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재필과 가연 그리고 래혁> 프로젝트곳곳: 공간에 춤을 남기는 일 * 인터뷰이: 윤가연, 김래혁, 정재필 * 인터뷰어 : 혜진, 소똥 * 인터뷰 편집: 혜진 💬 음성스케치 👆 파란색 텍스트를 누르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서문 작년 나는 37년 된 아파트로 첫 독립을 했다. 단지에는 여러 색의 현수막들이 자주 걸린다. 흰색, 노란색, 파란색 현수막은 재건축을 두고 서로 다른 말을 한다. 큰 글자로 외치며 싸우는 모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본다. 싸움이 더 길어지기를 바라면서. 곧 재건축이 될 집에 사는 것은 신나면서도 슬프다. 어차피 무너질
집이니 멋대로 꾸밀 수 있어 좋지만, 전부 사라질 일만 남았다는 사실에 이따금 착잡해진다. 이곳에 있던 이야기들은 다 어디로 갈까. 가끔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는다. 성남시에도 재개발의 바람이 매섭게 불고 있었다. 곳곳 연습실의 창밖에는
저 멀리 크레인들이 무리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은 머지않아 언덕의 빼곡한 집들을 하나씩 무너뜨리며 성큼성큼
걸어올 것이다. 곳곳은 그렇게 사라져가는 성남시 수정구에 춤을 남기고 있다. 온 동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아이들과 함께 골목 이곳저곳에서 춤을 춘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지금의 순간을 서로의 몸에 새긴다. 춤을 남기고 온 자리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프로젝트곳곳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가연
저희는 프로젝트 곳곳이고요. 움직임 기반의 문화예술교육과 공연 활동을
하는 단체이고 다들 현대 무용을 전공했어요. 저 윤가연이 오랜 시간 살고 있었던 성남시 수정구로 이렇게
친구들을 불러 모아서 시작된 단체예요. 성남시를 거점으로 해서 동네에 춤을 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윤가연이고요.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 성남에서는 지역
주민으로 살면서 동네 아이들과 같이 춤추기 활동을 하고 있고, 그렇습니다. (웃음) <춤을 뿌리는 세 사람과 혜진> 혜진
성남에는 어떻게 처음 오게 되셨나요?
가연
수능이 끝나고 대학을 안 갔어요. 사실은 집에서 거의 쫓겨나다시피
올라와서(웃음) 전전하다가 여기가 제일 집값이 싸서 정착했어요. 여기서 재수 준비도 해서 대학도 가고요. 예전에는 주 활동지는 서울이었고
성남은 거의 잠만 자는 곳이었어요.
혜진
그러다가 이제는 잠만 자던 곳에서 조금 더 확장된 것이군요.
가연
그렇죠. 제가 8년 정도
활동했던 무용단을 그만두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이 동네를 다시 보게 됐던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곳곳이 시작됐어요.
재필
저는 초기 멤버는 아니고 어느 정도 갖춰져 있을 때 곳곳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아이들에 대한 마음이 있어서 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을 5년째 하고 있는데, 작년에 배정된 곳이 마침 이 동네였어요. 그래서 가연 대표님과 만났고
수진동에서 아이들과 춤추면서 수업을 하고 있어요. 장소, 시간이
잘 겹쳤던 걸 보면 곳곳과는 인연인가 싶었죠. 저도 계속 춤을 혼자서 연구하고 있고, 다들 그러시겠지만 모든 것에 있어서 과정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어떤 춤을 춰야 되는지에 대해. 예술교육은
곳곳의 동료들이랑 같이 해나가면서 방향성을 정리해 나가는 중이에요.
