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출판단지는 햇빛을 피할 곳이 없었고 나는 여기 처음 왔을 때부터 혼자 산책할 만한 길을 찾아다녔다. 처음은 양 도로 사이에 난 언덕길이었는데 딱 한 사람만 다닐 수 있었고 오랫동안 밟아 다져져 있는 길고 좁은 길이었다. 양옆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고개를 뒤로 꺾어도 눈이 부시지 않았다. 겨우 계단 대여섯 개 정도 올라온 높이였지만 시원했다. 에어컨이 없으면 조금도 견딜 수 없는 여름, 조금도 예쁘게 봐줄 수 없는 거울 속의 나. 회사 속의 나. 친구들 속의 나. 가족 속의 나. 나. 나. 증발하는 상상으로 길고 좁은 언덕길을 걸었다. 끝에서 끝까지 씩씩대며 걸었다. 인쇄소 앞에는 버려진 종이들. 훨훨 타오를 수도 젖어서 흩어질 수도 없는, 산처럼 쌓인 종이들. 갓길에는 영화 촬영 소품으로 쓰이는 오래된 버스와 소방차에 두꺼운 먼지가 잠들어 있었다. 요란하게 계절을 견디는 건 나밖에 없었다.
서핑을 생각하자마자 모자이크 처리된 사고 장면이 떠올랐다. 어렸던 우리의 아침을 깨운 동네에서, 바다는 어디에서든 우리를 보았다. 컨테이너가 실린 배가 반사하는 햇빛이 아침마다 방에 맴돌았다. 그러나 주위에는 서핑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서핑은 큰 파도를 타는 외국인. 상어에게 피해를 입은 외국인. 영화에 나오는 외국인.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그 시절에도 부산의 많은 사람이 서핑을 즐겼다. 서핑 문화도 형성되어 있었고. 대학 때는 송정해수욕장에 쌓인 서프보드와 강습받는 사람들의 준비운동, 분절되어 있는 동작을 연결해보려는 구령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상어가 나타나 서퍼를 물었다는 뉴스도, 집채만 한 파도도 없는 도시였으므로 나는 이곳에서 서핑을 하는 것을 시시하게 느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진행하는 듀토리얼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진입했다고 알렸다. 민이 유튜브 재생 목록에 서핑 관련 노래들을 추가했다. 차는 속도를 높였고 날은 무더웠으며 주변에는 짙은 초록으로 가득한 산이 이어졌다. 혁오의 <Surf boy>가 흘러나오자 나는 잠겨 있던 생각에서 빠르게 빠져나왔고 점점 설레기 시작했다. 하지만 섣부르게 들뜨는 건 곤란하다. 나는 서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종일 물만 먹고 올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비교당하다가 침울하게 끝나버릴 수도 있었다. 몇 달간 자신에게 꾸준히 실망해온 나의 자존감이란 이처럼 보잘것없었다. 변화가 필요했다. 바다에 들어가면 나아질지도 몰랐다. 서핑을 하러 가자는 건 민의 제안이었다. 우리는 민의 차를 타고, 민이 예약한 서핑샵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밖에서 본 민은 갑자기 서핑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그간 민이 달리던 삶의 레일에 새로운 방향이 생겼다. 나에게 서핑을 하러 가자고 말하는 민의 표정이 이를 알려주었다. ‘한 번 해볼까?’ 정도의 마음은 ‘계속 해볼까?’가 되었고 민은 벌써 여섯 번의 입수를 마쳤다. 서핑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고 여섯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뒤 돌았을 때 자신이 열었던 문이 가까이 있을 테고, 언제든 되돌아가 문을 닫은 뒤 평생 열어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민은 멀어지는 것을 택했다. 더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이지 않기를 바라며. 왜 서핑에 빠졌을까, 묻기보다 서핑에 빠질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수긍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민은 상대와 땀과 숨을 섞으며 경쟁하는 종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나는 수영에 빠진 민을 보며 수영에서만 얻을 수 있는 상쾌함에 매료되어 있다고 느꼈다. 땀을 흘리지 않는 것. 몸싸움이 없는 것. 무엇보다 혼자 하는 것. 민은 부산에 다시 내려가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서울에 온 친구들 중에서도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민은 ‘부산’과 ‘서울’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부류였다. 왜 떠났는지, 왜 서울이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민의 집 현관에는 스케이트보드가 있다. 땅에서도 서핑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스케이트보드라는 말은 민에게서 지겹게 들었다. 민은 매일 현관문을 여닫았는데 서서히 서핑을 하러 가는 일,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가는 일에 많은 시간을 썼다. 해변까지 이제 한 시간이 남았다.
