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신명중학교 김헌용 교사 기고 🪴 오늘의 키워드
#장애 #접근성 #기술/과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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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노트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는 공중에 떠 있는 홀로그램 화면을 손짓으로 조작합니다. 당시에는 미래적 판타지로 보였던 이 장면이 오늘날에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기술이 필요했던 사람들—터치스크린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벽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장벽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들이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열어주고 있습니다. 혁신은 단순히 불편함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방식 자체를 확장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시각장애인 교사 김헌용 님의 기술 경험을 통해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탐구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기술이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를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매개'가 될 때 비로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분리되어 있던 두 세계가 웹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AI 시대에 접어들며 더욱 통합되어가는 과정은 단지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사회혁신가들이 주목해야 할 '포용적 기술'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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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두 세계의 교차점에서
맹학교에서 12년,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4년 공부한 뒤 일반 중학교 영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삶과 교사로서 살아갈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제 경력은 시작되었습니다. 초임 시절 저를 사로잡은 열망은 단 하나, ‘보통의 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 교사’라는 수식어 대신, 그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동료와 협력하는 평범한 교사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저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동력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은 이미 두 세계의 정보를 엮는 데 익숙했습니다. 학창 시절 제 세상은 온통 소리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EBS 라디오 교육 방송으로 영어를 익혔고, BBC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들었으며,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들으며 마법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눈이 아닌 귀로 정보를 얻고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제게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소리는 단순히 결핍을 메우는 대체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정보의 간극을 메우고 서로 다른 형태의 정보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는 사이 저만의 상상력이 단련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감각으로 얻은 정보를 다른 차원의 세계로 번역하고 통합하는 작업. 그것은 기술(테크놀로지)이 삶에 깊숙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제 안에 자리 잡은 생존 방식이자 사유의 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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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리되어 있던 두 기술의 축
하지만 교직에 들어서 마주한 기술은 제가 단련해 온 정보의 번역·통합 능력에 힘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제 삶을 두 개의 평행선으로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했습니다. 제 앞에는 뚜렷하게 갈라진 두 개의 기술이 놓여 있었습니다.
하나는 교사로서 마땅히 다뤄야 할 행정 시스템의 기술이었습니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나 K-에듀파인 같은 프로그램들은 ‘보이는 세상’의 규칙으로 작동했습니다. 모든 정보는 시각적 인터페이스 위에 배열되어 있었고, 동료 교사들은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그 인터페이스는 학교라는 조직의 공식 언어였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일은 보통의 교사가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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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실 업무를 보기 위해서는 ‘한소네’ 같은 솔루션이 필요했습니다. | ⓒ김헌용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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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시각장애인으로서 필수 도구로 익혀 온 보조공학기기의 기술이었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인 ‘한소네’나 화면의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스크린리더 ‘센스리더’ 같은, 저에게만 필요한 도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들을 수 있는 기술’로서,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잇는 유일한 다리였습니다. 하지만 이 두 기술의 축은 결코 만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행정 시스템이라는 시각 중심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 보조 기술이라는 청각 중심의 세계를 별도로 조작해야 했습니다.