래혁
안녕하세요. 저는 김래혁이라고 하고요. 저도 대학원 2학년 때부터 무용단에 들어가서 8년 정도 활동하다가 작년에 관두게 되었어요. 해외 공연에 갈 일이
많은데 2주 격리기간이 있다 보니까 생계와 자녀 키우는 일이 너무 불안해졌어요. 결국에는 삶을 위해서 무용단을 관두게 된 거죠. 그래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지원금 받아서 안무도 만들고 작은 공연도 하고 다른 예술 계통 사람들이랑 콜라보레이션도 하고 했었는데,
결혼을 하니까 현실적으로 차츰차츰 불가능해졌어요. 지금은 열심히 사는, 열심히 돈 버는, 열심히 입시교육 하는 아빠로 살고 있습니다. 프로젝트곳곳은 4년 차째 함께 하고 있어요. 예술교육은 제가 관심이 많아서 대학 때부터 해왔었고요. 그나마 프로젝트곳곳에서
최소한의 예술성을 가지려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 래혁과 재필님은 보통은 대학 졸업을 준비할 나이인 이십 대 중반에 무용
전공으로 학교에 입학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모험적인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춤을 추며 살아야겠다'라는 결심을 하시게 된 사건 또는 순간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래혁
저는 이게 너무 명확해요. 어릴 때부터 춤을 너무 좋아했고, 그때부터 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웃음) 근데 한 번도 배워보지 못했었어요. 부모님께서 그건 딴따라다 해서 못 하게 하셔가지고. 스무 살까지
미대 입시 재수를 했는데 그때 서야 무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셨어요. 어릴 때 학예회 때 췄던 춤으로
시험을 쳐서 예술 전문대의 실용무용과를 들어갔고, 처음으로 춤을 배워봤어요. 얕지만 여러 종류의 춤을 배웠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1년 과정을
마칠 즈음에 운이 좋게 군대를 상근으로 가게 되어서 무용학원에 다니기도 했어요. 춤을 더 잘 추고 싶어서요. 전역할 때쯤 학원 원장님께서 현대 무용으로 다른 학교의 입학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어요.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고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제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겠구나 싶어서 늦은 나이에 준비하고 입학하게
됐어요.
혜진
정말 실력이 있으셨나 봐요. <춤을 너무 좋아 했지만 미대에 갈 뻔 했던 래혁> 래혁
실력이 있다기보다 정말 춤이
고팠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처음부터 허락하셨으면 제가 그렇게 열심히 안 했을
텐데, 20년을 참다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힘들어도 다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필
저도 말하자면 긴데, 고향이 시골이었어요. 래혁이 형처럼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는데
배울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그래서 서울로 가야겠다고 생각 해서 중학교까지 시골에서 다니다가
혼자서 서울로 올라왔어요. 혼자서 왔으니 생활하려면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무언가를 배우려면 최소한의 자본이 필요한데 그 당시에는 미성년자는 몇 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는 제한도
있었고, 시급도 굉장히 적었어요. 월세를 내고 생활비 하고, 서울 왔으니 메이커 옷도 사고 싶고 하니 사실 학원 다닐 돈까지는 없었어요.
물론 제가 더 열심히 악착같이 했으면 됐겠지만 그러지는 못했어요. 너무 지치기도 했고요. 그렇게 이런저런 경험들을 하면서 여차저차 사는 와중에도 혼자서는 그냥 춤을 췄어요. 남는 시간이 있으면 옥상에 올라가서 춤을 추고요. 허우적댔겠죠?(웃음)
혜진
학교에 가겠다고 다짐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재필
스물 한 살 때 교회에서
아프리카로 단기 선교를 갔었어요. 춤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댄스팀에 들어가서 형, 누나들과 섞여서 안무를 준비해 갔어요.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과
풍경들, 작은 사건 하나하나가 저한테는 크게 다가왔어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에는 길지만 어떤 스파크가 제 안에서 일었어요. 전에는 고등학교 안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려면 제도권 안에서 공부하는 게 필요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춤을 좋아하고 계속하고 싶었으니까 무용과에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거죠. 이후에
군대에 갔는데 검정고시를 보면 포상휴가를 준다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3박 4일 휴가도 얻고 고등학교 졸업도 하고요.(웃음) 제대하고 스물네 살의 나이에 입시 시험을 봐서 다음
해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혜진
영화 같아요.
