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과 현욱의 대화

☕️ 어색한 사이

어쩌면 조금 다른 사람들의
색깔있는 대화



<어색한 사이>는 모어데즈와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협업해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페미니즘이 낯선 친구, 가족, 애인, 동료를 추천받아 페미니즘 활동가가 직접 만나러 갔어요. 어색한 사이, 차를 마시며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요? <어색한 사이>는 어느 금요일 깜짝 레터로 찾아옵니다.


이번 레터에선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단체 이한 활동가와 페미니즘과 가까워지고 있는 전현욱님과의 대화를 전합니다.


“애인이 추천했어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



한   자기소개 간단히 해주세요.


현욱   이름은 전현욱이고요. 2001년생이에요.

한   애인의 소개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셨는데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현욱   애인이 페미니즘 관련 일을 하고 있으니 저에게 권유를 많이 했거든요.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가 보는 게 어떠냐,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떠냐. 근데 나중에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 본인이 너무 강압적으로 페미니즘을 몰아붙인 것 같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때 저도 들었던 거부감이 있었어요. 들이밀어 버리니까 없던 거부감도 생기는 느낌. 그 오해를 풀고 나서 그 친구가 학교에서 워크숍을 했는데, 같이 와서 들으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얘기해줬어요. 저도 그날 일정이 없었고 질병권이라는 공감하는 키워드를 발견하며 참여했어요. 그 후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줄었어요. 그때 이 프로젝트를 애인이 추천해준 거예요. 이런 얘기를 해보면 어떠냐고,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한   ‘왜 이렇게 자꾸 페미니즘 얘기만 하지?’ 이런 거부감도 있을 수 있는데 그래도 애인분께서 굉장히 자연스럽게 연결을 잘해주셨네요.

현욱   네. 말을 잘하는 것 같아요. 본인도 페미니즘을 접하지 않거나 조금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페미니즘을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것의 실험 대상이 저였던 거죠.

한   저도 되게 비슷했거든요. 한 20대 중반쯤에 만났던 여자친구가 페미니즘에 엄청 열정적인 친구였어요. 저는 많이 혼나고 싸우면서 배우긴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세상이 다 그렇게 혼을 냈었던 것 같아요.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분노가 컸던 시기였고 또 그때 만나던 대부분의 친구가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그 친구들이랑 같이 놀려면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했어요. 그렇다고 친구들이 저한테 페미니즘 이야기를 잘해주는 교육자는 아니었어요. 되게 뾰족하게 이야기하거나 때로는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화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웠던 시기가 저도 되게 많았어요. 그럼 애인분하고 만나신 지가 얼마나 되셨나요?

현욱   1년 반 정도요.

한   그렇다면 애인을 활동가라고 하면 될까요? 페미니즘 일을 하신다는 게 어떤 종류의 일을 하시는 거예요?

현욱   애인은 페미니즘 채널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하고 있어요. 같이 하는 친구들이랑 주제를 정해서 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일을 주로 하더라고요. 활동가라면 활동가죠.  


한   사실 활동가가 별거 없거든요. 열심히 하면 활동가라고 할 수 있죠. 누가 돈 주지 않아도 하는 게 활동이기 때문에. 저도 지금 친구들 8명이서 같이 활동해요. 그중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는데 운영위원은 6명 정도가 남성인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아는 남성 활동가의 대부분은 애인 덕분이에요. 여성 애인에게 많이 빚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페미니즘에 대해서 제대로 들어보거나 아니면 접하셨던 거는 언제쯤이었던 것 같아요?

현욱   접했던 건 아마 고등학생 때가 아닐까 싶은데요. 페미니즘 보다는 뭔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평등하게 다 같이 지내보길 바라는 친구들이 세월호 추모 동아리를 하거나 여러 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접했어요.

한   그때는 직접 하거나 참여하지는 않았나요?

