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일  (No. 588)
그럴싸한 경영 사례에 속지 마세요

"이누이트(에스키모) 사람들은 눈(Snow)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백 개나 된다." 

이 말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요, 미세한 차이를 구분해내는 그들의 섬세한 언어 감각에 감탄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이야기는 거짓으로 밝혀진 신화(myth)입니다. 영어도 그렇고 한글도 그렇고, 눈을 표현하는 어휘의 수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누이트의 이야기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널리 퍼집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는 진실보다 단순하고 교훈적인 '스토리'를 더 좋아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취향이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똑같이 발현된다는 점인데요, 우리가 '경영의 정석'처럼 알고 있는 사례들, 과연 진짜일까요?

우리 뇌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직관적이고 빠른 '시스템 1'과 이성적이고 느린 '시스템 2'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에너지를 덜 쓰는 '시스템 1'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복잡한 인과관계를 파헤치기보다, "A 기업은 혁신해서 성공했고, B 기업은 안주해서 망했다"는 식의 깔끔한 서사를 편하게 여기죠. 이를 '내러티브 오류(Narrative Fallacy)'라고 부릅니다.

경영학 수업이나 기사에서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늘 조롱의 대상입니다. "2000년에 넷플릭스가 자신들을 5천만 달러에 인수하라고 제안했을 때, 블록버스터 CEO는 비웃으며 거절했다. 디지털 변화를 무시하고 오프라인에만 집착하다가 결국 망했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그들이 망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당시 블록버스터의 CEO였던 존 안티오코(John Antioco)는 바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넷플릭스의 위협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죠. 그는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리면서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블록버스터 토탈 액세스(Blockbuster Total Access)'라는 강력한 전략을 실행했습니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DVD를 주문하고, 다 본 DVD를 오프라인 매장에 반납하면 즉시 무료로 새 영화를 빌려주는 서비스였습니다.

이 전략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넷플릭스 가입자들이 블록버스터로 갈아타기 시작했고,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조차 당시 "우리는 정말 위기였다"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블록버스터는 왜 망했을까요? 문제는 전략이 아니라 '주주와의 갈등'이었습니다. '토탈 액세스' 전략을 실행하고 연체료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막대한 비용이 들었는데요, 이때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Carl Icahn)이 개입합니다. 그는 "왜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써서 수익을 갉아먹느냐"며 당장 배당금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라고 압박했죠

결국 이사회 싸움에서 밀려난 존 안티오코는 2007년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칼 아이칸이 지지한 후임 CEO 제임스 키스(James Keyes)는 오자마자 안티오코의 온라인 혁신 전략을 모두 폐기하고, 다시 매장 중심의 수익화 모델(가격을 올리고 연체료를 부활시키는 등)로 회귀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반사이익을 얻어 기사회생했고 3년 뒤 블록버스터는 파산했습니다.

블록버스터가 망한 진짜 이유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가 아니라, "장기 혁신 전략이 단기 이익을 좇는 주주의 탐욕과 내부 정치로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블록버스터처럼 억울한 경우는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 "코닥(Kodak)은 디지털카메라를 무시해서 망했다?" 
실제로는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고, 시장 점유율 1위도 했음. 필름 현상이라는 수익 모델이 사라진 게 망한 이유

- "제록스(Xerox)는 멍청해서 GUI 기술을 애플에 뺏겼다?"
실제로는 애플이 정당한 대가(주식 10만주)를 지불하고 이루어진 비즈니스 거래였고, 제록스는 애플 주가의 폭등으로 17배의 시세 차익을 거둠

이처럼 우리가 아는 경영 사례는 사실과 다를 때가 많습니다. 좋은 스토리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힘이 있지만, 그것이 현실을 왜곡하면 엉뚱한 교훈을 얻어 낭떠러지로 향하게 됩니다. '그럴싸한 이야기'가 주는 1차원적 재미에 취하지 말고 다소 복잡해 보이는 맥락(Context)을 파고들기 바랍니다. 이런 노력이조직 내에 만연한 고정관념을 깨고, 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의 근육을 키워줄 것입니다.


*참고기사
Satell, G. (2025, November 28). The danger of believing business myths. Fast Company. https://www.fastcompany.com/91236968/the-danger-of-believing-business-my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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