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로는
쓸 수 없는 말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의 저자 김성우 인터뷰
-
from. 멍탐정 |
|
|
CONTENTS
-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시대
- ‘지브리 프사’ 열풍이 남긴 것
-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묻는 책
- 과제를 챗GPT로 썼는지 캐물을 수 없다
- 프롬프트 잘 쓰는 법은 없다
- 인공지능을 통한 역동적인 책 읽기?
- 올드 미디어는 뉴 미디어로 ‘대체’되지 않는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
|
🐟 멍탐정
‘책과참치’가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유유, 2024)의 저자 김성우 선생님을 인터뷰합니다. 챗GPT 시대의 독서와 글쓰기 문제를 참신하고 날카로운 관점으로 다룬 이 책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인공지능 관련 여러 이슈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듣고자 마련한 자리입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김성우
저는 응용언어학을 공부하면서 글을 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언어학은 언어 자체의 구조나 의미, 활용을 연구하는 학문인데요, 응용언어학은 언어를 사회적이고 인지적인 현상과 엮어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언어와 사회, 언어와 교육, 언어와 정체성, 언어와 정치, 언어와 기술 같은 걸 다루는 학문이죠.
IT 관련 업계에서 7년 정도 일을 했고, 석사 과정에서 컴퓨터를 활용한 언어 교육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도합 10년 정도를 IT에 관련된 일과 공부를 해온 셈이죠. 박사 과정에 가면서 IT와 조금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경력 때문인지 이 주제가 계속 저를 따라다니더라고요.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리터러시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주제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
|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시대
🐟 멍탐정
저서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최근의 인공지능 이슈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은데요. 얼마 전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보셨어요? ‘AI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주제였는데, 인공지능과 연애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더군요.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 김성우
짧게 편집된 클립 몇 개만 봤습니다. 일단 인간이 아닌 존재에 감정적으로 끌리게 되는 건 생각보다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책에서도 간략히 언급했는데, 혹시 영화 <캐스트 어웨이> 보셨어요? 무인도에 홀로 떨어진 주인공이 배구공을 ‘윌슨’이라는 인격체로 인식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이야기가 나오죠. 그 배구공이 바닷물에 떠내려갈 때 주인공이 절규하는 장면도 나오고요. 애착인형 역시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네요. 어떤 아이들은 어디에든 애착인형을 가지고 다니면서 대화를 하잖아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에 끌리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인간과 인공지능이 관계 맺는 방식은 인간 사이의 교류와 근본적인 차이가 있죠.
🐟 멍탐정
그게 뭘까요?
📖 김성우
‘그라운딩grounding’1)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직역하면 ‘접지接地’, 땅에 붙는다는 뜻이죠. 그런데 인공지능은 실상 이 세계에 접지돼 있지 않아요. 인간은 직간접 경험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데, 인공지능은 이 세계를 그저 언어 데이터로 배워요. 그럼에도 인공지능은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학습했기 때문에 우리가 무슨 말을 던지든 다정하게 혹은 친절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답을 줄 수가 있겠죠.
<그알>에서 나왔던 사례 중 미국의 14세 소년이 ‘캐릭터 AI’라는 챗봇 서비스 캐릭터와의 대화에 깊이 몰입한 나머지 자살에 이른 사건이 있었죠. 유가족과 변호인은 챗봇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어요. 채팅 로그가 남아 있으니까요. 거기에 소년의 자살을 암시하는 듯한 대화가 상당히 은유적인 방식으로 기록돼 있었어요. 유가족과 변호인은 이 대화가 소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확신하며 법정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2)
그러니까 끌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끌림이 전산적이고 기계적인 로직에 의한 것임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공지능은 ‘나’라는 존재에 관심이 있어서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라기보다 무수히 많은 인간의 언어를 대량으로 학습한 기계일 뿐이죠. 짧게는 20~30년간 수십억 명이 남긴 언어 데이터를 학습해서 어떤 말에든 마법처럼 답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계는 마음을 쓰지care 않아요. 그저 계산할compute 뿐이죠.