현욱   네. 그때는 그냥 이런 친구들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고등학생 때 축구랑 밴드 동아리 2개만 했거든요. 성향상 최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어서 어떤 친구들이 뭘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행동도

내가 남성이라 그런건가?”

☕️ 공감하는 질병권,

헷갈리는 남성성



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흥미로웠던 것이 있었나요? 혹은 이 이슈는 나랑 가까운 것 같다고 느낀게 있을까요?

현욱   질병권이요. 제가 인식한 질병권 이야기는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를 하라는 것이었어요. 이건 남성성이랑도 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전형적인 남성성의 틀 안에선 독립적이어야 하고 리드해야 하는 것이 있는거 같아요. 최근에 애인이 듣는 권김현영 선생님의 온라인 강의 주제가 남성성이어서 같이 들었거든요. 생각해 보니 남성성이라는 단어의 틀 안에 이 행동을 가둬놓는 게 맞나 그런 고민이 있었어요. 독립적이고 눈물이 잘 안나는 것이 남성성에 기반해서 행동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내 성향이 그런 건가, 이게 구분을 짓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반감이 들었었는데요. 제가 아파도 별로 티를 안 내는 편이거든요. ‘이 정도 아픈 거? 며칠 있으면 나아지는데’하면서 넘어가는데요. 질병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닐 수 있겠구나. 아프면 서로 돌봐주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질병권, 저도 너무 공감해요. 1인분의 삶이라는 게 저에겐 핵심이었어요. ‘야. 1인분으로는 살아야지. 너 폐 끼칠 거야?’라는 마음이랄까? 저는 폐 끼치거나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걸 진짜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서 이 악물며 살고 무리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문제는 뭐냐면 타인한테도 그런 잣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왜 폐 끼치지? 왜 제대로 안 살지?’ 당연히 사람이 그렇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약자를 비난하거나 조롱하거나 아니면 무관심하게 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도 최근에 질병권에 관심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아파도 된다는 권리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저한테 되게 낯설어서 조한진희 선생님의 책을 읽었는데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남성성에 대해 거리감이나 거부감을 느낀 이유는 뭘까요?

현욱   일단은 그 단어를 남성이라고 지칭하는 거에 대한 일차적인 거부감이 있는 것 같고요. 뭔가 남성성이라는 단어 안에 남성을 가두는 거 같아서요.

한   남성성이라는 말이 생김으로써 ‘이건 내가 남성성 때문에 그런 건가?’라고 더 그 안에서 생각하게 되니까. 내가 가진 다양한 특징이 있고 나의 원초적인 이유, 나의 가정사도 있을 건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현욱   그러면 나의 이 행동도 남성이라 그런 건가,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다음 반발심. 그냥 이건 나라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한   저도 그게 가장 헷갈렸던 것 같아요. 근데 요새 제가 정립한 생각은 뭐냐면, 어떤 하나의 장면을 보고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이야기하는 건 사실 큰 의미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그건 우리 사회의 여러 특징을 페미니즘 운동을 이야기하기 위해 라벨링을 어느 정도 해놓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 라벨링은 결국 개개인의 행동을 제약하거나 ‘남자답게 행동하지마’, ‘여성스럽게 행동하지마’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그걸 해체해 나가는 작업을 했을 때 저는 해방감을 되게 많이 느꼈어요. 왜냐하면 ‘남성성’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제가 가진 무신경함과 무뚝뚝함을 성격으로 받아들였거든요. 근데 돌이켜보니 제가 더 어렸을 때는 그렇게 무신경하지 않았던 거예요. 섬세하고 눈물도 잘 흘렸어요. 근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화’라는 걸 겪으면서 남들 앞에서 안 울고 그러니까 혼자서도 못 울게 된거죠. 한 번은 애인과 헤어졌는데, 집에 혼자 있는데도 물을 틀고 울고 있는 거예요. 웃기잖아요. 그게 무엇 때문일지, 생각했을 때 남성성이라는 언어가 저에게 실마리를 찾게 해줬어요. 아예 언어가 없었으면 ‘내가 미쳤나 봐’ 이러고 말았을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남성성은 도움이 되는 라벨이라고 생각해요. 그 언어가 없으면 내 행동이나 생각에 관해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발견한 건 저의 무신경함이 사실은 남자다워야 된다는 강박에서 왔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던 거예요. 사람마다 멋있는 남성상, 롤모델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터프하고 거칠고 거침없는 남성들이었어요. 제가 특히 학창 시절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되게 선망했던 것 같아요.



