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확장된 나입니다.
그래서, 관계 경험은 주소록 채우는 기술이 아닙니다. 나를 확장하는 경험입니다. 관계를 통해 우리는 자기 가능성의 한계를 넓힙니다. 몰랐던 내 취향을 알게되거나, 혼자서 엄두가 안 날 일도 벌입니다. 인간이 AI와 차별되는 요소인 주체성과 취향은 관계 속에서 변해갑니다. 공감능력은 말할 필요도 없죠. 우리는, 관계 속에서 동감과 연민의 마음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변화 무쌍한 세상에 더 잘 적응하고 원하는 결과를 냅니다. 또한, 관계는 내 시간을 탄력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을 빌려주고 갚거나, 다음 세대까지 연장합니다.
우리가 확장된 만큼 취약해지기도 합니다.
관계는 함께 거는 것(shared stake)이 되니까요. 많은 부모가 그렇듯, 제 자신의 위협엔 대범해도 자식의 위협에는 속수무책 약해집니다. 팀원의 안전을 위해 팀장이 희생을 무릅쓰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을 잘 이해하고, 더 향상된 인간관과 세계관을 갖게 됩니다. 이어서 연민과 공감의 감각이 섬세해지고요. 이게 관계 경험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정 필요한건 관계를 대하는 마음가짐 같아요.
일관되게 나의 확장이란 관점으로 관계에 몰입할 의지말이에요. 우선, 관계를 깊이할 대상을 살펴봅니다. 범주는 가족, 친구, 그리고 친한 사회적 관계입니다. 이 중 어디에 편중이 있는지, 결핍이 있는지, 훼손이 있는지, 리듬은 꺼지지 않았는지 한번 씩 돌아보고 모양을 잡아가야 합니다. 회고로 상태를 파악하고, 가볍더라도 실행하는데서 관계 경험은 출발합니다. 만나자 제안하고, 대화 나누며 감정을 주고 받는 순간들을 음미하며 경험이 축적되지요. 맞아요, 관계도 회고가 필요해요. 측정 없이 개선 없듯, 회고 없이 풍성한 관계망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지난 레터의 월간 회고 보셨나요.
신기하게, 한달을 돌아보며 꼽은 사물과 순간들엔, 제 관계가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이 달의 친구 뿐 아니라, 이달의 음식, 장소, 순간, 음악, 영화에 다 사람이 있더라고요. 제 방식의 월간 회고는 아니더라도, 관계 경험은 간헐적으로 정리가 필요합니다. 저도 예전에, 돌아보며 크게 빈자리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전 일만 아는 아빠였습니다.
밤 10시가 정시 퇴근이었고, 주말도 필요하면 나가서 일했습니다. 그게 가족을 위한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애들은 아빠의 월급보다 아빠의 시간을 원한다는걸 나중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2011년부터 메모리아(memoria)라는 개인 프로젝트를 매년 합니다. 한해에 가족 구성원 각자에게, 나중에도 기억날 일 딱 5개만 만드는게 목표입니다. 가끔은 여행이나 뮤지컬 관람 등 묵직한 것도 있지만, 대체로 꽤 사소해요. 딸과 함께 드로잉 챌린지 하기, 아들과 마라톤 대회 참가, 아내와 한강가에서 일몰보며 멍때리기 같은 거요. 핵심은, 각각 다섯개 정도 사소해도 농밀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고, 숫자를 세는 자체로 이미 관계는 밀도를 갖기 시작한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지금도 애들과 속깊은 대화가 어렵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