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 그럼 작품별로 얘기를 나눴으니 이제는 ‘글을 쓰는 우리는’ 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요. 우선 창작자의 관점에서 작법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까요?
솔: 저는 ‘모모’를 적어왔네요. 모모를 의인화해서 표현한 <저녁놀>이 인상 깊었나 봐요. 처음에는 모모가 등장하잖아요, 모모가 사람처럼 표현된 주인공이고요. 그래서 처음에 모모를 보며 ‘이게 어떻게 이야기가 될까’하는 궁금함이 있었는데 소설을 다 읽을 때쯤엔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모모의 상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게 놀라웠어요. 게다가 모모가 책을 읽잖아요. 모모가 책을 읽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내가 어떻게 책을 읽겠느냐. 박스를 건너가겠느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너무 귀엽고 잘 만든 설정 같아서 그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훈: 맞아요.
욱: 남근을 상징하는 물체를 그렇게 그려냄으로서 우습게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의 맨 처음 문장이 ‘여자들이 나를 보지 않을수록 나는 여자들을 본다’라는 문장이라 저는 되게 무서웠거든요? 왜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고 모모가 사실 딜도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작품이 진행되면서 다른 정체를 가진 대상일 수도 있어서 걱정을 하며 읽었는데 읽다 보니 모모를 약화시키는 방식이 진부하지도 않고 유쾌하면서, 모모가 여성 커플을 바라보는 일관된 우스운 시선과 맞물리면서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훈: 모모가 되게 강력한 것 같아요. 옛날에 소설 <모모>가 있지 않았어요? 그 작품에서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에게 모모는 그 작품 아니면 트와이스 모모였거든요. 이제는 저녁놀의 모모가 떠오를 것 같네요.
(다같이 웃음)
솔: 모모라는 이름이, ‘무쓸모의 쓸모’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는 그 말이 너무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림: 맞아요. 그게 너무 웃겨요.
훈: 아, 자기가 지었구나.
욱: 맞아요. 자기가 깨달은 거잖아요.
훈: 이름 자체도 풍자네요.
욱: 네, 그렇죠. 그리고 그 이름을 누군가가 지은 게 아니라 스스로의 존재와 쓸모를 깨달으면서 레즈비언 커플의 공간 안에 대파와 함께 놓인, 순응하고 있는 그 모습이 모모를 가져다 버리거나 부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무시하는 우아한 방식의 배제라고 생각했어요.
솔: 마지막에 모모가 책까지 읽으면서 나름대로 깨우치고 거듭나는 그 설정이, 모모를 의인화하는 모습의 절정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림: 맞아요. 어떻게 캐릭터성을 그렇게까지 부여할까. 어떻게 딜도에게 그렇게 서사를 부여해서 캐릭터를 그렇게 살릴 수 있지? 하는 기발한 발상이라고 생각했어요.
솔: 맞아, 앞으로 이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게 될 것 같아.
림: 그러게. 어떻게 작가님은 이름을 또 멜라라고 했을까요.
욱: 유림씨랑 영훈씨도 필명을 지어야 하잖아요.
훈: 이영훈이 진짜 많아요, 어느 분야에서도.
림: 매직스트로베리에도 있고.
솔: 대욱씨는 있어요?
욱: 아뇨, 제 이름은 없지요. 그런데 제 이름으로 앞으로 할지는 모르겠네요. (웃음)
솔: 그러면 혹시 다른 분들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나요?
림: 저는, 제가 동경하는데 하지 못하는 게 <골드러시>에서 하는 작법 스타일이거든요. 그렇게 치밀하면서 인물의 서사를 풀어 가는 동시에 이미지성을 가져가는 작가의 필력과 묘사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배우고 싶고, 이런 식의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글을 한 번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욱: 너무 좋다.
솔: 여행 가서, 한 일주일 정도 살고 오면 쓸 수 있을까요?
훈: 유림이가 이런 글 쓴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좋다.
욱: 근데 유림씨 글에는 낭만 안 빠져 있을 것 같아요.
(다같이 웃음)
훈: 그 짤 알죠. 낭만 한 스푼 넣으려다가 다 쏟아진…
욱: 비도 요란하게 안 오고 꼭 수직으로 내릴 것 같고, 뭔지 아시죠.