“애인은 친구끼리

엄청 끈끈하더라고요”

☕️ 남성이 느끼는 친구 관계



한   페미니즘 이슈 중에서 친구나 애인이랑 이야기했던 주제 있으세요?


현욱   최근에 애인이 올린 영상 중에서 환승 연애 리뷰 영상이 있어요. 거기에서 남성다움, 여성다움에 대한 편견이 담긴 편집이나 출연진 행동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체해 보니까 편견일 수 있겠더라고요. 근데 사실 얘기를 안 했으면 저는 인지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생각 못한 것이었어요. 확실히 전보다 편견이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당연하게 넘어가는 것이 생각보다 많아요. 


한   구체적으로 뭐가 있었어요?

현욱    편집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는데요. 프로그램 안에서 여성 출연자끼리 얘기하는데 ‘되게 눈이 높으시네요’ 라는 말을 편집자가 기싸움으로 인식하고 칼소리 넣거나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요. 그냥 순수한 칭찬일 수 있는데 뭔가 여성은 예민하고, 여성끼리 싸우는 구도를 만드는 거죠.

한   개인적으로 저는 연애 예능을 많이 안 보는데요. 은연중에 영향을 많이 준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마음은 다 본능적으로 있잖아요. 근데 매력적인 모습이나 연애의 모습이 사회적이라고 생각해요. 100년 전, 1,000년 전 이상형 모습이 다를 거 아니에요. 근데 요즘 반복해서 강조하는 건 남성의 능력일 때가 많아요. 직업 자랑 많이 하잖아요. 차 타고 등장하고. 


현욱   연애 프로그램에서도 남자들 직업에 다 ‘사’자가 들어가요. 의사, 변호사. 근데 여성들 직업은 모델, 스튜어디스 등 확실히 성별적으로 편향된 직업이 많이 나와요. 프로그램에서 그걸 상위의 여성과 남성으로 표현하는거 같아요.

한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죠. 이런 이야기 애인과 친구들과는 많이 될 거 같은데 다른 친구 무리랑은 어때요?

현욱   대화가 되는 친구는 한 명 있어요. 애인을 알게 해주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제 고등학교 친구고 애인과는 같은 사회학부였어요. 그 친구는 페미니즘 공부를 많이 해서 이야기하기가 괜찮아요. 


한   그분은 남성분이에요?

현욱   네. 그 친구랑 고등학교 때 같이 밴드 했거든요. 제일 친했던 친구였어요. 그 친구는 생각하는 걸 엄청 좋아하고 저보다도 훨씬 편견 없고 탐구하는 걸 좋아해요. 둘이서 만나면 소주 한 병만 까도 밤새요. 철학적인 얘기를 할 때도 있고 학문적인 것도 있고, 토론하다 보면 재미있어서 계속 얘기해요. 그런데 그 친구 딱 한 명 있고 나머지는 애인의 친구들이에요. 근데 애인의 친구들과도 사실 이야기 잘 안 꺼내요. 최근에서야 애인과 영상에 같이 나온 그 친구 한 명과만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조금 튼 것 같아요.

