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에 [얼론앤어라운드]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코드는 alone 입니다.

📎 Words |  자신에게 너그로워지기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용서하기 그리고 힘껏 포용하기. 이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타인에게는 너그로우면서 자신에게는 유독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의 잘못은 모른 척해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실수를 용서해야 할 때도 있고, 자신의 못난 부분을 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거든요.

- alone & around

🏕️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네, 저는 물이 필요한 목() 사주입니다(feat. 춘천호에서의 첫 솔캠)

주에 나무 ‘목()’이 있어선지, 난 호수 등 물이 있는 캠핑장을 꽤나 찾아 헤매는 편이다. 출렁다리가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마장호수 캠핑장, 눈 뜨면 트렁크 뷰를 통해 바로 계곡이 펼쳐지는 포천 국망봉 캠핑장, 밤이면 수달과 하이 파이브 할 듯한 호젓한 춘천호까지. 산과 하늘을 수면에 그대로 비춰내는 춘천호는 특히나 나도 몰랐던, 복잡한 내 속까지 그대로 비춰주는 느낌이다. 충주호나 소양호에 비하면 물이 깊지 않지만, 때론 바다처럼 넓어 보이는 이유는 강폭이 좁고 양쪽으로 높은 산들이 있기 때문. 수도권에서 1시간 내외로 갈 수 있지만 강원도 깊숙한 오지에 온 느낌을 주는 데다가, 호수 뷰 잣나무 숲 때문에 캠퍼들 사이에서 오랜 성지로 불리는 춘천호는 그래서 아직도 많은 캠퍼들이 숨겨두는 장소다. 

 

명색이 첫 솔캠(혼자 가는 솔로 캠핑)인데 혼자 제대로 된 ‘물멍’을 하다 오고 싶었다. 그러나 사유지와 노지가 섞인 데다, 누군가 남기고 간 쓰레기와 오물로 오랜 몸살을 앓아 오던 춘천호에는 내가 찾은 날에도 한 주민이 가족 및 단체 캠퍼들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강천섬과 비내섬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역 주민과 캠퍼들 모두를 만족시키며 아름답고 깨끗하게 즐길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차를 돌렸다. 하지만 주위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고, 잘 곳을 얼른 찾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첫 솔캠 피칭을 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 그러다 소나무 숲 한편, 다 쓰러져 가는 폐가 옆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백패킹용 알파인 텐트 1~2동은 칠 만한. 배낭을 멘 채 빛의 속도로 호숫가까지 내려왔지만 갑자기 사람 머리 2개가 보인다. 하, 또 망한 건가. 하지만 커플인 듯한 둘은 날 보자 주섬주섬 의자와 돗자리, 와인병을 걷으며 갈 채비를 했다. “여기 텐트 치세요, 저흰 곧 갈 거에요.”

1급수 호수 뷰를 바라보며 즐기는 솔캠


피크닉을 즐기는 커플 옆에서 세상 어색하게 물멍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자리를 양보해 준 커플 덕분에 난 물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환경에서 혼자 ‘내셔널지오그래픽’을 찍을 수 있었다. 1급수에 먹이가 풍부한 춘천호 호숫가를 걷다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러다 가까이 가면 물속으로 뛰어드는 풍경도 종종 볼 수 있다. 차박을 할 경우 역시 환상적인 트렁크 뷰를 보장한다. 열린 트렁크 자체가 캔버스가 돼 춘천호를 화폭으로 담아낸다고 할까. 일몰 때 햇빛에 일렁이는 윤슬 역시 그 그림 중 하나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그때, 윤슬은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을 더 크게 비춰 주는 확대경이 된다. 해가 지자 왜가리와 오리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소리조차 들릴 듯 적요해진다. 그래, 이런 게 캠핑이지.

