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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핑이 좋아서! |  박찬은

바람 부는 날에는 후진항에 가야 한다(Feat. 모래폭풍)     

나는 지금 충무로 회사 앞에서 치마를 부여잡고 있다. 5월에 웬 강풍주의보? 땅에 내려앉은 꽃가루와 먼지가 토네이도를 탄 것처럼 날아올라 온몸을 후려갈겨서, 뺨에 까끌거림이 느껴질 정도다. 충무로 전체가 거대한 바람에 갇힌 폭풍의 핵 같다. 지난 가을에 떠난 양양 후진항의 바람까진 아니었지만.


지난해 가을, 남애 해변 소나무밭에서 1박 캠핑을 한 뒤, 사람 없이 한적한 캠핑장을 찾아간 곳이 양양 후진항이었다. 핫한 서퍼들로 가득한 인구와 기사문, 하조대와 낙산 해변을 지나 당도한 후진항. 그러나 해변 모래밭 한가운데 텐트를 치고 타프를 설치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주변 텐트들이 해변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만 드문드문 서 있는 이유를.

 

비가 오는 와중에 타프와 텐트까지 피칭을 마무리한 우리는 후진항 양양비치마켓에서 아이쇼핑을 마친 뒤 바다가 보이는 활어센터에서 노동주로 소주를 기울였다. 마치 비 맞으면서 공사를 끝낸 인부들처럼. 입에 달라붙는 달짝지근한 광어 회와 멍게에 소주 한잔을 즐긴 뒤 알맞게 달고 짠 매운탕까지 뚝딱하고 나오니 어느새 비는 그쳐 있다. 역시 피칭 후 노동주는 진리지. 전두엽까지 눅진하게 달라붙어 있던 피로가 멍게 몇 점과 매운탕 국물 한 모금에 달아난다.  

도시인의 탈출 가로등, 야간 텐풍


적당히 취기가 오른 채로 오늘의 보금자리인 해변 텐트를 향해 걷는다. 노란색 엑스페드 폴라리스 안에 랜턴을 켜두고 온 참이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 Counting Star. 불이 켜진 우리의 텐풍(텐트 풍경)은 오늘도 참 아름답다. 내향인들의 잠재력을 탐구한 콰이어트의 저자 수잔 케인은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INFP, 극 내향인인 내게는 그런 적절한 조명이 텐트 안에 랜턴을 켜 둔 밤의 텐풍이다. 전등 갓까지 포함하면 20만 원이 넘어가는 ‘랜턴 계의 샤넬’ 슈웍스 티타늄 캠핑 랜턴은 없지만, 불이 켜진 색색깔의 텐트는 늘 언제나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며 좋은 인생으로 날 안내해 주는 색색의 등불 같다.  

 

밤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을 근위병 삼아 잠을 청한 지 몇 시간여. ‘휘이이잉~.’ ‘철썩~철썩~.’ 뺨을 쳐대는 텐트가 심상치 않아 새벽녘에 눈을 떴다. 뭐야, 헬기 왔어? 왜 이렇게 시끄럽지? 나무나 바위, 차 같은 엄폐물이 없는 ‘쌩 모래사장’에서 내 엑스페드 폴라리스 텐트는 레슬링 현직 국가대표에 맞서 뒤집히지 않으려는 동네 챔피언처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파타고니아와 히말라야의 추운 날씨 속에서 개발하고 테스트했다는 텐트가 ‘이제 날 좀 죽여줘’ 하는 느낌으로 잔뜩 어깨를 숙인 채 폴대를 팽창시키고 있었다. 실시간 날씨 앱을 켜 본다. 헐, 강풍주의보라니. 아, 가이라인(guy-line, 텐트를 땅에 고정시키는 줄)을 4방향으로 쳐둘걸.

