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캠퍼와 마케터 모래가 ‘전쟁없는세상’에 다녀왔습니다. 오월의봄에서 최근 출간한 동명의 책 《전쟁 없는 세상》의 번역자 최정민 선생님과 《병역거부의 질문들》의 저자 이용석 선생님을 뵙기 위해서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비폭력 저항’이라는 것이 좀체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아마 공감하시는 독자분들도 많이 계실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후두부 어딘가에 불빛이 활짝 켜지는 느낌이 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물론 이러한 저항이 필요한 상황 자체는 재미있다고 할 수 없지만, 어딘가 재기 넘치고 기발한 저항행동의 사례들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핵심을 알고 나니 무척 가슴이 뛰었습니다. PDF 파일로 보실 수 있도록 링크를 걸어두었고요, 본문에 일부를 첨부했습니다. 
어제인 2월 24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면전이 발발한 지 만 3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여전히 가자지구에서는 집단학살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왜 세상은 오직 폭력과 순종만 있는 것처럼 굴까요? 이토록 폭력적인 곳에서 우리는 어떤 상상을 시작해야 할까요?

《전쟁 없는 세상》 이야기

(with.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최정민&이용석)

👉《전쟁 없는 세상》 역자 최정민 & 《병역거부의 질문들》 저자 이용석

👉 편집자 캠퍼 & 마케터 모래


인터뷰이 소개

최정민(이하 오리): 저는 최정민입니다. 중성적인 이름이라 좋아하긴 하지만 별명을 사용하는 전쟁없는세상 문화에서 오리라고 더 자주 불립니다. 전쟁없는세상에서 작년부터 주로 군사주의와 기후 관련한 캠페인을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 전에는 한 10년간 비폭력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로 일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한국사회에서 사회운동을 효과적으로 하는 동시에 운동을 수행하는 우리도 어떻게 하면 덜 피곤하고 행복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자료를 생산하고 트레이닝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1년 반 정도 잠깐 유학을 다녀와서 이제는 사라진 평화인권연대라는 단체에서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했는데요. 그곳에서는 주로 병역거부운동과 기지촌 문제 두 가지를 가지고 활동했습니다.


이용석(이하 용석):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고 오월의봄에서 《병역거부의 질문들》을 쓴 이용석입니다. 오월의봄에서 출간한 《저항하는 평화》에서는 서경식 선생님과 대담했는데, 오리가 하승우 선생님과 비폭력에 대해서 대담한 그 책이에요. 저는 전쟁없는세상이 처음 만들어질 때 대학을 졸업하면서 바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병역거부운동을 비롯해서 다양한 평화 운동을 해오다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출판사에 다녔고, 다시 전쟁없는세상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에는 계속 병역거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쟁거부자 조직 프로그램’으로 이름을 바꿨는데요. 병역거부라고 하면 좁은 의미로 입영 영장을 받는 젊은 비장애인 남성들에게 포커싱이 맞춰지기 때문에 전쟁없는세상에서는 예전부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전쟁을 거부할 수 있는 다양한 직접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목차〉
자기소개 전쟁없는세상 단체 소개 《전쟁 없는 세상》의 출간 과정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에 대하여 《전쟁 없는 세상》 속 추천하는 내용
비폭력 시민 저항으로서의 병역거부 최근 한국의 시위(동덕여대)
여성평화운동 우크라이나 전쟁 상상하는 독자

(아래는 인터뷰 하이라이트 발췌입니다.🙌)


전쟁없는세상은 어떤 단체인가요?

캠퍼: 두 분 말씀하시면서 대략 소개가 된 것 같기도 한데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단체를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단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오리: 전쟁없는세상은 2003년에 설립되었고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진 반전운동 단체예요. 보통 반전운동이라고 하면 2003년 이라크 전쟁 반전운동 때처럼 많은 인파가 모인 반전시위를 떠올리실 텐데요. 저희가 전쟁없는세상을 만들었을 때 생각은 조금 달랐어요. 그러니까,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평화 시기에 애초에 전쟁을 준비하지 말아야 된다는 게 더 핵심이에요. 왜냐하면 전쟁이라는 건 평화 시기의 어떤 군사주의적인 제도나 관습, 문화 같은 것들이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위 평화 시기라고 하는 그 시기에 군사주의의 싹을 잘라야 된다는 거죠. 전쟁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면 전쟁 없는 세상이 되지 않겠냐,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 문제 제기에서 저희가 주목했던 첫 번째가 군대였어요.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이 저희에게는 1순위 활동이었는데, 2000년부터 한 10년 정도 얘네(용석을 가리키며) 같은 활동가들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가서 단체가 굉장히 부실하고 불안했거든요. 활동가들이 감옥에 왔다 갔다 하고, 감옥에 가면 징징거리고, 우리가 워워 해주고 이래야 되는.


캠퍼: 그게 되게 힘든 일이었을 것 같아요.