달이 너무나 밝아 따로 랜턴을 켤 필요가 없었다. 눈이 매직아이가 될 정도로 호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부스럭. 뭐지? 분명히 나밖에 없는데, 폐가 쪽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진다. 해가 지기 전에는 마법 같았던 춘천호 역시 네스호의 괴물이 더듬이를 뻗을 것처럼 위태롭다. 사람보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편인 내게 솔캠의 최대 적은 ‘밤의 공포’였다. 그때 정적을 깨고 휴대폰이 진동한다. “기자님! 여기 공항인데 어디세요? 보딩 시간 다 됐는데 안 오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낳아보지도 않은 애가 떨어진 것처럼 놀랐지만, 짐짓 당황하지 않은 척 놀란 목소리를 얼른 목구멍 뒤로 쑤셔 넣어 본다. 사실인즉슨, 출장 날짜가 내일인 것으로 굳게 믿은 내가 춘천으로 캠핑을 와 버렸던 것. 담당자에게 급하게 둘러댄다는 핑계가 고작 ‘감기’였다. “아, 제가 감기약을 먹고 잠들었더니 이제 일어났네요. 어떡하죠?” 아, 지금 들어도 구차하기 그지없다.  

 

어차피 밤 9시가 다 되어 가는 지금, 춘천에서 인천공항으로 텔레포트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담당자와 비행기 시간을 내일로 변경하고 전화를 끊자마자 자괴감이 모래폭풍처럼 몰려왔다. 에라, 취해야겠다. 배낭에서 ‘멘탈 케어용’ 위스키 플라스크를 꺼낸다. 솔캠을 위해 야심 차게 구입한 싱글몰트 위스키다. 출장 날짜를 착각한 나에 대한 자괴감이 46% 도수의 알코올과 섞이자 폐가가 주는 공포는 한 번에 상쇄됐다.

춘천호가 해준 멘탈 케어


춘천호의 물안개를 바라보며 눈뜬 다음 날 아침, 과일과 차로 기력을 차려 본다. 어차피 비행기 표는 밤이고, 내겐 아직 12시간이 남아 있었다. ‘춘천의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할 수 있는 ‘육림고개’를 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문을 열자 어제 춘천호에서 자리를 양보했던 부부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우린 서로 “엇!”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언덕 위 오래된 기름집을 고쳐 만든 책방 겸 상점 ‘춘천일기’를 운영하는 기획자 아내와 디자이너 남편 ‘최강부부(최정혜, 강승용)’와 나는 단골 미용사와 만난 손님처럼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가게에는 ‘춘인절모(춘천 인스타 절친 모임)’가 시상한 ‘현지인도 몰랐상’ 상패가 걸려 있었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추진력과 언변으로 로컬도 몰랐던 춘천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한 공이 크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캠핑을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닭갈비를 먹으러 들린 춘천에 반해 삶의 방향키를 틀었다는 둘의 유쾌한 용기가 내게 전염되는 듯 했다. 비록 공항엔 노쇼(no show)하고, 폐가 옆에서 솔캠을 한 데다, 갑작스런 소나기까지 쏟아졌지만 오래된 욕실 발깔개 같은 털 뭉치를 가진 초원목장의 양들과 걷는 것도, 비 때문에 을씨년스러워진 구봉산 카페거리를 걷는 것도 왠지 즐거웠다.

 

아름답고 장대했던 춘천호의 물멍이 내게 선사한 용기일 수도 있었고, ‘살 듯 여행하기’, 여행하듯 살기’라는 춘천일기 부부의 모토 때문일 수도 있다. 산과 물에 잠시 잠기는 것만으로도 부유하던 소란한 속이 쉽사리 가라앉는 경우를 자주 본다. 물이 있는 풍경 속에 앉아 있으면 나 역시 손쉽게 제법 자연인 같아졌다. 에둘러 흐르던 춘천호가 내게 말하고자 한 단 하나의 직설은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한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사막이 되지 않고 사는 것은 누군가 내 가슴에 심은 나무 하나’, 물멍 하루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


