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시나요?

안부를 묻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오랜만에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많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정기적으로 보내던 마음을 중단했습니다. 제 마음대로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닙니다. 쓸 여력이 부족했습니다. 바쁘긴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마음이 부족했습니다. 편지 기다린다고 보내주신 마음을 기억해 이렇게 보냅니다. 부채감이 몰려옵니다. 솔직한 마음을 보내지 못한 이유는 여럿이지만 아무래도 저도 제 마음을 알 수 없어서입니다. 지난 시험을 보내고 마음이 바쁩니다.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는 한 곳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는다면,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9월과 10월 그리고 11월에는 주로 도서관에서 강의를 하며 보냈습니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쓰기를 주저하던 사람들에게 쓰기의 시작을 보여주고 알려주며 즐거웠습니다. 사람은 역시 즐거워하는 일을 해야 하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너무나 비정기적인 일이기에 마음이 아쉬웠습니다. 한 수업에서 저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인 한 분께서 제게 저녁을 하라며 와플을 챙겨주셨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누군가를 챙기는 일은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수업에 전병 한 박스와 귤 한 박스를 사 오셨습니다. 수업을 일찍 마치고 둘러앉아 그것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작은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좋겠습니다. 바라는 것은 참 많습니다.


제가 왜 솔직한 마음을 보내지 못했나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깊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 때문입니다. 작은 마음을 꺼내지도 못하는 요즘인데 크고 깊은 마음을 꺼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보낸 마음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꽤 깊고 정말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이제 얕은 이야기라도 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춘기를 두 번이나 더 보냈을 나이인데, 어제는 하루 종일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질투했어요.


숏폼에 망가진 뇌를 표백하기 위해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최초의 것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스무 살의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유효한 소망입니다. 쓰는 일은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방향타를 잃은 작은 배가 된 기분입니다. 망망대해에서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가고 있습니다. 가끔 만날 커다란 파도가 겁나지만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믿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믿는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믿다 보면 꼭 그렇게 되는 것 같거든요.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히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긴 겨울잠을 잘 준비를 하는 기분이지만 동면하지 않겠습니다.


꾸준히 쓰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

제가 늘하는 질문을 믿고 나아가 보겠습니다.


계신 곳에서 편안하고 따뜻한 밤 보내세요.
짧은 답장이라도 환영합니다. 행복하세요.



성혁


P.S 초겨울마다 듣는 사랑하는 노래를 보냅니다.


내 안의 모든 게 다 녹아내릴 때
보이지 않던 게 하나 둘 피어날 때
피어난 입김이 외롭지 않을 때
그럴 때 마침 일어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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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혁   |   forestwave.official@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