오리: 그런 시기였기 때문에 단체가 안정적이지 못해서 병역거부자 지원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많이 못했어요. 단체가 어느 정도 규모와 안정을 갖춘 후에는 군대, 징병 제도 말고도 전쟁을 야기하는 사회의 다양한 기둥 중 다른 것에도 문제를 제기해보자고 했죠. 기존에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군대 문제를 병역 거부를 통해서 제기하다 보니까 여러 한계가 있었어요. 병역을 거부해서 감옥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국가로부터 주어진 사람들이거든요. 그들이 받는 스포트라이트, 거기에서 발생하는 남녀 간의 위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또 있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운동은 조금 더 다양한 행위자들이 주목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저희가 국제회의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에 갔다가 무기 거래 반대운동 캠페인들을 접하게 됐어요. 회의의 한 세션으로 진행됐는데, 그걸 보고 한국에 와서 ‘우리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 무기 거래 감시 캠페인이에요. 지금은 그게 발전돼서 특히 무기박람회가 열릴 때 저항하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사회의 관습이나 군대라는 폭력 기구 같은 것들이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에 ‘이것들을 일상에서 문제 제기하고 똑바로 세워놓는 운동을 해야 되겠다’ ‘이게 바로 진정한 의미의(웃음) 반전운동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군대에서 시작해 무기 거래까지 이어져온 반전운동 활동을 하는 단체가 전쟁없는세상입니다.

 

하이라이트❶: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 

캠퍼: 평화주의랑 비폭력 시민 저항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레터만 읽으시는 분들도 이해하실 수 있도록 이 책과 관련 지어서 설명해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오리: 비폭력이라는 말이 한국 사람들한테는 오해되기가 쉬운 것 같아요. 제 생각엔 비폭력이라는 말 자체가 폭력이 있어야 그에 대응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거든요. 비폭력 자체가 어떤 완성된 하나의 무엇이라기보다는, 애초에 폭력이 있으니까 그게 아닌 것으로서 나오는 거예요. 한국사회에도 물론 전쟁을 겪으신 분들이 아직 생존해 계시긴 하지만 어느 정도 역사적 얘기이기도 하고, 사회운동에서 폭력적 수단으로 원하는 걸 이루려고 했던 건 독립운동 외에는 크게 없어요. 물론 제가 해제에 쓴 것처럼 80년대 광주의 시민군 같은 경우가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사회운동 자체가 애초에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비폭력에 관해 ‘그게 뭔데?’ 하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폭력이 있었다면 그게 아닌 걸 상상하기가 쉬웠을 텐데 한국은 그렇지 않으니 쉽지 않은 거죠. 전쟁없는세상도 처음 비폭력 프로그램을 시작했을 때 ‘그러면 너네는 우리가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경찰한테 욕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오해를 많이 샀어요. 이런 이유들로 비폭력에 관련한 책을 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비폭력은 쉽게 말하자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예요. 폭력을 쓰냐 안 쓰냐, 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창의적이고, 어떻게 보면 기발하고, 어떻게 보면 진짜 또라이 같은 그런 다양한 방법들을 어떻게 동원할지에 관한 것이거든요. 이 책에서는 심지어 그걸 전쟁 시기라는 굉장히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고요.


용석: 이 책에서 잠깐 언급되지만 비폭력의 예를 들자면 ‘프라하의 봄’ 같은 때, (물론 너무 옛날이니 그런 게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당시에 체코 시민들은 러시아의 탱크나 군대에 맞서서 거리의 표지판을 다 바꿨어요. 이리로 가야 되는데 저리로 가게 만드는 식으로 저항하는 거죠. 그런 방법으로 소련군에 체코가 함락당하는 걸 늦춘다든가, 아니면은 함락당했더라도 빨리 나갈 수 있게 한다든가. 이게 어떻게 보면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저희처럼 폭력이라는 걸 애초에 상정하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나 창의적이고 얼마나 기존의 우리의 사고 박스 바깥에서 생각할 수 있느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런 지점에서 책을 읽으시면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도 때리면 안 돼, 싸우면 안 돼,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쪽 뺨도 내줘라, 이런 게 아니고. 쉽게 얘기하자면, ‘상대가 무력으로 내 걸 뺏으려고 할 때 나도 같이 때려서 안 뺏기는 거 말고 다른 기발한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보시면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에 조금 더 재미있게 다가가실 수 있을 거예요.


캠퍼: 저는 이 책이 되게 재밌다, 라고 느꼈던 게 비폭력 시민 저항이 예술적이라는 느낌을 받아서인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굉장히 재기 넘친다고 해야 될까요? 그러니까 저 사람이 무기를 들었을 때 나도 무기를 들고 맞서는, 기존의 어떤 1 대 1의 수단이 분명히 있잖아요. 누구나 쉽게 정답으로 떠올리는 방법. 그거 말고 다른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고민한다는 게 사실 되게 창의적인 작업이잖아요. 기존에 전혀 없던 걸 생각해야 하니까. 저는 이게 예술과 많이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면도 재미있었거든요. ‘아, 그래서 예술과 저항이 맞닿아 있는 건가?’라는 생각도 좀 들었고요.


