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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와 함께 발행합니다. 여성과 일, 그리고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고민을 담은 논문들을 달마다 키워드로 묶어 전해드려요.
폴리버리 레터는 매 달 두번째, 네번째 월요일 오전 8시에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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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탈코르셋운동 #정치적소비주의 #바이콧(Buycott)

‘탈코’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이라는 오해
주체적 소비 실천으로 맞서는 여성들

‘탈코’하고 올리브영 가는 이유

수많은 국내 페미니스트 운동 중 가장 강렬했던 하나는 역시 ‘탈코르셋’이겠죠? 일명 ‘탈코’는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메이크업, 긴 머리, 하이힐 등 미용 관습을 거부하기 위해 2017년 온라인에서 시작된 운동인데요, 많은 여성들이 화장품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머리를 짧게 잘라 해시태그를 남기며 SNS에 인증했던 것을 기억하실겁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았죠. 탈코를 위해 숏컷을 한 후 머리 손질방법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남자처럼 되는 것이 페미니스트의 궁극적인 목적이냐’는 비난이나, ‘꾸밈노동 거부 차원에서 머리를 잘랐으면서 고데기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조롱이 온라인 공간에서 넘쳤으니까요. 이는 탈코르셋을 ‘규범적 미용관습을 거부하는 일회성 운동’으로 단순하게 오해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탈코르셋은 일회성 운동도 아닐 뿐더러, 운동에 담긴 의미와 참여자가 지향하는 목표, 가치 또한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또한 이를 이해하려면 운동이 촉발된 환경적 배경, 사회적 맥락도 고려해야 하죠. 오늘 폴리버리는 탈코르셋에 대해 소비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을 시도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저자는 탈코르셋에 대한 기존 연구들이 여성 해방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많은 설명을 시도해왔지만, 탈코르셋이 촉발된 중요한 사회구조적 맥락이 간과되어 왔음을 지적합니다. 탈코르셋의 가장 큰 특징은 소셜미디어 기반으로 성행한 신자유주의적이고 소비자본주의적인 틀 안에서 구조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즉, ‘여자에게만 부과된 불공평한 비용’, ‘핑크택스’ 등 탈코르셋은 상당 부분 소비자본주의와 맞물려 있음에도 이러한 맥락은 그동안 중요하게 설명되지 않았었죠. 자세한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요?

‘탈코’는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이라는 오해

여러분들은 탈코르셋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가요? 먼저 오해부터 짚고 넘어갑시다. 혹시 ‘탈코’하면 숏컷에 맨 얼굴을 한 여성의 이미지가 떠오르시지는 않나요? 아무래도 SNS에서는 자극적인 이미지만 부각되다보니, 이러한 극단적인 편견이 남게 된 것 같습니다.

여성들은 탈코르셋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걸까요? 저자는 연구참여자들에게 탈코르셋에 대해 어떻게 정의를 내리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들은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전혀 극단적인 태도를 가지지 않았으며, 훨씬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각기 정의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참여자들은 탈코를 단기적인 혁명보다는, 일상적인 페미니스트 가치 규범으로서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이 편한고 선호하는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따라서, 모든 여성이 탈코르셋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며, 숏컷과 노메이크업이라는 일률적인 실천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에는 더더욱 반대했죠. 자신의 선호에 따라 머리길이와 화장 정도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즉, 참여자들은 여성에게만 부과된 외모 코르셋에 대한 저항이 목적이었지만, 이를 무조건 거부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만 실천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화장을 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을 때, 내가 하고싶은 만큼만, 즉 ‘사회적 규범에 따르지 않고 내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겠다’는 것이 핵심이었던 것이죠.

주체적 소비 실천으로 맞서는 여성들

앞서 설명했듯이 탈코르셋은 자본주의라는 사회구조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이를 떼어놓고 탈코르셋을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죠. 그렇다면 소비자본주의라는 구조적 틀 내에서 탈코르셋은 어떻게 촉발되었으며, 이는 어떻게 실천되고 있을까요?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가성비 떨어지는 소비

탈코르셋 운동이 일어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구 참여자들을 인터뷰해보니 이들의 운동 논리는 소비와 깊은 관련이 있었음이 확인되었죠. “아니 사람이면 피부에 모공있는 건 당연한거 아니에요? 여자 화장품은 모공 지우개, 심지어 때 팔꿈치 지우개까지 나오더라구요.” 이들은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여성 뷰티제품들이 여성에게만 과도한 꾸밈과 그에 따른 소비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참여자는 남성의 스킨케어는 올인원(All-in-One) 방식으로 출시되면서 여성에게는 스킨, 토너, 수분크림, 세럼 등 단계별 제품을 구매를 부추기는 마케팅에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죠. 또한, 같은 영양제인데도 여성의 다이어트 영양제만 비싸게 파는 일명 핑크택스(Pink tax) 문제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게 된 참여자들은 여성에게만 권해지는 억압적이고 가성비 떨어지는 소비 패턴을 벗어나, 스스로 자유롭고 합리적인 소비자로 거듭나조자 하는 의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탈코르셋의 참여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합리적인 소비 스스로 실천하기

