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 원전주의자인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미국은 훨씬 더 많은 지원이 원전을 향하고 있어. 현재 미국에서 가동되는 원전은 모두 94개인데, 규모만 보면 원전 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친원전 국가라고 얘기하긴 어려워. 왜냐하면 대부분이 아주 오래전에 지은 것들이기 때문이지.

사실 미국은 1979년에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고 난 이후 지난 46년 동안 단 2개의 원전만 추가할 정도로 신중했어. 지도에서 가장 큰 원(출력량)에 위치한 보글 3호기와 4호기가 그것들이지. 그런 미국이 다시 원전 종주국이 되겠다고 선언한 거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원전 관련 4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말이야.

미국은 앞으로 원전 승인을 가속화하고, 실험용 원자로에 대해선 규제도 완화하고, 원자력 규제 위원회도 개편하고, 산업 투자도 확대해서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량을 현재의 4배로 늘릴 계획이야.

유럽은 여전히 체르노빌의 상처가 가시지 않았고,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를 겪은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이들은 왜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간 걸까? 심지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본 일본마저도 탈원전을 폐기하고 다시 원전으로 돌아갔어.

여전히 원전에 대한 위험성은 해결되지 않았는데 전 세계가 확 바뀐 이유가 뭘까? 그 중심에는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SMR이 있어.

SMR, 풀어보면 Small Modular Reactor로 소형 모듈형 원자로라는 뜻이야. 기존의 원전과 비교해서 크기가 작고 모듈로 만들어서 현장에서 조립하는 원자로가 바로 SMR이지. 우리나라가 개발 중인 혁신형 SMR의 부지 규모를 보면 축구장 넓이 수준에 불과해. 가장 최근 상업운행을 시작한 한울 원전부지와 비교하면 무려 570배 차이가 날 정도야.

일반적인 원전은 용량이 1,000메가와트인데 이렇게 작은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야. 애초에 기존의 원전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전력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려고 대형화되었거든. 산업화가 고도화되고 그로 인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선택이었지. 하지만 대형화된 원전은 사고가 날 경우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는 큰 문제점이 있어. 체르노빌이 그랬고, 후쿠시마가 그랬듯이 말이야.

하지만 SMR은 소형이고 모듈형이라는 특징 때문에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어. 또 기존 사고에서 반복되었던 인간의 실수를 막기 위해 SMR에는 능동형 안전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지. 능동형 안전 시스템은 인간이 컨트롤하지 않더라도 전력이 끊길 경우 자연순환 방식, 중력이용 급수 시스템으로 냉각 시스템이 돌아가는 걸 의미해.

기존 대형 원전 대비 안전성도 높아졌지, 또 소규모 모듈이다 보니 부지도 적게 차지하지. 원전의 저탄소 특성에 더해 안전성까지 갖춰진 SMR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거야.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다시 원전을 선택하는 거지.

앞서 살펴본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돌아선 주요 국가들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게, SMR을 짓고 SMR에 투자하겠다는 거야. 당장 독일도 기존의 대형 원전을 재가동할 계획은 없고 SMR에 투자를 확대할 예정이고, 스웨덴도 SMR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어.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ARIS라는 걸 만들어서 전 세계 국가들이 어떤 SMR을 설계하고 만들려고 하는지 공개하고 있어.

현재 시스템에 등록된 SMR은 모두 123종이야. 그중 미국이 30종으로 가장 앞서있어. 미국 뒤에는 러시아가 22종으로 2위를 차지했고 프랑스와 일본이 13종으로 공동 3위를 기록했어. 한국은 바로 그 뒤인 5위야.

SMR도 1등인 미국은 일찍부터 SMR의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해 왔어. 2010년 오바마 정부에선 SMR을 저탄소 원자력에너지로 따로 구분해 지원했는데,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SMR을 기존의 대형원전과 분리해 '대체 에너지'에 포함시켰지.

바이든 정부 시절에도 이러한 투자는 이어져. 탄소 중립과 청정에너지 전환을 위한 혁신 기술로 SMR를 설정해 투자와 지원을 꾸준히 해왔어. 거기에 트럼프의 4종 행정명령까지 더해진 거지. 정부의 지원과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SMR 기업에 대한 주가도 급상승하고 있어.

현재 가장 SMR 상용화에 앞서있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는 뉴스케일 파워는 작년 연초와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늘어났어. 또 다른 SMR 종목인 오클로 역시 주가가 쭈욱 오르고 있고. SMR의 주가 상승에는 정부 발 호재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지점은 바로 빅테크의 투자가 있어.

AI 인프라에 빠져서는 안 될 것, 바로 전력이야. 지난 GPU 편에서 다루었듯이 GPU가 워낙 전력을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GPU가 가득 찬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크게 늘 수밖에 없어. AI 주도권 싸움에서 빅테크들이 승기를 잡으려면 전력을 확보하는 게 필수거든.

AI 개발도 개발이지만, 동시에 기업들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환경 규제를 지켜야 해. 이를테면 데이터센터 전력의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식으로 말이지. 하지만 기존의 에너지로는 AI 발전과 탄소 감축, 이 두 개를 같이 가기가 힘든 상황이야.

