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선교를 넘어 한반도선교로

김의혁 (숭실대학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교수, KPI 연구위원)



  한국교회에서 ‘북한선교’와 ‘통일선교’라는 두 개념은 서로 혼용되고는 한다. ‘복음통일’이라는 표현도 자주 쓰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세 개념은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가진다. 이 글에서는 각각의 의미를 간략히 비교하고, 이에 덧붙여 ‘한반도선교’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고자 한다.


북한선교인가, 통일선교인가

  ‘북한선교’는 한국교회가 1970년대부터 북한을 선교적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시작되었다. 1974년 김창인 목사(당시 충현교회 담임)가 세운 씨앗선교회(이후 기독교북한선교회)가 그 출발점에 있다. 북한선교의 주된 초점은 북한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여 북한을 복음화하는 데에 있다. 대표적인 북한선교 사역으로는 북한 내 지하교회 사역, 성경 배달, 북한교회 재건운동, 방송선교, 탈북민선교 등이 있다.

  ‘통일선교’는 2000년대 전후로 한국교회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통일선교는 복음주의 교회들이 주도했던 ‘북한선교’와 에큐메니칼 교회들이 주도했던 ‘통일운동’을 아우르는 의도에서 제시되었다. 여기서 통일운동이란 1980년대부터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민주화와 통일을 서로 연동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면서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행했던 일련의 실천을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열매로는 1986년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주선으로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한 교회 대표가 첫 만남과 성찬식을 함께 가졌던 일과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회에서 선포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이 있다. 통일선교는 에큐메니칼 교회들의 통일운동과 복음주의 교회들의 북한선교를 큰 틀에서 포괄하는 표현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통일선교는 북한에 대한 복음 전파와 남북한의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함께 강조한다. 여기서 통일은 그 자체로 필수적이고 독립적인 선교적 과제로 이해된다.

  근래 북한선교와 통일선교가 교회 안에서 구분 없이 사용되는 경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 오픈도어선교회의 「북한개발소식」 2022년 5월호에서 성훈경 목사(TWR북방선교방송)는 자신의 정체성을 ‘통일선교 사역자’가 아닌 ‘북한선교 사역자’로 규정한다. 그의 글의 한 대목을 보자.


  “저는 통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내 삶의 사명으로 삼을 만큼 통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저는 통일보다는 북한선교에 더 많은 관심과 열심이 있는 사역자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 저는 통일과 무관하게 북한선교를 수행하는 사역자입니다. 무관하다는 말은 어떤 행정체제의 국가로 통일이 되든지, 오늘 통일이 되든지, 5년 후, 10년 후에 통일이 되든지, 혹은 제가 생을 마칠 때까지 통일이 되지 않든지 그것과 관계없이 저는 제가 살아있는 동안 북한선교를 수행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성훈경은 북한선교의 초점이 통일선교와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통일선교가 중시하는 남북한의 통일 여부와 관계 없이 북한선교는 북한 주민들에게 오롯이 복음을 전파하는 모든 활동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북한선교는 북한 주민의 영혼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선교의 목적에 더 충실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복음통일이란

