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
VOL. 029  |  2024. 11. 13.
추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적지 않겠지만 이론이나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스피커스를 쓰는 저도 그렇습니다. 바로 오늘 모실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출생을 주제로 지난달 24일 열린 아시아미래포럼 뒷이야기를 앞서 뉴스레터 2통에 담아 보내드렸습니다. 첫 번째 편지는 도시공학자 앨런 말라흐의 눈높이에서, 두 번째는 일본의 시행착오와 교훈을 다뤘습니다. 오늘 세 번째 편지의 주인공은 낸시 폴브레 미국 매사추세츠주대 명예교수입니다.

저출생하면 바로 떠오르는 단어나 정책은 뭐가 있을까요? 경력 단절, 결혼 기피, 고된 육아, 높은 집값, 교육비, 불안정한 일자리, 불공평한 가사 분담…이렇게 열거된 것 중 중요하지 않은 건 하나도 없을 겁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더 큰 구조에서 저출생 현상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좀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저출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걸까요? 국가 차원에서 출생률이 낮다고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호들갑을 떠는 나라에 살지만 정작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나라가 별 보탬을 주는 것 같지도 않는 현실, 이런 간극은 왜 존재하는 걸까요?

이번 스피커스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추상’, ‘이론’하면 어렵다거나 따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편지는 쓰기 전부터 재미를 포기했습니다.😅 그렇다고 ‘유익함’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미 없는 이론과 사상, 관념이 막상 현실을 바꿔온 역사는 숱합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한 말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어떤 지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실무가들조차도 대개는 죽은 경제학자들의 노예에 불과하다.” 노예란 말이 좀 불편하게 들리긴 하지만, 우린 앞선 어느 사상가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구 문제에 맞서 숱한 아이디어를 내고 처방전을 쓰고 있지만, 어쩌면 우리도 의식하지 못한 채 오늘 소개할 낸시 폴브레와 같은 경제 사상가의 영향을 받고 있거나 앞으로 받을지 모릅니다.
낸시 폴브레 미국 매사추세츠대 명예교수·전 세계여성경제학회 회장이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경쟁, 연대, 그리고 돌봄: 한국의 인구유지 수준 회복을 위한 길’을 주제로 기조발제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낸시 폴브레. 그녀를 가장 잘 수식하는 말은 ‘페미니스트 경제학자’입니다. 그녀는 지난해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의 원인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을 떠올리게 합니다. 둘 다 공통으로 여성주의 시각에서 경제학에 접근했지만 골딘이 ‘시장’에, 폴브레는 제도로서 시장에 편입되거나 인정받지 못한 ‘돌봄’에 더 주목했다고 봅니다. 그녀는 인류 역사 내내 거의 여성이 수행해 온 무급 돌봄 노동, 시장 밖(비시장) 노동, 재생산 등의 연구에 헌신해왔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폴브레 앞에 ‘돌봄 경제학 분야 선구자’란 호칭이 따라붙습니다.

그녀는 명예교수로 있는 매사추세츠대 정치경제학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젠더와 돌봄 노동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말로 번역 소개된 책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 돌봄 노동, 재생산, 젠더 불평등 문제를 역사적 맥락과 주요 경제 이론을 폭넓게 활용해 교차 분석했습니다. 그녀는 지난 1998년 각 분야에서 탁월한 독창성과 헌신을 보여준 인물에게 주는 맥아더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아시아미래포럼에 참석한 폴브레 교수는 크게 세 가지 틀로 저출생 문제를 짚어줬습니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돌봄. 이를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시각에서 하나로 엮어냅니다. 그녀는 포럼 기조 강연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론적인 부분, 추상적인 부분으로 들릴 수 있다.” 수백명의 청중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말투였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자세를 한껏 낮췄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① 자본주의, 개인의 이익 추구만으론 저출생 문제 해결 못해
폴브레 강연 자료에 붙은 제목은 ‘경쟁, 협력, 돌봄’입니다. 경쟁과 협력은 대치되지만 사실 한 묶음입니다. 그가 자본주의의 프리즘으로 저출생을 진단하면서 가져온 개념들입니다. 경쟁은 저출생 현상을 악화했다면 협력의 가치는 그런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안적 가치로 제시됩니다. 그런데 저출생 문제를 논하는데 왜 딱딱한 자본주의란 말까지 꺼내는 걸까요.🤔

그나마 쉬운 지점에서 한 번 출발해보면 어떨까요. 구독자님께서는 개인의 이익 추구가 더 중요하다고 보세요, 아니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더 중요하다고 보세요? 

폴브레 교수는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개인의 이익 추구에 치우쳐 경쟁을 부추깁니다. 과도한 경쟁은 공동체와 개인에게 위협마저 되고 있습니다. 진화론, 적자생존, 각자도생, 성장...자본주의 핵심 가치 반열에 오른 개인의 이익 추구를 때론 합리화하고 때론 추동하는 이러한 단어는 보이지 않게 우리 삶의 방식을 규율합니다. 폴브레는 이를 하나하나 각개 격파합니다.

