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를 핑계로, 서울 여행하기

이번 주는 다채로웠던 서울 떠돌이 생활을 중심으로 글을 써보려 해요. 집이 사라지니, 어디든 내가 머물 수 있는 곳이 되었어요.


인테리어 기간 동안 3주 정도 머물 곳이 필요했어요. 늦은 출근과 늦은 퇴근을 하면서 천안을 오가거나, 혹은 서울에 숙소를 잡는 선택지가 있었어요. 서울에서 약속을 모두 취소하는 것도, 아빠차를 타고 먼 거리를 오가는 것도 번거로워서, 숙박을 목표로 가벼운 숙소를 잡기로 했어요.


그 결과 4개의 숙소를 경험하는 중이에요. 제비댁, 로컬스티치 서교점, 북어나잇 시인의 집 이렇게요.


마침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이에요.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져서 익숙한 장면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덕분에 일상이 여행지에 온 것처럼 특별해요.

이번 주는 벚꽃처럼 와라락 찾아온 경험들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지냈어요. 삶이 너무 빠르게 흐르면 그 속도에 맞춰 살아내느라 곱씹고 기억할 여력이 없는 것 같아요. 주말해 뭐 했냐는 질문에, 아무튼 되게 바빴다고 답했어요. 그리고 대화가 끝나고 생각해 보니 데미안 허스트 전시도 봤고, 천안도 다녀온 거 있죠.

3/31 신촌 기찻길 벚꽃, 제비댁 체크인

4/1 에이든 식사, 청계천 산책

4/2 깜짝 팀회식

4/3 헤일메리 영화

4/4 스시 오마카세, 데미안 허스트 전시, 시안 체크인

4/5 안양천 벚꽃, 중문과 현관 인테리어 확인, 다시 제비댁 체크인

4/6 엄마와 서울 여행 시작, 로컬스티치 체크인

4/7 내면의 발견 카페, 강마루 확인, 뒤늦은 왕사남, 종로궁게스트하우스 체크인

4/8 제비댁 체크인, 향수 공방

ch1. 서울에서, 주택에 산다는 건


일상은 늘 그 자리에 있어서 별로 아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주 여유로워요. 반면 여행지에 가면 다시 올 수 없는 곳이니 야무지게 다 보고 가겠다는 욕심이 생겨요. 그냥 지나갈 경험도 확대해서 깊게 음미해요. 이번 서울 여행은 그 경계에서 양쪽의 장점만 쏙쏙 뽑아온 느낌이었어요.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는데, 저는 집이면 아파트만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어디 머물지 고민하다가 서울에서 주택에 살아보고 싶어서 고저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바꾼 ‘제비댁’에서 묵어보기로 했어요. 여자 6인실 도미토리에 머물렀는데, 나무로 된 침대에 흰 침구가 있고 아래층에는 커튼을 쳐서 침대 안으로 쏙 숨을 수 있는 구조였어요. 거실공간과 부엌은 가정집 그대로라 편했고요.


3년 뒤 사라지는 게스트하우스,라고 쓰여있었는데 재개발 지역이라 그런 것 같았어요. 이태원까지 연결되는 길을 따라, 카페와 식당을 찾아 동네를 산책했어요. 똑같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골목길, 그 사이를 겨우 올라가는 우체국 택배 차량과 라벤더나 고추 같은 식물을 훔쳐가지 말라는 푯말까지 낯선 풍경 안에서 며칠을 머물렀어요.


대문을 열고 나오면 낮은 지붕들 위로 햇살이 비치는 풍경이 낯설면서 다정했어요. 궁금했던 숙소 몇 곳에 머물 때를 제외하고는 쭉 제비댁에서 지냈어요.

ch2. 작은 공간에도 이야기가 담긴 서교동


이전에 맹그로브에 두 달간 묵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이번에는 같은 공용주거인 서교동의 로컬스티치에서 엄마와 함께 하루를 머물렀어요. 서교동의 거리는 아기자기하고 정돈된 느낌이었고 낮과 밤이 모두 좋았어요.


숙소는 다양한 색을 썼는데, 깔끔하고 통일된 느낌을 주는 게 신기했어요. 붉은 벽돌 외장재와 연결되는 붉은색 페인트로 천장을 칠하고, 노란 조명으로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었어요. 공용 공간을 둘러보고, 라운지에서 책도 읽고 마사지 기계까지 꼼꼼하게 이용했어요.

저녁으로 고등어조림과 따끈한 밥을 먹으면서 엄마가 도쿄 여행이 생각난다고 했고, 정말 여행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체크아웃하며 바로 옆 '내면발견'이라는 카페 겸 갤러리에서 자연물을 활용한 전시를 봤어요. 나뭇잎이나 매미껍질 같은 연약한 자연물에 실을 엮어낸 작품들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산책길에 만난 자연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조심스럽게 가져와서 작업했을 과정이 상상이 되면서 저도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비댁과 로컬스티치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음 집은 서교동 같은 단정하고 안전한, 다양한 취향과 이야기들이 공존하는 요람 같은 동네에서, 주택을 개조하여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투자 관점에서도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라 좋다고 해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내 삶의 모습과 꼭 닮은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 살고, 또 다양한 이들을 초대하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서 로컬스티치와 함께 언급했던 맹그로브 입주 이야기와 관련된 글을 하단에 첨부할게요. 제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글 중 하나예요. 엄마와 도쿄에 다녀온 이야기도 브런치북으로 엮었는데요. 이 내용도 링크 남겨둘게요.

ch4. 낯선 이에게 털어놓는 속마음


북어나잇, 시인의 집은 몰입하기 딱 좋은 곳이었어요. 1인실의 오리, 개구리, 다람쥐 방이 있었고 저는 다람쥐방에 묵었어요. 대문을 열면 고요한 중정이 나오고, 문고리에 걸린 인형으로 내 방을 찾을 수 있었어요. 서촌의 골목길을 걸어 숙소로 가는 길부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았어요. 조도가 낮고, 1인실이지만 2인이 머물러도 될 정도로 넓은 방이었고, 책상에서 글을 쓰거나 요가 수업을 듣거나, 욕조에서 반신욕을 할 수 있었어요.