앞서 지적한 성차별적 마케팅과 비효율적인 소비에 대항하기 위해 여성들의 탈코르셋은 합리적이고 가치있는 소비를 실천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의 실천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여성을 타켓으로한 뷰티 산업구조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들의 탈코르셋은 일상 속 매 순간 투쟁의 연속입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여성들의 탈코르셋 전략을 알아보기 위해 저자는 이들이 드럭스토어에 가는 행위에 주목합니다.

1)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드럭스토어, 방문중단 대신 선택한 전략은?

요즘은 ‘올세권(올리브영+역세권을 합친 신조어)’이 대세라고 하죠. 화장품 외에도 식료품과 생활용품 등 다양한 상품군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드럭스토어는 뷰티제품 매장을 넘어서 이제는 복합적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드럭스토어는 고객이 직접 부르기 전까지는 직원이 오지도 않을 만큼 쿠매에 대한 부담도 없죠. 이러한 드럭스토어 방문을 절제하기란 결코 쉬운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들은 방문거부 대신 해당 공간에서의 동선조절, 시선회피 등 행동을 통제하는 전략을 선택했죠. 예를 들어, 매장에 들어서면 색조화장품에서 최대한 눈을 떼고 화장품 매대를 지나쳐 식료품, 생활용품 등 필요한 물건이 있는 매대로 직행하는겁니다. 물론 늘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매대를 지나치는 짧은 찰나에도 신제품에 눈길이 가며, 화려한 광고 포스터를 보며 유혹을 이기지 못해 충동구매를 하곤 하죠. 그러나 한 번씩 그러한 일탈이 발생하더라도 이들의 탈코르셋은 계속됩니다. 이들에게 탈코르셋은 계속해서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죠.

2) 가치소비 전략: 비싸더라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투자하기

“화장품 그거 결국 다 일회용기잖아요. 화장품 만든다고 애꿎은 동물실험이나 하고. 어차피 살바엔 비싸더라도 차라리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제품 사는게 낫죠.” 이제 이들은 화장품을 구매하더라도 아름다움만을 강요하는 가성비 떨어지는 제품보다는 비건제품, 친환경제품,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합리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소비를 실천합니다. 일종의 바이콧(Buycott) 전략인거죠. 이들의 소비는 개인적인 행위차원에서 그쳤지만, 그 영향력은 거대 기업의 행위변화로 이어집니다. 기업들은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어 비건, 친환경, 여성친화적인 마케팅에 더 많은 힘을 쏟을 수 밖에 없게되죠. 저자는 여성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드럭스토어에 점점 더 많은 관련 제품이 들어오게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가치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행위 자체로 이들의 노력은 기존의 성차별적 뷰티산업 구조를 타파하고 여성 친화적 뷰티라는 바람직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럼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오늘 레터를 통해 탈코르셋에 대한 오해가 조금이나가 해소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제 탈코르셋이 ‘꾸밈노동 거부’라는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탈코르셋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소비자본주의라는 구조적 맥락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것 까지도요. 이들은 여성에게만 불공평하게 부과되는 비용을 거부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위해 주체적으로 행동하고자 노력할 뿐입니다. 탈코르셋은 그 자체로서 결과가 아닌, 지속되는 과정일 뿐이죠. 탈코르셋에 대한 지나친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습니다.

진부한 이야기겠지만, 일상생활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여성에게만 비합리적인 소비나 이상적인 가치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여전히 ‘여성 전용’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마케팅과 그에 따른 프리미엄 가격 전략이 만연한 것 같은데요. 이러한 마케팅의 이면에는 여성다움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이 깔려있다는 것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 소비지향적 가치관을 탈피하고 가치지향적 소비자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게 화폐가치 중심적 사고와 물질적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더 많은 상품 생산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자극적인 마케팅을 하도록 유도하죠. 그러나 탈코르셋 사례에서 봤듯이, 상품의 가격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우선으로 두어 소비를 한다면 기업들도 소비자의 입맞에 맞추어 변화할 수 밖에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사회전체로 그 영향력이 확장되겠죠. 물론 단순히 소비행위만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기나긴 과정을 위한 좋은 출발점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