그녀가 돌봄을 얘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폴브레는 이러한 ‘위협’에 맞서고 벗어나기 위해서 돌봄의 필요성을 말합니다. 돌봄은 일상에서 어린이나 노약자,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그녀는 좀 더 큰 틀에서 “인간의 역량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활동”으로 일컫습니다. 오늘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뤄지는 출산과 육아로 한정해 이해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향해 “경쟁을 통해서 가족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합니다. 즉 ‘시장’을 대명사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개인의 이익 추구를 통한 성장으로는 돌봄도,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생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심지어 그녀는 “각자도생은 멸망의 지름길”이라고 단언합니다.
낸시 폴브레는 “각자도생은 멸망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낸시 폴브레 재인용
② 돌봄 가치 인정 않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
폴브레 교수가 쓴 책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의 부제는 ‘가부장제 체제의 부상과 쇠락, 이후의 새로운 질서’입니다. 책의 부제는 가부장제를 빼놓고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로 호명되는 그녀로서 어쩌면 당연한 접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자본주의에서 ‘물질적 생산’과 ‘사회적 재생산’의 연결 고리의 한 형태로 가부장제를 주목합니다. 물질적 생산은 경제활동으로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사회적 재생산을 ‘사회가 재생산되는 과정’으로 재정의 하지만 여전히 어려워, 이번 편지에서는 출생과 돌봄을 묶어 이해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녀가 가부장제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습니다. 인구 문제에 한정해서만 얘기하자면, 가부장제는 가족 돌봄을 할 수 있게 보장했답니다. 그 결과로 인구 증가도 이뤘죠. 여성도 혜택을 보긴 했지만 남성의 권위가 강화됐고 더 큰 혜택을 봤다고 말합니다. 이 가부장제 위에 효율성을 중시하면서 기술 변화를 통해 성장을 도모하는 자본주의가 결합하게 됩니다. 폴브레는 둘의 ‘불행한 결혼’이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위협한다고 봅니다. 포럼에서 한 그의 말을 압축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에서 여성은 종속적 존재가 되었다. 주로 여성이 맡은 가족 돌봄이 경제적 산출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더 나아가 생산의 단위로서 가족의 중요성은 간과됐다. 또 자녀의 양육 비용을 증가시키면서 결국에는 출산율 감소로 이어졌다.’

인구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한 그의 통찰은 사실 한 문장에 응축돼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가족 돌봄의 가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정작 노동력을 생산하는 가족에 보상하지 않은 채 노동력을 이용하고 있다고 폴브레는 말하죠. 이는 가족 돌봄을 떠맡는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또 출산은 경제적 기여보다는 개인의 선택으로 치부될 뿐이랍니다. 

폴브레 교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결합이 남성은 유급 노동, 여성은 무급 돌봄노동이란 성별 역할 분담을 고착해왔다고 지적합니다. 저출생은 이러한 구조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는 ‘적색 신호등’입니다.

누군가 이런 상상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부장제의 귀환을 통한 인구 문제의 해결도 가능하지 않을까?’ 지난달 포럼에 앞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폴브레는 이런 식의 접근에 불쾌감을 내비쳤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작동할까요? 노예제처럼요?! 피임과 낙태를 불법화하자는 걸까요? 아니면 수갑과 감옥? 정확히 누가 가부장적 강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지, 그들이 또한 인권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 궁금합니다. 돌봄을 제공하도록 강요당한 여성이 다음 세대의 노동자와 시민, 부모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낸시 폴브레는 "자본주의는 가족들이 창출한 노동력을 충분한 보상 없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낸시 폴브레 재인용
③ 미래세대와 돌봄…공공재로 접근해 투자하고 관리해야
폴브레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은 인구 문제를 돌봄의 틀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돌봄은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 꼭 필요하고, 누군가는 맡아야 하죠. 하지만 시장에서 가치가 제대로 매겨지지 않습니다. 마땅히 평가받지 못하지만 사실 돌봄은 미래세대를 키워내는 데 투입되는 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돌봄과 미래세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와 비슷합니다. 공공재는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될 공기, 물, 숲이라고 교과서에서 배우신 분이 있을 겁니다. 폴브레는 인구 그 자체도 공공재로 접근해 사회의 재생산 과정을 공공재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을 주문합니다.

폴브레가 ‘불공정한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조금은 익숙한 연금 고갈을 둘러싼 세대 간 형평성 논쟁과는 조금 결이 다른데요. 폴브레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맞물려 복지 혜택의 ‘외부성’(외부효과)에 주목합니다. 부모가 사적 비용으로 키워낸 자녀가 미래 자녀를 두지 않은 노인의 복지까지도 책임지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자녀 없는 노인의 ‘무임승차’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겠죠.