이 분리된 시스템은 제 일상에 보이지 않는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동료 교사가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낼 업무를 위해, 저는 스크린리더가 화면 구조를 읽어주는 소리에 집중하며 수많은 키보드 명령어를 조합해야 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과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표준으로 쓰이는 한글(HWP) 문서 작업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장벽이었습니다. 표와 서식으로 복잡하게 얽힌 문서는 스크린리더가 구조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고, 결국 내용을 메모장에 옮겨 작성한 뒤 다시 붙여 넣는 비효율적인 과정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이 비효율은 단순히 시간이 더 걸리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두 시스템의 다른 논리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번역하고 중개하느라 막대한 인지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했습니다. 이른바 ‘비호환성의 대가’를 매일 톡톡히 치르는 셈이었습니다. 기술은 분명 가장 강력한 아군이었지만, 동시에 매일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견고한 벽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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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계가 흐려진 순간 - 웹 기반 플랫폼의 부상
그렇게 견고해 보였던 기술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으로 세계가 단절을 경험했던 팬데믹 시기였습니다. 수업과 행정의 중심이 기존의 폐쇄적인 설치형 소프트웨어에서 개방적인 웹 기반 플랫폼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제 일상에도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Zoom, Google Workspace, Google 클래스룸 같은 도구들은 이전의 행정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다른 토대 위에 서 있었습니다. 특정 컴퓨터에 종속되지 않고 ‘웹’이라는 공용의 공간에서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웹이라는 공간은 국제적인 표준과 규범이 작동하는 곳이었기에, 다양한 기술로 만들어진 서비스라 할지라도 웹 접근성 지침을 준수하며 개발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스크린리더와 같은 보조 기술과의 호환성이 월등히 뛰어났고, 저는 비로소 장벽 없이 이 도구들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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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초기, EBS 온라인 클래스, 네이버밴드와 같은 여러 국내 플랫폼이 온라인 교실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였지만, 승기는 금세 Google 클래스룸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능의 우수성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수의 국내 서비스들은 출석 관리나 알림장 작성 같은 세부적 기능 구현에만 급급했을 뿐, 그 기반이 되는 ‘웹’이라는 공간의 보편적 규범인 접근성을 간과했습니다. 반면 Google의 도구들은 처음부터 웹 표준과 보편적 설계라는 철학 위에서 만들어졌기에, 뛰어난 접근성을 바탕으로 장애 학생을 포함한 교실의 모든 구성원을 자연스럽게 포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웹 표준을 기반으로 한 도구의 등장은 제게 ‘보이는 세상의 기술’과 ‘들을 수 있는 기술’이 마침내 하나의 접점에서 만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선사했습니다. 더 이상 두 개의 분리된 시스템을 오가며 고된 번역 작업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스크린리더라는 익숙한 도구를 통해, 모든 교사들이 사용하는 바로 그 업무 플랫폼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술을 ‘장애인용’과 ‘비장애인용’으로 구분하던 낡은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은 더 이상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닌, 모두를 위한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라는 더 큰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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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이후의 기술 -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다
웹 플랫폼이 열어준 통합의 경험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기술은 단순히 정보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저의 인지적, 감각적, 사회적 경험을 다채롭게 증강시키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저는 기술의 무한한 가능성만큼이나 명백한 한계 또한 마주하며, 인간과 기술의 바람직한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지적 증강의 시대
Google의 Gemini 같은 생성형 AI는 저의 인지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주었습니다. 수업 자료 준비, 긴 문서 요약, 이메일 초안 작성, 회의록 정리 같은 일들이 하나의 대화형 인터페이스 안에서 유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이제 장애나 교육 관련 정책 자료를 분석할 때 Gemini의 긴 컨텍스트 처리 능력을 활용하고, 노동조합 성명서를 쓸 때는 Claude의 작문 실력에 초안을 맡기며, 수업에 필요한 최신 현안을 파악할 때는 Perplexity의 검색 증강 생성 기술을 사용합니다. 각기 다른 강점을 지닌 AI들을 엮어 저만의 작업 흐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과거, 주류 기술과 보조 기술이라는 분절된 프로그램을 오가며 길을 잃고 헤매던 때를 생각하면 복잡한 작업들이 AI와의 대화 몇 마디로 해결되는 지금의 통합된 경험은 놀랍기만 합니다. AI는 저의 인지적 조수가 되어, 제가 더 본질적인 ‘콘텐츠’에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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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한계, 인간의 자리
