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거칠게 몰아치던 서른다섯 해의 이야기를 다소 절제된 언어로 들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담담하게 이어가던 이야기는 어느새 후반부로 데려가, 결국 눈물을 훔치게 했다.
독일로 떠난 한 화가는 뜻밖의 사람들을 만나며 전혀 다른 길로 자신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아프리카라는 낯선 곳에 다다랐다. 부르심을 받은 땅, 기니비사우에서 기적처럼 마련된 부지에 교회를 세우고, 현지인들과 수많은 아이들을 교육하고 예배드리는 감격의 순간도 맞이하였다. 그러나 내전과 교회를 둘러싼 외부의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질병과 싸워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어린 딸 두제는 망고파리로 인한 감염으로 척추를 뚫고 기어 나오는 구더기와 고름을 견뎌야 했고, 잦은 피부병에도 시달렸다. 교육의 어려움 또한 고스란히 감수해야 했다. 누구보다 그 땅에서 작은 선교사로 살아냈던 자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기에 그 고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고, 그들이 견뎌낸 시간을 감히 다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 하나의,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이른 새벽, 딸 두제가 강도의 습격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토록 사랑했고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주었던 땅에서, 바로 그 땅의 사람들에 의해 딸이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었다. 그 시련의 깊이를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을까.
오랜 수술에도 불구하고 두제는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부모를 따라 낯선 아프리카 땅에 와서 그곳에서 작은 선교사로 함께했던 아이는 갓 스무 살이 되어 그렇게 주님의 품으로, 영원의 세계로 떠났다.
형언할 수 없는 상실 속에서 딸의 유품을 정리하던 어느 날, 저자는 낡은 크레파스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하얀 캔버스 앞에 앉았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슬픔과 고단한 삶이 깊이 새겨진 얼굴들을 하나씩 캔버스에 담아내며, 자신 안에 남아 있던 상실의 흔적과도 마주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들을 오래 바라보고 그리는 동안, 슬픔 너머에 있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랑이었다. 잃어버린 딸을 향한 사랑, 그 땅의 사람들을 향한 사랑, 그리고 모든 것을 잃은 순간에도 자신을 놓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그는 그렇게 그림을 그리며 상실을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상실 너머에 있는 사랑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