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의 탈출 가로등, 야간 텐풍
적당히 취기가 오른 채로 오늘의 보금자리인 해변 텐트를 향해 걷는다. 노란색 엑스페드 폴라리스 안에 랜턴을 켜두고 온 참이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 Counting Star. 불이 켜진 우리의 텐풍(텐트 풍경)은 오늘도 참 아름답다. 내향인들의 잠재력을 탐구한 『콰이어트』 의 저자 수잔 케인은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INFP, 극 내향인인 내게는 그런 적절한 조명이 텐트 안에 랜턴을 켜 둔 밤의 텐풍이다. 전등 갓까지 포함하면 20만 원이 넘어가는 ‘랜턴 계의 샤넬’ 슈웍스 티타늄 캠핑 랜턴은 없지만, 불이 켜진 색색깔의 텐트는 늘 언제나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며 좋은 인생으로 날 안내해 주는 색색의 등불 같다.
밤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을 근위병 삼아 잠을 청한 지 몇 시간여. ‘휘이이잉~.’ ‘철썩~철썩~.’ 뺨을 쳐대는 텐트가 심상치 않아 새벽녘에 눈을 떴다. 뭐야, 헬기 왔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나무나 바위, 차 같은 엄폐물이 없는 ‘쌩 모래사장’에서 내 엑스페드 폴라리스 텐트는 레슬링 현직 국가대표에 맞서 뒤집히지 않으려는 동네 챔피언처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파타고니아와 히말라야의 추운 날씨 속에서 개발하고 테스트했다는 텐트가 ‘이제 날 좀 죽여줘’ 하는 느낌으로 잔뜩 어깨를 숙인 채 폴대를 팽창시키고 있었다. 실시간 날씨 앱을 켜 본다. 헐, 강풍주의보라니. 아, 가이라인(guy-line, 텐트를 땅에 고정시키는 줄)을 4방향으로 쳐둘걸.
그래도 팩을 박아두지 않았다면 멍석말이하듯 텐트에 말려 해변으로 굴러갔을 것이다. 눈보라가 심한 지역에서 눈의 유입을 막아주는 터널형 벤틸레이션(환기창)으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비와 섞여 부는 모래 바람. 차박을 하는 차량 외에는 주변 텐트들이 다 사라져 있다. 헉, 날아간 건가? 텐트 문을 열었다간 모래 폭풍이 텐트 안을 점령할 것 같다. 텐트를 걷을 수도, 바깥으로 나갈 수도, 지퍼를 열 수도 없는 상황.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는 싱글 월 자립형 탐험 텐트라는 게 돌풍주의보가 뜬 지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텐트 안에 같이 누워 있던 A를 쳐다봤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집처럼 텐트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A는 엄마 젖을 먹고 잠이 든 아기처럼 미동도 없이 쌕쌕 잘도 자고 있다. ‘텐트가 뺨을 치는데 잠이 오냐 너는…….’ 피트 향이 강해 좀처럼 마시지 않는 탈리스커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누워 본다. 어차피 인생 혼자지. 한번 견뎌 보자.
자리에 누웠지만 바람에 잔뜩 부푼 텐트 천이 ‘날씨 확인했니, 안 했니’ 혼내듯 내 뺨을 철썩철썩 갈겼다. ‘휘이잉~.’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텐트 폴은 팽팽하게 휘어진 활시위처럼 잔뜩 구부러진 채 바람에 맞서 자신의 척추에 끼워진 텐트를 사수하고 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그러나 바람 소리 때문에 양을 스무 마리도 세기 전에 다시 눈을 뜬다. 바람 소리가 심해질 때마다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 결로 방지 숨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