반면,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뚜렷합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원격으로 세상을 묘사해주는 자원봉사자 기반 앱 ‘Be My Eyes’는 2023년 초,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 인식 기술을 도입했습니다. 이어 2024년 말 챗GPT는 실시간으로 영상 통화를 할 수 있는 영상 스트리밍 기능이 탑재되었습니다. 이제 AI는 사진 속 사물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하고, 찰나에 흘러간 장면에 대해서도 다양한 수사를 곁들여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중요한 순간에는 인간 봉사자의 도움을 청합니다. AI의 시각적 인식 능력이 완벽하지 않다는 기술적 한계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가 자신의 답변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한 번은 도시가스 계량기의 검침값을 챗GPT의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 기능으로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 카메라 각도를 여러 번 바꿔가며 질문했지만 AI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957’이라는 숫자를 반복해서 알려주었습니다. 심지어 처음에는 “조명이 어두워 잘 안 보이는데, 불을 켜 주시겠어요?”라고 먼저 요청하며 신뢰를 심어 주었습니다. AI를 믿고 검침 값을 입력했지만, 찝찝한 마음에 아내에게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답변은 전혀 다른 숫자인 ‘517’이었습니다. 아날로그 계량기의 숫자가 넘어가며 다음 숫자의 윗부분이 살짝 보인 것을 AI가 잘못 인식한 탓이었습니다. 단순한 오인식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제게는 작은 배신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만약 인간 봉사자였다면 아마 “숫자가 넘어가는 경계에 있어 정확하지 않은데, 다시 한번 확인해볼까요?”라고 되물었을 겁니다. 자신의 답변이 상대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고 책임져야 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I는 확률에 기반해 그럴듯한 답을 생성할 뿐, 그 답에 대한 책임감이나 상황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능이 지금보다 수십 배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이 책임 공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간이 기술을 온전히 신뢰하는 일은 끝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감각의 확장
그렇다고 기술에 대한 기대를 거둘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자리를 명확히 할 때, 기술이 지닌 또 다른 가능성이 선명해집니다. 저는 다시 제 삶의 출발점이었던 ‘소리’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과거 오디오 콘텐츠의 수동적인 소비자였던 저는, 이제 AI 기반 음성 인터페이스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능동적인 사용자가 되었습니다. 챗GPT의 음성 대화 모드로 육아와 건강 팁을 빠르게 찾고, 스피치파이(Speechify) 앱의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이메일이나 긴 기사를 편안하게 듣습니다. 일레븐랩스(ElevenLabs)의 최첨단 음성 합성 기술을 활용해 블로그에 올릴 글에 감성적인 음성 내레이션을 입히고, Google NotebookLM의 놀라운 팟캐스트 생성 능력을 이용해 수백 페이지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두 진행자의 흥미로운 대화로 감상합니다. 이렇듯 음성 합성 및 인식 기술은 더 이상 접근성을 위한 도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AI 스피커나 음성 비서처럼 개인의 취향과 편의를 위한 보편적 인터페이스로 확장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보지 않고도 세계를 듣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다중 감각 번역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제 감각의 한계를 넘어 세상을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을 열어주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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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험에 대한 철학적 재해석
오늘날 제가 누리는 ‘이음새 없는(seamless)’ 디지털 세상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발명한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주창한 하나의 철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웹의 힘이 그 보편성에 있으며, 장애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웹의 본질이라 믿었습니다. 그 비전 덕분에 웹은 처음부터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핵심 가치로 삼았습니다. 또한 웹의 핵심 기술은 어느 누구도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공재’로 남았습니다. 이처럼 특정 기업이나 기술에 종속되지 않았기에 웹은 모두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잉글랜드 축구팀의 중계 방송을 듣기 위해 처음 웹을 만났을 때 저는 이 철학을 추상적인 이상이 아닌 구체적인 해방감으로 체험했습니다. 웹 너머로 들려오는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가 확인한 것은 단순히 경기 결과만이 아니었습니다. 해설자의 격앙된 목소리와 관중의 함성으로 경기장의 열기를 느꼈고, 선수들의 움직임과 그라운드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렸습니다. 시각장애는 더 이상 제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만의 방식으로 더 풍부한 경험을 창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만난 웹은 그야말로 제 존재를 장애로 규정하지 않는, 광활하고 평등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러한 해방의 경험은 기술철학자 돈 아이디(Don Ihde)의 개념을 통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도구가 인간의 세계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탐구한 인물입니다. 아이디는 우리가 특정 기술 사용에 매우 능숙해지면 그 기술이 ‘투명(transparent)’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더 이상 도구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도구를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안경 쓴 사람이 안경알이 아닌 풍경을 보듯,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 자체가 아닌 지팡이 끝에 닿는 지면의 감촉을 느끼듯, 도구는 우리 몸의 일부처럼 확장되어 경험 속에 녹아듭니다. 저에게 스크린리더는 더 이상 조작해야 할 기계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를 인지하는 투명한 렌즈이자 제 디지털 신체의 일부입니다.