오리: 영국에서도 DSEI라고 한국의 DX KOREA처럼 큰 무기 박람회가 있어요. 이 시기가 되면 전 세계 바이어와 셀러들이 죄다 모여드는데, 몇 년 전 거기서 굉장히 창의적인 저항이 있었어요. 활동가가 단순 행인인 척하면서 무기 셀러처럼 보이는 사람한테 “영국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어디 가려고 하시냐” 물어보고 박람회에 가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엉뚱한 버스를 가리키면서 “저걸 타시면 된다” 하는 거죠. 그렇게 북쪽 어딘가로 보내버리는 그런 액션이 있었거든요. 물론 이게 무기 박람회 자체를 막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창의적인 액션으로 저항하는 거죠.


캠퍼: 골탕 먹이는 느낌이네요. 진짜 재밌네요.


용석: 오리가 비폭력의 창의적인 측면에 대해서 말을 해줬는데 또 다른 측면에서 말을 얹자면, 예전에 집회 다닐 때 무조건 사수대를 꾸려서 경찰과 투석전을 하든 막 몸싸움을 하든 싸우고 그랬는데 저는 그런 데 나가는 게 늘 무서웠거든요. 내가 힘으로 이길 수 없고, 맞기도, 때리기도 싫었어요. 또 그런 방식의 싸움에서는 그런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저항이 계획되고 진행되고요. 저는 비폭력 시민 저항을 병역거부를 통해서 만났는데, (물론 병역거부도 당시에는 감옥에도 가야 되고 했지만) 힘없는 사람도 할 수 있으면서 폭력이 아닌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는 면에서 훨씬 더 참여의 폭이 넓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면에서 훨씬 더 민주적인 방식이기도 하고요. 효과적이기도 하지만 민주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저항운동의 주체, 주인이 될 수 있는 방식이었다는 점이 저한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만의 방법으로 저항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비폭력 시민 저항의 큰 매력이에요.


하이라이트❷: 최근 한국의 시위

캠퍼: 2024년 동덕여대 공학반대 시위,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의 총구를 잡았던 안귀령 더불어민주당 대변인 등 이러한 저항이 폭력이다, 또는 잘못된 방식이다, 하는 얘기들도 있었어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오리: 제 기억으로는 한국에서 비폭력 관련한 논의가 이뤄진 게 2008년 촛불시위 때예요. 그전에는 얼마나 얘기가 됐는지 잘 모르겠네요. 근데 저는 그때도 논의가 잘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그때의 비폭력은 ‘질서를 잘 지키는 것’, ‘스티커를 전경 버스에 붙였다가도 시위가 끝나면 깨끗하게 떼주고 가는 것’, 이런 식으로만 논의가 됐거든요. 하지만 책을 보면 아시겠지만 비폭력은 전략과 전술에 관한 문제이고,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우리가 이길 것인가 하는 전략을 짜는 문제예요. 대규모 집회 같은 경우는 유아차까지 끌고 와서 모두가 다 참여하기를 권장하는 집회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폭력이란 말이죠. 근데 거기서 누군가가 경찰의 행동에 욱해서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걸 두고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논의하는 건 소모적이에요. 오히려 비폭력의 이미지를 ‘질서를 잘 지키고 법을 어기지 않는 것’으로 고착화시켜서 굉장히 수동적인 형태로 바라보게 하는 위험도 있고, 무엇보다 사회운동을 장기적인 전략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위험성도 있고요.

2008년 논의에서 이게 바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폭력 저항이다, 비폭력 저항이다’, 라는 소모적인 논쟁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비폭력운동을 하는 저희 입장에서는 비폭력에 관한 논의가 아주 잘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고요. 비폭력 활동을 하는 저희는 뭘 때려 부수든 어디다 불을 지르든 생명을 파괴하고 고통을 유발하는 게 아니면 비폭력이라고 보는 입장이거든요.


용석: 말 잘해야 돼(웃음). 서부지법 건물 때려부숴도 사람 안 죽였으니 괜찮은 것 같잖아.


오리: 비폭력은 비폭력이죠. 근데 그건 사회운동적 가치가 없는 거고요. 비폭력 저항운동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비폭력 행동이라는 것 자체는 행동이 비폭력이냐 아니냐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운동에서만 전유할 수 있는 말은 아니기는 해요. 그래서 그걸 배워서 극우라고 해야 될지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어떤 행위를 두고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하는 논쟁은 소모적이에요.


캠퍼: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씀인가요?


용석: 얌전하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좋은 거고, 거칠게 해서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 거친 방식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비폭력의 대원칙, 그러니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면. 실제로 굉장히 유명한 비폭력 저항행동 중에 전투기를 때려 부수거나 하는 그런 방식들도 있거든요. 망치로 두들겨 부수는 것도 얼마든지 비폭력 저항일 수 있고,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트럭에 불 지르는 것도 가능하죠.