아침부터 영의 눈이 빛났다. 해양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부터 영은 우리 사이에서 해양 스포츠계의 최강자였다. 수영, 스킨스쿠버, 요트 등을 해왔고 관련 자격증도 많이 갖고 있었다. ‘영은 언젠가 해양 스포츠를 가르치면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영도 서핑이 처음이었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도 근거 있는 기대에 차 있었다. “영은 왠지 서핑을 잘할 것 같다.” 나와 민은 입을 모았다. 영을 생각하면 ‘균형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영은 군살 하나 없이 균형 잡힌 몸을 갖고 있었다. 기름칠이 잘된 기계처럼 스스로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자신이 움직일 때 어떤 근육을 쓰고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리고 영은 직선적이었다. 멀리 던져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세부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 그 과정에서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 기존의 목표를 폐기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할 때도, 일단 목표를 세우기만 하면 그 외 나머지를 실천하는 데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은 서핑을 한다고 생각하고 보드에 올라타면 서핑에 대해서만 생각할 것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이십 분 후 도착을 알렸을 때 나는 영화 <하나 레이 베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주인공 ‘사치’는 하와이에서 서핑을 하던 아들이 다리 하나를 잃고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10년 동안 기일이면 ‘하나 레이 해변’에 앉아 조용한 휴가를 보낸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서핑하러 온 소년들을 마주치게 되고 사치에게 해변에서 외다리 동양인 서퍼를 봤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사치의 감정선은 가장 높은 곳에 다다른 파도처럼 급격히 요동치고 이를 뒤에서 따라가는 영화였다. 나는 치열하게 지키던 사치의 고요함이 무너지는 순간을 떠올렸다. 서핑을 못 하면 어쩌지, 라는 터무니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서핑마저 잘하지 못하면 비참할 것 같았다. 어제까지 서핑은 나의 세상에 없었으므로 이런 비약은 아주 우습고 난처했지만 그 시간 나는 서핑을(어쩌면 바다를) 붙잡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목적은 환기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삶에서 여전히 무언가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자주 끓어올라 넘치려고 했고 겨우 찾은 찬물로 젖은 채 돌아다녀야 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고 침대에 쓰러지는 날들의 연속. 여행 당일에도 새벽까지 일했다. 미지급된 인세에 대해 사과하고 다음 책의 마감을 체크하며 돌아오지 않는 교정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사장실에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는 일들이 내려왔다.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되었다. 이런 외부적인 문제를 빼더라도 내가 출판 편집 일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이 일을 원했다는 데 있었다. 지금껏 내가 원하기만 하면, 손쉽게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 이런 내가 자주 무시한 건 초심자의 기본기였다. 일단, 냅다, 하면서 맞춰가면 된다는 태도가 배어 있었다. 일정 수준까지 빠르게 도달하는 데만 집착했다. 중간 과정은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 계단이 아니라 서둘러 넘어야 하는 허들이었다. 앞선 허들을 넘지 못하고 넘어지더라도, 왜 넘지 못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속도전만 벌였다. 일을 할 때도 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빠르게’는 생략과 대충의 다른 말이었고 치우듯 넘겨버린 것들로 인해 내가 어떻게 망가졌는지 자주 확인했다. 기초적인 언어 역량과 엉덩이를 깔고 오래 앉아 있는 끈기가 부족했다. 나는 내가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직업을 선택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의 간극은 어디서부터 맞춰야 할까.
해변에서 지상 훈련을 먼저 받았다. 강사는 곧잘 따라 하는 우리를 보고 즐거워했다. 우리는 동작을 하나하나 익혔고, 이를 연결 동작으로 잇는 연습까지 마쳤다. “바다에 들어가면 딴 사람 되는 거 아니지?” 강사는 웃으며 말했는데, 그때부터 나는 불안해졌다. 식은땀이 흐르고 팔이 떨렸다. 서울에서의 일들이 설악해수욕장에 둥둥 뜬 부표가 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너 멘탈 나갔지?” 보드에도 잘 올라가지 못하는 나를 보며 강사가 말했다. 나는 눈에 들어가려는 바닷물을 손 세수로 닦아내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네가 다른 애들보다 무거워서 그래,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그래도 방금 보드 위에 일어났잖아. 운동신경이 없는 건 아니네. 나는 너 못 일어날 줄 알았다.” 강사는 몇 번 용기를 주었지만 내가 계속 못하고 급기야 보드에 올라가는 것도 힘겨워하자. “너 그렇게 무거운 거 아닌데…….”라고 말하며 실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성격 급하다.” 