돈 아이디가 도구와 인간의 이상적인 관계를 ‘투명성’으로 설명했다면, 또 다른 선구자인 마크 와이저(Mark Weiser)는 이상적인 기술 환경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캄테크(Calm Technology)’, 즉 고요한 기술의 시대를 꿈꿨습니다. 그가 말한 가장 심오한 기술이란 우리의 일상이라는 직물 속에 스스로를 짜 넣어 그것과 구별할 수 없게 되는, 즉 ‘보이지 않게(invisible)’ 되는 기술입니다. 기술은 우리의 중심적인 집중을 요구하지 않고 주변부에서 조용히 작동하며, 필요할 때만 자연스럽게 우리 의식의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 경험하는 통합된 AI 기반의 디지털 환경은 바로 와이저가 꿈꿨던 이 ‘비가시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은 이 두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미묘한 긴장을 발견하게 합니다. 와이저가 말한 ‘비가시성’이 시스템이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면, 아이디의 ‘투명성’은 사용자가 도구와 맺는 실제 관계를 더 정확히 묘사합니다. 저의 스크린리더는 제게 투명한 도구이지만, 결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스크린리더의 목소리 톤과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하고, 웹페이지의 구조에 따라 탐색 전략을 바꾸며, 그 존재를 항상 의식합니다. 그것은 성가신 장애물이 아니라, 제가 능숙하게 연주하는 섬세한 악기와 같습니다. 이 ‘준-투명성(quasi-transparency)’의 상태는 수동적인 편안함이 아닌, 숙련도와 의식적인 개입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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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을 사용하며 운영하는 수업 및 동아리 활동 | ⓒ김헌용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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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에 진정한 힘이 있습니다. 기술 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용자가 모든 것을 잊은 채 수동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고요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주체성(empowerment)은 투명한 도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기술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며, 때로는 그 한계와 씨름하는 행위 자체가 곧 주체성의 표현입니다. 완전한 비가시성을 거부하고 도구와 의식적인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비로소 무력한 소비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창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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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술과의 동행 - 장벽을 넘어 관계로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가전제품이 터치스크린으로 바뀌면서, 시각장애인에게 집은 또 다른 장벽이 되었습니다. 버튼은 사라졌고, 화면에선 아무런 음성 피드백도 없었습니다. 세탁기는 ‘시작’ 버튼조차 찾을 수 없었고, 인덕션은 가열 중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언론에 기고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으며 홀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러던 1년 전, 아이 출산을 앞두고 LG전자 서비스센터에 접근성 문의 전화를 한 일이 뜻밖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며칠 뒤, 서비스 기사뿐 아니라 본사 연구원 두 명이 함께 집을 찾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시각장애인용 점자·촉각 스티커를 직접 개발한 연구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광파오븐 등 집 안 가전 하나하나에 스티커를 붙이고, 스마트홈 앱으로 조작이 가능한지까지 함께 확인했습니다. 작동법은 차근차근 설명했고, 점자 스티커는 손에 익을 때까지 조정해 주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방문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LG전자가 준비해온 변화의 일부였습니다. 몇 달 뒤, LG전자는 업계 최초로 장애인 사용자 커뮤니티 ‘볼드무브’를 공식 발족했습니다. 제가 겪은 경험은 우연이 아니라, 사용자와 기술의 관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계획의 연장선에 있었습니다.