한   어떻게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현욱   일단 시간을 많이 보낸 게 컸어요. 친해지려면 계속 얼굴을 보거나 시간을 보내야 친밀감이 생기잖아요. 원래 그 친구도 현욱이는 페미니즘 별로 관심 없었던 것 같다면서 굳이 언급을 안 했어요. 이야기 꺼낸 것이 엄청 최근이에요.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애인, 애인 친구, 제 친구 이렇게 딱 3명 정도네요. 


한   저도 제 또래 친구들이랑 있을 때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면 불편해하는 애들이 워낙 많아요. 가끔 친구들이 여성 애인과 싸우거나 아니면 TV나 커뮤니티에서 무언가를 보고 저한테 슬쩍 와서 물어보는 정도죠. 본격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고, 언제든지 물어볼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현욱님 경우는 궁금하면 물어볼 사람이 꽤 있죠. 정말 좋은 거예요. 저는 애인과 이야기 못했던 걸 비슷한 사람과 말할 때 속 시원했던 경험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애인은 페미니즘 이슈가 너무 중요하지만 저랑은 거리가 있는 것이 많은 거예요. 예를 들어 월경이나 재생산이라든가. 제가 ‘맞아. 너무 힘들지’ 이렇게 말하는 게 웃기잖아요. 할 수가 없어요. 공감할 수 없고. 근데 저도 제 이슈가 있단 말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었던 남자다움, 흔히 맨박스라고 말하는 고정관념에 마니아였던 적이 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모임을 열고, 친구들을 만나서 관련 이야기를 나눈 것이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그런 점에서 요새 관심을 갖는 이슈가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라는 주제거든요. 책 제목이에요. 한 40대 남성이 어느 날 돌아보니 친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사실 20대까지는 친구가 있잖아요. 군대가고, 결혼하면서 친구가 없어지는 거예요. 남자애들 사이에선 전화도 잘 안 하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다들 원래 인생은 외로운거라 말하죠. 이런 고민은 없나요? 


현욱    있어요. 제 애인이 친구들이랑 엄청 밀접하게 지내요. 오늘도 제가 운동 갔다가 왔는데도 집에 친구들이 작업하고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애인은 친구끼리 엄청 끈끈하고 서로 연락도 자주 하고 가까이 사는 친구끼리는 아프면 약도 챙겨줘요. 그래서 사실 애인이 없었던 시절엔 조금 서글프다고 생각했어요.

한   저는 이게 사회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남성 자살이 진짜 많아요. 한국에선 한 해에 약 1만 5천 명이 자살하는데 그중 남성이 1만 명이에요. 고독사 중에선 남성이 80%이죠. 너무 이상하죠. 근데 또 병원에 가거나 우울증을 진단받는 경우는 남성들이 거의 없어요. 저도 이런 고민을 한 것이 최근인데요. 내가 왜 이렇게 돌봄을 등한시했지, 싶더라고요. 누구나 아프잖아요. 누구나 병들고 누구나 죽고 그럼 돌봐줘야 하는데 내가 아플 때 친구한테 전화하면 ‘뭐 어쩌라고’ 이렇게 말할 거 같은 거예요. 대부분의 친구는 ‘병원 가. 이씨’ 이렇게 답하는데 그게 너무 서럽기도 하고요. 저도 여성 애인이 있는데 그분이 발이 되게 넓어요. 부산 가면 부산 친구를 만나요. 그게 신기한 거예요. 어떻게 그게 되지? 했는데 상시적인 돌봄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날까? 그냥 개인 간의 차이인가? 저도 생각보니 ‘주말에 어떻게 지냈어? 요즘 무슨 일 해?’ 이렇게 물어볼 수 있는, 상시적인 대화 창구가 없더라고요. 애인은 친구한테 전화도 많이 하는데 저는 솔직히 애인 아니고서는 통화를 절대 안 한단 말이에요. 내가 그래서 외로웠던 거구나, 발견하고 되게 재미있었어요.