오리: 근데 과격해야만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목표한 바가 뭐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토론이 이뤄져야 해요. 그게 없이 단지 옛날 향수에 젖어서 ‘어떻게 피 없이 혁명이 가능하냐’ 이러는 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캠퍼: 근데 동덕여대 시위 같은 경우에도 학교 측 인터뷰를 보면 저항하는 학생들이 폭력을 행사했다, 아니다를 가지고 프레임을 짜서 이런 방식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고 가잖아요. 이럴 때 맞서기가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프레임이 이렇게 되면 그건 폭력이 아니다, 라는 걸 설명해야 되고, 학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또 싸워야 되고··· 이런 식의 불필요한 싸움으로 전개되는 것 같아서요.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세요?


오리: 지금 동덕여대 상황은 좀 어렵기는 한 것 같아요. 저는 처음부터 동덕여대 학생분들이 여성운동 진영이랑 같이 전략을 짰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기는 하거든요. 그 시기가 지났으니 하나 마나 한 얘기이기는 한데······.


용석: 책에 나오는 것처럼 비폭력 저항이 무조건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굉장히 준비와 훈련도 많이 해야 돼요.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일부라도 폭력을 행사하면 전체가 다 무너지기도 하니까 굉장히 어려워요. 비폭력 저항은 분명 효과적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방식은 아니에요. 오리도 말했지만 저도 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이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근데 그 방식이 효과적이었느냐에 대해서는 얘기해볼 수 있겠죠. 어떤 방식이 학교의 폭력성을 더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폭로하는 데 효과적이었을지, 그래서 사회적으로 학생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게 하는 데 효과적이었을지. 이런 부분에서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좀 더 고민을 많이 하고 우리도 연대했다면 좋았겠다는 뒤늦은 아쉬움은 있죠.

이게 병역거부자들 재판이나 대체복무 심사에서도 나오는데, 어떤 행동이 어느 사회에서는 폭력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 혹은 한 사회 안에서도 한국에서도 어떤 행동이 예전에는 폭력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폭력으로 인식되기도 하거든요. 폭력은 맥락적으로 분석하고, 인식되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행위 하나만 딱 잘라서 이게 폭력인지 아닌지 얘기하는 건 어려워요. 그런 프레임에서 비폭력운동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여요. 우리는 상대방의 폭력을 어떻게 부각시킬지, 어떻게 더 사회적으로 폭로하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그런 방식을 고민하니까요. 동덕여대 시위도 그 측면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그걸 폭력이라고 말하는 건 결코 동의할 수 없어요.


오리: 우리가 너무 듣보잡 단체이긴 하지만 폭력시위라는 프레임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이 매도당할 때 ‘동덕여대 시위는 폭력이 아니다’라는 목소리를 내려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어요. 일본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폭력 시위라고 얘기를 했거든요. 실제 독립운동 참여자 중 일부가 폭력을 행사했지만, 그 운동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제국주의 폭력에 맞선 거죠. 다만 워낙 대규모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이 있을 수 있는 거고요. 우리가 비폭력 저항이라고 말할 때는 어떤 운동이 어떤 방식을 핵심에 두고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는지가 중요한 거예요.


용석: 근데 동덕여대는 100퍼센트 비폭력이지.


오리: 동덕여대 시위가 폭력이면 한국에서 있었던 모든 민주화운동은 다 심각한 폭력이에요.


하이라이트❸: 여성평화운동

캠퍼: 최정민 선생님은 여성평화운동을 하기도 하셨잖아요. 아무래도 한국의 군사주의가 징집제하고 긴밀하게 엮여 있다보니 군사주의를 남성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공고하기도 한 것 같은데요. 여성평화운동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궁금해요.


오리: 여성평화운동 하면 대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도 그렇고 한국군 위안부도 그렇고) 위안부 문제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군 가산점 제도도 있고. 또 최근에는 여성 징병제 논쟁도 있었고요. 2003년에 이라크 전쟁 반전운동이 있었을 때는 전쟁에서 여성들이 겪는 피해를 드러내고자 하는 운동들이 있었어요.

권인숙 선생님이 한창 학자로 활동하실 때, 《대한민국은 군대다》처럼 군사주의가 어떤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그게 여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한창 그런 논의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쭉 여성평화운동이 이어져왔던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같은 단체들이 여성평화운동을 쭉 해왔어요. 평화운동 진영에 남성평화운동은 없는데 여성평화운동은 있다는 점. 전쟁으로 인해서 누가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 그다음에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고통받았던 누군가가 어떤 식으로 배제되는지에 관한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평화운동이라는 평화운동의 조류가 있는 것 같아요.

여성평화운동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면, 사실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은 그 카테고리 안에 있는 활동은 아닐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전쟁없는세상의 활동을 그래도 여성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 활동을 하거든요. 병역거부운동을 (용석을 가리키며) 얘 같은 남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걸 지원하는 운동으로 좁게 볼 수도 있지만, 또 얘 같은 남자들이 군대에 가지 않고, 군대의 상명하복적인 문화를 체화하지 않으면 함께 살아가기에 ‘덜 한남’이 되기 때문에 저한테는 좋거든요. 좀 뻔한 얘기일 수도 있지만 전쟁없는세상의 운동도 저는 여성평화운동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용석: 사실 한국의 평화운동가들이 대부분 여성 활동가예요. 지금 한국 평화운동에 남성 활동가를 공급하는 단체는 조금 과장하면 전쟁없는세상밖에 없어요(병역거부운동의 영향). 여성평화운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여성이 하는 평화운동이라고 한다면 그냥 평화운동 자체가 여성평화운동이에요. 주요 활동가들 중에 남성이 극히 드물어요.