이틀을 머무르고, 체크아웃 직전에 방명록을 살펴봤어요. 적어 내린 글들을 읽는 게 시인의 집의 숙박 경험의 완성처럼 느껴졌어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필요해 일부러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숙소가 주는 다정함 속에서 머물렀어요.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공간을 찾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적어놨어요. 읽으면서 낯선 사람들이지만,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닮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때로는 대면하지 않을 때 오히려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ch5. 크고 작은 변화가 일상이 되면


서울 여행이라고 했지만, 다른 말로는 서울 떠돌이 었어요. 자유롭게 묵어보고 싶은 숙소를 예약하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 끌고 열심히 돌아다녔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 일사불란하게 트렁크를 싸고, 회사 택배실에 맡겼어요. 퇴근 후에는 약속 장소와 숙소로 이어지는 동선에 있는 지하철 사물함에 수납했어요. 그전까지 드르륵 트렁크 소리를 내며 서울 거리 곳곳을 누볐어요.


입을 수 있는 옷의 조합도 한정적이고, 정기적으로 부모님 댁에서 빨래를 해오는 시간도 필요했어요. 불편하고 힘들 걸 각오했는데, 생각보다 저는 어디서나 잘 자고 잘 먹고,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것에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인테리어 기간이 끝나고 새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매일매일의 변화가 반가웠어요. 삶이 생각보다 짧다고 느껴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크고 작은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요.

ch6. 나를 잘 아는 사람


광명에 집을 사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부모님과 오래 거래한 부동산 사장님이 광명 부동산 여러 곳을 보여줬고, 드라이브도 해주셨어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낮에도 저녁에도 이곳에 와봤어요. 그리고 마지막 양육이라며, 인테리어의 전 과정과 정리를 함께해 줬어요.


회사에서 서로의 낄낄 메이트를 해주며, 종종 아침 커피를 함께 마시던 언니가 저희 부모님이 저에게 계속 좋은 걸 주고, 그럼 저는 그걸 받아 무럭무럭 자라는 것 같다고 했어요.


가끔 마음에 와닿았지만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오래 간직하며 곱씹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부모님은 어쩌면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인데,라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그런데 지금 부모님의 추천으로 자리 잡게 된 이 동네가 꽤나 마음에 들어요. 그래서 신기해요. 물론 선택은 제가 하는 거지만, 그리고 앞으로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나를 애정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여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ch7. 관계, 사랑, 본질적이고 영원할 것들


마음이 평온해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알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밀려오는 파도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삶의 방향키를 잡고 있는 느낌이에요. 이사도 하고 본부도 바뀌고 퇴근 후, 전 모든 삶에서 변화가 있는데요. 왠지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안정적으로 발을 딛고 있다는 이 감각은 어디에서 온 건지 궁금해요.


이번에 집을 사고, 인테리어를 하고, 그 안에 들어와 사는 과정에서 온전한 내 공간이 생긴 것이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제작 수업에서 한 번 제작해 본 사람이 되는 것과 한 번 제작한 사람이 다섯 번 제작하는 것 중 전자가 더 큰 변화고 성장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서 있을 곳을 정하는 경험이었고, 이 한 번의 경험이 다음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요.


앞으로 제 공간을 만들고 싶고, 내 취향을 반영하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 목표의 첫발을 딛었으니, 앞으로 두 번째는 좀 더 자신감 있게, 저의 고유함을 담아 내딛을 수 있길 바라요.

ch8. 죽음을 말하면 떠오르는 것


데미안 허스트 전시를 봤어요.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전시 작품들을 보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예술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데미안 허스트의 전시는 상어 사체와 해골, 의약품으로 죽음을 가장 직설적으로 말했어요.


현대사회에서 가장 터부시되는 건 죽음이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이 말도 왜 그럴까, 바로 이해되지 않아 머릿속에 담아둔 문장이에요. 죽음은 항상 터부시되고 두려웠던 것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을 극복의 대상으로 봐서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라는 말로 해석했어요. 물론 해석은 언제든 달라질 수 있어요.


전시를 보고 대화를 나눴을 때, 누군가는 죽음이 지금의 삶을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 준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것보다 인생은 허무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라고 했어요. 또 앞으로는 젊음과 죽음에 대한 부분이 많이 극복될 여지가 있다고 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 해석 이전에 저는 이 전시가 왜 이렇게도 인기가 있는지가 궁금했어요. 너무나 직관적이고 명확한 표현 때문인지, 존재가 사라지는 게 죽음인데, 오히려 그것을 영원히 전시하고 박제해서인지 다양한 질문이 드는 전시였고, 그래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해요.

 되게 오랜만에 글을 쓰네요.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항상 들고 다녔는데, 삶이 분주해서 도무지 차분히 글이 써지지 않았어요. 지금 이 문장을 쓰는 시점은 이사하고 삼일째 되는 날이고, 너무 아늑하고 예쁜 나의 공간에서 노곤하고 나른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구성하고 전달해야 할지 신나는 고민 중이에요.  


동네에서 발견한 마음에 쏙 든 카페!

저희 집을 찍은 사진 몇 장을 남겨요. 인테리어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글로 풀어내 보려고요.
예쁜 벚꽃나무 사진으로 마무리할게요 :>
귤껍질 드림
essayhe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