🐟 멍탐정
저는 <그알>을 보면서 솔직히 인공지능보다 사람 쪽이 더 흥미로웠거든요.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이 취재하러 온 PD에게 계속해서 챗봇이 방금 하는 말을 들었냐고 되묻고, 놀랍지 않냐고 거듭 확인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 김성우
제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그분들이 거대언어모델LLM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예요. 인공지능의 작동 메커니즘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놀라거나 신기하게 여기는 정도가 약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그만큼 어떤 관계에 목말라 있는 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현상을 좋다 나쁘다 판단하기보다는 결국 관계의 실패, 사회적인 소통 시스템의 실패가 가져온 현상이 아닐까 싶네요. 주변에 아무리 얘기를 하려 해도 나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자살한 미국 소년의 경우에는 그런 절망감 때문에 챗봇에 더 빠져들게 된 거겠죠. |
|
|
‘지브리 프사’ 열풍이 남긴 것
🐟 멍탐정
최근에 더 큰 이슈가 있었죠. ‘지브리 프사 열풍’ 말입니다. 단지 재밌는 이미지를 공유한다는 수준을 넘어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과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 김성우
흥미롭게도 지브리 작품을 정말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가 지브리 스타일이 아니라고 해요. 대충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디테일이 떨어져서 ‘이건 지브리 그림이 아니야’라고 판단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외 대다수는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을 안 써요. 대충 딱 보고는 지브리 그림으로 인식해버리는 거죠.
또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저작권법 이슈죠. 현재 저작권법은 스타일 자체를 보호하진 않아요. 스타일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걸 법적으로 제재하고 못 만들게 할 수는 없어요. 문제가 되는 건 인공지능의 훈련 과정에서 지브리의 실제 이미지를 사용했는지 여부예요.
현재로선 소송이 걸리더라도 지브리가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지브리의 허락 없이 엄청나게 많은 애니메이션 장면을 인공지능 훈련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법적으로 다퉈볼 만하겠죠. 하지만 과연 현행 저작권법으로 지금의 사태를 온전히 이해하고 법적 적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저작권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정되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적인 사례들이 더 있죠. 예컨대, 미국 백악관이 공식 SNS 계정에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의 지브리 형상을 올려 물의를 일으킨 일도 있고,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지브리 스타일로 군인들을 홍보한 사례도 있습니다.3)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이를 용납할 리가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이슈는 감정적인 요소와 법적인 요소가 혼재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의 예로, 재작년 미국에서 인공지능 플랫폼 업체를 상대로 예술가들이 인공지능 학습에 자신들의 저작물이 무단 사용되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건 일이 있었죠. 소송 대상 업체 중에는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이라는 이미지 생성 AI 모델을 만든 스태빌리티 AI라는 큰 회사도 있습니다.
소송의 중간 결론이 이미 나왔는데요, 스타일에 대한 부분은 작가들의 손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 미국 법원의 잠정적인 결론이에요. 다만 인공지능 훈련 과정에서 작가들의 작품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는지의 문제는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어요. 결론이 약간 애매한데, 현재도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물론 텍스트에 관한 큰 소송도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 등의 언론사가 오픈 AI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서 이 두 가지 소송의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
|
|
인공지능과의 ‘관계’를 묻는 책
🐟 멍탐정
저서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데요. 언제 이 책의 구상을 시작하셨나요?
📖 김성우
이 책의 기획은 챗GPT가 나온 직후에 생각한 거예요. 초기인 GPT 3.0 시절만 해도 솔직히 실망스러웠거든요. 인간의 글쓰기를 위협하거나 교육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GPT 3.5는 달랐어요. 강한 충격을 받고,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
|
🐟 멍탐정
엄기호 선생님과의 공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따비, 2020) 이후 4년 만에 다시 미디어 리터러시에 관해 쓰신 거잖아요. 관점이나 입장의 변화가 있으신가요?
📖 김성우
문제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요. 미디어 기술을 사회적인 것, 제도적인 것, 정치적인 것과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 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의 변화는 없다는 거죠. 다만 전작이 유튜브와 텍스트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근작은 인공지능이 전통적인 리터러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변화의 범위나 진폭으로 따지자면, 인공지능 쪽이 더 급진적이고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21세기에 일어난 다양한 미디어 혁신의 사례들과 비교해봐도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수준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영상, 소리까지도 모두 인공지능이 처리하고 생산하고 변형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멍탐정
저서의 기획 방향을 잡을 때 중요하게 고려하셨던 점은요?
