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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엄마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좀 걸어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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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Cancer Institute by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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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족 넷만 모인 자리였다.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엄마의 최근 건강검진 결과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혈당이 높으니 나가서 걸어야 한다, 매일 집에만 있고 남과 대화를 안 하니 자꾸 단어를 잊어버리는 거다, 안 쓰는 물건 좀 버리고 공간을 만들어서 스트레칭이라도 해라…. 두 딸의 잔소리가 꼬리를 물던 중 운전석의 아빠가 불쑥 입을 열었다. “나중에 아빠 먼저 가고 나면 엄마는 누가 돌봐 줄래?” 쉴 새 없이 진동하던 공기가 그대로 멈췄다. 엄마도, 언니도, 나도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하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셋, 둘, 하나. “내가 하지 뭐.”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이 심장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아까보다 조금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안도감 섞인 웃음이 공기를 녹였다. 아빠는 약간 머쓱한 기색으로 얼른 덧붙였다.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테니까 들여다볼 필요 없지만 만약 엄마가 혼자 남게 되면 옆에서 좀 챙겨 주거라.”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한 내가 ‘진짜 어른’이 되는 날은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있다. 내 삶에 늘 나보다 어른이었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세상 겁날 게 없는 척, 독립적인 척하면서도 여차하면 달려가 숨고 응석 부릴 구석이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하지만 아빠의 말은 내가 이제 두 가지 과제와 직면할 때가 됐다는 의미였다. 바로 ‘죽음’과 ‘돌봄’이다.
부모님에게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은 10년 전, 엄마에게 카카오톡을 가르쳐 주면서다. 내겐 숨 쉬듯 쉽고 간단한 걸 몇 번이나 다시 묻는 엄마에게 온갖 짜증과 생색을 내고 나서 알았다. 엄마는 가계부 공책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는 데 필요한 모든 단계를 하나하나 적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익히고 있었다. 내가 가전제품도 못 다루고 세상 물정을 하나도 모른다고 혀를 차던 아빠는 디자인이 바뀐 로션 뚜껑을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당황했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오래 살아온 사람을 추월해 가는 동안 나는 부모님의 백신 접종 예약과 아이허브 직구, 스마트폰 교체를 도왔고, 사기에 가까운 부동산 계약과 보이스 피싱, 온갖 가짜 뉴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조금 번거롭지만 나도 제법 쓸모 있는 어른임을 인정받나 싶어 으쓱할 때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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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ik Lange b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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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돌봄이라니, 선인장 하나도 키울 마음 없이 살아온 내가 그렇게 경계도 없고, 끝도 없고, 언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르는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운전도 살림도 못하고, 참을성도 없어서 엄마가 어깨 수술을 했을 때 고작 머리 한 번 감겨주면서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냈던 내가 과연 그렇게 ‘진짜 어른’ 역할을 맡아도 될까? 걱정과 함께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내가 하겠다고 호언장담한 뒤였다. 우선 두 아이를 키우며 다른 지역에 사는 언니보다 아이 없이 부모님과 같은 동네에 사는 내가 훨씬 자유롭다.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딸이 ‘자연스럽게’ 부모에 대한 돌봄 책임을 지는 구조를 비판해 왔지만, 막상 내 일이 되자 다른 돌볼 존재가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자신이 아니라 엄마를 돌봐 달라고 부탁한 아빠, 언젠가 자신을 연명 치료해야 한다면 2주를 넘기지 말라고 당부한 엄마는 우리에게 ‘짐’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스스로 일상을 꾸려 나갈 수 없게 될 날이 다가온다며 불안해하는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맡기로 한 역할이 대수롭지 않은 듯 처신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막연한 두려움을 마음속 깊숙이 묻어둔 지 얼마 뒤,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하는 딸>의 부제는 ‘일하면서 부모를 돌보는 여성들을 위한 안내서’다. 직장에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던 리즈 오도넬은 어머니의 암 선고, 아버지의 치매 선고를 동시에 받으며 본격적인 돌봄 제공자 역할을 맡았다. 부모의 돌봄을 받다가 부모를 돌봐야 하는 역할 전환에도, 기둥 같던 부모님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저 멍청하게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도 준비되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시행착오 경험과 깨달음을 이 책에 담았다.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죄책감을 처리하는 방법, 형제자매와의 관계에서 주의할 점, 부모님을 시설로 이주시킬 때의 마음가짐 등 구체적 지침 사이에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용변 받아내기’에 대한 내용도 있다. 물론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이 “엿같았어”겠지만 돌봄이란 이토록 인간의 몸에 밀착된 일이고 도무지 계획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임을 따라가면서 잔뜩 긴장했던 마음은 오히려 느슨해졌다. ‘그래, 내가 하지 뭐.’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되든, 지금은 일단 엄마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좀 걸어야지. 걷다가 카페가 보이면 들어가서 키오스크 사용법도 가르쳐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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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최지은 10년 넘게 대중문화 웹 매거진에서 일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펴냈다. 뉴스레터 ‘없는 생활’의 발신자. 늘 행복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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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부모님을 돌보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언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뉴스레터 하단의 [메아리의 의견 남기기]를 통해 나눠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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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인 집단이 만들어내는 믿음과 그 안에 편승하려는 개인의 심리를 블랙 코미디로 포착해 온 감독이다. 컬럼비아 대학교 MFA 과정 중 연출한 단편영화 <쎄이 썸띵>으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눈길을 끌었다. 졸업 작품 <쓰삐디!>는 할리우드 제작사인 인디언 페인트브러시 프로덕션의 지원을 받았으며, 제7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K플러스' 단편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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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쓰삐디!>가 곧 개최될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 섹션에 공식 초청됐어요.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작품인가요?
