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유행에 빠르게 반응하는 도시고, 백화점 매출도 전국에서 높은 편이라고요.
재완 맞아요. 시류에 반응하는 속도가 확실히 예민해요. 하지만 뒤처지지 않으려는 게 장점만은 아닌 것 같아요. 대구 수성구의 입시 학원은 서울 대치동만큼이나 밀집되어 있죠.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이나 우울감을 느끼는 아이들도 많다고 들었어요.
가경 큰 자부심과 욕망의 도시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두 분은 사투리를 쓰시지 않죠. 처음 대구에 왔을 때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지지는 않으셨어요?
가경 대구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사람들이 생긴 건 불과 몇 년 전이에요. 그래서 낯선 언어에 민감하지는 못했어요. 가끔 식당 메뉴판에서 모르는 음식을 발견하는 정도였죠. 그거 아세요? 경상도에서는 매운 고추를 ‘땡초’라고 해요.
재완 ‘재래기’라는 말도 있어요. 고기 먹을 때 나오는 파채를 그렇게 불러요.
재래기! 처음 들어봐요.
가경 가끔 서울에 가야 내가 대구 산다는 걸 실감하곤 했어요. 서울 사람들 말소리가 나긋해서 꼭 음악 듣는 것 같고, 제가 오랜 시간 살았던 곳이어서인지 포근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정작 서울 삶은 포근한 정서와는 멀지만요.
재완 저는 전라북도 전주가 고향인데요. 사투리를 쓰지 않으니까 동네 슈퍼에서 저를 쉽게 기억하세요. 여기서는 오히려 튀나 봐요. 그리고 똑같은 의미라도 저는 “밥 먹었나?”가 아니라 “밥 먹었니?”라고 물어보니까 학생들이 저를 굉장히 친절한 교수로 봐줘요(웃음).
다정함이 느껴지는 어미잖아요(웃음). 이제 사월의눈 이야기를 해볼게요. 낯선 도시에 정착하고 전 대표님이 처음 한 일은 출판사를 꾸리는 거였죠.
가경 출판사는 세 가지 배경이 맞물리면서 시작됐어요. 첫째는 시각디자인학과 석사 논문을 쓰면서 사진 편집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예요. 당시 1960년대 독일 잡지를 연구하면서 디자이너가 지면에서 사진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사진 편집에 푹 빠졌죠. 둘째는 사진 중심의 책 편집을 직접 경험해 본 거예요. 석사 과정을 마치고 디자인 스튜디오 ‘AGI 소사이어티’에 출판 편집자로 입사해 이미지 기반의 책을 만들었어요. 연구해 본 것을 직접 실무로 경험할 수 있었죠. 그때 사진책 제작에 자신감을 얻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사진을 좋아했다는 점이에요. 이 세 가지가 맞물리면서 사진책 출판을 꿈꾸게 됐어요.
전 대표님은 주로 기획과 편집을, 정 교수님은 디자인을 담당하고 계시죠.
가경 네. 재완 씨는 사진책 출판을 꿈꾸던 때쯤 만났는데요. 제 석사 논문을 정말 멋지게 디자인해 줬어요. 작업할 때 제 의견도 정말 잘 들어줬고요(웃음). 그래서 이 사람이랑 책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그러다 재완 씨가 영남대로 부임하면서 안정적인 경제 기반이 마련되었고 본격적으로 독립 출판을 시작했어요.
아까 석사 과정 중 사진 편집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하셨는데요. 북디자이너가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가경 단순히 사진을 지면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서, 사진을 과감하게 잘라내거나 텍스트와 창의적으로 결합해서 디자이너가 새로운 의미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걸 말해요. 저는 연구를 하면서 사진이 지면에 등장하려면 디자인을 통한 또 한 번의 각색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예요. 독일 1세대 아트 디렉터 빌리 플렉하우스Willy Fleckhaus가 디자인한 잡지를 보면서 사진과 텍스트를 배열하는 그만의 감각이 정말 흥미로웠어요. 저에게도 이미지로 서사를 구축하는 역량이 어느 정도 있다는 걸 디자인 회사에 근무하며 발견했고요. 작업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디자이너의 주체적인 역할이 두드러진다고 느꼈어요. 텍스트가 하나의 예술적인 요소로 굉장히 크게, 또는 작게 변형되기도 하는데 사진과 적절히 조화도 이루더라고요.
가경 과거 사진책은 이미지만 고요하게 배치된 경우가 많았죠. 우리는 사진, 텍스트, 디자인 이 세 가지 관계를 고려해 사진책을 만든다는 점을 앞세워 출판사 나름의 성격을 만들어갔어요.
재완 저는 과거 민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때 텍스트가 중심인 책을 주로 만들었는데요. 사진책은 이미지를 활용해 책 전체의 서사를 이끌어 내야 해요. 종이와 인쇄 방식의 선택, 레이아웃 선정은 물론이고 내용적으로도 고민할 부분이 훨씬 많았죠. 사월의눈을 시작하고 표현 형식 자체가 디자인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달았어요.
그럼 사월의눈은 사진책의 디자인적인 실험을 시도하는 출판사라고 볼 수 있을까요?
가경 그와 동시에 젊은 사진가들의 등용문이 되고 싶어요. 과거에는 중견 작가가 아니면 책을 만들기 쉽지 않았죠. 우리는 사진책으로 역량 있는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진 작가나 아마추어 작가들과 협업하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