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24년 새해 벽두부터 대남정책을 전면적으로 전환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지난 2년 동안 남한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대적 투쟁’을 공언하더니 급기야 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었다”고 규정했다. 70년간 견지했던 ‘하나의 조선’ 정책을 폐기하고 ‘두 국가론’에 기초한 대남전략의 근본적 전환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이 남북관계 규정 발언에는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는 남북관계의 적대성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남북관계를 민족관계가 아닌 국가관계로 보는 관점의 변화다. 먼저, 남북관계의 적대성 측면에서는 근래에 고조된 남북간 대립과 갈등이 극도의 대남 혐오감정으로 폭발했다는 느낌을 준다. 남한에 대한 김여정 부부장의 거친 언사와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비난에서 배신감과 원망의 감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북한은 남한이 먼저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했음을 지적하며 결국 ‘9.19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한데 대해 격앙하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법제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남북관계의 국가성에 관하여는, 북한이 그동안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통일을 추구해 왔으나, 한반도 현실과 괴리가 컸음을 지적한다. 지난 80년 동안 추진해 온 ‘1민족. 1국가, 2체제에 기초한 통일노선’은 이제 과감히 폐기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남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 즉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자괴감을 드러냈다. 따라서 “80년간의 북남관계사에 종지부를 찍고 조선반도에 병존하는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한 기초위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남정책을 새롭게 법화하였다”고 공표했다.1)

   북한은 새로 천명한 대남정책을 즉각 실행에 옮기는 조치를 단행했다. 통일과 관련한 조직과 기구 및 단체들을 신속히 정리하고, 헌법의 일부 내용 개정에 착수했다.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페지(폐지)함에 대한 결정”을 발표하고, 그에 따라 조평통, 민경련, 민화협,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에 관여했던 모든 조직과 기구를 해체했다. 이러한 조직과 기구는 명칭을 바꾸어 외무성 산하로 흡수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지난 수십년간 활약했던 남북교류의 주체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북한의 결기는 대단했다. 북한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고, 헌법에 규정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도 삭제할 것을 주문했다. 7.4남북공동성명과 ‘조국통일 3대헌장’의 폐기를 지시하고 통일거리에 거대하게 조성되어 있던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을 즉각 철거했다. 개성에 있던 남북연락사무소 건물을 무자비하게 폭파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북교류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을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남북관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조치를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며 실행에 착수했다. 남한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우리가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며 ‘북반부’나 8천만 겨레‘ 등 남북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헌법에 명기하도록 했다.

  김정은의 대남전략 대전환 선언은 남북한간 사활을 건 국가경쟁 모험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줄곧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선대의 ‘민족제일주의’를 뒤로하고 ‘국가제일주의’를 기치로 들고 나온 것이다. 탈냉전 30년 동안 남북한의 ‘국가성’이 확연히 강화되었다. 조선(DPRK)과 한국(ROK)은 이미 1991년 9월 각각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하여 국제적으로 국가성을 인정받았으며, 사회 내부적으로도 국민의식이 고조되어 ‘국민국가’의 성격이 완연해졌다.

  이런 점에서 김여정이 남한에 대해 ‘남조선’이라 하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호명한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간중간 ‘대한민국 것들’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섞여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북한을 국가관계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남쪽에 대한민국이 있다면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서방세계가 왜 북한을 ‘정상국가’로 대우하지 않고 ‘불량국가’로 치부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크다. 남북한이 동족이라며 인권문제나 핵문제로 간섭하는 것이 체제의 큰 부담이기도 하다. 김여정은 2022년 8월 담화에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며 동족 ‘남조선’이 아닌 이국 ‘대한민국’과 정상적으로 경쟁하자는 뜻을 내비쳤다.

  ‘조선’으로서는 한번 해볼만한 모험이다. 경제는 기왕에 경쟁에서 실패했으니, 군사력과 정치, 문화를 앞세워 정통성 경쟁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핵무기로 군사력을 압도했고 한류 문화를 비판하며 정치에서도 경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은 연설에서 “(대한민국의) 정치는 완전히 실종되고 사회전반이 양키문화에 혼탁되었으며 국방과 안보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복속국에 불과”하다며 극단적 비판을 이어갔다. 정치에서도 최근 선거방법을 개선하여 베트남과 중국처럼 복수후보를 추천하는 변화를 보인데 대해 내심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전반적인 변화는 북한이 처한 대내외 환경이 과거와 확연히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회담 결렬 이후 한미일 3국의 군사 압박으로 경제적 부담이 크다. 남북간 경제력 격차를 생각하면 100년이 지나도 한국을 따라 잡을 수 없다는 좌절감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김정은 말대로 “지방에서는 초보적인 생필품 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는... 매우 한심한 상태”2)여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50배 이상의 벌어져 있는 남북 경제력 격차를 극복할 길이 도무지 없다.

  무엇보다 30대 청년들인 김정은과 김여정의 현실 인식이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남한에서도 20~30대의 젊은층은 통일에 대해 30% 정도만 공감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서도 적이라거나 경계해야 한다는 부정적 인식이 50% 가까이 되며, 대부분 ‘다른 나라’로 인식한다. 김정은·김여정의 ‘국가주의’ 사고나 ‘대한민국’ 호명은 30대 젊은층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남한의 MZ세대와 마찬가지로 김정은과 김여정은 분단의 기억이 거의 없고, 왜 통일을 해야 하는가의 당위성을 실감하지 못하는 세대다. 남한과 북한은 더 이상 같은 민족이나 같은 나라가 아니다. 상상할 수 없이 전혀 다른 나라다.

  남북관계의 이러한 질적 변화는 극히 정상적인 흐름이라 할 수 있다. 동서독의 경우처럼 한반도도 비슷하게 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전 동독은 서독과의 민족관계를 부정하고 국가관계를 주장한 반면, 서독은 그러한 동독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민족관계임을 끝까지 주장하며 통일을 이룩했다. 동독이 서독에 비해 여러 면에서 수세적인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민족관계를 단절하고 국가관계로 발전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남북한 간에도 북한이 체제의 우월적 위치에 있었을 때에는 민족과 통일을 강조했었는데 열세에 놓여 있는 현 상황에서는 민족담론으로 교류를 지속하거나 통일을 추진하기 힘들게 되었다.

  세계적 신냉전 질서와 전쟁 국면에서 북한은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를 밀착하면서 체제 생존의 호기를 맞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경제·군사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생존 공간을 찾아가고 있다. 남한에 대한 적대적 태도 및 대남전략의 전환은 작금의 국제정세가 미·중 패권갈등의 고조로 미국이 점차 세력을 잃고 있다는 판단을 깔고 있다. 이러한 신냉전 질서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고 미국에 대해 강대강 정면승부 대적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2024년에는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아예 사라지고 대신 전쟁, 핵전쟁과 같은 공격적 언어가 등장할 정도로 전쟁을 현실 문제로 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고, 중동에서는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서 북한으로서는 한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이같이 2개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대만해협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한다면 한반도에서도 무력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하노이 북미회담(2019.2) 결렬로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받았던 김정은은 이러한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 실패를 정당화하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러시아 등 “사회주의 나라 집권당들과의 관계발전에 주력”하는 방향으로 외교노선을 정리했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불가피한 길이었지만 오히려 명분이 생긴 셈이다. 러시아의 도움을 받으며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2024년에는 3개의 정찰위성을 쏘아올리겠다고 공언했다.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북한은 “주저없이 중대한 행동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엄숙히 선언”하며 핵무기 카드까지 꺼내들었고,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