  북한선교와 통일선교 관련해서 근래 한국교회에 급격히 확산되어 대중화된 용어가 ‘복음통일’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단으로 나눠진 한국교회이지만, 적어도 복음통일이라는 표현은 교회마다 널리 쓰이고 있다. 복음통일은 ‘통일’이라는 용어가 자칫 가질 수 있는 정치적인 색채를 ‘복음’이라는 용어로 안전하게 감싸는 효과(?)가 있다. 이에 ‘복음통일’ 개념은 교인들이 거부감 없이 통일을 위해 기도하도록 이끈다는 장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복음통일 개념이 가진 모호성을 비판한다. 실제로 복음통일은 명확히 규정되기보다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의도와 의미를 함축한 채 쓰이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임박한 북한 붕괴를 기대하며 북한 전역에 교회를 세우는 상황과 복음통일을 동일시한다. 또 다른 이들은 남북한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원리와 방법이 기독교의 복음에 기반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복음통일을 사용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복음통일이라는 압축적인 표현이 가진 의미와 강조점에 대하여 심도 있는 논의가 결여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복음통일은 생활언어 수준에서 감성적인 호소력을 가지지만, 한국교회 내에서 그 의미에 대한 충분한 숙고가 이뤄지지 못한 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구호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복음통일론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만유통일’(엡 1:10; 4:6)의 비전을 21세기의 분단된 한반도라는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담아내는 신학적·실천적 기획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복음통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라는 종말론적 완성의 한반도판 비전이며, 단순히 남북한의 체제나 제도적 통일로 환원될 수 없는 보다 확장된 청사진을 담는 것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믿는다. 현시점에서 한반도에서의 복음통일론의 핵심적 과제 중의 하나가 남북한의 ‘적대적인 분단’을 극복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지난 70여 년간 지속되어 온 적대적이고 자기파멸적인 분단체제를 넘어서 남북한 간의 평화와 화해를 이룸으로써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가 한반도 곳곳에 이뤄지도록 분투해야 하는 사명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다. 하지만, 복음통일을 남북한 간의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통일과 섣불리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적인 통일 개념 혹은 하나 됨의 신학적 지평을 오용할 위험이 있다. 복음통일은 분단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와 실천의 목표와 방향을 인도하는 궁극적인 신학적 비전과 지침으로 서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복음통일론은 한반도의 적대적 냉전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교회의 북한선교 혹은 통일선교(그리고 나아가 한반도선교)의 실천에 있어서 몇 가지 구체적인 지향점을 지시해줄 수 있다.

  첫째, 복음통일은 한국교회의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모든 실천에 있어서 그 ‘동기’와 ‘목표’가 철저하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마 22:37-40; 막 12:29-31; 눅 10:27)에 기초해야 함을 확인해준다.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은 북한을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접근 가운데 내재된 정복주의적이고 일방주의적인 폭력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강하게 도전한다.

  둘째, 복음통일은 한국교회의 탈분단을 위한 ‘방식’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제적 희생이 동반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뤄져야 함을 가르쳐 준다(빌 2:5-8; 마 16:24). 북한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두려움이나 적대감이 아닌 애통하는 마음이어야 하며, 한국교회는 북한을 향해 갈등축소적인 압도적 사랑을 선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화해와 용서의 길을 열어가야 한다.

  셋째, 복음통일은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모든 거주민들의 전인적 회복과 사회의 공동선을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인 노력들을 긍정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해 있다(요 3:16). 이들의 신체적 건강과 사회정서적 보호와 영적 회복에 이르기까지 눈물 흘리는 자들의 눈물을 닦으시는 하나님의 사역(계 21:4)에 동참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총체적 선교(integral mission)가 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한국교회는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닌 고난받고 상처받은 이들의 곁에서 하나님의 치유를 선포하고 경험케 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넷째, 복음통일은 만유통일을 이루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현실주의가 제공하는 협소한 선택지를 넘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열어가실 미래를 내다보도록 이끌어줄 수 있다(히 11:1).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현실세계의 좌와 우라는 정치적 양극단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평과 정의, 샬롬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끊임없이 지향하며 좌와 우의 갈등 속에서 중심을 잡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선교와 통일선교가 혼재된 맥락과 복음통일에 대한 새로운 이해 속에서 필자가 제시하고자 하는 ‘한반도선교’는 어떤 강조점과 의미가 있을까?


북한선교와 통일선교를 넘어 한반도선교로

  그동안 북한선교는 북한만의 일방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대로 한국 사회 역시 급격한 변화와 여러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교회에 대한 매력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기존의 수많은 교인들이 가나안 성도가 되어 교회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다. 세계적인 교세를 자랑했던 한국교회였지만, 이제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마치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이 38년간의 인도선교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자신의 조국 영국이 선교지가 되어버린 것을 목도했던 것처럼, 우리는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선교지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한반도선교의 관점을 장착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고 믿는다. 남북한 전체를 아우르는 선교적 접근을 새로이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상호파괴적인 대결의 심화, 이념적인 대립과 거짓 선동, 확대되는 빈부격차의 아픔, 심각한 저출생, 한반도 생태계 및 기후 위기 등의 각종 문제는 서로 다 연동되어 있다. 한반도선교는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이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이 간절히 필요한 선교적 현장이기에 ‘21세기 한반도’라는 시공간 전체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선교(missio Dei)의 현장임을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한반도선교의 핵심 과제는 복음통일이 지향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 즉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평화, 화해를 한반도의 모든 영역 가운데 오롯이 담아내는 데에 있다. 그렇기에 한반도선교는 대규모 집회 등 힘과 세를 과시하던 기존 크리스텐덤 방식의 선교를 거절한다. 오히려 일상 속에서 복음의 진정성을 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함을 인식한다.