림: (웃음) 제가 이런 치밀한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한번도 도달해보지 못해서... 언젠간 꼭 이런 글을 쓰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솔: 인생의 경험치가 늘면 이런 치밀한 관계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림: 저는 관계도 그렇지만 캥거루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소설의 장치로 쓰이는데, 이 장치를 완벽하게 회수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이라면 ‘캥거루를 죽이다니! 어떻게 캥거루를 죽일 수 있어!’ 라고만 생각했을 텐데 이 작품에서 캥거루가 두 사람만큼이나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고, 단순히 도구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를 잘 잡아 주었던 것 같아요.
훈: <골드러시>는 다른 것도 그렇지만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솔: 둘이 있게 되는 동굴 같은 공간도 그렇고요. 하필 예약한 숙소가 그런 곳이었다고 하잖아요. 이런 것까지도 잘 짜여져 있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주는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림: 저는 심지어 베란다에서 지우가 갇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걸 보면서 또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이런 감정이 보이도록 설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는 순간을 한 번 더 넣어두고, 이 둘의 관계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사소한 오해들이 쌓였고 쌓이겠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요.
훈: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이 작품이 가장 영화 같은 이미지가 많고 그중에서도 미장센이 세세하게 스며든 영화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욱: 영훈씨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훈: 저는 명백하게 <두개골의 안과 밖>인데, 이 소설이 제게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더 자유로운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줬어요. 저는 제가 쓰는 소설이 책 바깥으로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소설 속에 나오는 어떤 물건을 실제로 제작하고 독자들이 소유하게 하면서 서로 연결된 감각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시도를 해보는 거죠. 물건이 돌면서 책에서의 이야기는 끝나도 책 바깥에서 계속해서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상상 같은 건데 이런 것 외에도 이 소설을 보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소설을 중심으로 해서 다양하게 시도해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소설의 형식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
림: 불씨를 심어 준 작품이네요.
훈: 맞아요. 이 작품에는 작가분이 직접 찍은 사진도 나오잖아요. 저는 매체 중에서도 사진과 글을 좋아하는데 사진과 글이 어우러진 소설을 생각해 보다가 사진을 글과 잘 엮어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림: 그거 생각나기도 했어요. 영훈이 쓴 작품 <좋아요>.
솔: 이제 칠월에 영훈이 어떤 글을 써올지 기대가 되네요.
훈: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분이 제게 건네준 주제가 케이팝과 춤이니... 제게 무엇을 바라시는지... (다같이 웃음)
욱: 저는 <초파리 돌보기>와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었는데요.
<초파리 돌보기>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작가 노트를 읽으면서 함께 연관지어 생각했던 임솔아 작가가 이야기를 마무리짓는 방식이었어요. 두 명의 가까운 사람에게 물었을 때 극단적으로 말하잖아요. 신경쓰지 말고 마음대로 하라는 사람이 있고, 소설은 망할지언정 삶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요. 작가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저울질하듯 견디며 썼다고 말하는데, 이 작품의 결말은 우습다면 우습고 시시하다면 시시하다고 할 만큼 아무것도 아니게 마무리가 되잖아요. 저는 그렇게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는 용기가 되게 좋았어요. 사실 그 부분 때문에 가장 인상깊었고 이야기하고 싶기도 해요. 소설을 잘 쓰고 글 안에서 완성도 있게 꾸미는 것은 모든 작가가 당연히 신경쓰는 부분이지만 주변 사람과의 관계, 작가로서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면 중요하지 않을까? 작품은 성공했지만 자신 주변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와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작가로서의 윤리의식을 저버리기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 고민하는 것은 윤리의식과는 하등 관계도 없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존재를 배려하며, 아우르며 쓰는 것이 또다른 결말의 가능성을 보는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같은 경우에는 미숙한 화자를 설정하고, 그 화자의 이야기를 통한 메시지는 작가로서 회개나 반성은 진부할 수 있잖아요. 모르지만 열심히 쓰겠다고 하는. 하지만 저는 작가의 그 목소리가 진심으로 다가왔어요. 잘 알고, 모든 것에 능숙하고, 유려하게 쓰겠다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들이 주는 힌트를 모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고민하고, 결국 나중에 알아버렸지만 그것이 정말 맞을지 고민하는 화자의 그 마음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화자를 설정하고 끝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식이요.
욱: 어쩌다 보니 다 다른 작품을 선택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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