소똥
그러니까요.
💭 꿈다락토요문화학교를 통해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이번 사업을 통해 진행할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가연
프로젝트곳곳은 공간에서 받을 수 있는 자극들과 즉흥성에 관심을 두고 아이들과 동네 곳곳에 춤을 남기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올해 프로그램은 ‘공간 탐사대 : 교차 공간’ 인데요. 2019년
꿈다락을 시작했을 때부터 매년 다른 컨셉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작년,
재작년에는 계속 밖에서만 활동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실내에 저희 공간이 생겼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실내와 실외를 오가면서 다양하게 몸을 탐색해 보는 시간, 공간을
탐색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공간탐사대 친구들> 혜진
선생님들께서는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래혁
저는 이런 거 하면 된다고 말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더라고요. 저번에는 몸으로 만들어지는 서로의 공간 사이를 파고들면서 춤을 추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큰 친구 한 명이 나무라는 상황을 설정하더라고요. 그 공간에
들어가다가 나무가 무너져서 죽으면 이끼가 생기고 그러면 거기에 또 작은 아이들이 막 들어가고. 그런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었어요. 또 한 번은 제가 우리 똑같이 걸어가자 했는데, 누군가 옆으로 걷더라고요. 저는 앞으로만 걷는 걸 생각했지, 옆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 자유로운 발상들에서 배우는
것 같아요.
재필
저는 개인적으로 체화되었다고 생각될 때라고 생각했어요. 내 몸에 남아
있을 때요. 무언가 배우는 자리에서는 산발적으로 여러가지가 머릿속에 막 들어오고 나가면서 정신이 없어요. 그 당시에는 배운다는 걸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시간이 지난
후에 제가 그걸 활용하고 있을 때 내가 이걸 배웠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연
저는 스스로한테 낯선 것을 발견했을 때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었구나 할 때. (웃음) 외부 자극에
의해서 내가 하는 반응에 어, 내가 이런 생각을 사실 하고 있었네? 라는
걸 스스로 느꼈을 때 굉장히 제가 낯설게 느껴져요. 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요. 💭 공간탐사대라는 암호명으로 아이들과 성남의
곳곳을 탐사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또는 기억에 남는 성남의 한 곳을 소개해주세요. <곧 사라질 성남시 수정구의 언덕 집들> 가연
이 언덕 뒤에 제가 성남에서 제일 오래 살았던 집이 있어요. 8년
정도 살면서 이야기들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옥상을 제가 단독으로 쓸 수가 있어서 옥상 파티도 많이
했었어요. 애정이 많이 갔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와서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거든요. 제 기억에만 이렇게 존재하니까 더 애틋해진 것 같아요.
래혁
초반에 수업을 많이 했던 수진1동 놀이터가 기억에 남아요. 거기가 그냥 좋습니다. 불량 학생들도 지나가고, 아저씨도 지나가고, 와서 말 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차 소리도 약간 나고, 옆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정자도 있고, 주차장도 있고. 완전한
놀이터라기보다는 뭔가 믹스되어 있는 공간이었어요. 어떤 때는 주차장에서, 어떤 때는 운동기구 앞에서 수업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자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그 근처의 골목들을 다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골목, 계단, 공터, 주차장
벽. 모든 것들이 다 기억이 납니다. <수진1동 놀이터 일까?> 재필
저도 동일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완전 제 마음을 똑같이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래혁
둘 다 이 동네에 안 살다 보니까 수업을 한 곳이 기억에 남는 것 같네요.
💭 프로젝트 곳곳은 '즉흥'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즉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연
제가 생각했을 때는 리액션인 것 같아요. 꼭 그게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소리, 공간이 주는 자극 또는 오늘의 기분이 주는 자극들이 있을 거예요. 이런 자극에서 나오는 나의 리액션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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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
내가 보고, 내가 다시 해석해내는 게 나다운 즉흥인 거네요.
래혁
그렇죠. 해석을 하는 거죠.