  최근 로컬(local)이라는 관점에서 선교를 이해하고 새롭게 실천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이 선교적 관점은 기존의 ‘선교 보내는 나라 vs. 선교 받는 나라’ 혹은 ‘서울 vs. 지방’과 같은 중심과 주변 구도를 해체하고, 각 지역 사회와 삶의 현장인 로컬의 문제를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끈다. 도시 재생, 마을 공동체 형성, 경제적 자립 모델, 대안적 교육,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 선교적 교회 등 로컬에서의 다양한 사역 모델은 오늘날 선교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선교이자, 모든 방향과 영역에서의 선교(from everywhere to everywhere)이며, 궁극적으로 삶의 선교(life as mission)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반도선교 역시 총체적 선교의 관점에서 삶의 현장인 로컬을 이해한다. 한반도선교는 기존의 ‘남한 vs. 북한’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만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상대화하고 새롭게 재편한다. 그리고 각 로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적 삶을 살아내는 일이 궁극적으로 ‘로컬의 연장이자 확장인 한반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회복과 치유의 선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북한선교 및 통일선교와 관련하여 한반도선교가 가지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한반도선교는 북한선교가 가진 일방성을 극복할 수 있다. 기존의 북한선교는 남한 사람도 함께 변화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간과했고, 선교를 복음 전파로만 축소함으로써 총체적 선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측면이 있었다. 그 결과 북한선교는 일부 사역자의 특수한 사역으로 축소되었다. 반면에 한반도선교는 ‘그들만의 변화’가 아닌 복음 안에서 ‘우리 모두의 변화’를 강조한다. 당장 북한선교 혹은 통일선교 관심자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모두가 한반도선교의 담지자이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정이나 직장, 교회, 로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한반도 전체를 회복케 하는 한반도선교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따라 기존의 북한선교와 통일선교가 가진 협소한 부르심의 차원을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으로 확장시킬 수 있다.

  또한 한반도선교는 통일선교의 제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 기존 통일선교의 강조점은 통일의 시급성에만 맞춰져 있었을 뿐, 통일을 이룬 뒤에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통일이라는 미래에만 집중하여 현재의 일상을 도외시하기 쉬운 경향성도 나타났다. 또한 통일선교는 과거 남북교류 상황에서 등장했기에 당시에는 의미가 컸지만, 반대로 남북관계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고 종속되는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 통일 개념을 다루는 이들의 차이에 따른 혼선도 여러 문제를 야기했다. 하지만, 한반도선교는 통일 이전뿐만 아니라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모든 과정에서 한반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선교로 그리스도인들을 초청한다. 이에 한반도선교는 자신의 은사를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드리는 그리스도인의 현재적 순종이 한반도의 미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도록 이끌어준다.

  그동안의 전통적인 선교 이해는 복음 전파를 통한 영혼 구원으로 축소되거나, 아니면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으로만 치우칠 때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복음 안에서 함께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용서와 온 세상을 향한 성령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와 회복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다. 한반도선교는 복음의 총체성에 대한 이해 위에서 한반도 전역을 하나님이 회복케 하시는 선교의 현장으로 이해하며, 남북한의 적대적인 분단을 넘어서 한반도 곳곳에 복음통일의 역사 즉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임하기를 간구하며 살아내는 선교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오며

  한국교회의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현실주의에 경도되어 힘과 정치의 논리에 좌우되어서도 안 되며, 지나치게 이상적이어서 복잡다단한 현실과 역사 속에 켜켜이 쌓인 갈등의 문제를 간과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 속에서 고뇌하고 기도하며, 정치적인 여러 이념들 사이에서도 거리를 두면서 이 시대 가운데 예언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반도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놓여 있다고 믿는다. 한국교회가 복음통일의 비전 가운데 한반도선교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함으로써 적대적 분단을 넘어 하나님의 평화와 화해와 회복의 역사가 한반도 전역에 온전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0);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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