📖 김성우
그동안 인공지능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나왔잖아요. 알라딘에서 챗GPT라는 키워드로 통합 검색을 하면 약 2400건의 책이 나와요. 종이책 단행본이 약 700권, E북이 1700권 정도네요. 중복된 타이틀을 고려하면 아마도 1500에서 2000권 사이가 되겠네요. 그런데 대부분이 AI 활용법에 대한 책이에요. 그래서 제 책은 활용법이 아니라 인공지능과 읽기-쓰기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이런 책을 원하는 독자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
|
|
과제를 챗GPT로 썼는지 캐물을 수 없다
🐟 멍탐정
챗GPT와 리터러시에 대한 질문을 안 드릴 수 없는데요. 특히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의 책 읽기와 글쓰기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 김성우
챗GPT가 2022년 11월에 첫 출시됐죠. 그때 이후로 약 3년 정도가 지났네요. 미국의 통계 하나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작년에 퓨 리서치 센터가 미국의 10대 학생(13세~17세)을 대상으로 챗GPT 사용에 관한 설문조사4)를 실시했어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과제에 챗GPT 사용하는 비율이 26%, 조사 대상의 4분의 1에 이른다고 해요. 조사 기간이 작년 9~10월경이었으니까 지금은 35% 이상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합니다. |
|
|
🐟 멍탐정
학교에서 챗GPT 사용률이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김성우
미국에 계신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챗GPT에 영어로 학습된 데이터가 제일 많아서 더 심할 텐데, 미국 교사들은 학생들이 과제를 챗GPT로 쓴 건지 직접 쓴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는 거예요. 게다가 AI 탐지기 역시 완벽하지 않거든요.5) 선생님들은 인공지능 사용에 대한 심증이 있어도 확실하게 학생을 추궁할 수가 없는 셈이죠. 그런 와중에 학생과 교사 사이의 신뢰가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한국은 아직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과제 작성에 챗GPT를 사용하는 비율이 점점 늘어가는 중일 겁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느낄 것 같네요.
🐟 멍탐정
고등학교보다 대학이 더 심하지 않을까요?
📖 김성우
대학에서도 증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강의를 하면서 체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확증을 잡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학생에게 대놓고 물어보기도 어렵고요.
🐟 멍탐정
왜 물어보기가 어려운 걸까요?
📖 김성우
아무래도 학생의 도덕성을 따지는 일이니까요. 물론 너무 티가 나는 경우에는 물어봅니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인공지능의 도움을 조금 받았지만 대부분은 자기가 썼다고 대답해버리면 논의를 더 진행할 수 없는 거죠.
🐟 멍탐정
챗GPT 사용과 관련된 교육 지침 같은 건 없는 상황인가요?
📖 김성우
저는 수업에서 에세이 과제를 내줄 때는 인공지능을 쓰지 말라고 얘기해요. 이런 글은 학생의 생각과 경험이 중요한 거니까요. 물론 리서치를 하는 데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죠. 표준화된 지침은 없는데 교육청별로는 지침을 마련해 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22년도에 서울시에서 나온 「서울형 인공지능(AI) 윤리 교육자료(초등학교용)」 같은 게 있고요. 인공지능 관련된 교육자료들이 여러 개 공개돼 있어요. 모든 학교급별로 표준화된 윤리 규정은 없고요. 그래서 선생님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초등학교에서는 인공지능을 아예 못 쓰게 하는 경우도 있고, 중·고등학교에는 교사 지도하에 적절하게 사용하게 하는 방침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한 표준 규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맥락을 무시하고 모두에게 동일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고 봐요. 그런 면에서 윤리성에 기반을 둔 자율성이 중요한 시점이고요. |
|
|
프롬프트 잘 쓰는 법은 없다
🐟 멍탐정
챗GPT 얘기를 하다 보니 프롬프트에 관해 궁금해지는데요. 저서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부분을 힘주어 쓰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김성우
현재 거의 대부분의 거대언어모델은 챗봇 형태로 구현이 돼 있잖아요. 우리가 인공지능에게 무언가를 요청할 때 대부분 언어를 타이핑합니다. 이런 걸 프롬프트라고 하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란 자신의 의도와 목적에 맞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적절한 프롬프트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뜻합니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 모델의 일반적 특성과 특장점을 파악해야 하고, 특정 주제와 분야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도 알아야 하죠. 문제는 이 개념이 사람들에게 마치 프롬프트만 잘 쓰면 원하는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물론 프롬프트를 잘 쓰자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 쉬운 설명을 위해 이미지 하나를 보여드릴게요. 물에 떠 있는 빙산의 이미지인데요. ‘프롬프트 리터러시 개념도’라는 자료입니다.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부분이 프롬프트예요. 수면 밑에는 사용자가 말하지 않은 수많은 지식과 경험, 정보의 맥락, 생산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숨겨져 있는 거죠. |
|
|
📖 김성우
예컨대, 어떤 예술 분야에 대한 좋은 글을 쓰려고 할 때, AI 프롬프팅 요령만 안다고 되는 게 아니죠.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고, 예술가의 인터뷰나 전문가의 비평을 읽어야 하죠. 예술 이론과 역사에 대한 책도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프롬프팅을 잘할 수 있는 거죠. 프롬프팅 기술은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개념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과정에서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 멍탐정
말씀대로 많은 인공지능 관련 책이나 글들은 마치 질문 잘하는 요령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말하거든요?
