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데이원무비 57호는
전주영화제 상영작 <미확인>에 대한 글과
씨네21 1404호 특집기사 [젊은 비평가들의 시선]의 대담 및 진행자로 참여한 후기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확인>

이번 전주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 한 편에 관한 이야기. 그 영화의 제목은 <미확인>이다. 1982년생 한국인 전주영이 만든 영화다. 나는 ‘전주영’이 만든 <미확인>이라는 영화를 ‘전주영’화제에서 발견했다.


영화 속 세상에서 ‘미확인 물체’가 지구 곳곳에서 처음 발견됐던 때는 1993년이다. 그로부터 29년이 지났지만, 현재의 지구는 변한 것 없이 그대로다. 외계인들의 지구 침략이 본격화되어 사람들이 죽은 것도 아니고, 전쟁이 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마치 미확인 물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둥그런 ‘미확인’은 분명 하늘 위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사람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건 바로 우리들 사이에 외계인이 인간인 척 숨어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혹시 외계인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내 삶이 이렇게 알쏭달쏭했던 것일까? 내가 느끼는 니 외로움 또한 이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이처럼 흥미롭고 사뭇 진지한 사연을 내포하고 있을 것만 같은 <미확인>은, 그러나 흔한 ‘흥미로운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일종의 단막극 모음집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미확인 물체가 존재하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설정만 해둔 뒤, 그 세계가 초래한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들을 짤막하게 보여주기만 한다. 예컨대 ‘미확인’이라는 이야기의 전체가 담긴 ‘두꺼운 책’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미확인>은 그 책의 몇 페이지만을 임의로 찢어서 보여주는 영화다. 얼마나 맘대로 찢었는지,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페이지들 간의 인과 관계는 거의 성립하지 않고, 그 찢겨진 단편들을 보고 있자면 이 책이 얼마나 더 두꺼운 책인지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이야기는 점점 더 미궁으로 빠지고, 영화가 거의 끝나감에도 그래서 이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외계인들의 속셈이 무엇인지에 대한 전말도 끝내 미확인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원인 모를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페이지는 우주 비행사가 꿈인 한 남자의 여행기로 채워져 있다. 영화를 열심히 봤지만, 이 남자가 왜 여행을 떠난 건지 그 이유를 나는 알 수 없었다. 계속해서 이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고자 머리를 굴리고 있는 나를 놀리듯이, 이 남자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세계를 여행한다. 가짜 SF로 표현된 세계가 아니라, 진짜 세계를 말이다. 굳이 이 부분을 지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독립영화이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란 곧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감독 개인이 독립적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단 몇 장면을 위해 실제로 해외 곳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은 독립영화에선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례적이라는 표현은 사실 낭만적으로 표현한 거고, 솔직히 말해 이 해외 장면들은 제작비로만 따졌을 땐 상당히 비효율적인 장면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효율적일순 있지만 반드시 이렇게 끝내야만 한다’는 것을 명확히 설득해 내는데 성공한다. 그 리스크를 걸었기에, 더 큰 감동이 온다. 그 마지막 장면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베를린에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끝이 난다. 영화에 그곳의 지명이 명시되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해 주시길. 세상에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많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냥 내가 직접 가본 곳 중에 가장 비슷했던 곳의 이름을 댄 것뿐이라고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영화는 그곳에서 끝이 난다. 남자는 그곳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카메라에 담는다. 정확히는 남자가 카메라로 문을 찍는 뒷모습이 나오는데, 그때 갑자기 남자가 카메라를 돌려,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그러자 거기엔 이 영화의 감독 전주영이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그 위로 Directed by Jude CHUN이라는 자막이 떠오른다. 이 역시 자막 텍스트 자체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맥락적으로만 파악해 주시라. 그리고 이어서 촬영 감독을 포함한, 각본가, 배우, 편집가 등의 제작진들의 이름과 함께 <미확인>의 메이킹 영상이 등장한다. 마치 이 모든 소문들을 창조한 것이 자신들이었다는 것처럼. 자신들이 외계인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마지막의 이 비효율적인 장면이 어떤 상황에서 찍힌 장면인지 알지 못한다. 배낭여행을 간 김에 영화 제작과 상관없이 찍어둔 영상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본 것이 정말로 오로지 이 영화의 한 장면만을 위해 꾸려진 해외 촬영 현장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미확인>은 자신이 이미 <듄>만큼이나 방대하고 두꺼운 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나에게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준 모든 영상들을 찍은 카메라 뒤에, 전주영 일당이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순간에 말이다. 아주 작은 페이지들의 파편으로 큰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영화. 그리고 그 엔딩의 짧은 찰나를 위해, 가장 큰 비효율을 과감히 투자하는 감독. 인간 전주영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주 작고 쓸데없는 무언가를, 요즘 시대에 가장 무가치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낭만'이라는 것을 담아내기 위한 무모한 작업들을 꾸준히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2019)

