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금주의 에세이 당번 야망백수입니다. 놀기 좋은 계절의 여왕 5월, 다들 징검다리 휴일을 활용해서 휴가 다녀오셨나요? 저는 제주도로 조금 긴 휴가를 다녀왔는데요(아 또 가고 싶다), 돌아보니까 이전에 떠났던 여행들이랑 밥벌이를 시작하고 나서 떠나는 휴가랑은 살짝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오늘 이야기엔 이 콩알만 한 다른 점을 달걀만 하게 부풀려서 한번 적어봤어요.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휴가를 떠나시나요? 여러분의 휴가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오랜만에 공항에 왔다. 한두 시간 뒤면 제주도에 도착해 2주간의 휴가를 보내게 될 참이었다. 평일 저녁의 청주공항은 한적했다. 국내선 탑승 게이트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모바일 체크인을 하며 생각했다. ‘나 지금 제주도 왜 가냐’ 나는 여행을 떠나기 앞서 명확한 의미를 갖춰놓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여지까지 내게 여행이란 곧 마침표였다. 수능 후, 전역 후, 이별 후, 졸업 후, 퇴사 후. 굵직한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몇 달씩 긴 여행을 갔다. 그러나 이번 휴가는 다르다. 그냥 어쩌다 보니 짬이 났고, 마침 비행기 표 값도 싸길래 떠나는 휴가였다. 그러나 이건 이유를 표면적으로 둘러대는 너스레는 될 수 있어도 진짜 동기는 아니다. 짬이 난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제주도에 가야 한다는 법도 없거니와, 비행기표야 찾아보면 언제나 싼 날이 있기 마련이니까. 별 이유도 없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공항에 있다는 사실이 마냥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보안검색대에 배낭을 통과시키듯 내 머리통을 통과시켜 이 여행이 단순한 충동소비인지, 아니면 이전의 여행들처럼 마침표인지,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끝나기라도 한 것인지 속시원하게 들여다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게이트 안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나는 다들 어떤 확실한 의미를 갖고 이 평일 저녁에 비행을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게이트 안쪽의 카페에서 파는 터무니없이 비싼 커피를 사러 갔다. 2 탑승 게이트에서 커피나 빵 따위를 사 먹는 것은 내겐 여행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다. 나는 여기서 항상 설렘보단 불안을 느낀다. 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모든 게 제자리에 있을까? 친구들은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이 여행을 하는 동안 너무 오래 논 나머지 바보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언가를 사 먹는 건 이런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카드결제를 하고 음식물을 받아들고 식도로 음식물을 넘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니까. 커피를 한 잔 사 먹을 정도의 돈을 버는 한 절대 투명인간이 되는 일 따윈 없다고 되뇌면 안도감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고맙게도 나의 실존을 보장해 주는 커피를 마시며, 어쩌면 나는 이 기분을 느끼려고 휴가를 결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일상에서도 종종 탑승게이트에서의 ‘투명인간 포비아’를 겪곤 했다. 회사에 속해있지 않은 반백수 프리랜서는 얼마나 잊혀지기 쉬운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려 회사를 나왔는데 회사를 나오고 나서는 왜 ‘이대로 괜찮은가?’만 고민하게 되는가. 이런 고민은 꼭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무릎통증 같다. 앓아누울 정도는 아니지만 어쩌다 용을 쓰고 난 다음날엔 몹시도 쑤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무기력을 맛보게 만든다는 점이 무릎통증과 꼭 닮았다. 통증을 곱씹으며 ‘아 이제 더 이상 젊지만은 않구나’라는 씁쓸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도. 어쩌면 나는 지금 통증이 임계치를 넘어 만사 제쳐두고 병원에 가는 심정으로 휴가를 떠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공항의 정돈된 차가움이 병원 대기실의 그것과 겹쳐 보인다. 여기가 병원이라면 비행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사는 것은 환자를 비슷한 상황에 몰아넣어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심리치료일 테고. #3 나의 무의식이 결제한 첫 번째 심리치료 프로그램-커피를 거의 다 마셔간다는 이야기다-이 막바지이건만 아직 비행기 도착시간까지는 꽤 남아있어서 숙소를 미리 찾아보기로 했다. 