“여자애들과

친해지는 법을

학습했어요”

☕️ 젠더가 다른 이들의 우정



한   저희 단체에 많이 오는 이들은 페미니스트 여성 애인을 만나는 남성들이에요. 저희 단체에서 상담하거나 물어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요. 아니면 페미니즘 이야기만 하면 싸우는 남성 애인이 있는 여성들이 어떻게 이야기할지 모르겠다며 찾아와요. 이들을 위한 자리도 진짜 재밌었어요. 그래서 혹시 어떤 자리가 생기면 찾아볼 마음이 생길까요?


현욱   아까 그 주제가 되게 괜찮은 것 같아요. ‘왜 남성들은 왜 친구가 없을까?’ 근데 제 주변은 좀 다르긴 해요. 저는 친구가 없는 편인데 주변 선후배들은 남자끼리 동거하는 경우도 많아요. 누군가가 애인이 생기거나 결혼하지 않는 이상 계속 같이 사는 이들도 있고요


한   저는 페미니즘이 운동이지만 인식론이라고 많이 생각하거든요. 인식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어떤 언어인 거죠. 덕분에 저한테 좋았던 것 중의 하나가 이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여성과의 관계가 로맨틱해지거나 연인이 되거나 그게 아니면 0. 진짜 0과 1의 세계에 살았거든요. 그렇게 된 배경이 있는데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여자친구들이랑 되게 가깝게 지냈는데 고등학교 가니까 그런 애들을 게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죠?


현욱   ‘여사친. 남사친은 없다’하면서. 썸이겠지 그러고.

한   특히나 남성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취급하며 위험한 일들이 많잖아요. 조롱받으니까 그걸 벗어나기 위해서 그런 관계를 다 끊어냈던 것 같아요. 근데 전 여성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거든요. 당연히 좋은 일이잖아요.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 서로를 성적인 관계나 연애 관계로만 보지 않고 좋은 친구, 동료, 사람으로 바라보며 지냈어요. 특히 대학 때는 여성들이 대부분 페미니즘을 알고 있었고, 저희 집에 맨날 놀러 왔어요. 거의 한 방에서 자연스럽게 놀고 어울렸어요. 되게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페미니즘이 꼭 여성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좋은 언어로 쓰였으면 좋겠어요. 


현욱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갔었어요. 저희 학년이 저 포함 5명이었어요. 거의 분교인데, 저 빼고 4명이 다 여자였어요. 그리고 다들 그 동네에 오래 산 친구들이라 제가 낄 틈이 없었어요. 전학 가고 1년 동안은 같은 반에 친구가 없어서 엄청 우울했어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생존하기 위해서 여자애들과 친해지는 법을 학습했어요. 그렇게 지내니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남자애들이 저한테 ‘여미새’라고 말하더라고요. 20대 초반에도 그냥 남자 여자 상관없이 자취방에서 같이 놀고 자는 일이 되게 많았어요. 


한   여전히 세상에서 ‘깻잎 논쟁’이라고 난리를 치는데, 저희 때는 안전한 공간에서 서로를 성적으로 희화화  하지 않고 함부로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는 엄청난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페미니즘이 관계에 많은 도움을 줬죠. 페미니즘을 통해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요. 저는 남성들의 꾸밈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현욱   저도 꾸밈에 관심이 있어요. 요즘엔 남자들도 많이 꾸미고 다니잖아요. 저도 공적인 자리에 가면 파운데이션도 하는데 그런 걸 이야기할 때 아주 약간 마음속으로 걸리는 게 있긴 하죠. 애써 아닌 척하지만. 