📖 김성우
그렇죠. 저는 ‘질문만 잘하면 된다’라는 명제가 너무나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진짜 잘하려면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잖아요. 아무리 질문을 잘해도 인공지능이 제시한 텍스트를 읽어낼 문해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죠. 인공지능에 질문만 잘하면 좋은 해답이 나온다는 식의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 수 있죠. 질문 자체가 본질을 꿰뚫지 못하거나, 질문 이후에 얻게 되는 텍스트를 질문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죠.
🐟 멍탐정
2023년 <인스피아> 인터뷰6)에서 챗GPT에 질문하기가 일종의 ‘유도심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 김성우
많은 경우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탐색과 대화가 정말 중요한데요. 이런 인터뷰처럼 열려 있는 대화와 탐색이 정말 짜릿한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주잖아요. 스크립트를 놓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하면서 뭔가 떠올라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과정이 재밌는 거고요. 그런데 과제를 하는 경우에 학생들은 어떤 이상적인 형상을 설정해놓고 답을 뽑아내려 합니다. ‘뽑아낸다’라는 말 자체가 유도심문에 가깝다고 생각한 거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답을 정해놓으면, 거기까지 가기 위해 어떻게 프롬프팅을 해야 하는지의 문제에만 관심을 갖게 됩니다. 물론 정확하게 의도한 답을 구해야 하는 작업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게 대화나 토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정답을 알려주는 인공지능’이라는 인식이 오히려 인공지능을 쓸모없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읽기가 주는 동적인 변화는 우리가 여태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거든요. 프롬프팅이 무언가를 탐색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활동이 되어야지 참고서 답지를 열어보는 과정이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
|
|
인공지능을 통한 역동적인 책 읽기?
🐟 멍탐정
읽기도 중요한 문제인데, 잘 아시겠지만 최근 온라인 독서 플랫폼이 AI TTS나 페르소나 챗봇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잖아요. 이런 인공지능 기반의 독서 서비스나 전자책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 김성우
앞서 언급한 미국의 10대 청소년 자살 사건이 캐릭터 AI라고 하는 페르소나 챗봇 플랫폼에서 일어난 일이잖아요. 하지만 이 기술이 독서에 적용이 되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읽기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고, 책을 읽는 방법도 계속 변하고 있으니까요.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종이책을 선호하는 분들의 의구심이 있잖아요? 하지만 전자책에 익숙한 사람들은 기기를 이용한 독서에 거부감이 없죠. 잠들기 전에 오디오북 TTS를 켜놓고 10~15분 정도 책을 ‘들으면서’ 잠드는 거죠. 어떤 사람은 오디오북이 좋은 이유가 깜깜한 데서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다양한 이유와 요구가 있는 거죠. 이런 단순한 사례보다 더 다양하고 새로운 읽기의 가능성도 물론 있습니다.
🐟 멍탐정
인공지능으로 어떻게 새로운 읽기를 할 수 있을까요?