자칫 오해할 수 있는데 자녀 없는 부부나 노인을 ’하차’시키자는 게 초점이 아닙니다. 그녀가 하려는 이야기의 요점은 인구 특히 ‘미래 세대’를 공공재로 보고 공동체가 지속할 수 있도록 여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경제적 지원 확대를 뜻하지 않습니다. 폴브레는 이 투자를 ‘사회적 지원’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어쩌면 세계 최저 출생률은 우리나라가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빈약하게 해온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거울 아닐까요.
제15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패널들이 ‘‘‘젠더 불평등’과 ‘저출생’: 뒤얽힌 실타래를 풀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낸시 폴브레 미국 매사추세츠대 명예교수(화면 속), 송다영 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윤자영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정현백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사학과), 백경흔 여성학자,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 교수. 김혜윤 기자
지금까지 살펴본 폴브레의 주장을 다소 거칠게 묶어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혼 생활이 결국 저출생이란 불행을 낳았고, 이는 공공재인 미래 세대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개인 특히 여성에게 내맡기면서 파국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그의 청진기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면 어떨까요?

그녀는 ‘한국통’은 아닙니다. ‘삼포 세대’로 청년이 처한 경쟁 압박과 불안을 설명하면서도 한국 상황을 잘 모른다고 전제한 뒤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폴브레는 “진보를 재정의하고 사회 제도를 재설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그녀의 포럼 강연 뒤 열린 원탁회의에서 윤자영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좀 더 풀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장과 진보를 다르게 정의 내리지 않는다면 돌봄에 대한 지원과 투자도 결국 어떻게 하면 경제(GDP, 국내총생산)를 성장시킬 것인가, 어떻게 일자리를 확장할 것인가에 매몰되는 데 그칠 것이다.” 실제 저출생 문제를 주로 경제 성장과 그 동력의 약화로 보고 접근하는 국내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폴브레는 “성공의 척도로 GDP에 의존하는 것을 자제”하라면서 이런 접근을 경계합니다.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리라는 한국 사회를 향한 외침이 정책 설계자들에게도 들리면 좋겠습니다. 폴브레는 이와 맞물려 ‘(문화적 규범을 포함한) 사회 제도의 변화’, ‘보다 포괄적인 접근의 필요성’ 등의 표현으로 기존의 단편적, 대증적 처방을 넘어서는 저출생 해법을 모색하라고 조언합니다. 특히 지난 20년 한국 정부가 펼쳐온 저출생 대책의 ‘실패’ 원인을 “생산(물질적 생산)과 출산(사회적 재생산)을 연계하는 기본 제도의 전체적인 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개별 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녀는 한국 사회의 낮은 유급 돌봄 서비스 질, 저조한 유급 가족휴가(육아휴직) 사용률, 부모가 되기까지 걸림돌로 작용하는 불평등과 불안을 문제가 있는 현실로 언급합니다. 이는 공통으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이 낳은 산물이죠. 그녀는 “너무 심한 경쟁은 불충분한 경쟁만큼이나 좋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 나라보다 경쟁을 중시하는 문화를 ‘연대’와 ‘협력’을 더 중시하는 사회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사회를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바꿔내는 게 눈에 보이는 정책의 백화점식 나열보다 더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낸시 폴브레의 책은 각각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The Rise and Decline of Patriarchal Systems), 보이지 않는 가슴(The invisible heart)으로 번역되어 있다
혹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이하 불행한 결혼)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최근에서야 처음 들어봤습니다. 물론 몰라도 이번 스피커스를 읽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겠지만, 아는 분은 틀림없이 더 쉽게 폴브레의 주장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있었을 거 같습니다. 폴브레는 기조 발제자로 나선 이번 포럼에서도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엮어 저출생 현상의 구조적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포럼이 열리기 한 달 전쯤 그녀가 참석한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이 저에게 이런 글을 보내왔습니다. “낸시 폴브레는 이른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반대편에 있는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 분류되는 급진 지성입니다. 엥겔스는 가부장제와 가족, 성차별은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소멸할 거라고 했는데, 폴브레는 그게 틀렸다고 봤죠. 가부장제와 자본이 공모하고 동맹을 맺는, 성차별이 더욱 강화하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불행한 결혼’이라는 유명한 주장을 했습니다”. ‘불행한 결혼’은 폴브레가 43년 전 페미니즘 이론가인 앤 퍼거슨(매사추세츠대 철학과 명예교수)과 함께 쓴 글의 제목입니다.

그녀의 사상은 명쾌한 듯하면서도 어떤 분들에겐 확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녀의 생각을 보다 자세히 탐구하고 싶다면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이나 ‘보이지 않는 가슴’을 읽길 권합니다. 이 책들 또한 쉬운 책은 아닙니다. 두 책 모두 폴브레 기조강연 뒤 토론자로 함께 한 윤자영 교수가 번역했습니다. 윤 교수는 폴브레 제자로 매사추세츠대에서 여성주의 가족경제학과 돌봄 노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폴브레 사상의 해설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폴브레 교수의 저출생 진단은 익숙한 듯 새롭습니다. 개별 정책이나 수치에 매몰되지 않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문제를 짚어냅니다. 그가 해법으로 제시하는 ‘돌봄’은 단순한 복지 확대가 아닌, 우리 사회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제안입니다. “너무 심한 경쟁은 불충분한 경쟁만큼이나 좋지 않다”는 그녀의 말처럼, 경쟁 일변도의 한국 사회가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어떻게 키워나갈지 깊이 고민해볼 때입니다.

스피커스가 여러분들 곁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가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서 전해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speakers@hani.co.kr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 6 한겨레신문사 3층
02-710-0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