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CF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뉴스레터를 시작했을 때, 봄이 왔다는 소식과 함께 글을 시작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가을이 왔다는 소식을 전해봅니다. 입추가 지난 지는 한참이지만, 저는 오늘에서야 가을을 체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창문을 열고 자니 추워 이불을 덮게 되고, 아침에는 자연스럽게 긴팔 옷에 손이 갑니다. 아이스 음료보다는 조금씩 따뜻한 것이 당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제 몸은 이제야 가을을 누리고 있나 봅니다.
이렇듯 우리는 같은 환경 속에서도 서로 다른 온도와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누군가는 불안을, 누군가는 평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신가요?
저는 최근에 “압이 찬 것 같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도 모르게 입에 붙은 이 표현은, 제 안에 무언가가 가득 차 있다고 느낄 때, 그래서 다른 감정이나 경험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을 때마다 꺼내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그릇이 가득 차 찰랑찰랑하던 중, 잠시 본가에 다녀왔습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해결한 것도 아닌데 돌아오니 제 그릇이 조금 비워진 것이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감정은 어쩌면 그저 어떤 사람 곁에, 어떤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저마다의 감정과 ‘압’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 사회 역시 어딘가 과부하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해야 할 일과 감당해야 할 역할은 계속 늘어나는데, 정작 그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을 내려놓을 곳은 충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곳, 무언가를 잘 설명하거나 정리하지 않아도 되는 곳,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있었을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했던 것은 감정을 해결하는 방법보다, 그 감정을 가지고도 함께 있을 수 있는 사람과 공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곁에 있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압’이 조금씩 나누어지는 경험이 있으니까요.
과거 KSCF가 청년들이 품고 있던 사회를 향한 질문과 분노, 답답함을 함께 나누고 해방하는 공동체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오늘의 KSCF도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압’을 조금 내려놓고, 다시 다른 감정과 사람을 받아들일 작은 여백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공동체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