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첫 번째 흄세레터

안녕하세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흄세)의 편집자 흄입니다. 편집자들이란 대개 조용히 숨어 있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렇게 공개적인 편지를 쓰자니 무척 떨리네요. 더구나 ‘휴머니스트 세계문학’이라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리즈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조금 생뚱맞긴 하지만, 제가 편집자로 첫걸음을 뗐을 때의 이야기부터 꺼내볼까 합니다(‘라떼는 말이야’라니 어쩔 수 없이 연식이 드러나네요😅).

 

저는 세계문학 고전 시리즈를 출간하는 출판사에서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흄세처럼 새롭게 출범한 시리즈여서 이래저래 참 바빴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대학을 갓 졸업한 초보 편집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죠. 출근 첫날, 마감을 앞두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배들에게는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어떤 경건함(?)까지 느껴질 정도였어요.


퇴근 시간이 되자 주간님께서 “흄 씨, 그만 들어가봐요”라고 말씀하셨지만,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혼자 퇴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조금 더 있다 가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대답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주간님은 “그래?”라고 혼잣말하시더니 더는 퇴근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어리바리 우물쭈물하다가 퇴근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저는 출근 첫날에 11시까지 야근을 하게 됩니다😱


그때는 선배들이 왜 그렇게 집에도 가지 않고 원고를 보고 또 보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세계문학 고전 시리즈의 론칭을 눈앞에 둔 지금은, 적어도 그때 그 선배들의 ‘설레고 불안해하는’ 이상야릇한 심정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나저나 그 많던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_《프랑켄슈타인》에서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에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프랑켄슈타인이 친구를 회상하며 하는 말입니다. 꽤 오랜 시간 편집자로 살아왔지만, 그러니까 꽤 오랜 시간 ‘남의 책’을 만드는 삶을 살아왔지만, 시즌 1 다섯 권의 책을 만들면서 만약 ‘내 책’을 내게 된다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전개라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사라진 줄 알았던 편집자 생활을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이 떠올라서 조금 놀랐습니다.

 

흄세는 매 시즌 하나의 주제로 연결해 읽을 수 있는 다섯 편의 고전을 출간합니다. 그 첫 번째 시즌의 주제는 ‘여성과 공포’입니다. 바다 건너 100여 년 전의 여성 작가들이 쓴 다섯 편의 공포소설을 엄선했습니다.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이유만으로도 손가락질받아야 했지만 이들은 소설 쓰기를 절대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현실의 영역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과 공포를 불 꺼진 책상에서 엎드려 눌러쓴 것 같은 축축하고 날 선 문장들로 그려냈죠.

“두 세기 전 여성의 삶을 지금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압도적인 공포가 있다.”

_천희란(소설가)

여성에 대한 낡은 클리셰 대신 갖은 증오로 중무장한 《프랑켄슈타인》의 섬뜩한 괴물을 탄생시켜 세상을 놀라게 한 메리 셸리, 인간이 가진 어두운 본성을 섬세하게 포착해냄으로써 극도의 공포감을 만들어낸 엘리자베스 개스켈, 《순수의 시대》의 작가가 썼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진홍빛 공포의 세계를 그려낸 이디스 워튼,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규정하고 차별하는 세상에 맞서야 했지만 빼어난 지식과 매력을 갖춘 독보적 캐릭터를 탄생시킨 버넌 리, 문학사에서 가장 단단하고 정교하게 축조된 ‘유령의 집’으로 손꼽히는 《초대받지 못한 자》를 써낸 도러시 매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게 누구든 한 사람의 인생에서 ‘첫 마음’이란 결코 폐기하거나 무시할 수 없습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 《경애의 마음》에 나오는 것처럼 “조금 부스러지기는” 해도 “파괴되지 않”죠. 사람의 그것처럼 책에도 삶이 있고 살아갈 미래가 있다면, 여기 처음 선보이는 시즌 1의 다섯 작품들에게도 모쪼록 수많은 독자들과 함께하는 근사한 앞날이 펼쳐지길 기대해봅니다.

“인생은 근사해질 수 있어.”

_《초대받지 못한 자》에서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1. 여성과 공포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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