한   저희 단체에서 ‘뷰티 한수’라는 프로그램도 있거든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진짜 많이 했거든요. ‘야. 남자가 무슨 선크림이야’ 근데 지금은 진짜 선크림 열심히 발라요. 노화하니까 피부가 아프기도 하니까요. 근데 그것마저도 거부하는 마초적인 문화에서 살다 보니 모르고 지낸 기간이 너무 긴 거예요. 잘 꾸밀 줄도 모르고 미감도 없어서요. 그래서 ‘뷰티 한수’는 저의 인생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하는 것 중 하나는 수염 레이저 제모예요. 추천합니다! 근데 피부과 들어가기 전까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어색하더라고요. 그리고 최근에 퍼스널 컬러도 받았어요. 여름 쿨 브라이트? 여튼 그게 잘 어울린대요. 약간의 해방감이 있었어요. 잘 모르지만, 들으면서 ‘그렇구나~ 별거 아니네’ 벽인 줄 알았는데 문인 느낌. 되게 재밌었어요. 처음에 저는 올리브영 들어가는 것도 어려웠어요. 미용실 가서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별 얘기 못하고 그냥 나오고, 저만 그런가요?

현욱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요. 초반엔 그럴 수 있죠. 미용실에서도 시행착오가 필요한 거 같아요. 저도 처음에는 머리가 새하얗게 돼서 어떻게 해달라고 못했어요. 최근에 애인을 통해서 헤어 모델로 파마를 했어요. 원래 파마나 염색이 되게 비싸잖아요. 근데 2만 원 주고 했어요. 미용사님도 포폴 쌓는 용으로 모델을 구하니까 더 섬세하고 물어봐 주더라고요.


한   역시 이런 걸 해야 돼. 페미니즘 이야기한다고 했을 때 저는 남성들 끌어모으려면 당장 관심있거나 볼만한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금 더 시간이 있는데 혹시 궁금하셨던 거 없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나?


현욱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많이 얘기한 것 같아요.

한    저는 항상 그 중간자의 존재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애인이나 친구들,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련해서 제가 책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냈는데 혹시 보내드려도 괜찮을까요? 


현욱   네. 감사합니다.





💬 한의 코멘트

현욱님은 어색한 사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남성이자 프로그램 취지에 딱 맞는 인물이었어요. 그만큼 들뜨기도 하고 기대도 커서 내가 너무 말이 많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이제와 기록을 보면서 좀 드네요 ㅎㅎ대화하면서도 느꼈지만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특히 여성 애인을 통해서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과정은 정말 내 이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하더라고요. 뉴스레터를 통해 글로 이야기를 접하시는 분들이라면 현욱님의 변화 과정이 잘 느껴지지 않아 다소 답답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변화를 느낀 순간이 많았거든요. 이를테면 저 역시도 현욱님이 느꼈던 그런 불편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혼자 삭였거나 넘겨버렸으면 이 문제에 더 관심 두거나 생각이 변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오늘날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현욱님도 비슷한 과정을 경험하고 계신 것 같아요. 주변에도 든든한 페미니스트 동료가 있고 이렇게 말 걸기도 시작된 만큼 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요? 실제로 현욱님은 이후 남함페 총회에도 오셨고 게임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세요!



💬 무수의 코멘트

현욱님과 한님의 대화 녹취록을 풀고 콘텐츠로 정리했어요. 초안 작업을 하고 한님과 미팅했는데, 제가 답답하다고 말했습니다. 뭐가 답답했을까요? 페미니즘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 연애 상대자로 가늠되는 관계, 돌봄의 기술을 기르지 못한 환경. 그럴 수 있을 거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어요. 그래서 어떤 책에서 읽은 ‘페미니즘을 잘 설명할 필요없다’라는 문장에 해방감을 느꼈는지 모르겠어요. 한님에게 제가 하기 어려운 활동을 해주어서 감사하다고,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 변한다고 믿어요. 사랑하는 사람, 애정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고 느끼고 생각하고 대화하며 틈이 생기고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곤 합니다. 페미니스트 애인 덕분에 저희가 현욱님을 만나고 현욱님이 한님을 만나 남함페 활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가 짧고 깊은 한 번의 대화로 이뤄졌습니다. 저는 그게 참 희망적이라고 느껴요.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후기 보내주세요. 무척 궁금합니다. 플리즈..^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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