오지인 1989년을 배경으로 속독 학원에 다니는 아홉 살 아이 ‘정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예요. 아이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으로 들어가면서 겪게 되는 상황을 블랙코미디 톤으로 다뤘어요. 겉만 보면 웃긴 장면이 많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남는 영화예요. 그런 불편함이 이 영화의 정서라고 생각해요.
Q.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인가요? 오지인 그렇진 않아요. 저는 1989년생인데, 영화 배경도 1989년이에요. 속독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어요(웃음). 오히려 경험이 없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커리어만 놓고 보면 저는 시스템을 잘 따른 사람이에요.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기업에서도 일했고요. 한국 사회, 특히 교육 시스템은 줄 세우기 구조가 강하잖아요.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그 안에서 더 많은 불합리함을 자연스럽게 학습했고요. ‘내가 맞춰야지’ ‘내가 참아야지’ 같은 감각을 어릴 때부터 배웠죠. 그런 경험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같아요.
Q. 평소 창작자로서 영향받은 인물을 꼽자면요?
오지인 영국의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요. 한 편의 명작을 남기는 것보다 조금 모자라도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해나가는 태도를 배우고 싶어요. 완성도나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쓰는 행위 자체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런 집념과 신념이 창작자에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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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정소진 · 박찬
PHOTOGRAPHER 장기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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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올해 여성의 날 글로벌 캠페인 슬로건은 “Give to Gain”, 베풀수록 더 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여성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 한 사람의 용기,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 작은 나눔이 결국 더 큰 가능성과 변화를 만든다는 뜻이죠.
엘르보이스가 지금까지 해온 일도 비슷합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여성의 문장을 읽으며 용기를 얻고, 각자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일.
올해는 여성의 날을 맞아 엘르보이스 구독자 아리님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당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의 문장, 영화 속 기억에 남는 여성 캐릭터, 좋아하는 여성 작가의 한 문장, 혹은 당신 주변의 멋진 여성.그 이야기를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공유해주세요.
총 10명의 아리님들에게 작은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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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방법 1)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용기와 영감을 준 여성 소개 2) 엘르보이스 인스타그램 계정 태그(@elle_voice) 필수! 🎁참여 기간 | 3/10(화) ~ 3/15(일)🎁당첨자 발표 | 3/17(화) 개인 인스타그램 DM 안내
🎁리워드 | 라로슈포제 B3 세럼 (1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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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2026 구독자 설문 조사 당첨 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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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2026 구독자 설문 조사에 참여해 주신 모든 아리님들께 감사합니다 :) 전달해주신 의견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엘르보이스가 되겠습니다 💓 참여해주신 분들 중 300명을 선정하여 아래 경품을 문자 안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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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문 시 작성해주신 개인 정보로 경품 발송되며
오 · 미기입으로 인한 미당첨 및 오발송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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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회차 | 오늘의 에세이를 읽고 떠오른 상대가 있나요?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이곳을 통해 전해보세요.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변을 해주셨어요! ✏️
➊ 저도 생각나는 상대가 있는데 뭔가... 그냥 과거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 같거든요.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애정한다는 제 마음도 없고요. 근데 또 다른 애정했던 과거의 친구에겐 몇 년이 훌쩍 지나고 연락을 건넨 적이 있어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띄엄띄엄 안부를 묻고요. 에리카님의 글을 보니 제가 다 아쉬워요. 아직도 애정하시는 거 같아서... 다시 연락해 보실 순 없을까요... 주제넘는 이 마음을 말씀드리고 싶어 코멘트를 남겨요.
❷ 오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사람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학창 시절을 거의 함께 보냈고,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많이 다퉜지만 결국은 서로의 하루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죠. 언제부턴가 연락이 뜸해졌고, 특별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멀어진 사이가 되었지만, 문득문득 그 친구가 생각납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은 이것입니다. “그날 네가 서운했을 마음을 이제야 조금 이해해. 그때는 내가 맞다고만 생각했어. 사실은 네가 아니라 내 자존심을 지키느라 애썼던 것 같아. 고맙고, 미안했고, 여전히 네가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라.”
뉴스레터를 보신 후 이렇게 남겨주셨어요! ✏️ ➊ 항상 새로운 시선을 보여줘서 감사합니다.
❷ 감정을 과장하거나 억지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점이 좋았습니다. 관계의 애매함, 여백, 미완의 감정을 그대로 두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디지털 시대 속에서 사라진 ‘기다림’과 ‘여백’을 이야기한 부분이 공감됐습니다. 에세이 –인터뷰– 제철 음식 이야기까지 이어지는 구성도 자연스러웠고, 읽고 나서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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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트중앙 유한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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