구글의 탄소배출 현황이야. 구글은 203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세웠어. 그런데 생성형 AI 붐이 시작된 이후 탄소배출량이 급증했지. 그 결과 목표치와의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어. 2023년 탄소배출 목표치는 6.2 메가톤이었는데, 실제 배출량은 14.3 메가톤으로 계획 대비 130% 이상 넘어버렸어.

구글만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마찬가지야. 마이크로소프트도 AI 개발 투자가 늘어난 이후 탄소 배출량이 30% 늘어났어. 빅테크들이 원전 특히 SMR에 투자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원전은 다른 화석 연료와 비교해서 탄소 배출량도 적으니 탄소 감축 목표도 달성하고 또 재생에너지와 비교해서 훨씬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니 데이터센터용 에너지로는 알맞은 거지.

AI 기업들에게 전력 확보는 사활을 거는 일이 되었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심지어 스리마일섬 원전과 20년 장기 계약을 맺었더라고. 1979년에 사고가 난 건 원전 2호기였는데, 사고 이후 원전 1, 2호기 모두 중단되었다가 1호기만 재가동되었거든. 재가동된 1호기도 2019년에 결국 운영이 중단됐는데, 이걸 되살릴 정도로 긴급했던 거지.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전 상황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일단 이재명 정부는 AI 인프라 투자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어. AI 데이터 클러스터도 만들어야 하고, 또 GPU도 5만 장 사 와서 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될 예정이지. 이러한 인프라가 실제 작동하려면? 당연히 많은 전력이 필요할 거야.

현재 대한민국 에너지 상황을 살펴보면 원전이 30%에 재생에너지는 10%에 못 미쳐. 반면 석탄, LNG 등 화석연료가 60%가 넘는 상황이지. 지난 정부가 세운 11차 장기전력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원전 비중은 2038년까지 35.2%로 확대될 계획이야. 또한 최소 1기의 SMR을 포함해서 신규 원전도 들어설 예정이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SMR 예산도 편성해서 정책적, 재정적 재원을 집중했어.

문제는 지금은 정권이 바뀌었다는 거야. 일단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후보는 대형 원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안전성을 지적했어. 그렇다고 해서 원전을 없애야 한다고 얘기한 건 아니야. 단순히 탈원전으로 가거나 혹은 아예 원전 중심으로 가는 게 아니라 에너지 믹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

AI 발전을 위해 인프라도 늘리고, 또 그로 인해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화석연료로 늘릴 순 없을 텐데.. 그러면 선택지는 재생에너지와 원전뿐이야. 일단 이재명 대통령은 이전부터 SMR에 대한 투자와 연구 의지를 꾸준히 밝혀왔어.

우리나라는 SMR 분야에서 나름 경쟁력이 있어. 앞서 살펴본 ARIS에서 대한민국은 총 9개의 SMR을 등록해서 전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의 SMART100은 지난해 설계 안전성을 인정받아 상용화 첫 단계를 통과했지. SMR 도입을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같은국가에 한국의 SMR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야.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여전히 많아. SMR 개발해서 우리나라에 지으려고 해도, 일단 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해.

원전을 지으려면 EPZ라는 걸 설정해야 해. EPZ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으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선 누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구역을 말하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EPZ는 대형 원전 기준 최대 30km이야. 이 기준대로라면 SMR을 AI를 연구할 산업단지 근처에 배치하기가 까다롭겠지.

참고로 미국에선 SMR에 맞춰서 비상계획구역을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규제를 변경했어. 일단 원안위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고려한다고 하니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거야.

두 번째 문제는 핵폐기물 문제야. 이건 조금 더 복잡해. SMR은 태생적으로 기존 원전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중성자가 튀어나와 더 많은 핵폐기물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동일한 전력 생산에 대형 원전보다 SMR이 많게는 30배 더 많이 생성된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연구도 있을 정도야.

물론 업계에서는 최근 설계에서 개선된 지점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우리나라 상황이야. 우리나라에 쌓여있는 핵폐기물이 거의 포화 직전이거든. 지난 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고리원전은 사상 처음으로 사용 후 핵연료 저장률이 90%를 넘겼고, 한빛원전은 2030년이면 포화에 다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하지만 여전히 방폐장 부지 선정을 못하고 있고 늘어나는 핵폐기물을 임시로 발전소에 쌓아두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SMR을 도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SMR이 기존 원전보다 안전하기에 대안이 될 것이라는 것, 또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도 SMR 도입이 필요하다는 건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결국 이 SMR이 지어져야 할 텐데 과연 SMR이 지어질 지역 부근의 주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야. 여전히 많은 주민들은 원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데 말이지.

EPZ 규제 완화, 핵폐기물 처리, 그리고 주민들 설득까지… 이러한 고민들을 새로운 정부가 충분히 심사숙고하여 정책을 설계하길 바라면서 오늘 준비한 마부뉴스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할게. 긴 글 끝까지 읽어줘서 구독자, 진심으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