오리: 평화운동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운동 대부분에서 대표들 말고, 실제 지금 뼈대를 이루고 있는, 척추가 되는 활동가들은 대부분 여성 활동가가 많아요. 평화운동은 특히 더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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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코미디 기술

출간 전 연재 7화: 팟캐스트 하자고 해라

📩 금개 지음


대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사회인’ 구실을 해보려고 애쓰던 시기에 퀴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사실을 발견했는데, 퀴어들의 9할은 예술을 하고 있다는 거다. 한국식 입시 트랙에서 문과-인문대 모범생 코스를 밟아온 내가 이렇게 예술이 가득한 세계관에 놓이는 건 갑작스러웠다. 예술의 기운 때문인지 내 주변에는 말 그대로 ‘이상한’ 퀴어들이 많았다. 나머지 조건은 다 그럭저럭 괜찮은데 성 정체성만 ‘이쪽’이라서 ‘Love is Love’만 하면 되는 성소수자말고 그냥…… 소수자. 그들은 대체로 약간은 문란하고 번잡한, ‘이쪽’ 사회조차 받아들이기 버거워하는 사랑이라든지 ‘작업’이란 걸 하고 있었다. 그냥 ‘이상한 사람들이네’ 하면서 취업준비센터로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소수자들의 동네는 저 반대편인데 이상하게 거기에 내 자리가 있으면 했다.

자꾸 마음이 가는 그 동네를 떠올릴 때면 드랙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틀었다. 루폴의 드래그* 레이스는 ‘미국의 차세대 드랙 슈퍼스타’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16년째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 쇼다. 호스트인 루폴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퀴어 중 한 사람으로, 홍상수 감독과 동갑이다. 그는 미 전역에서 불러 모은 퀸들에게 가지각색의 미션을 주고는 보톡스를 맞아 잘 안 움직이는 얼굴 근육을 요령 있게 사용해 깔깔 웃는다. 드랙퀸들은 루폴의 명령에 따라 패션쇼, 립싱크, 코미디쇼, 뮤지컬, 하여튼 별의별 걸 다 한다. 화면 속에서 형형색색의 퀸들이 법석을 떨 때가 하루 중 유일하게 안정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드랙퀸들의 무대를 구경하다가 벅차오를 때만 겨우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땐 드랙이라는 장르에 왜 그렇게까지 열광했을까? 일단 열광이라는 걸 할 체력이 있었다. 그리고 과해서 좋았다. 퀸들은 원래 얼굴을 싹 지우고 새로 그리는 수준으로 두꺼운 화장을 한다. 가발 위에 가발을 써서 머리칼을 사자 갈기만큼 부풀리고, ‘저걸 언제 또 입으려나……’ 싶은 난해한 옷을 입는다. 어디까지가 ‘적당함’일지 평생에 걸친 눈치게임을 하던 한국 여성의 ‘꾸안꾸’, ‘내추럴 메이크업’, ‘클린걸 에스테틱’과는 정반대의 기세다. 드랙퀸들은 내 적당함의 범위를 넓혀놨다. 퀴어함이란 이런 거구나 싶어 해방감이 들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그게 벽장인 줄도 모르고 벽장 안에 살던 시간이 길어서 더 그랬다. 드랙퀸들은 내가 벽장 안에 있던 시간뿐만 아니라 다음, 그 다음 시간까지 이미 통과해 저 멀리 가 있는 것 같았다. 정체성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래 가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를 지나야 했을 테니까. 그들이 성소수자라서 겪는 혼란은 과거의 유물에 불과해 보였고, 새롭게 선택한 정체성이 지금 얼마나 아름답고 탁월해 보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았다.

나는 퀸들의 화려한 외모, 언변, 재능, 자신감 모든 게 좋았지만 그들의 뻔뻔함이 가장 좋았다. 실리콘 보형물을 가슴에 넣고, 메이크업에 두세 시간을 쓰고는 “신이 주신 완벽한 내 몸매, 내 얼굴. 넌 못 따라와”라며 능청을 떠는 게 맘에 들었다. 어떤 여자들은 ‘가짜 주제에 진짜를 따라 해서’ 드랙퀸은 ‘존재 자체가 여성혐오’라고 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기세로 무대를 누비는 퀸들에 감탄할 때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퀸인지 킹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가짜는 엄청나게 진짜구나, 드랙 아티스트들의 무대에 매료된 채로 생각했다. 지금은 K-pop 뮤직비디오와 구독자가 100만이 넘는 유튜브 채널에도 종종 드랙 아티스트들이 등장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훨씬 생소한 문화였다. 드랙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내가 직접 모임을 열거나 똑똑한 사람들이 개최한 세미나에 참여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게 왜 좋은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걸로 뭘 하고 싶은지, 나는 뭘 하는 사람인지, 그런 고민보다 몸이 먼저 튀어나갔다. 그렇게 찾아간 모임에서 지금까지도 너무나 사랑하고 질투하는 예술인을 만났다.

