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뭘 요리해야 좋을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FEB 7, 2025
내가 지금 먹고 싶은 게 뭔지 알아채고,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알맞은 요리를 해서 나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은 굉장히 소중합니다. 나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가지는 건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내 입에 딱 맞는 간과 선호하는 재료들, 조리(라고 쓰고 노동이라고 읽어봅니다)하면서 몸을 움직여 얻는 에너지,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익숙한 접시에 담아 먹는 좋아하는 음식은 종종 요긴한 스트레스 해소제가 되어줍니다. 

이런 저도 가끔은 뭘 요리해야 좋을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라면보다 파스타를 자주 볶아먹는 사람인데도 도통 뭐가 당기는지 모르겠는 거죠. 잔뜩 늘어놓고 이런 말로 끝맺기 허무하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파스타이긴 합니다.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토마토 파스타요.

런치팝 스파게티를 아시나요? 제 파스타 사랑은 이 간편식 스파게티 전후로 나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주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찬장 구석에서 며칠간 아끼고 아끼다가 꺼내 먹었던 런치팝 스파게티. 전자레인지에 2분만 데우면 완성되는 그 간단한 스파게티가 얼마나 맛있던지요. 뜨끈하게 데워진 스파게티의 비닐을 다 떼어냈을 때 진하다 못해 구수하게 느껴지던 미트소스 냄새. 저는 어제 먹은 것도 물어봐야 더듬더듬 짚어내는 사람이지만 어렸을 때 먹었던 런치팝 스파게티 맛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소스가 아까운 마음에 접시를 핥아 싹싹 해치우곤 했어요. (엄마가 있을 땐 혼나서 차마 그렇게 못했지만요) 마치 라면처럼 혀를 쪼아주는 가공식품 스파게티가 얼마나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줬는지, 그리고 얼마나 인상 깊게 남아 그 이후 쌓아 올린 제 입맛에 큰 지분을 차지했는지. (아직도 혀를 때리는 묵직한 맛을 좋아합니다) 돌이켜 보면 웃기고도 소중한 추억입니다.
꽤나 고급스러운 패키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다시 찾아보니 세월이 묻어나는 디자인이네요.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영화에서 예상치 못하게 토마토 파스타 장면을 보고서는 한동안 또 토마토 파스타에 빠졌더랬죠. 파란색으로 가득할 줄 알았던 영화에 붉은 토마토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장면들이라니 반칙이지 뭐예요. 파스타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토마토소스를 가득 올린 영화 속 파스타는 식욕을 돋우고도 남는 비주얼이었습니다. 시리게 파랗던 바다 장면과 대비되어 더 붉게 빛나는 파스타였어요.

그런가 하면 맛있는 마르게리따 피자를 처음 먹었을 때의 충격 또한 꽤나 생생합니다. 마리나라나 마르게리따는 토핑이랄 게 없는 피자이기 때문에 토마토소스의 맛이 관건입니다. 신선하다는 표현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토마토의 산미 가득한 쥬시한 맛은 런치팝 스파게티로부터 파생된 "토마토소스=미트 소스"라는 제 편협한 시각을 깨 주었는데요. 덕분에 제 토마토 파스타의 지평도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토소스는 곰탕처럼 푹 끓여서 신맛을 다 날리고 진득하게 먹어야만 맛인 줄 알았는데, 아작 깨물면 즙이 흐를 듯한 상큼하고 향긋한 토마토 파스타도 행복해지는 맛이라는 걸 알게 되었거든요.

평소에 저는 오일파스타를 가장 많이 해 먹는데요, 오일파스타나 크림파스타는 가끔 질릴 때가 있다는 사실에 동감합니다. 그렇다가도 토마토 파스타를 떠올리면 뭐랄까, 빵을 먹다가 밥을 먹는 느낌과 얼추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좀 웃긴 비유이긴 하지만 이를테면 파스타의 근본 같은 느낌이랄까요. (참고로 저는 밥 체질입니다) 실제로도 역사상 가장 처음의 파스타 소스는 마리나라 소스라고도 하니 아예 뜬구름 잡는 감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요즘은 파스타 면과 시판 토마토소스만 있으면 조립식으로 뚝딱 만들어 먹기도 쉬운 세상이니만큼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토마토 파스타를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입맛 없을 땐 토마토 파스타를 떠올려 보세요. 묵직한 풍미의 토마토 파스타, 산뜻한 미감의 토마토 파스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맵싸한 향신료와도 잘 어우러지는 토마토 파스타까지 드넓은 선택지가 펼쳐질 테니까요. 입맛이 없어도 스스로를 챙기는 일에는 소홀하지 말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마음가짐을 더해서요.
입맛 없을 때 토마토 파스타
제가 만들어 먹은 다양한 토마토 파스타입니다. 이렇다 할 레시피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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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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