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포코리입니다. 


2020년 3월 13일 우리는 헌법재판소에 기후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1,631일이 지나 바로 내일 최종 판결 선고가 진행됩니다. 언제 판결이 날지를 매번 예상해보고, 판결을 계속 그려보곤 했는데 막상 헌법소원의 판결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떨떨하고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어요. 

좋은 결과가 꼭 나오면 좋겠지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와 상관없이, 청기행과 헌법소원의 시간을 함께 해주신 여러분에게 판결 전에 마지막으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요.


청기행은 기후 헌법소원을 청구하고 우리는 이 소송 밖에서 그리고 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찾았어요. 이 소송이 만들 변화의 가능성을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어요. 법정 내에서의 싸움은 기약 없기도 했고, 변호인단이 법적 언어로서 소통하는 것들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매년 헌법재판소 앞에 서서 기자회견을 하고, 사람들에게 아직 이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렸어요. 그 밖의 시간 동안에는 소송의 결과를 기다리며 정책 의사결정자를 타겟한 캠페인을 만들어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결정을 막거나,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이어갔어요. 이 과정에서 결정권을 쥔 사람의 의지에 기대어, 문제 해결을 읍소하는 방식으로는 (‘~~해주세요.’ 와 같은) 기후위기에 충분히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반복해서 깨달았어요. 기후위기 대응이 우리의 권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기후 대응의 기준을 만드는 것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다시 헌법소원으로 돌아왔어요.


헌법소원을 청구한지 3년이 지날 즈음, 이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고 파보기로 했어요. 헌법재판소 뒷조사(?)를 시작했어요. 헌법학 입문 책을 읽고, 헌법재판소의 역사나 그동안의 주요한 사건들, 발전해온 과정의 맥락을 따라갔어요. 헌법재판소가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판결을 내리는지를 파악하게 됐어요. 기후 헌법소원과 비슷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사건은 없는지 살폈고, 재판관들이 어떤 판례를 내려왔는지 분석했어요. 재판관 개개인이 어떤 관점으로 법 해석을 하는지를 파악하려고, 재판관들의 청문회나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기 전의 판례들도 파헤쳤어요.

(청기행의 노션 페이지에 있는 이해관계자 조사 데이터베이스의 첫 페이지)
그리고 우리는 이 헌법소원의 곁을 맴도는 걸 넘어 판을 바꿀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건 법정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연결되었어요. 우리는 헌법소원을 파는 과정에서 제3자 의견서를 낼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의견서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왔어요. 전문성과 권위를 조건으로 하는 방식을 넘어서, 서명하고 동원하는 방식을 넘어서, 자신의 이야기로 변화에 다가갈 수 있고, 주체로서 함께 설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참여의견서’ 라는 캠페인을 기획하게 되었어요.
(헌법소원 캠페인 작업 공간)

사람들에게 헌법소원과 기후위기의 맥락을 설명하는 메시지를 다듬고, 누구나 쉽게 의견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확보한 온라인 말풍선 작성 창구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글쓰기 키트를 만들고, 함께 쓰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짧든 길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다양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5,289명의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위기 속에서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 재난을 감각하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늘어나는 냉난방비 속에서 에어컨을 켜는 것에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마음은 무엇인지, 정부의 폐쇄적 의사결정을 보며 어떤 무력감을 느끼는지, 혼자서 실천을 하지만 변화하지 않는 현실이 어떠한지, 기후위기를 인지하고 나의 소중한 사람, 가족, 이웃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와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모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토대로 국가의 기후 대응이 삭제한 삶의 맥락을 드러내고, 이 헌법소원의 위헌 판결을 위한 국민참여의견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어요. 우리가 진행 중인 헌법소원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법령을 심판하는데, 기존 국가의 감축은 목표 수치만 어떻게든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설정되었어요. 불확실한 기술로 메꾸거나 현 정부 임기 뒤부터 급격한 감축이 이루어지는 식이었죠. 못 지킬 것 같으니 설정한 목표를 폐기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국민 5,289명의 이야기로 이처럼 ‘감축의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국가의 기후 대응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했어요. 


청기행이 해온 모든 캠페인을 통틀어 가장 길게 고민하고 만든 캠페인이기도 했어요. 1년 넘게 고민해오고 공들여 만든 캠페인이었지만, 실제로 의견서 작업에 돌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일이었어요. 동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말이 온전히 존재하기를 바라는데, 또 의견서를 읽는 제1청자는 결정을 내리는 헌법재판관이니 그것을 고려해서 쓰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기행의 성명서와 의견서를 붙이는 방식이었다면 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모인 말들이 수단으로써 이용되지 않길 바랬다 보니 수십 장의 흐름을 썼다가 지우고, 다 쓴 글을 뒤엎는 일을 다섯 번도 넘게 반복했어요. 그리고 끝끝내 의견서를 완성했습니다. 말이 가진 힘은 생각보다 무게가 컸고, 이게 만들 수 있는 변화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의 시도가 헌법재판소에 닿았을 때는 분명 다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국민참여의견서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대단한 영웅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들이 만들 수 있는 변화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혼자 가지고 있는 말은 사소하고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모였을 때 말이 가지는 힘은 매우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는 분명히 더 달라지고, 나아질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어요. 우리가 언제나 택해왔던 변화를 만드는 방식은 전문성이나 권위가 조건이 되지 않는, 누구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어요. 변화에 조건을 걸수록, 변화의 가능성을 좁히니까요. 위계와 차별, 관성을 깨고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변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변화만이 우리의 세상을 정말로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내일의 판결이, 바라던 방향이면 좋겠습니다. 이 판결이 변화의 시작점이 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정말 혹시나, 만약에 그렇지 않은 결과가 나온대도 우리는 이번 헌법소원의 과정을 통해 앞으로의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했기에 다시 나아갈 겁니다. 이전과는 다르리라는 걸 확신해요. 원래 변화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주하는 것이니까요.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결과를 마주한대도 아직은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으며,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나설 거예요. 그때도 우리의 곁에 기행러가 함께해 주길 바랍니다.

*추신: 청기행의 기후 헌법소원 캠페인을 지켜봐 주시고 함께해 주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청기행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길을 여러분이 있어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판결 이후, 함께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그때 만나서 반갑게 인사해요!
헌법소원 소식을 공유합니다.
기후 헌법소원의 국민참여의견서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표지

*청소년기후행동에서는 헌법소원 판결 전, 국민 5,289명의 말과 글로 '국민참여의견서'를 만들어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습니다. 국민참여의견서에는 이 사건 심판 법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과 권리를 중심으로 한 기후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헌법소원의 최종 판결 선고를 하루 앞둔 지금, 삶의 맥락을 삭제한 국가의 감축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후 대응이 무엇인지를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2024년 8월 29일, 기후 헌법소원의 최종 판결 선고가 진행됩니다. 혹시나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헌법재판소에서 13시부터 선착순 현장 방청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선고에 함께 해 주세요. 선고 직후 선고 결과를 바탕으로 헌법소원 청구 단위가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됩니다.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진행될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현장에 함께 해 주세요. 당일 선고 직후 기자회견이 진행되다보니, 진행 시점이 궁금하신 분은 contact@youth4climateaction.org로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안내드립니다. 
현장에 오시기 어려운 분들은, 청기행 인스타 라이브가 진행되니 인스타로 함께 해 주세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청소년기후행동
team@youth4climateacti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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