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손재주가 없다. 잘 만들어진 것, 미적인 물건을 고르는 건 꽤 잘하지만 직접 손으로 결과물을 내는 것에는 매우 서툴다. 또 인내심이 선천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완성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공예, 만들기에는 영 낯설었던 게 사실이다. 십자수, 뜨개질 등을 달고 살던 언니를 보며 저걸 굳이 왜 하나 싶기도 했다. 원데이 클래스가 넘쳐나는 요즘, 전문가들이 만드는 멋진 ‘제품’을 사지 굳이 마음에 쏙 드는 것도 아닌 것을 생성하는 건 어쩌면 환경오염이지 않을까 싶었던 것도 있다. 이 프로젝트가 내 의식에 깊이 박혀있던 것들을 갑작스러운 재채기처럼 튀어나오게 하는 게 목적인 만큼 이전에 추천받았던 도자기 클래스가 생각이 났다. 전에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법도 한 금액도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가장 이른 날짜로 예약했다. 오롯이 집중하려면 혼자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 식기를 정말 좋아하고 특히 컵을 모은다. 딱히 이유는 없는데, 하나 굳이 꼽아보자면 아마도 스스로를 대접하는 물건이기 때문일 것 같다. 엄마는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그랬는지 나처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무얼 모은 적이 없었다. 반찬을 일일이 접시에 덜어 먹는 집도 아니었고 대부분 어디서 받아온, 못생긴 폰트로 행사일이 적힌 답례품 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내가 독립을 다짐하며 하나둘 서랍장에 모으던 컵들이 찬장 한 칸을 꽉 채웠다. 물론 그것들을 매일 사용하는 건 아닐지라도 담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잔을 고르고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는 정성스레 코스터와 함께 내어주는 것이 누구보다 나의 기분을 좋게 한다. 자신을 챙기는 마음은 이렇게 일상에 묻어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밥 한 끼를 먹더라도 정성스레 차림새를 챙기고 사진으로 찍어두는 것. 건강한 음식을 부러 먹는 것만큼 중요한 우리네 삶의 지점이다.

최근에는 요거트를 챙겨 먹기 시작했다. 그라인더가 없어 놀고 있는 커피 드리퍼를 이용해 만든 아주 되직하지 않은 그릭 요거트에 여러 과일과 언니가 사다 준 캄보디아산 로스티드 캐슈넛(진짜 질과 풍미가 좋다)을 잔뜩 올려 먹는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일종의 모닝 루틴이 되었다. 미적미적 일어나 먼저 음악을 틀고 양치와 세수를 한다. 천천히 요거트를 꺼내 담아 먹으며 정신을 깨운다. 이러한 순간이 퍽 마음에 드는데 적당히 아름다운 보울이 없다. 물론 미니멀한 디자인의 국그릇도 기능적인 면모에서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래서 이번 클래스에서 접시 대신 요거트 보울을 만들기로 한다. 하얀 요거트가 돋보일 짙은 유약으로 고르면 더욱 좋을 거 같다.

  

  

왜 이 동네였을까 궁금했던 게 작업실 겸 쇼룸에 들어가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연희의 프로토콜, 예전 서교동 아이들 모먼츠가 그랬던 것처럼 3층 창문 너머로 짙은 가로수들의 나뭇잎이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감각적이고 멋지게 구성된 공간보다 더 좋았던 것은 선생님의 접객 매너였던 것 같다. 웃으며 반겨주고, 수업 전 둘러봐도 좋다고 먼저 일러주며 마음에 드는 예쁜 잔에 진하지 않은 얼그레이 티와 바싹 약과라며 다과를 제공해 주었다. 수업에는 나처럼 1인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고, 2명이 일행으로 온 팀이 있었는데 대기 시간에 자연스럽게 공간을 분리해 안내해 주어 서로 편안했다. 차는 부담스럽지 않게 향긋했고 약과도 많이 달지 않았다. 꼭 군더더기 없이 수수하지만 유려한 도자기 같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한 명이 조금 늦다 보니 도자기 잡지를 한번 읽어보라며 챙겨주시는 행동이 아무래도 꾸며낸 서비스는 아니었다.

세심한 배려는 수업 내내 이어졌다. 해볼 수 있는 카테고리에 대한 설명은 꼼꼼하게 제시되지만 디테일에 대한 간섭은 없어 일단 시도해 보게 되고, 칼이 날카롭다든가 신경 써야 하는 것들만 적절한 때에 잘 일러주셨다.