가연
약간 연결되는 것 같은데, 나의 리액션이 또 누군가한테는 액션이 될
수도 있잖아요. 즉흥에서 그런 것들이 연쇄적으로 막 일어나는 게 저는 재밌어요.
재필
(한참의 침묵) 앞에서
나오지 않은 대답을 하려면…
일동
하하하
소똥
저도 춤을 좋아하거든요. 저는 정해진 안무를 정해진 박자에 맞춰서
딱딱딱 추는 것에서 희열을 많이 느끼는 편인데 즉흥은 그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즉흥을 할 때의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에게 주는 구체적인 가이드나 분위기, 그런 것들에 신경 쓰시는 것이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래혁
아이들마다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어요. 한 명만 나와서 하면 힘들지만 무리 속에서 즉흥을 하면 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래도 안 되는 경우 계속 응원의 말을 해주죠. 한 번만 해보자. 이걸 해보려고 하는게 중요한 거야라고요. 계속 말을 던져도 안 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 친구들은 가연 선생님이랑 재필 선생님이 가서 손을 붙잡고 같이 춰요. 그 친구의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성격 때문이니까 계속 옆에서 부대끼고, 섞이게
해주고, 웃겨주면 조금씩 열리는 것 같아요.
가연
저는 몸으로 많이 들이미는 것 같아요. 잘 못할 것 같으면 옆에 가서
살을 이렇게 붙여요. 계속 에너지를 주는 거죠. 에너지로
막 밀어붙이거든요, 저는. 계속 눈을 마주치려고 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못 움직이면 잘 쓰는 방법은 그냥 손가락 하나만 달라고 해요. 이 손가락 하나를 가지고 그냥
계속 앞 뒤로 왔다 갔다, 당기고, 밀고. 이렇게만 해도 아이의 마음이 열리게 에너지를 확 주는 것 같아요. <가연은 손가락 하나로 마음을 연다> 재필
(한참의 침묵) 앞에서
나온 얘기에..
일동
하하하
가연
하하. 빨리빨리 말해야 해, 그러니까 🏠 여러분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가장 집이라고 느끼는 장소나 대상 또는 순간이 있나요? 래혁
쉴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죠. 예전에는 집에 제 방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생기고 나서는 사실 저의 공간이 전혀 없어졌어요. 제가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은 제 침대 위에 있을
때나 식탁에서 밥 먹으면서 핸드폰으로 넷플릭스 볼 때. 그때가 제일 편안해요. 그리고 제가 전에는 누나랑 같이 살았어서 누나 집에 가면 제집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가끔 한 달에 한 번 정도 누나 집에 가서 소파에서 술 마실 때. 아, 이거 집이다! (웃음) 싶어요.
재필
저는 관계라고 생각을 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인간과 인간이
서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안정적인 관계요. 저는 그 느낌을
중학교 2학년 때 피아노학원 선생님으로부터 받았어요. 제
어린 시절 이야기는 너무 긴데, 아무튼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었어요.
그때 저는 머리도 안 감고 다니고 완전히 망가진 캐릭터였어요. 그런데 그 작은 피아노 레슨
방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저를 인격적으로 대해 주셨어요. 저를 따뜻하게 응시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사랑 받는 게 이런 것인가 라는 걸 처음 느꼈던 거죠. 저한테 용돈도
가끔 주시고, 피아노 학원비를 낼 수 없어서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에 그냥 다니라고 해주시고, 겨울에는 목도리를 선물해 주셨어요. 그리고 선생님 차를 타고 외식을
처음 해봤어요. 시골이라 30분 차를 타고 나가서요. 그때 음식을 먹었던 상호명을 기억하는 데 얘기하면 웃길 것 같아요.
일동
(웃음)
재필
👆 파란색 텍스트를 누르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이야기하는 재필과 숙연해진 래혁> 소똥
그 선생님과는 계속 연이 닿아있나요?