씨네21 1404호의 특집 기사 [젊은 비평가들의 시선]에 젊은 비평가1로 참여해 김병규 & 김예솔비 평론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거의 두 시간에 가깝게 이것저것 말했었는데, 지면 분량 사정상 2/3 정도밖에 실지 못했다. 분량보다 더 아쉬운 것은 미리 생각해둔 주제를 대부분 꺼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젊은 비평가 1인이 되어 이곳에 설 수 있었던 것은 너무 좋았지만, 정말 젊은 OOO다운 이야기를 했는가에 대해선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젊은 비평가 대담해 봤으니, 늙은 비평가 대담도 할 수 있을 때까지 살아남겠다”라는 나의 다짐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 의심이 될 정도로 뻔한 말들만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비평가의 의무-책임-역할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한물 건너간, 종결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종결이라고 한 건 ‘참 비평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렇게 꾸준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를 제외하면 저널리즘 영역에서의 비평 글은 이미 판정패한 상황이 맞다. 마치 체제 경쟁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연 소멸했듯 비평 또한 지면에서 스르르 자취를 감추고 있고, 남은 것은 언더그라운드의 몇몇 실력자들(과 그의 추종자들)과, 지면에 글을 쓰지 않는 스타 평론가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평가는 어떤 태도로 비평을 해야 하고, 씨네21이 ‘우리에게’ 어떤 지면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으나, ‘젊은 OOO다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떤 이야기가 ‘젊은 OOO다운’ 이야기일까에 관해서 같이 머리를 싸매고 토론해 보는 것이 원래 계획한 대담 진행 방향이었다. 말하자면 비평 2.0. 그게 이미 지나갔다면 3.0이겠고. 아무튼 비평의 새로운 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대화 흐름상 기존 비평의 아쉬운 점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각자 사전 질문에 대한 준비 답변들을 풀어놓고 싶어 보이기도 했고. 각자 서 있는 위치가 다르기도 하고. 어찌 됐든 그런 화두를 던져 상대를 제대로 도발하지 못한 나의 책임도 있기는 하다. 해당 호의 에디토리얼엔 “아이디어 넘치는 이(젊은 비평가)들을 진지하게 <씨네21> 취재팀의 월요일 오전 기획회의에 모시고 싶어진다.”라는 이주현 편집장의 말이 있는데, 나는 이 말이 우리들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단 기성용의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런 의도로 쓰지는 않으셨겠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잘 모르는 아이처럼 받고 싶은 선물만 이야기한 결과물을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멈출 수 없다.


사진 찍은 게 나와서 엄마한테 오랜만에 씨네21 지면을 보여줬는데, 엄마는 그저 내가 입고 간 옷이 별로라는 코멘트만 남겼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나한테 “씨네에 연락해서 글 좀 팍팍 많이 쓰고 그래”라고 한다. 내가 여기에 당선됐을 때 씨네21을 몰랐던 엄마는 아직도 이 잡지를 잘 모른다. 잡지를 모를 뿐만 아니라, 잡지를 비롯한 이 동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엄마에게 영화를 더 많이 보여줬던 때는 지금이 아니라 메가박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을 때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잡지에 나오기만 하면, 내가 잡지에 나온 모습을 보면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내가 어디에 나와야 좋아할까? 라디오에? 책에? 티비에? 이것이 내가 비평 지면에만 매달릴 수 없는 이유이며, 이것이 내가 매주 원데이원무비를 쓰고, 이것저것 외부 활동들을 하고 있는 이유라는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못했다. 다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을까? … (볼펜을 딸깍거리며) 음. 별로 재미없을 것 같은데요? 절대 통과될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머릿속 기획회의. 그런데 이 건 누구를 위한 기획인가. 지금 나이쯤 되면 엄마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먼 것 같다. 지금까지 스스로 젊은 비평가인 줄 알았던 어린 비평가의 셀프 비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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