 

그래도 팩을 박아두지 않았다면 멍석말이하듯 텐트에 말려 해변으로 굴러갔을 것이다. 눈보라가 심한 지역에서 눈의 유입을 막아주는 터널형 벤틸레이션(환기창)으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비와 섞여 부는 모래 바람. 차박을 하는 차량 외에는 주변 텐트들이 다 사라져 있다. 헉, 날아간 건가? 텐트 문을 열었다간 모래 폭풍이 텐트 안을 점령할 것 같다. 텐트를 걷을 수도, 바깥으로 나갈 수도, 지퍼를 열 수도 없는 상황. 폭풍우에도 견딜 수 있는 싱글 월 자립형 탐험 텐트라는 게 돌풍주의보가 뜬 지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텐트 안에 같이 누워 있던 A를 쳐다봤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집처럼 텐트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A는 엄마 젖을 먹고 잠이 든 아기처럼 미동도 없이 쌕쌕 잘도 자고 있다. ‘텐트가 뺨을 치는데 잠이 오냐 너는…….’ 피트 향이 강해 좀처럼 마시지 않는 탈리스커 위스키를 한 잔 마시고 다시 누워 본다. 어차피 인생 혼자지. 한번 견뎌 보자.  

 

자리에 누웠지만 바람에 잔뜩 부푼 텐트 천이 ‘날씨 확인했니, 안 했니’ 혼내듯 내 뺨을 철썩철썩 갈겼다. ‘휘이잉~.’ 바람 소리만 요란하다. 텐트 폴은 팽팽하게 휘어진 활시위처럼 잔뜩 구부러진 채 바람에 맞서 자신의 척추에 끼워진 텐트를 사수하고 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그러나 바람 소리 때문에 양을 스무 마리도 세기 전에 다시 눈을 뜬다. 바람 소리가 심해질 때마다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 결로 방지 숨구멍으로 바깥을 내다본다.

폭풍이 지나간 잔잔한 아침


모래 폭풍의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보초를 서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다 됐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피곤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텐트는 날아가지 않았다. 지퍼를 열어본다. 전실(천장이 있는 텐트 앞 여유 공간)에는 모래로 꽉꽉 채워진 운동화가 ‘왜 이제서야 나와’ 하는 듯 입에 모래를 가득 문 채 날 쳐다본다. 밖으로 나와 보니 거꾸로 박아 놓은 테이블은 모래톱에 파묻혀 다리 2개만 겨우 보였고, 먹다 만 피자 박스와 술병들은 형체도 없이 모래 속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해변에 우리 텐트만이 노란 무인도처럼 떠 있다. 마치 모래가 살아 움직이는 화성에 온 느낌이다. 맷 데이먼이 영화 마션을 찍었던 요르단 와디럼 사막이 이런 모습일까. 후진항의 모래 해변은 용들이 배밀이한 것 같은 거대한 대지 미술 작품이 되어 있었다. 구부러지는 S자 곡선 위로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잔바람이 모래 안개를 만들며 휘몰아치고 있었고, 아침 햇살이 비치는 해안엔 밤새 분 바람은 기억도 못 하는 듯 윤슬이 반짝였다. 

 

해변 모래 캠핑이 선사하는 여러 가지 선물(!)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장비에서 계속 모래가 나와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아무리 털어내도 떨어지지 않는 잔모래가 사이사이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해변으로 캠핑을 간 캠퍼들은 장비에서 모래가 10년 동안 나온다고들 한다. 그러나 A와 나는 ‘태어난 김에 사는 것처럼’ 장비를 대충 털고 차에 집어넣는다. 차도 모래 천지가 되겠지. 뭐 어쩔 거야. 침낭을 배낭에 집어넣으며 모닝 꾹꾹이를 해본다. 쿡쿡 웃음이 나온다.

 

바람이 먹구름을 몰아낸 건지,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빛나는 하늘과 구름은 밤사이 다른 행성에 떨어진 느낌을 선사했다. 양양 후진항 캠핑은 3가지를 남겼다. 기상은 시시각각 바뀔 수 있다는 것, 바람 부는 해변에선 4방향으로 가이라인을 박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폭풍이 지나간 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 그렇게 두피까지 모래로 가득 찬 모래 요정 둘은 눈부신 바다 풍경을 보며 집으로 향했다. 모래는 유한하지만 인생은 무한하다. 자, 오늘은 어떤 해변으로 향해야 할까. ✉️

박찬은은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캠핑과 스쿠버다이빙, 술을 사랑한다. 삐걱대는 무릎으로 오늘도 엎치락뒤치락 캠핑과 씨름하며 퇴사 욕구를 잠재우는 중이다. 그의 캠핑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camping_cs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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