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지치고 무기력해질 수록 일상을 유지하는 반복과 익숙함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문구도 새로운 문구를 사기보단 이미 사용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꺼내 쓰고 있습니다. 저에게 간혹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좋아하지 못해서 자신에게 실망하곤 한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렇게 저도 '문구'라는 카테고리만 같을 뿐 이 많은 문구 중 어떤 한 가지만을 애정하지는 못해서 10년 동안 같은 만년필만 쓴다던가, 같은 다이어리 커버를 쓴다던가하는 애착 물건이 있으신 분들을 동경하곤 합니다. 한편으론 호기심이 많아서 계속 새로운 문구를 찾으면 써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나쁜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런 사람도 있는 거죠.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그 자체가 나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구구절절 시즌1에도 소개드린 적이 있는 문구인데요. 최근에 먼지를 털어 다시 쓰기 시작한 카키모리의 롤러볼펜입니다. 알루미늄 바디의 고급스러움이 은근한 존재감을 내는 펜이에요. 손에 쥐었을 때 기분 좋은 두께감과 독특함 촉감의 조합이 매력적인 펜입니다. 특히 그냥 볼펜이 아니라 만년필과 같이 잉크를 넣어 사용하는 펜이라 내가 좋아하는 컬러의 잉크를 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필기감 또한 잉크가 나오니까 기존의 볼펜과는 다르면서 만년필보다 훨씬 쉬운 필기가 가능합니다.
충전한 잉크를 다 쓸 때까지 쓰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다시 쓰려니 촉이 막혀서 2일간 고장난건가하고 상심할 뻔 했는데, 약간 따듯한 물에 끈기를 가지고 잉크를 빼내니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여름을 맞이해서 푸른 바다빛의 잉크를 충전했어요. 막힌 줄 알고 '쿵'하고 마음을 쓰여서 그런지 막히지 않도록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또 다시 꺼내 쓰기 시작한 트래블러스 노트 오리지널 사이즈인데요. 노트는 경량지입니다. 잉크와 조합이 아주 좋은 내지라서 좋아합니다. 얇은데 잉크가 번지지 않고 잘 먹히는 데 빠르게 스며들어서 잘 번지지 않아요. 다 쓰면 바로바로 쓸 수 있도록 여러 권 쟁여두기도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