📖 김성우
우리가 보통 책을 읽을 때 행간을 읽는다고 하잖아요. 단지 글자만 읽는 게 아니라 텍스트에 깔려 있는 어떤 정조나 작가의 의도도 읽어낼 수 있죠. 또한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텍스트와 계속 교감하며 읽는 거죠.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런 기록은 말하자면, 고정된 형태로 남게 됩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은 행간을 읽는 행위를 동적으로 바꿔놓을 수가 있는 거죠. 예를 들어 독자가 어떤 책을 읽는데 저자가 철저하게 자본가의 입장에서 노동 현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보죠. 독자 입장에서 이게 마음에 안 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책의 특정 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챗GPT에 올린 다음에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이 부분을 읽었다면 어떻게 느낄지를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챗GPT는 외국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그 단락을 읽고 그들이 느낄 법한 반응을 소개해주겠죠. 그러면 독자는 그 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게 끝이 아니죠. 한국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처지가 다 똑같은 게 아니잖아요. 법적인 지위라든가 기업에 대한 생각 등이 다양할 것 같은데, 그런 사항들을 분류해서 인공지능을 통해 답을 얻으면 상당히 역동적인 독서를 할 수 있는 거죠. 더 나아가 텍스트 자체를 변형할 수도 있고요. 제가 책에서도 썼던 얘기인데, 미국의 『독립선언문』은 백인 남성들이 쓴 거잖아요. 이걸 인공지능에게 당시 미국의 흑인 여성과 노예 입장에서 다시 쓰거나 비판해달라고 하는 거죠. 퍼블릭 도메인에 있는 『독립선언문』 텍스트를 업로드하고 프롬프팅을 하면 정말 괜찮은 텍스트가 나오거든요.
🐟 멍탐정
말 그대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독서가 가능해지는군요. 롤랑 바르트가 말한 ‘쓰는 텍스트writerly text’가 문자 그대로 현실화된 셈이네요.
📖 김성우
그렇죠. 우리의 상상력은 한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영어로 쓰인 리터러시에 대한 어떤 문단을 읽었을 때를 가정해 보죠. 만약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이러한 서구의 표준 리터러시에 근거한,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읽었다면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길 수 있잖아요. 호피족이나 나바호족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챗GPT 프롬프팅을 통해 이런 새로운 상상을 실현시켜볼 수 있는 거죠. |
|
|
올드 미디어는 뉴 미디어로 ‘대체’되지 않는다
🐟 멍탐정
선생님의 책에는 인공지능이 오도하는 리터러시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여러 대안적인 아이디어도 제시돼 있는데요. 특히 연필, 메모장, 타자기, 스케치북 같은 구식의 쓰기 장치에 대한 경험담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자칫 일종의 복고주의적 접근으로 오독할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스마트폰이 기존의 ‘낡은’ 읽기-쓰기 미디어를 대체할 거라는 전망도 판치고 있고요.
📖 김성우
그 질문을 들으니 문득 경향신문 김지원 기자님의 책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유유, 2024)이 떠오르는데요. 인터넷에 기사가 넘쳐나고 영상이 우후죽순 나오는 시대에도 책이 가지는 가치가 있음을 본질적인 측면에서, 또 흥미롭게 지적해 주셨죠. 제 책에서도 여러 번 얘기를 했지만 ‘대체’라는 담론에 대해서 무척 회의적이에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고, 노동을 대체하고, 전통적인 리터러시를 대체한다는 말, 굉장히 강하고 공격적인 말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무언가로 바로 대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지금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쓰면서 동시에 노트에 필기를 하고, 종이책에 메모를 하죠. 텍스트힙 유행을 타면서 등장한 ‘다꾸’(다이어리 꾸미기)나 ‘책꾸’(책 꾸미기), 심지어는 ‘논꾸’(논문 꾸미기)도 있죠. 이런 현상을 보면서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대체한다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 담론인지를 느낍니다.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는데도 직접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죠. 새로운 것과 낡은 것은 리터러시 생태계 속에서 지층의 형태로 쌓여서 상호 작용하는 것이지 바로 대체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등장해서 많은 것들을 질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오래되었더라도 가치 있는 어떤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죠. 양자가 어떻게 공존하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리터리시 행위를 만들어내는지가 저의 관심사입니다.
🐟 멍탐정
그런 의미에서 저서에 언급된 ‘리터러시 생태계’와 ‘비판적 메타 리터러시critical meta-literacy’ 같은 개념이 흥미로웠습니다.
📖 김성우
그 용어에 ‘메타’가 붙은 이유는 리터러시 생태계의 다양성 때문인데요. 인공지능과 전자책의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종이책을 고수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디지털 기기에 메모하면서도 필사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종이책을 읽다가 어떤 부분을 캡처해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 되었죠.