  

  

십 대 때 지점토를 이후로 젖은 흙을 만져본 것이 처음이다. 자름끈으로 흙덩어리도 잘라보고 밀대로 균일한 두께가 되게 밀어낸다. 약간 갈라진 애들은 물을 적신 스펀지로 매끈하게 결을 잡아준다. 아예 휘거나 갈라지는 걸 막을 순 없지만, 그래도 가급적 그러지 말라며 얇은 플레이트 같은 걸로 다리미질과 같이 도닥여 주기도 한다. 도자기의 좋은 점은 굽기 전까지 충분히 수정이 가능한 점이라고 한다. 구멍이 나거나 손톱자국이 나도 옆에 있는 애들을 끌고 와 메워주면 된다고, 선생님은 언제나 괜찮다고 했다.

수업은 핸드빌딩 방식으로 몰드가 있어 그 위에 밀어낸 흙을 올려놓고 적당히 모양을 다듬는 정도의 수업이었다. 해내는 것에 따라 조금씩 체험해 보면 좋을 걸 제안해 주시기도 한다. 가령 핸드 물레를 돌려 나무 칼로 원을 균일하게 그리는 연습 등을 하는 것. 잘 해내면 원래 며칠 연습해야 하는 거라며 나보다 더 뿌듯해하며 잘했다 해주신다. 이런 순도 높은 칭찬은 이렇게 업무 외 영역에서만 가능한 거겠지 싶기도 하다.

자유롭게 빚기보다는 대칭이나 수평을 맞추려고 하는 나를 보며 선생님은 내심 성격을 파악하신 것 같다. 물론 이런 마음이 도예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완벽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완벽하지 않아도 만들어 내는 것, 안 해도 되지만 해보는 것은 이렇기에 중요한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모양을 갖춰가는 보울들. 하나는 군더더기 없이 떨어지는 녀석에 이니셜만 엉덩이에 박아줬고, 나머지 하나는 굴곡진 기둥과 윗부분에 살짝 휘어진 모자챙 같은 걸 달아주었다. 다양한 도구로 다듬고 만져줘도 조금씩은 모자르지만 '이 정도면 괜찮아요' 마음을 연습하기로 했으니까.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선 가끔 촉감놀이를 하는 사진이 올라온다. 문화센터나 집에서 아이의 오감 발달을 위해 미역, 두부같이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온몸으로 놀아주는 것인데, 그런 걸 보며 내심 부러웠나 보다. 손과 주변이 어지럽혀져도 상관없이 마음껏 감각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 손끝에 부딪히는 거라곤 키보드 자판과 차가운 화면뿐인 어른들을 위한 촉감놀이도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정기 의무 교육 과정으로 넣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 수업을 들으러 오는 길, 늘 나를 괴롭히는 문제로 눈물 바람을 했다. 속상하고 원망스러운 마음, 다 관두고 싶은 마음, 모두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한데 뭉쳐 후드득 떨어졌다. 그래서 더 좋았나 보다. 깨끗한 공간에서 마음에 드는 음악이 나오고, 계속해서 나를 들여다봐 주고 잘하고 있다고, 좋다고 연신 말해주는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 조용히 흙을 도닥이고 매만져 주고 중심을 잡아주는 시간. 집중으로 나의 삶을 잠시 흐트러트리는 순간을 말이다.

두 번째 딴짓은 <도자기 클래스>였습니다. '원데이 클래스 들은 게 뭐 별 거냐?'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 딴짓 프로젝트에는 일회성 혹은 몇 주간, 몇 달간 지속되는 가볍고 무거운 것들이 혼재되어 있으니 걱정(?)마세요.

취미의 사전적 의미 중 첫 번째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혹시 단순히 여가, 취미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는데도 남들처럼(허상일 수 있음 주의) 결과물이 썩 멋지지 않을까봐 괜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게 있진 않으신가요? 저질렀다가 막상 하려고 하니 부담만 잔뜩일까 스스로에게 '나는 이걸 별로 원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저는 그랬던 것 같거든요. 실패하지 않을 선택지만 골라왔으면서 매번 성공한 것처럼 말예요. 

한국인 종특인지는 모르겠지만 숟가락 떠봤다가 아니면 내려놔도 되니까 일의 바깥에서는 마구 찍어 먹어보고 버리고 다른 거 뜯고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결과물이 중요한 건 아니라 사진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만든 요거트 볼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보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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