아장맨은 예뻤다. 처음 만났을 때 걔는 깔끔한 숏컷을 하고 있었다. 레즈비언 사이엔 ‘숏컷 펨이 진짜 펨이다’라는 격언이 있는데, 머리 길이에 상관없이 여성성을 뽐내는 여자가 진짜배기라는 식의 농담이다. 아장맨은 그 말에 걸맞는 ‘진짜’ 펨이었다. 내가 평생 들어갈 일 없는 쇼핑몰에서 샀을 법한 세련된 옷과 액세서리를 걸치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스무 살 이후 긴 패션 정체기를 지나며 스스로의 스타일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어떻게 보이는지 너무 신경이 쓰였지만, 거기에 너무 신경쓰는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진짜 여자애들의 세계는 따로 있었다. 나는 그 주변에 서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흉내는 낼 수 있었지만 묘하게 붕 떠 있었다. 드랙을 알고 난 직후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꾸며야 할 때면 보라색으로 입술을 칠하고 얼굴 가득 반짝이를 바르고 망사 스타킹을 배까지 올려 입었다. 내가 수행하는 사회적 여성성은 ‘진짜’ 여자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그게 창피했다.

한편 아장맨은 진짜 레즈비언 같기도 했다. 그가 동행인을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멋져 보였다. 나는 아직 가짜라서 주눅이 들었다. 여태 남자를 만나왔고 여자랑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연애라고 하기 어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즈비언도 잘하고 펨도 잘하던 아장맨은 반대편 어딘가의 젠더로 훌쩍 넘어가는 일도 잘했다. 아장맨의 드랙킹 퍼포먼스는 탁월했다. 나와 비슷하게 넷플릭스 쇼 따위를 보고서 어중간하게 흉내내는 아마추어들과는 달랐다. 그가 준비해오는 공연 곡들은 대개 처음 들어보는 노래였다. 노래방과 멜론 차트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올라가지 않을 예술 느낌의 노래들. 노래를 틀고 퍼포먼스가 시작되면 아장맨은 긴장감을 쌓아올리다가 기막힌 타이밍에 터뜨릴 줄 알았다. 바닥에 무릎을 갈아가며 광기를 발산하는 모습은 너무 처음 보는 것이라서 충격이었다.

아장맨은 내가 열광하던 드랙퀸들과 닮은 게 많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을 깨달은 그는 스스로를 재료로 이미 여러 실험을 해본 상태였다. 아주 자연스럽고 적당해 보였던 아장맨도 본인이 가짜라고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웠다. 본인도 여자처럼 보이기 위해 일상에서도 드랙을 하고, 무대에서는 드랙킹을 통해 실험의 범위를 넓힌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 벌거벗은 채로 태어났고 나머지는 다 드랙”이라는 루폴의 말이 생각났다. 드랙을 무대 안팎에서 실천중인 아장맨과 친해지고 싶어서 나는 드랙에서 배운 기술을 조금 써먹어봤다. 뻔뻔하고 능청스럽게 연기했다는 뜻이다. 내 모습이 창피하지 않은, 가짜인 걸 들킬까 불안하지 않은 사람처럼. 성공적인 위장이었는지, 위태로운 연기력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아장맨은 본인의 반려견이 떠오른다며 나를 좋아했다.

아장맨은 유성애 생활 면에서도 경력직이었다. 이쪽 세계에서 취향인 여자를 찾는 법, 여자를 만나는 법, 만나서 연애하는 법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신참인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길 좋아했다. 그 덕분에 나는 게임에서 순간이동 아이템을 먹은 것처럼 빠른 속도로 이쪽 세계에 편입됐다.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고 우는소리를 하면 아장맨은 조용히 이쪽 어플에 구인 글을 올렸다. [번개] 홍대 오늘 만나실 분 : 2n, 보통 체형, 단발 고양이상 한글자 애인 구해요. 1시간 후에 나는 아장맨의 파우치를 빌려 컨실러를 바르고 인조 속눈썹을 붙이고 고양이처럼 아이라인을 길게 빼고 있었다. 2시간 후에는 이쪽 술집에 앉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고 3시간 후엔 술에 왕창 취해 거울 앞에서 휘청대며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나는 혼자서나 애인과 있을 때보다 아장맨과 함께할 때 더 진하게 화장하고, 더 큰 귀걸이를 하고, 더 야한 옷을 입었다. 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고, 더 큰 소리로 웃고, 더 이상한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서로를 부추기며 수많은 술자리와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했다. 그렇게 같이 놀면서도 ‘작업’에 있어서 아장맨은 나에 비해 훨씬 선명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아장맨의 드랙에 대한 애정은 퀴어 문화에 한 획을 그은 여러 공연의 시초가 되었다. 2022년 대극장에 올라간 드랙x남장신사의 초창기 버전 드랙킹콘테스트도 우리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장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하 클럽에서 처음 열린 드랙킹콘테스트에 나는 ‘기획’이라는 뭉툭한 역할로 참여했다. 기획이라는 역할 자체가 뭉툭하다는 게 아니라 당시에 내가 기획에 대해 별 고민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저 멋진 친구들이 벌인 일에 함께한다는 감각이 즐거워서 이런저런 일에 참여했다. 연습 피드백도 하고 무대 사회 대본도 쓰고 소품도 준비했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진짜 예술인들 사이에서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은은하게 괴로웠다. 이런 일들, 홍대 연습실과 지하 클럽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안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재능으로 ‘작업’을 한대도 돈을 벌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꼬박꼬박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회사 면접에 갔다. 붙었는데 기쁘지 않았다. 이상하고 멋진 애들의 세계에서 이대로 멀어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장맨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물었다.

