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성폭력처벌법, 공직선거법에서의 '딥페이크'
안녕하세요. 최윤정 기자입니다.
총선이 한 달 정도 남았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올해처럼 선거가 있는 해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등 선거와 관련된 범죄도 늘어납니다.
국회는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했습니다.
'딥페이크'를 규제하기로 했습니다. 선거일 90일 전부터는 ① 인공지능 기술 등을 이용해 만든 ②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상의 음향과 이미지, 영상'으로 선거 운동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법 조문에는 '딥페이크'라는 단어를 그대로 넣었습니다.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 기술로 특정인의 얼굴 등에 영상을 합성해 원본과 다른 영상을 만드는 제작 기법"¹을 뜻합니다.
공직선거법
"가상 영상의 면면을 진지하게 고찰하거나, 기술 배경지식을 토대로 실제와 구분이 가능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지 아니한다."
공직선거법 조항의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이라는 대목에 대한 선관위의 설명입니다.
딥페이크 영상의 어디까지를 가상으로, 어디까지를 실제로 볼 수 있을지 세밀하게 따지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 상황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면 규제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후보자 캐릭터에 목소리만 입혀도 오인 가능성이 있으면 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딥페이크 때문에 공직선거법보다 먼저 개정된 법이 있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입니다. 연예인 또는 일반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성범죄에 악용되면서 2020년 처벌 조항이 도입됐습니다.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영상물 등을 편집·합성·가공하면 처벌합니다. 반포할 목적이 있어야 하며 소지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해당 조항이 생기기 전에 발생한 범죄는 어떻게 다뤄졌을까요. 최근 이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형법
2017년, 대학생 A는 지인들의 사진을 성적인 사진에 합성해 줄 것을 익명 트위터 계정 등에 여러 차례 의뢰했습니다. 지인들의 개인정보도 함께 적었습니다.
그러다 연말에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습니다.
A의 휴대전화를 주운 사람이 합성 사진들을 보게 됐습니다. A가 의뢰할 때 적은 개인정보를 보고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했고, 피해자들은 A를 고소했습니다.
검찰은 A의 합성 의뢰에 '음화제조교사'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음화제조’는 음란한 문서나 도화, 필름 등을 만들면 처벌하는 형법상 죄입니다. 성적인 묘사가 강한 소설이나 영화 등에 적용돼 '표현의 자유'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당시 피해자들은 "(A의 행위를) 명백한 성범죄로 봐야 한다"며 처벌 조항의 부재에 관해 "법의 한계를 실감한다"는 목소리를 냈습니다.
고등군사법원 재판부는 2020년 1월 음화제조교사,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A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습니다.
(A는 검찰 수사 중 군에 입대해 1심과 2심 재판을 군사법원에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1월, 4년 만에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음화제조교사 혐의를 유죄로 본 2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A의 ‘컴퓨터 프로그램 파일’은 음란한 문서나 도화, 필름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A의 재판은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시 열리게 됐습니다.
* * *
다시 선거 운동으로 돌아가자면, 선관위는 지난주까지 딥페이크 영상 129건을 삭제 요청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수사기관으로 넘어간 사건은 아직 없습니다.
선관위는 "포토샵, 그림판 같이 직접적인 조작을 요하는 프로그램은 법이 제한하는 인공지능 기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도 설명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따른 입법임을 고려했을 텐데요.
빠른 속도로 변하는 기술적 수단인 딥페이크. 그리고 이보다 느리게 변하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의 의도. 그 사이에서 법원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는지 부지런히 지켜봐야겠습니다.
¹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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