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사냥』연재를 마치며

안녕하세요? 이민주입니다.
연재를 마치며 구독자 여러분께 짧게나마 감사와 소회를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최근 르노코리아 ‘집게 손’ 사태를 비롯한 페미사냥 사건들을 보며, 상식의 ‘약한 고리’를 생각했습니다.

르노는 여성 노동 투쟁의 역사에서 (정말 나쁜 의미로) 기억에 남는 이름이에요. 르노삼성자동차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게 부당 징계, 직무 정지, 대기 발령, 부당 업무 배치 등 불리한 조치를 가해 유죄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2013년 6월 시작된 피해자의 소송은 8년 만인 2021년에야 회사 책임을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는 최종 판결을 끌어냈어요. 이런 성차별적이고 반노동적인 기업문화는 르노코리아가 얼토당토않은 페미사냥 요구에 여성 노동자를 내던지는 데에 한몫했을 것이 틀림없겠지요.

연이어 일어난 안타까운 참사에서도 사실 ‘페미’와 여초 커뮤니티가 가해자라거나 피해자를 조롱했다는 날조를 받아 써주는 언론 보도가 계속되었습니다.
일터에 만연한 여성혐오, 쉬이 여성을 희생양 삼는 분노…… 이런 약한 고리가 하나씩 끊어지며 페미사냥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 * *

페미사냥이 모든 여성의 숨통을 조여오는 현실은 일상에서도 느껴집니다.

근래 제가 만나는 많은 분들이 생계와 신변 위협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연대하고 후원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달라고 말씀하세요. 페미니즘 활동으로 남는 아주 작은 흔적(수백 명의 연서명 명단 중에 본명이 들어가거나 모임 후기 사진에 뒷모습이 찍힌 정도까지)조차 염려하시기도 하고요.

《페미사냥》이라는 직설적인 제목의 뉴스레터를 전하며 저는 종종 구독자 여러분의 안부를 걱정하고, 뒤이어 이런 현실에 분노가 치밉니다.

몇 년째 페미사냥을 파헤치고 있음에도 저는 매번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곧잘 무너져버립니다. 파국적인 사고로 잠을 못 자고 화병으로 온몸이 쑤셔서 아무것도 읽고 쓸 수 없게 되기도 해요.

때로는 페미사냥 자체만큼이나 여남 모두의 잘못 운운하는 양비론, 페미니즘 운동 바깥의 안전한 자리에서 무심하게 툭 던지는 논평들, 페미사냥을 자기 정당화 근거로 이용하는 혐오 정치, 비판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데서조차 드러나는 성별 격차(숨차네요;;) 따위가 저를 침대에 처박혀 끙끙 앓게 만듭니다. 신음처럼 욕만 내뱉으면서요……

사실 뉴스레터를 보내는 동안도 내내 그런 상태였지만, 여러분이 담벼락에 남겨 주신 말씀들이 제 멱살을 붙들어 책상 앞에 앉혔던 것 같습니다.

제가 쓰는 글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 다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는 아닌지 고민할 때도 “이런 메일이 필요했어요.”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가려운 곳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뉴스레터” 같은 담벼락 글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담벼락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요. 같은 문제의식과 목표로 연결된 이들의 구체적인 면면을 마주하게 하고, 그 사이의 연대와 마음 씀을 모으는 구심점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약한 제가 자신을 덜 미워하며 의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 주신 모두에게 감사드려요.

* * *

다섯 편의 짧은 레터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페미사냥에 개입된 문제는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신자유주의 질서와 시장화, 온라인 환경, 반지성주의와 극우주의, 친밀성과 욕망의 정치경제 따위가 9년이라는 시간, 수십 개의 사건 사례에 뒤엉켜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이것이 성차별 구조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페미사냥은 시장에서 페미니스트를, 나아가 모든 여성을 상시적 감시와 강탈과 폭력으로 길들이려는 시도이고, 성차별로 이득을 보는(혹은 그러리라 믿는) 모든 주체가 여기에 공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책에서 이런 구조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더 드러낼 수 있도록 애써보려 합니다.

제가 알게 된 것, 가끔은 의도치 않게 알아버린 것들을 페미니즘 운동에서 쓸만한 지식으로 남기기. 그것이 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제가 쭉 품어온 소망이었습니다.

책을 준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예요. 『페미사냥』에 박아 둔 실제 사례와 증거가 다른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면, 누군가 『페미사냥』에서 자기 경험을 설명할 언어를 발견하게 된다면, 『페미사냥』에서 인용할 여성학 연구가 더 많이 읽힌다면,

더 크게 바라자면 『페미사냥』을 읽고 누군가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페미니스트 동지들(멋대로 이렇게 부릅니다)의 구심점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가장 기쁘겠습니다.

그럼, 꼭 다시 만나요.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극-내향인이지만
페미니스트 동지가 되고픈
이민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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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출간 예정 『페미사냥』 단행본에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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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연재 전편 보기

#1 페미사냥이 시작됐다

#2 당신들만 게이머가 아니라는 진실

#3 페미는 어떻게 여자 일베가 되었나

#4 남성 소비자라는 낯선 이름

#5 그들은 기분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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