📍 춘천호를 찾아간 시점은 2019년 으로, 지금은 사유지 출입금지 구역이 더 많아졌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노지에서는 특히 흔적을 남기지 않는 LNT(Leave No Trace) 캠핑을 지향할 것. 최강부부는 현재 옥림고개의 ‘춘천일기’를 정리하고, 옥천동에서 숙박까지 겸한 ‘춘천일기스테이(@stay.chuncheondiary)를 운영 중이다.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 1일 3매 | 최갑수

초록이라는 생물

사무실 옥상에서 맥심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길 건너 심학산을 바라보고 있다. 5월 중순, 어느덧 봄은 깊어서 산의 초록도 짙어졌다. 3월, 잿빛에서 연초록으로 색을 바꾸던 산은 아래에서부터 희미한 초록이 올라오더니 이제는 짙은 초록으로 뒤덮였다. 초록이 번져가는 걸 보고 있으면 초록이 하나의 생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쩌지 못하고,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생물.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외계의 생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와 함께 이 지구에 살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형태가 전혀 아니라 음악 같은 것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수만 광년을 건너온 어떤 생명이 빌 에번스의 ‘Spring is Here’나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치며 한 귀로 흘려버렸을 테지만, 왠지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 한 귀퉁이에 별처럼 빛나며 남았다. ‘하나의 사물은 하나의 시간에 하나의 장소에만 존재한다’는 아인슈타인이 증명만큼이나 과학적인 선명함과 시적인 아득함을 함께 지닌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만약, 음악이 우리 곁에 있는 외계의 생명이라면, 봄의 초록과 가을의 노랑도 그럴 수 있다는 것 아닐까? 멀리 초록이라는 온순하고 다정한 생물이 심학산에 지그시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이제 내가 머물 날은 얼마 남지 않았어. 내가 가고 나면 장마라는 녀석이 올 거야. 그는 장난스런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맥심 커피를 마시며 빌 에번스의 피아노를 듣고 있다. 건반은 초록의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맴돌며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 내 연인이 여기에 도착하려면 몇 광년이나 남았을까 손을 꼽으면서. 십 년 전만 해도 별로이던 음악이 지금은 이렇게 식어버린 맥심 커피를 마시며 들어도 세세한 부분까지 들린다. 이 아름다운 지구를 인간이라는 존재만 누리고 산다는 건 우주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비효율적인 일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나는 지금 ‘빌 에번스의 건반’ 종족, '오월의 기분좋은 봄’이라는 종족과 함께 지구의 화창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이게 다 나이가 들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그래서 나이가 드는 게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

최갑수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자 편집자다. 쓴 책으로 『어제보다 나은 사람』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등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ssuchoi에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 〈얼론 앤 어라운드〉의 구독은 무료지만, 후원금도 감사히 받습니다.

저희의 이야기를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으신 분은 후원금을 보내주세요. 작가들의 원고료와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일과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굿즈를 만드는 데도 사용됩니다. 물론, 무료로 받아보셔도 됩니다. 후원해주신 분께는 〈얼론 앤 어라운드〉에서 펴내는 책을 보내드리고, 앞으로 만들어 갈 여러 강연과 다양한 행사에 우선으로 초대합니다. 후원금을 보내신 분들은 메일로 성함과 연락처를 꼭 보내주세요.

후원계좌 : 신한은행 110-351-138969 (최갑수 얼론북)


〈얼론 앤 어라운드〉는 구독자 여러분의 글을 기다립니다.

다른 구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픈 3매의 경험, 3매의 생각을 저희 이메일(alone_around@naver.com) 로 보내주세요. 일, 인간관계, 살아가는 이야기, 여행, 요리 등 어떤 주제도 환영합니다. 편집을 거쳐 발송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될 것입니다.

얼론 앤 어라운드
alone_around@naver.com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센터 2층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