“팟캐스트 할래?”**

말해놓고도 내가 뭘 시작하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아장맨과 계속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번 주(2025년 2월 마지막 주)는 아장맨과 내가 진행중인 코미디 팟캐스트 생방송 여자가 좋다의 3주년 기념 주간이다. 우리 방송은 이제 누적 재생수 300만회를 훌쩍 넘겼다. 친구와 떠든 것을 녹음해 올린 것 치곤 가성비가 괜찮은 결과물이다. 친구 잘 만나서 저절로 코미디가 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다들 힘내봐라.

솔직히 힘내도 별수 없다. 친구 만나기, 우정 쌓기 같은 건 복을 타고나거나 운이 좋아야 겨우 가능한 일 같다. 나는 아주 많은 사람에게 심하게 매력을 느끼지만, 동시에 내가 그들에게도 매력적일지는 자신 없다. 어쩌다 드랙에 성공해 그 사람을 매혹하더라도 서로 좋은 시간은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금방 끝나는 거라고 느껴진다. 마법이 풀리더라도 걔가 나를 필요로 할 이유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 자꾸 뭘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협업을 핑계로 공동의 책임을 만들면 복, 운, 매력이 미약할 때에도 관계의 동력이 생길 테니까. 나에게 팟캐스트는 관계 맺기, 대화하기, 농담 따먹기가 고스란히 콘텐츠가 되는 최소 단위의 협업이다. 아장맨은 팟캐스트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서도 내가 녹음을 하자고 하면 나와 대화할 일정을 검토한다.

우린 팟캐스트를 하면서 서로를 ‘오피스 와이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각자의 사적인 연애가 어떻게 되어가든 우리 관계에는 그런 이름표가 붙어 있다는 게 만족스럽다. 서로를 손절하려면 본인의 작업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맘에 든다. 공과 사를 나눠야 한다거나 동료와 친구를 구분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아장맨의 의견과는 다르겠지만, 난 이왕 얽힐 거 지저분하게 얽히고 싶다.

나는 지금도 탁월하고 매력적인 사람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아장맨에게 했던 것처럼 군다. 그러니까 여기에 쓴 이야기가 아장맨과 나 사이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여러분도 조심하시라. 내가 언젠가 협업 제안을 발사할 수 있다.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태도 때문에 이쪽 만남 어플의 대화창에서 평생 서로 ‘안녕하세요’만 반복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함께하면 좋을 작은 프로젝트를 정중히 제안해보시라. 밥 지어 먹기, 뜨개질하기, 인스타그램 ‘공동 북마크’ 기능으로 릴스 모으기, 게임하기, 갑작스런 역할극, 브이로그 찍기…… 물론 거절당할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이 글의 링크를 메시지로 보내며 ‘우리도 뭐 같이 해보자!’라고 제안하는 것도 좋겠다. 혹시라도 그런 방식으로 새롭게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된다면 yeojaisgood@gmail.com으로 알려달라. 필요하다면 게스트로 출연해드리겠다.


*Drag, 전통적인 성별 구분에서 벗어나 다른 성별의 모습을 연출하는 공연예술. 일반적으로 게이 남성이 ‘여성적’ 모습을 연기하는 ‘드랙퀸’, 여성이 ‘남성적’ 모습을 연기하는 ‘드랙킹’으로 구분한다. 루폴은 '드랙은 단순히 여자 옷을 입는 게 아니라 기성 남성성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한 적 있다.

**아장맨은 이 부분이 사실관계와 다르다며 정정을 요청했다. 그의 코멘트를 그대로 옮긴다: “비련의 주인공 금지. 금개가 바짓가랑이 잡은 거 아니고 우리 둘이서 꼭 뭔가 해야 한다고 술 먹고 난리치다가 눈 맞아서 살림 차린 거임!” 하지만 바짓가랑이를 잡았다는 것은 내 마음속의 진실이니 에세이적 허용이라 치고 넘어가자.

곧 출간됩니다
《특권계급론: 극단적 소수가 독차지한 세상》
클라이브 해밀턴·마이라 해밀턴 지음ㅣ유강은 옮김

극단적 소수의 특권계급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가?
그들의 특권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되는가?
이들의 특권이 강화될수록 왜 불평등은 더 악화되는가?