재필
네, 지금은 세 자녀의 엄마가 되셨어요. 그 분한테는 제가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연락드려요. 무조건. 제가 대학교 다닐 때도 그분이 매달 조금씩 생활비를 보내주셨어요. 그분도
그때 자녀 두 명을 키우고 계셨고 녹록지 않은 환경이셨을 텐데 2년 정도 매달 정기적으로 보내주셨어요. 선생님을 떠나서 제게 첫 번째 스승님이시고요. 제가 평생 갚아야
할 분인데,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혜진
다른 분들은 처음 들으시는 건가요?
가연, 래혁
네.
재필
숙연해지지 마시고요. (웃음)
일동
하하하
혜진
저도 여운이 계속 남네요.
가연
집은 진짜 쉼을 위한 공간인 것 같아요. 저는 집 밖을 나서기 시작하면서부터
완전히 모드가 바뀌는 것 같거든요. 맨날 장난으로 “다들
내 MBTI가 E인 줄 알지만 나 엄청난 I야”라고 말해요.(웃음) 한없이 게을러지는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이나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공간이 집인 것 같아요.
혜진
저는 고양이와 함께한 지 7년 정도 되어서 집에 와서 고양이를 어깨에
딱 안는 순간 난 집이구나, 느껴지거든요.
가연
저도 집에 강아지가 있는데 혹시 그 <홀리 모터스>라는 영화 보셨어요? 프랑스 영화인데 그 사람이 집을 나가는
순간부터 대본을 계속 받으면서 하루에 아홉 개의 삶을 살거든요. 광인도 됐다가 회사의 CEO도 되고요. 그렇게 살다가 집에 들어가면 그를 반기는 가족은 침팬지들이에요. 집에서 침팬지들이랑 같이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나오는데 약간 저 같았어요. 저도 맨날 생각해요. 아마 내 모습을 제일 잘 아는 이 세상의 생명체는
부모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우리 집 강아지일 거야! 라고요. <가연을 제일 잘 아는 유일한 생명체>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가연
먹고살 만하지는 않죠, 사실은.(웃음) 일 년 열두 달의 느낌이 너무 달라서 저는 그걸 따라가는 게 힘들거든요. 1,
2월은 일이 아예 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침체기죠. 코로나 전에는 외국에 그냥 나가버렸는데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고. 심적으로
그때 제일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전 년도에 쌓여왔던 모든 울분이 1,
2월에 막 터져 올라오면서 힘들어했다가 3, 4월까지도 그 여파가 이어지죠. 일이 한두 개는 들어오지만, 굉장히 불안정한 상반기를 보내고 나면
사람 혼이 쏙 빠져요. 6월부터는 아이디어 내면서 뭐 할까? 올해, 이제 정신 차리자 하고요. 뭔가 시작되면 11월까지는 너무 바빠서 다른 의미로 혼이 쏙 빠져요. 그렇게 12월에 정산까지 막 울면서 끝내면 다시 또 이게 반복이고요. 바쁘고
한가하고가 돈과 연결이 되어 있고, 제 멘탈도 계속 그에 따라 왔다 갔다 하죠. 매년 1월이 되면 ‘이제
안 해’가 되지만 이렇게 또..
소똥
그럼 그 비수기 때는 어떻게 버티세요?
가연
매년 다른 것 같아요. 사실 올해는 좀 힘들었어요. 그냥 거의 아무것도 안 했던 것 같고. 약간 우주에 있는 것처럼
지냈어요.(웃음) 집에 강아지가 있으니까 그래도 하루에 한
번 산책하러 나갔지만.(웃음) 친구들이 있어서 버텼던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저도 유익하게 잘 쓰고 싶어서 항상 다짐하는데 안 되죠. 내년에는 무조건 어학연수에 가기로 마음을 먹고 저와 약속했어요.