숙소를 고르는 것은 공항 너머에 있는, 나머지 휴가의 성질을 규정짓는 일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이와 즐거운 긴장감을 누리며 만남의 가능성을 엿볼 것인가, 아니면 혼자 쓰기 아까운 호텔방에서 조금 궁상맞긴 하지만 편안한 고독을 즐길 것인가. 여태까지 나는 별 고민 없이 게스트하우스를 고르는 타입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선 왠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낯선 누군가와 언제까지 여행하세요?로 시작되는 뻔한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새벽에 조심조심 공용욕실을 사용하는 것을 상상하니 금세 피로해졌다. 무엇보다도 코로나가 무서웠다. 코로나보다 코로나에 걸려서 멈추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일상을 멈추고 휴가를 떠나온 마당에 멈추는 것이 두렵다는 게 말이 안 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자의로 멈추는 것과 타의로 멈춰지는 것은 다르니까. 사실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들은 따지고 보면 ‘멈춤’이다. 여기서 수익이 멈추면, 커리어가 멈추면, 성장이 멈추면, 인생이 멈추면 어떡하지. 이 ‘멈춤 포비아’는 앞의 ‘투명인간 포비아’와 비슷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투명인간 포비아는 커피 한잔 값으로 쉽게 극복이 가능하지만 멈춤 포비아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소견으로 멈춤 포비아는 아무래도 좀 젊을 때 차도가 좋은 것 같다. 몇 년 전엔 멈춰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말의 약발이 좋았던 것 같은데 이제 약발보다 부작용이, 진짜 멈췄을 때의 위험부담이 더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냥 깨끗하게 정돈된 호텔에 가기로 했다. 로비도 으리으리하고, 통창도 있고 욕심포함 면적도 이 넘는, 4성급 호텔이었다. 게다가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4인실 침대 하나보다 고작 7000원이 더 비쌀 뿐이었다. 아무래도 제주도에선 만남의 가능성이 자아내는 즐거운 긴장감을 숙박의 편안함보다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긴장감을 즐길 만큼 젊고 건강한 마음이 이젠 없다. 내 마음은 정돈된 하얀색 침구를 보며 긴장을 풀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나의 휴가는 공항 게이트에서 간단한 심리치료 후에 요양원으로 이송되는 일정인 셈이었다. #4 숙소를 고르고 나니 피곤해졌다. 아직 탑승시간까지는 20분 정도가 남았다. 불편한 공항 의자에 기대어 이번 휴가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2주는 꽤 긴 시간이니까 호텔에서 좀 쉬고 난 다음 새로운 모험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발은 크록스 밖에 안 가져가지만 백록담을 보러 한라산을 오르겠다고 객기를 부릴 수도 있을 것 같고, 낯선 누군가와 맥주를 마시며 밤바다를 산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새로 사귄 친구와 호텔방에서 시장에서 파는 한 접시 만 원짜리 모둠회를 나눠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바이크를 빌려서 해안도로를 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일을 거절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프리랜서지만 ‘아 제가 지금 제주도에 와 있어서요..’라는 조심스러운 자랑으로 거절의 말을 전하는 객기를 부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상에 빠져있는데 별안간 안내방송이 귀에 꽂힌다. “00항공에서 마지막 손님을 찾습니다. 000님. 000님.“ 내 이름이었다. 나를 마중 나온 직원과 같이 공항을 달리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시간을 헷갈려서요...” 내가 멍청한 공상에 빠져있는 탓에 저 거대한 비행기를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지만 승무원들은 친절한 미소로 나를 환영해 줄 뿐이었다. 