어떤 미디어가 우월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각각의 미디어가 고유의 스타일과 성격, 정보의 목적과 맥락에 따라서 이합집산하고 결합하면서 새로운 양태의 리터러시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는 거죠.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는 역량이 ‘메타적인’ 능력입니다. 단지 인공지능이 유행하니까 우르르 몰려가서 이걸 배우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식의 담론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리터리시 생태계가 그런 방식으로 구성돼 있지도 않고요. |
|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 멍탐정
긴 시간 동안 뜻깊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뉴스레터 ‘책과참치’ 구독자들을 위해 선생님의 저서와 함께 읽을 만한 책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 김성우
두 권의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책은 매슈 루버리의 『읽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인간은 인공지능을 향해 과몰입 상태로 달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공지능이 열어젖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이미 사회적·문화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읽기와 쓰기의 다양성을 망각하게 됩니다.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읽기’에 관한 책입니다. 난독증이나 실독증뿐 아니라 글을 읽을 때 색깔이 보인다거나 소리가 들리는 공감각도 있죠. 예전에는 이런 것을 병의 증상으로만 여겼습니다만, 매슈 루버리는 다양한 읽기 양상으로 해석합니다.
매슈 루버리, 『읽지 못하는 사람들 - 우리의 인간다움을 완성하는 읽기와 뇌과학의 세계』, 장혜인 옮김, 더퀘스트, 2024 |
|
|
📖 김성우
두 번째로는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이 대단히 새로운 얘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제 책과 비교해가면서 서로의 틈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오미 배런의 책에는 특히 쓰기와 저자성authorship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오거든요. 제 책이 리터러시와 관련된 개념 및 개인적인 경험과 해석을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면, 『쓰기의 미래』는 글쓰기에 얽힌 다양한 영역을 조망합니다. 풍부한 사례를 통해 쓰기의 풍경과 저자성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탐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나오미 배런, 『쓰기의 미래 - AI라는 유혹적 글쓰기 도구의 등장, 그 이후』, 배동근 옮김, 북트리거, 2025 |
|
|
1) 인공지능이 추상적인 지식과 정보를 검증 가능한 데이터 소스에 연결하여 사실성과 정확성을 확보하는 과정을 뜻한다.
2) "Can A.I. Be Blamed for a Teen’s Suicide?", The New York Times, Oct. 23, 2024.
https://www.nytimes.com/2024/10/23/technology/characterai-lawsuit-teen-suicide.html
3) 「“하야오에 대한 모독”…지브리풍 이스라엘군, 이게 맞아?」, 한겨레 2025.4.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0061.html
4) “About a quarter of U.S. teens have used ChatGPT for schoolwork – double the share in 2023”, Pew Research Center, Jan. 15, 2025.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25/01/15/about-a-quarter-of-us-teens-have-used-chatgpt-for-schoolwork-double-the-share-in-2023
5) 「"챗GPT 안 썼다. 억울하다"…AI 역설」, 연합뉴스 2025.4.7.
https://www.yna.co.kr/view/AKR20250401155500505
6) 김스피, 「“인간은 대체될 것인가?”란 질문 대신[김성우 저자 인터뷰]」, <인스피아> 78, 2023.3.15.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v1-eCJZJRdDXuQagv4poxM3BrtOwVxA
|
|
|
인터뷰어/정리 멍탐정
출판 및 독서 문화사를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여기서는 글로벌 독서-문화의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의 베스트셀러 문화를 분석하는 일을 주로 합니다. 여가 시간에는 세계 각국 독서문화사의 어두운 심해에 잠겨 있는 귀하고 특이한 책과 독자를 찾아 매일 검색의 항해를 떠납니다.
|
|
|
#김성우 #인공지능 #리터러시 #챗GPT #프롬프트엔지니어링 #비판적메타리터러시
|
|
|
이번호 뉴스레터는 어떠셨나요? 구독자님의 의견은 레터 개선에 큰 도움이 됩니다.
|
|
|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는 2주 후 목요일 아침에 또 찾아 뵙겠습니다.
'서평 뉴스레터 책과참치'를 만드는 사람들
기획/편집
김만석, 김성우, 김지원, 박영신,
서민우, 이용희, 이우창, 천정환
디자인 김다혜
발행 콘텐츠랩 책과참치
콘텐츠랩 책과참치
booksnchamchi@gmail.com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