령, 문화적 배경, 언어, 경제적 조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미술관의 공간, 전시, 프로그램, 정보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이용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원칙이자 실천다.

미션잇은 서울 시립 미술관과 함께 <쉬운 글쓰기 X 확장 = 미술관에 갑니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술관 접근성’에 초점을 맞춰, 발달 장애인, 시각장애인, 저시력자 분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과정에서 발견된 인사이트를 통해 센서리 백 sensory bag을 디자인하고 있다.

  

포용적 디자인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먼저 장애 당사자분들이 미술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장벽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발달 장애인, 시각 장애인분들과 <말하는 머리들> 전시를 함께 둘러보며 이들의 관람 방식과 패턴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마주하는 상황마다 느낀 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2시간 남짓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공감할 수 있었다. 

  발달장애인 분들과 함께 미술관을 관람하고 있는 워크샵 참가자들의 모습

관람을 마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비장애인의 시선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일정한 비트가 반복되는 사운드에 노출된 지적장애인 분이 관람 중 급격한 피로를 느꼈다며 전시 관람 후기를 전했다. “선을 밟지 말아 주세요”라는 스태프의 안내는, 통제받는 환경에 자주 노출되어 온 장애인분들에게는 의도치 않게 다른 형태의 제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여러 생각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오늘 느꼈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지 의견을 나누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질 센서리백sensory bag 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함께 미술관을 돌아본 이후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피젯토이(Fidget Toy)로 사용될 수 있는 샘플들을 마련해두고, 참가자분들의 의견을 여쭤보았다.

유니버설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본 센서리백

미술관 접근성에 관심을 두는 곳이라면 센서리 백sensory Bag을 찾아볼 수 있다. 센서리 백이란 감각 처리에 있어 어려움이 있는 발달 장애인이나, 대체 수단이 필요한 시각 장애, 난독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모아둔 가방이다. 스트레스 완화, 감각 차단, 자기 조절 능력 향상을 돕는 도구로 채워져 있으며 소리, 빛, 촉각 등의 외부 자극에 노출이 되었을 경우 안정감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Utah Museum of Fine Art (UMFA)에서 선보이고 있는 센서리백 ©UMFA

센서리백에는 소리 감각을 차단할 수 있는 헤드셋이나 귀마개,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느낄 때 촉각 자극으로 감정의 안정을 도와줄 수 있는 피젯토이(Fidget toy), 말로 표현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카드 등이 들어갈 수 있다. 미술관이나 뮤지엄의 콘셉트에 맞게 가방을 디자인하거나, 전시 중 주요한 작품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촉각적으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등 다양한 방식의 센서리백이 존재한다.

센서리백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편의 도구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린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한 접근성의 상징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다. 감각에 민감한 사람들뿐 아니라, 스트레스나 불안을 느끼기 쉬운 모든 관람객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 센서리백이 미술관에서 점점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예술을 단지 ‘보는 사람’의 특권이 아닌 ‘느끼는 사람’ 모두의 권리로 인식하려는 변화를 보여준다.


더불어 이러한 시도는 관람 환경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비가시적인 장애나 감각 차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외국인, 아동 등 다양한 이용자층의 문화적 경험을 보장하는 방향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작은 가방 하나로 시작된 시도가, 그것이 놓인 공간의 가치관과 철학, 나아가 사회의 태도 변화의 상징이지 않을까. 포용적 문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점점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센서리백은 그중 하나의 중요한 실천이자 물리적 선언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영국에 있는 The Postal Museum에서는 뮤지엄 콘셉트에 맞게 우편 배달부 콘셉트를 적용한 센서리백을 선보였다 ©The Postal Museum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되기 위하여

: 센서리백을 통한 미술관 포용성의 확장

모두를 만족하는 센서리백이란 어쩌면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워크샵을 진행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피젯 토이가 필요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커뮤니케이션 카드가 필요해 보였다. 전맹인분들과 저시력자분들도 필요로 하는 게 분명히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촉지도가 필요한 반면, 누군가에게는 혼자 충분한 미술 관람이 가능하니 정리된 동선과 이에 맞는 친절한 QR코드만 있으면 됐다. 사람마다 느끼는 감각도, 필요한 지원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센서리백이 모두를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 작은 가방은 분명 소중한 가방이 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센서리백 안의 도구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긴장을 풀고, 불안을 달래며, 새로운 경험에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방이 전하는 작은 보조가 미술관이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미션잇과 서울 시립미술관은 그런 생각과 마음을 모아, 함께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미술관이 서로 다른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미술관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많은 공감을 얻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센서리백과 같은 시도들이 더욱 다양해지고 발전한다면, 미술관을 찾은 모든 방문객이 자신만의 의미 있는 예술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멀리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센서리백 이외의 방법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시설적인 측면에서 편리한 이동 동선을 제안한다거나, 시각장애인분들을 위해 작품 설명에 관련 QR 코드를 조금 더 직관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전시장 내에서 QR코드의 위치나 리플렛 구성을 바꿔볼 수 있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모인다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미술관은 결코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실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차별 없이 함께하는 문화 공간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게 펼쳐지길, 그런 날을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예술이 모두의 것이 있도록, 오늘의 작은 변화들이 내일의 미술관을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편집ㅣ임슬기, 미션잇 콘텐츠 에디터
참여ㅣ김병수, 미션잇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전예진, 미션잇 디자인 디렉터
백경하, 미션잇 리서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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