수년 전 외롭게 마주해야 했던 장벽은 이제, 사용자와 함께 해결 방식을 찾아가는 동행의 여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품의 완성은 결국 서비스이며, 기술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가장 소외된 사용자의 삶에 도달할 때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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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무의와 함께 진행중인 LG전자 ‘볼드무브’ 커뮤니티 | ⓒ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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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며 - 두 세계의 교차점에서, 다시
지난해 연말 선물로 점자 달력을 받았습니다. 카카오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기업이 만든 아날로그 달력이라는 점이 흥미로웠지만, 처음에는 그저 책상 한편에 놓인 의례적인 물건일 뿐이었습니다. 스마트폰 앱으로 모든 일정을 확인하고 음성으로 관리하는 시대에, 굳이 손으로 넘겨 날짜를 더듬는 일은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달력을 위해 책상 위 자리를 내어주는 작은 행위는 저와 달력 사이에 미묘한 관계를 만들어냈습니다. 손끝으로 날짜의 양각을 느끼고, 중요한 날에 촉각 스티커를 붙이는 느린 과정은 디지털의 효율성 속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사색의 틈을 열어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스케줄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닌, 시간을 직접 만지고 기억하는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이 느리고 깊이 있는 경험은, 기술이 반드시 보이지 않아야만 우리 삶에 스며드는 것은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때로는 기술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것과 능동적으로 관계 맺는 과정 자체가 우리를 더 완전하게 만듭니다. 스크린리더의 목소리를 조율하며 디지털 세계를 항해하듯, 점자 달력의 질감을 느끼며 아날로그 시간을 사유하는 경험은 모두 기술과 내가 함께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기술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술을 주체적으로 활용할 때 비로소 진정한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기술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저는 그 안에서 더 잘 보이게 되었습니다. 웹이 처음 그랬듯, 모든 기술은 우리를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그리고 조용히 삶 속에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기술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율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과 함께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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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헌용
서울 신명중학교 교사
신명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장애인 교사의 권리와 디지털 접근성에 대해 꾸준히 발언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교육과 기술, 장애의 교차점에서 사회적 변화를 모색합니다.
『교사』(공저, 2018), 『로스트 보이스 가이』(공역, 2022), 『별별교사들』(공저, 2023) 등 교육과 장애를 주제로 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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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사람 사이에서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가고 있는, 김헌용 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기술은 점점 일상에 스며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많아지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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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교사가 AI 서비스를 7개 구독하는 이유 아티클
정보에 평등하게 접근하고, 평등하게 사회 참여할 권리를 뜻하는 접근성에 대한 인터뷰 기사입니다. 가까운 사례로는, 표와 도식으로 구성된 한국의 공문서 작성 방법이 정보 접근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이 정보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김헌용 선생님의 의견을 주의깊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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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가 만든 점자 달력 - 접근 가능한 아날로그 달력의 의미
아티클
IT기업으로 디지털 플랫폼의 최전선에 있는 카카오가 점자 달력을 만든 스토리를 살펴볼 수 있는 글입니다. 왜 아날로그의 상징과도 같은 '종이 달력'을 그것도 점자로 만들었는지, 카카오의 접근성 개선을 위한 활동은 무엇이 있는지도 함께 알 수 있어요. 그저 '종이 달력 하나 받았을 뿐'이었던 생각에서 느림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 이야기를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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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이블토크 독자 의견함
여러분의 의견은 더 나은 콘텐츠를 고민하는 에디터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 쓰레기 잡는 어부 글을 두 번씩 읽었어요. 날씨가 더워지니 쉽게 일회용 플라스틱에 든 커피를 쉽게 주문하곤 했는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될 거 같습니다.
💬 뉴스레터를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정말 그 어떤 후기보다 감사한 말씀입니다! 저도 쓰레기가 햇빛과 바람, 파도에 의해 미세화되는 걸 새롭게 알게 된 레터였어요. 정말 편하지만 죄책감이 큰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봐야겠죠? 앞으로도 흥미롭고 다양한 주제로 불쑥 찾아갈게요!💞 (by. 에디터 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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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테이블토크는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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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Talk | 사회혁신가 인터뷰와 사회혁신 모델/사례를 소개하는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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