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님 정말 덥고 습한 계절,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사실 지난 메일을 보내고 난 후에 수신거부가 많아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독자 의견함에 편지가 많이 쌓여서 놀랐습니다. 모두 일주일보다 더 늦어져도 괜찮다며 토닥토닥 해주셨는데요. 사실 그 말에 응석이라도 부리듯, 엄살떨며 한 주 더 거를까하고도 생각해봤지만 그러다가 영영 다시 편지를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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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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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묵히 곁에 있어줘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문구
문구는 말이 없지만 든든하다. 
✐☡ 묵묵히 곁에 있어줘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문구
쉽고 지치고 무기력해질 수록 일상을 유지하는 반복과 익숙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문구도 새로운 문구를 사기보단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꺼내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간혹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좋아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실망하곤 한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저도 '문구'라는 카테고리만 같을 뿐 이 많은 문구 중 어떤 한 가지만을 애정하지는 못해서 10년 동안 같은 만년필만 쓴다던가, 같은 다이어리 커버를 쓴다던가하는 애착 물건이 있으신 분들을 동경하곤 합니다. 한편으론 호기심이 많아서 계속 새로운 문구를 찾으면 써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나쁜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는 거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그 자체가 나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구구절절 시즌1에도 소개드린 적이 있는 문구인데요. 최근에 먼지를 털어 다시 쓰기 시작한 카키모리의 롤러볼펜입니다. 알루미늄 바디의 고급스러움이 은근한 존재감을 내는 펜이에요. 손에 쥐었을 때 기분 좋은 두께감과 독특함 촉감의 조합이 매력적인 펜입니다. 특히 그냥 볼펜이 아니라 만년필과 같이 잉크를 넣어 사용하는 펜이라 내가 좋아하는 컬러의 잉크를 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필기감 또한 잉크가 나오니까 기존의 볼펜과는 다르면서 만년필보다 훨씬 쉬운 필기가 가능합니다. 

충전한 잉크를 다 쓸 때까지 쓰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다시 쓰려니 촉이 막혀서 2일간 고장난건가하고 상심할 뻔 했는데, 약간 따듯한 물에 끈기를 가지고 잉크를 빼내니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름을 맞이해서 푸른 바다빛의 잉크를 충전했어요. 막힌 줄 알고 '쿵'하고 마음을 쓰여서 그런지 막히지 않도록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또 다시 꺼내 쓰기 시작한 트래블러스 노트 오리지널 사이즈인데요. 노트는 경량지입니다. 잉크와 조합이 아주 좋은 내지라서 좋아합니다. 얇은데 잉크가 번지지 않고 잘 먹히는 데 빠르게 스며들어서 잘 번지지 않아요. 다 쓰면 바로바로 쓸 수 있도록 여러 권 쟁여두기도 했어요.
이건 무인양품에서 발견한 '메이크업 브러시 파우치'인데요. 보자마자 만년필 필통으로 쓰면 딱 좋겠다! 싶어 구입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 사실 만년필을 애지중지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가방에 툭 넣어 다니는데요. 그러다보니 만년필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바디에 잔기스가 나기도 해요. 
근데 만년필을 사은품으로 받은 볼펜마냥 들고 다니는 게 섬세한 필기구를 대하는 좋은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만년필을 아끼시는 분들은 만년필을 위한 부드러운 세무 안감의 필통을 따로 마련하기도 하시던데, 저는 그것까진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렇게 망설이다 만난 이것! 용도는 전혀 다르지만 세 개 정도의 칸이 있고 개별로 수납이 가능하다는 점, 투명 날개가 있어서 연필과 함께 넣어도 뾰족한 연필촉이 만년필에 기스를 내거나 할 염려도 없습니다. 뒷면은 탄탄한 플라스틱 보드같은 것이 들어가 있어서 평평해서 어디 두기에도 딱 좋아요.
색도 무난하고 소재도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더라고요. 가격도 아주 착합니다. 5,900원! 그나저나 무얼봐도 문구랑 연결짓다니, 문구에 미친자의 특별한 능력인걸까요? 
이건 일본 무인양품에서 구입한 메쉬 펜 케이스인데요. 세워서 사용할 수도 있고 눕혀서 사용할 수도 있어서 샀는데 꽤나 많은 용량이 들어가고 내용물이 보여서 꽤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손잡이, 지퍼의 위치, 열리는 지점, 세워서 사용할 때 덜렁이는 윗부분을 고정시키는 똑딱이 단추까지 어느 하나 부족한 곳이 없는 데 아주 평범한 제품인척 하는 게 신기한 필통입니다. 길이는 짧은 것과 조금 더 긴 것 두가지가 있는데 긴 버전은 컵과 칫솔 케이스로도 잘 쓰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아직 한국 무인양품에는 들어오지 않은 것 같아요. 일본 여행이 예정에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살펴보세요!
구입한지는 좀 지났는데 장식용으로 책장에 올려져있다가 얼마 전 꺼내보곤 기분에 따라 하나씩 골라 써보고 있는 머스그레이브 헤리티지 콜렉션 버라이어티 연필 세트입니다. 휘뚜 에서 구입했어요. 귀여운 연필 모양 케이스에 12자루의 연필이 한 세트인데요. 머스그레이브는 제임스 머스그레이브가 1916년 설립한 연필 제조업을 하는 미국에 위치한 가족 회사로 현재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에 마지막 남은 연필 회사라고 해요. 회사가 위치한 테네시주 Shelbyville 지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머스그레이브 연필 공장에서 일하기도 해서 1950년 주지사가 이 지역을 'Pencil City'라고 명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마다 두께도, 컬러도, 진하기도 바디의 각인도 다른 이 12개의 연필 중 어떤 것을 쓸지 고민하며 고르는 이 작은 설렘이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합니다. 
늘 제 주변에서 조용하고 묵묵하게 곁을 지키는 문구 덕분에 일상에서 반짝임을 감지하게 됩니다. 늘상 쓰던 문구들을 꺼내어 정비하고 아끼며 다시 쓰면서 다시금 차곡차곡 일상을 쌓아가는 요즘입니다. 사우님도 잠시 잊고 있던 문구가 있다면 오늘은 그 문구를 다시 꺼내 써보며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어보세요. 
오늘도 구구절절한 제 문구 이야기를 함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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