갈수록 엘리트 특권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부유층과 권력층이 누리는 특권은 불공정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피해를 일으킨다.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일상적인 무시와 모욕에서부터, 엘리트들이 자기들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좋은 일자리를 독차지할 때 발생하는 노동시장의 왜곡에 이르기까지 그 피해는 폭넓게 생겨난다.
이 책에서 두 저자는 엘리트 특권이 단순히 부의 부산물이 아니라 사회 전반을 조직하는 원리임을 보여준다. 엘리트 특권을 유지하고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관행과 과정을 탐구하며, 우리 모두가 이 체제를 촉진하고 그 유해한 효과를 용인하면서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엘리트의 특권과 네트워크, 사립학교가 사회 불평등의 구조와 영속화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관한 매혹적인 연구. 무조건 읽어야 한다.❞
―토마 피케티, 《21세기 자본》 저자
EVENT

비폭력 저항이 만드는/바꾸는 세계

 : 《전쟁 없는 세상: 비폭력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 출간 기념 북토크 행사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폭력, 학살을 멈출 수 있을까?

군사주의, 백래시, 해로운 남성성에 맞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을까?

평화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저항 방식은 무엇일까?

 

전쟁, 계엄, 쿠데타……

갈등을 마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다른 대안을 찾고 싶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패널)

최정민(전쟁없는세상 활동가, 평화운동 2n년차 평화활동가)

: 직접행동 좋아하는 데모핑

은유(작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해방의 밤 저자)

: 아들 군대 보내고 전없세 가입한 전없세 후원회원

(사회)

쭈야(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인권연극제 대표)

: 탱크 위에서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일시   2025 3 21() 저녁 7 30

장소   책방연희 광화문점(서울 종로구 새문안로5 19 1)

참가비   5,000


*입금 계좌번호는 신청폼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자유발언문 쓰기 워크숍(with. 안담 작가)

『친구의 표정』, 『소녀는 따로 자란다』의 저자이자 〈무늬글방〉을 운영하고 계신 안담 작가님과 함께 자유발언문을 쓰고, 합평하고, 낭독하는 글쓰기 워크숍입니다.
오드리 로드의 『나는 당신의 자매입니다』를 각자 읽고 진행합니다.
(***현재 1석 남았습니다!)

워크숍 설명
오드리 로드의 『나는 당신의 자매입니다』에 화답하여 각자의 자유발언문을 쓰고, 합평하고, 낭독하는 워크숍입니다. 7-80년대 미국, 인종적, 성적, 계급적 억압과 맞서는 “전장” 속에서 오드리 로드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여성, 엄마라는 다층적 정체성”을 명료하고도 집요하게 드러냅니다. 그의 글쓰기는, ‘흑인은/레즈비언은/페미니스트는/여성은/엄마들은 이 싸움에서 하는 게 없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리주의적 시각을 불식하는 강력한 전략으로서 고안되었습니다.

이는 25년의 한국, 12.3 계엄 이후 널리 읽히고 있는 글의 형태인 자유발언문을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발언문의 도입부를 장식했던 ‘정체성 나열하기’라는 양식으로부터 오드리 로드의 그것과 비슷한 전략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쓰기/말하기 방식의 정치적 효과와 한계는 무엇일까요? 오드리 로드의 투쟁적 글쓰기가 놓여있던 역사적 맥락과 우리의 맥락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요? “우리는 우리의 차이를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는 로드의 말을 나침반 삼아, 그의 목소리와 우리의 목소리를 포개고 또한 어긋내며 우리만의 자유발언을 찾아보겠습니다. 
 
진행자 소개: 안담
은평구의 개산책자. 주로 글을 쓰고 드물게 공연을 한다. 울어야 할 때는 웃음을 터뜨리고 웃어야 할 때는 울어버리는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느낀다. 〈무늬글방〉을 운영하며 글 쓰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친구의 표정』, 『소녀는 따로 자란다』, 『엄살원』(공저)를 썼다.  

일시ㅣ2025년 3월 11일 화요일 오후 7시~9시
장소ㅣSALT(종로구 사직로 11, 204호)
인원ㅣ7명
참가비ㅣ2만 원
신청 방법ㅣ구글폼 작성 및 입금
입금 계좌ㅣ657401-04-012406 (오월의봄 박재영)
행사 문의 070-7704-5590

📍 본 워크숍은 미리 글을 쓰고 참여자들에게 공유한 뒤, 행사 당일 현장에서 합평 및 낭독하는 행사입니다. 참여자분들께는 기재해주신 휴대전화 번호로 글을 공유할 노션 페이지 주소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참가 신청 후 이틀 이내로 문자 안내가 오지 않을 경우 070-7704-5590으로 문의 바랍니다. 
📍 환불은 행사 일주일 전인 3월 4일 오후 3시까지만 가능하오니 신중한 결정 부탁드립니다.

(*워크숍 기획 비하인드는 3월 레터에서 후기와 함께 짧게 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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