나는 그 자애로움에 적잖이 감동한 채로, 한편으로는 제주도에 가면 얌전히 요양이나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이 거대한 앰뷸런스로 이어진 튜브를 통과했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나면 공항 입구에 심어진 몇 그루의 야자수가 남국의 정취를 자아내는 나의 요양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자리에 앉아 이륙의 떨림을 전해오는 기체를 느끼며 이제 중요한 문제는 제주도에서 푹 쉬고 잘 돌아오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휴가가 마침표가 될 것인지 행갈이가 될 것인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겠지만 왠지 마침표라면 이번이 내가 쓰는 마지막 문장이 될 것만 같다는 재수 없는 생각을 애써 삼키며, 제주도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이 행갈이가 절묘했노라고 회상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 ‘휴가’라는 주제가 아직 쓰인 적 없다니, 놀랍네요. 마침 저는 지난주에 3.5일을 쉬었고 이번주에 4.5일을 쉴 예정입니다. 그래서 할 말이 많,,,지는 않네요. 지난 3.5일 간 한 일이라곤 술 마시고 누워있기 정도뿐이거든요. 그렇게 맞는 저녁은 참 허무합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하루가 다 갔네! 아이고! 난 망했다! 싶어요. 평일의 18시는 자유시간의 시작이지만 휴일의 18시는 자유시간의 끝 무렵이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멈춤 포비아로 비롯되는 증상 중 하나라고 봅니다. 역시 사람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걸까요(물이 반이나 남았네!). 다가오는 4.5일은 좀 더 뻔뻔하고 최선을 다해서 술 마시고 누워 있어봐야겠습니다. ![]() 항상 그렇지만 야망백수님의 글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야망백수님은 본인만의 철학이 뚜렷한 사람입니다. 생각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사람이고 자기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는 사람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야망백수님의 깊은 고민과 치열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간 아무런 성찰 없이 바쁘게만 살았던 제 모습을 반성하게 되네요. 고민에는 고민을 위로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걸 야망백수님과 야망백수님의 글을 보면서 느껴요. 누군가의 고민에 말을 얹는 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휴가를 감에 있어서도 이렇게 예리하고 날카롭게 방향을 잘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상에서의 방향 설정은 말해 무엇 할까 싶습니다. 야망백수님은 포비아로부터 충분히 휴가를 다녀오셔도 괜찮을 거 같아요. ![]() '휴가'라는 단어가 어쩐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아마도 회사에 서너 명쯤 있는 '쟤는 왜 휴가를 안 가니?'의 '쟤'를 담당했기 때문일까요. 그러고 보면 저는 한 달을 일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월차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될 때는 탄력을 받아서 속도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여유가 있을 때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거든요. 사장도, 팀장급도 아닌 사원 나부랭이 주제에 말이죠. 덕분에 지나온 곳에서 미사용 연차수당을 넉넉하게 챙겨 받았지만, 숨 고를 시간 없이 내달린 탓에 직장생활에 금방 넉다운이 되곤 했습니다. 여러 번 참혹한 결과를 겪었으니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끝내고 난 뒤에는 반드시 휴가를 쓰겠다고요. 풀칠러A ☆달의 ☆족 어플을 사용할때 양심의 가책인지, 환경보존 대한 순수한 관심인지, 교양인에 대한 자의식인지는 모르겠다만은 꼭 "일회용품은 필요없어요"를 선택하곤 합니다. 그게 얼마나 지구를 위할 수 있는 일이겠어요. 그저 닥친 선택지에서 이유 모를 마음의 캥김을 따라 환경에 폐는 좀 적게 끼치겠지 싶어 내 일상이 조금 불편해 지는데에 의의가 있지 않나 그것 좀 멋있지 않나 별것도 아닌 일로 자기위로 해보고 있습니다. 음.. 시작이 반이라지만 능동적 실행가 분들을 따라 환경보호를 하려면 한참 남은것 같아요. 아매오 '감당 가능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풀칠러님 같은 분들 덕에 지금과 같은 분위기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 풀칠러B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에서 5월 한달동안 안 쓰는 에코백 10장을 가져가면 원하는 가방 한점에 D 메세지를 프린트해준다고 합니다! 야망백수 와 저 에코백 3장 있는데 제꺼랑 합쳐서 열장 만드실분 계신가요?
풀칠러C 삐빅 저는 애독자입니다 야망백수 반갑습니다 애독자님. 환경보호를 외치는 종이컵 짤 제가 진짜 좋아하는 짤이랍니다 호호 오늘 저희가 보내드린 이야기들, 어떠셨나요? 저희는 여러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일하면서 겪은 일, 늘상 끌어안고 있는 고민, 오늘 편지에 대한 피드백, 무엇이든 좋답니다. 아래 버튼을 눌러 여러분의 풀칠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