그는 사람들을 가르치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다 보인다고 했다. 배운 동작을 차례로 연결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변에서 배웠던 것을 다 잊고 파도에 쫓기는 사람처럼 일단 일어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였고. “여유를 부려야 여유가 생겨, 이번에는 여유를 부려보자.” “네.” “너 지금 오는 파도 탈래? 이 파도 진짜 커.” “네 타야죠.” “봐봐. 또 급해서,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하네. 안 돼. 해변에서 배운 거 기억하고 있지. 호흡. 패들……..” “네, 네.” 나는 여기서도 탄로 났다. 연결 동작은 애초에 잊었고, 일단 파도를 무조건 많이 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나는 갖고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러므로 부릴 수 없었다. 뒤에서 파도가 나를 쫓아내려고 했다. 나는 허우적거리다가 보드 위에 일어섰지만, 휩쓸렸다. 민은 모든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가장 편안해 보였다. 현재 자신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알려주는 강사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강사는 민이 일어날 때 골반이 틀어진다고 했다. 강사의 지적 후 나도 민의 골반을 자세히 보았는데 바로 좋아지는 게 내 눈에도 보였다. 강사는 민이 탈 때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고……. 영은, 영은 말할 것도 없지. 처음 타는 데 저렇게 잘 타는 애는 드물다는 강사의 말에 나와 민은 감탄했다. 이렇게 영은 또 해양 스포츠계의 최강자 타이틀을 굳히는 중이었다. 나는 한 번도 못 탈 거라는 걱정과 달리 수업이 끝나갈 무렵 한두 차례 파도를 탔다. 실제로 파도를 타보니 ‘잡아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탈 것에 탄다는 느낌이라기보다 이어달리기를 할 때 앞서 오는 사람과 같은 속도를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배턴을 옮겨 받는 느낌이었다. 타이밍과 속도와 균형이 맞물리는 기묘한 경계에서 짜릿했다. 나는 첫 서핑에 도취되어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이를 내가 좋아한다는 것도,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까지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나와 영은 어제까지 서핑을 몰랐지만 오늘 배웠고 재미있어 했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충만한 하루를 완성하기 위해 더 필요한 건 없었다. “더 타고 나가자.” 우리는 강습이 끝난 뒤에도 보드를 빌려 서핑을 했고 다섯 시간 가까이 물에 떠 있었다. 바다를 뜨겁게 달구던 해는 어느새 기울었다. 한기가 온몸에 자리 잡는 중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영의 보랏빛 입술이 떨렸다. 바다도 수평선에서부터 영의 입술 색으로 물들었다. “성공하는 걸로 마지막?” 영이 말했다. 첫 번째로 나선 영이 가볍게 성공해 해변 가까이 나아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봐도 처음 배운 사람이 하기 힘든 라이딩이었다. 민도 놀란 눈치였는데 그다음 파도를 곧바로 잡아 타더니 해변으로 나아갔다. 내 차례였다. 보드 위에서 균형을 못 잡아서 파도를 한두 개 흘려보냈다. 앞으로 처박혔다. 나는 뒤돌아 바다로 들어가면서 ‘꼭 타야 한다’라는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 이 파도를 탄다면 내가 그간 빨리 건너뛰고 싶었던 어떤 과정들을 파도와 함께 순식간에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깊이 가라앉아 있는 마음이 조금씩 떠오를 거라고, 손을 휘휘 저으면 팔꿈치 기대 잠시 쉴 수 있는 보드가 있을 거라고. 잔파도가 나의 허리를 몇 번 스치고 지나가더니 멀리서 서서히 커지는 파도가 밀려왔다. 허겁지겁 보드에 올라 팔을 저었다. 느낌이 좋았다. 파도가 보드의 꼬리를 들어 올렸다. 허리를 꺾어 앞을 바라보니 민과 영이 있었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연보랏빛이던 바다는 서서히 짙어졌고 사위는 더욱 어두워졌다. 갑자기 모든 게 의미 없이 느껴졌다. 또 갑자기 모든 것에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파도는 시시각각 색깔을 바꾸며 나를 넘실거리다가 이제는 하나의 어둠이 되어갔다. 내가 삶에서 가질 수 있는 색깔. 가지고 싶고 응당 가져야 하는 색깔을 생각했다. 그때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먼바다에서 시작된 파도가 밀려왔다. 저 파도를 꼭 타고 싶었다. 호흡! 패들링! 업! 하지만 보드와 함께 파도에 휩쓸렸다. 오늘 이미 몇 번이나 젖었던 나는 다시 상쾌해졌다. ‘당연한 것 아닌가?’ 초심자의 행운을 모두 끌어온다고 해도 도움 없이 혼자 파도를 타는 건 힘들었을 것이다. 나의 감상적이며 어리석은 태도가 이를 가리고 있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어서 맞지 않는 것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익숙했을 뿐이다.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나의 문제는 내가 물에 있는 동안에도 밖에 있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무엇도 바뀌지 않아서 개운했다. 늦은 밤 가로등도 몇 없는 동네를 산책했다. 어둠에 적응하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야 했다. 파주의 산책로가 떠올랐다. 속절없이 태양을 맞아야 하는 곳. 땅을 다지며 걷는 그곳에서 하나하나 짚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겠다고 다짐했다. 거기에 있었다. 내가 보고 싶은 나의 미래. 나의 또박또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