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에 〈어른 김장하〉를 보았습니다. 님도 아직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립니다(1부 2부). 저는 또 다른 주인공 ‘기자 김주완’에 눈길이 갔습니다. 김주완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김장하 선생이 제 기자 인생에서 하나의 지표가 되지 않았나…. 그 당시 분위기로는 외근 취재 기자들은 누구나 너도 나도 다 차를 사는 분위기였거든요. 도저히 타산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 월급에 차를 사는 순간 촌지의 노예가 되는 거죠. 그때 김장하 선생을 떠올렸죠. 김장하 선생 같은 돈이 많은 분도 평생 차를 갖지 않고 이렇게 검소하게 살아오고 계신데, 적어도 부정한 돈을 받아서 생활하는 그런 기자는 되어서는 안 되겠다.”
‘촌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며, 32년간 뚜벅이 지역 신문 기자로 살아온 김주완. 〈한국일보〉에, 〈한겨레〉에, 〈중앙일보〉에 그와 같은 ‘선배’가 있었다면 김만배 〈머니투데이〉 부국장과 돈거래 추문은 없었을 것입니다. 말이 쉽지 촌지 거부가 얼마나 어려운지 언론계 종사자들은 압니다. 촌지는 선배로, 때론 가까운 이들의 ‘선한 얼굴’로 다가옵니다.
원(原) 〈시사저널〉(삼성 기사 삭제 사건으로 〈시사저널〉을 떠난 〈시사IN〉 기자들과, 뜻을 함께한 〈시사저널〉 출신 동인들은 옛 〈시사저널〉을 이렇게 부릅니다) 기자 시절, 부산 지역 기관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대학 선배라며 따로 집무실로 데려갔습니다. 서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건넸습니다. “선배가 주는 교통비야. 어서 받아.” 촌지였습니다. 원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부터 촌지 거부 문화를 지켜왔습니다. “선배. 이거 받으면 회사에서 제가 징계를 받습니다.” 기관의 언론 홍보 담당자가 나중에 연락을 해왔습니다. “촌지 거부한 기자는 고 기자가 처음이네요.”
자랑이 아닙니다. 저야 일회적인 취재였기에 촌지 거부가 어렵지 않았습니다. 악습이 남아있는 곳에서 김주완은 기자 생활 내내 촌지를 거부 했습니다. ‘독립 언론’ 기자였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김주완 기자가 몸 담았던 〈경남도민일보〉는 도민주 신문으로, 〈시사IN〉과 똑같은 독립 언론입니다.
기자 김주완이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며 쓴 책, 〈줬으면 그만이지〉를 읽으며 저는 후원자인 님을 떠올렸습니다. 소득 공제도 되지 않는 〈시사IN〉에 후원을 하는 님이야말로 ‘줬으면 그만이지’라고 여기는 ‘작은 김장하’가 아닐까요.
뒤늦은 고백입니다. 제가 후원제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2016년 5월 편집국장에 취임해 제454호를 첫 제작했습니다. 2020년 5월 제662호로 편집국장직을 마쳤습니다. 〈시사IN〉 편집국장은 좀 독특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의 책임자이면서 동시에 당연직 경영 이사를 겸직합니다. 2006년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이라는 창간 스토리 때문에 경영 파트에서 편집권에 관여하는 구조를 없애고, 편집국장에게 권한을 더 부여했습니다.
독립언론답게 선출 방식도 독특합니다.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교황 선출 방식’으로 예비 투표를 합니다. 그 가운데 일정한 득표를 얻으면 후보 자격이 주어지고 정견을 발표한 뒤 다시 투표를 거칩니다. 2016년 편집국장 선출 당시 프레젠테이션 파일을 열어보니 이런 말을 강조했습니다.
“빨리 실험하고 빨리 실패하자.” 님과의 인연도 이런 실험의 과정에서 이뤄졌습니다. 님과 인연, 저는 성공이라 자평합니다. 님에게 아무 것도 드린 게 없는데, 님은 지금도 저희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님에게 손을 내민 것은 콘텐츠 뿐 아니라 언론사로서, 기업으로서 독립언론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님은 독립언론의 주춧돌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편집국장 직에서 물러난 뒤 다시 현장에 복귀해 검찰 관련 기사를 쓰다가 지금은 미디어랩장을 맡고 있습니다. 〈언론수용자 조사〉 〈해외 미디어 동향〉 〈해외 언론사들의 숏폼 동영상 전략〉…. 오늘 제가 살펴본 보고서입니다. 요즘 고민의 편린이기도 합니다. 디지털, 저널리즘, 신뢰, 후원….
국장에서 물러났지만 지금도 똑같습니다. “빨리 실험하고 빨리 실패하자.” 유튜브 라이브를 신설하고, 지면 콘텐츠를 모바일에서 보기 편하게 바꾸고, 종이책 배송 불만 대안으로 전자책을 혁신하려고 합니다. 창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독자 조사도 했습니다. 웹 서베이 툴로 직접 설문을 설계했습니다. 무려 1만명 가량 정기독자, 디지털 독자가 응답해 주었습니다. 설문 대가로 커피쿠폰을 드린 것도 아닌데, 〈시사IN〉 독자답게 깨알 답변을 달아주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의 바람은 한결 같았습니다.
- “심층 취재요. 특히 지방 소멸에 대한 여러 주제들을 시사인만의 시각으로 다뤄주세요.”
- “단편적 정보전달이 아닌 심층취재로 사건 본질을 바라 볼 수 있도록 탐사보도, 기존 언론사에서 다루지 않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사실들, 우리 사회 속 감춰진 이면, 소수자의 목소리 등을 담아주세요.”
- “학교 앞 어린이 교통사고 문제점에 대한 기사처럼 뉴스에서는 깊게 다루지 않아 오해할 뻔한 내용을 시사인을 통하여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꼭 알아야하지만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자세하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 스토킹 처벌, 장애인차별금지에 관하여 항상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서베이 결과를 146쪽짜리 보고서로 만들어 내부 구성원들과 교감했습니다. 결론은 ‘신뢰하는 매체만이 살아남는다’였습니다. 신뢰받지 못하면, 쇠퇴하겠지요. 신뢰는 저널리즘의 본령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실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기자 김주완과 달리 저는 ‘꼰대’인지 후배들을 다그칩니다. 최근 장일호 기자와 회의실에서 큰 소리로 논쟁을 한 적도 있습니다. 예전엔 흔했는데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저는 ‘최악의 편집국은 침묵의 편집국’라 여깁니다. 님의 후원금이 헛되이 낭비되지 않고 소중히 쓰이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야 합니다. 계급장 떼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합니다. 술자리에서도 후배 기자들에게 “기사 똑바로 쓰라”고, “그건 우연한 특종이다”라고, “현장에 천착하라”라고, “삼성그룹보다 1년만 더 버티고 〈시사IN〉 문을 닫자”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여전히 ‘선배’가 ‘어른’이 되기엔 그릇이 작지요. 네, 꼰대 맞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꼰대 취급 받더라도 님의 바람처럼 〈시사IN〉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후배들과 논쟁하고 싸우며 실험하고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연말 정산을 하다 보니 한 곳 정도는 더 후원할 여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님이 몇 군데 소개를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어른 김장하〉의 발꿈치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시사IN〉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님의 마음을 받아 저도 또 후원처를 찾아보려 합니다. 〈어른 김장하〉를 보니, 선생의 걷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님의 손을 꼭 잡고 저도 〈시사IN〉도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앞으로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