래혁
먹고 사는 거요? 예술 활동을 대부분 접고, 입시 강사로 풀타임으로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서 처음으로 우울증이 뭔지를 느껴봤어요. 한 달을 고민하다가 그냥 관두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더라고요. 아이들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던 거니까요. 그래서 일을 3분의
1정도 줄여왔어요. 먹고 사는 것에 목매지 않고 예술 활동을
하고 싶은데, 자녀가 없을 때는 그 밸런스가 맞았거든요. 공연도
하고 적당히 레슨도 하고, 자기 계발도 했는데 이제 그렇게 하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상황에 맞는 패턴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하 나, 돈은 어느정도 벌어야 하나. 계속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것 같아서
요즘은 세상에 이렇게 제 몸을 내던지고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어요.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내가 진짜 뭘 하고 싶은 거지? 이거는 정말 내 욕심인가?’를 생각해요. 무엇을 행하는 게 맞는 길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게
지금 저의 먹고사는 길인 것 같습니다.
재필
저는 가연 누나랑 래혁이 형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 같아요. 있고
없고의 일련의 흐름을 느끼는 것은 가연 누나랑 비슷하고, 아직까지는 자녀가 없어서 부담이 덜하지만 형이
가셨던 길을 언젠가 가야하니 남일처럼 안 느껴지고요. 사람마다 기준이 있을 텐데, 3이 있었던 사람이 2를 가지면 적다고 생각하겠죠. 물론 모든 게 상대적이지만 저는 1이거나 0이었기 때문에 현재 2가 있는 게 아직은 감사한 상황이거든요. 그렇다고 많이 버는 건 아니에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자 감상일 수도
있고요. 자녀가 생긴다면 책임감이 있어야 되고, 제가 1을 가졌다고 자녀도 1을 가지게 하고 싶진 않아요, 당연히.
혜진
앞으로도 래혁님이 어떻게 하시는 지에 따라서 느끼는 부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재필
네, 속으로 많이 배우고 있죠.
래혁
저처럼 안 사시길 바랍니다.(웃음)
일동
와하하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공손한 재필과 가연, 장난스럽게 V를 하는 래혁> 래혁
그나마 오늘 인터뷰한다고 약간 이렇게 사복 같은 추리닝을 입고 왔는데요. 365일
중에서 300일 이상은 추리닝을 입고, 청바지는 1년에 한 10번 입는 것 같아요. 주말에도
일 할 때가 많으니까요. 시계를 너무 갖고 싶어서 3, 4년
동안 고민한 끝에 이런 벽시계 같은 손목시계를 샀어요. 너무 귀엽더라고요. 가장 저다운 것 같고요. 이게 가죽이 아니라 고무거든요. 애들 고무시계 있잖아요, 그런 재질이라 장난감 같기도 하고요.
재필
원래는 거의 무채색 옷만 입었고, 옷이 많지도 않았어요. 그런 걸 선호했는데, 이 옷은 최근에 아내와 돌아다니다가 샀어요. 저는 무채색 옷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저는 이 색깔이 잘 어울린다고 하는 거예요. 이제부터는 색깔이 들어간 것들을 조금 입어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가정도 생겼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예전의 정체성과 달라진 부분도 있고요.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이제 찾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이 옷을 입고 왔습니다.
가연
얼마 전에 제 생일 선물로 받은 티셔츠인데요. 제 성격이 말티즈 같다고. 하하하하. 어떤 점이? 라고
물어봤는데.(웃음) 참지 않는다! 즉각 즉각 반응하고, 상대가 누구든지 건드리면 잘 짖지만(웃음), 결론적으로는 사람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입고 왔어요. <가연의 옷에는 말티즈가 세마리나 있다> 💭 프로젝트곳곳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 파란색 텍스트를 누르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시간이 흐르면 곳곳은 어떤 모습일까> 프로젝트곳곳 인터뷰: 공간에 춤을 남기는 일 끝. 님! 해당 뉴스레터를 읽고 '프로젝트곳곳'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 작성해주세요! 응원의 메시지, 인터뷰를 보며 느낀 생각, 궁금한 점, 함께 해보고 싶은 일, 전하고 싶은 소식 등등 글의 내용은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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