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니 안입니다. 캘거리에서 죽과 식혜, 호두파이 등 디저트를 만들어 판매 중입니다. 캐나다 거주 10년 차고, 2년 전에 캘거리로 이사 왔습니다.
2. '우리'를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처음 캐나다에 올 때는 매니토바주 위니펙으로 랜딩했는데요. 위니펙은 한인 규모가 작으니까 한인 인프라도 많이 부족했어요. 큰맘 먹고 비싼 한인 식당에 가서 외식을 해도 가격에 비해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았죠. 결국은 집밥이 답이더라고요. 계속 집에서 해 먹다 보니까 점점 솜씨가 늘었어요.
사실 이민하기 전에도 요리는 자신 있었어요. 남편이 군인 출신이라 신혼 때 관사 생활을 했거든요. 여자들이 같이 모여 요리할 일이 많으니까 다양한 레시피를 배울 수 있었죠. 그중에서도 죽 만드는 법은 2006년 본죽 창업자한테 직접 배웠고요. 당시 신생이었던 해당 브랜드를 홍보하려고 창업자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셨거든요. 덕분에 죽뿐 아니라 동치미며 장조림 등 곁들이는 반찬들까지 싹 배웠어요. 그 레시피를 바탕으로 더 연구하고, 재료도 추가해서 지금의 우리 레시피를 완성했습니다.
죽 만드는 법을 제대로 알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아플 때 나눌 수 있으니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2023년 3월, 인스타그램으로 판매까지 하게 된 건 홈스테이 학생 덕분이에요.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이런 음식은 우리만 먹기 아깝다면서, 팔아야 한다고 절 설득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좀 망설였죠. 식구들이야 맛있게 먹지만, 정말 팔아도 되는 건지... 실은 저희 엄마가 식당을 하셨거든요. 그런데 옆에서 보니까 식당 일이 너무 고된 거예요. 그래서 전 음식 장사는 안 한다고 다짐했는데, 타고난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제 딸도 손맛을 물려받았는지 음식을 잘해요. 덕분에 신메뉴를 개발하면 맛을 보고, 부족한 점은 확실하게 피드백을 줍니다.
3. 많은 한식 메뉴 중에 죽을 메인으로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죽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담은 음식이에요. 사실 모든 음식이 다 그렇지만, 죽은 특히나 필요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몸이 아프거나 출산 직후라 일반식을 먹기 힘든 분들이요. 캘거리에 처음 이사 와서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중환자실로 배달을 간 적도 있고, 배탈이 났는데 직업이 비행기 조종사라 다음날 일을 쉴 수가 없어서 새벽 1시에 죽 찾으러 오시는 분도 있었어요. 심지어는 코에 호스를 끼운 채로 픽업 오시는 분도 봤고요. 그럴 때면 제 음식이 절실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실감하죠.
덤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정이 많고 마음이 따듯한지도 깨달았어요. 손님들의 절반 정도는 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에 아픈 사람들을 위해 주문하시거든요. 사실 건강한 분들이 매일 죽을 먹지는 않으니까 주문이 들쭉날쭉해서 힘들기도 해요. 언제 올지 모르는 주문에 대비해서 재료가 떨어지지 않게 관리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가 필요한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최근에 잠시 일을 쉬었는데, 쉬는 동안에도 계속 문의가 오더라고요. 지금 아픈 사람이 있어서 죽이 꼭 필요하다고. 어쩔 수 없죠, 주문 없이도 항상 육수를 끓이는 수밖에. 언제 누가 찾을지 모르니까요. 하루종일 주문이 안 들어와서 식구들끼리 저녁으로 해치우게 되더라도요.
4. 디저트류도 같이 하시잖아요. 전 식혜랑 약밥, 호두파이를 먹어봤는데 너무 달지 않으면서 정갈한 솜씨가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식혜는 '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할 만큼 팬층이 두터운데 특별한 비결이 있으실까요?
식혜는 엄마한테 배웠어요. 진짜 별미는 갓 끓여서 아직 따끈따끈한 식혜라는 거 아세요? 지금도 어릴 때 생각을 하면 식혜 끓이던 아침 풍경이 떠올라요. 새벽부터 온 집안에 단내가 은은하게 퍼지고, 엄마 옆에서 언제 완성되나 애타게 기다리다가 한 국자 얻어먹었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죠. 파는 건 당연히 그 맛이 안 나니까 직접 만들기 시작했고요. 추억의 맛에 더해 정말 많은 레시피들을 보면서 연구했어요. 설탕과 엿기름을 은근히 끓이다가 딱 풍미가 올라오는 정확한 타이밍을 포착하는 게 어려웠는데,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찾아냈어요.
한 번은 에어드리에서 주문이 들어왔는데 백인 손님인 거예요. 좀 의외여서 식혜를 아느냐고 했더니 잘 안대요. 아무튼 만들어서 배달을 해줬는데 다시 연락이 왔어요. 이게 내가 찾던 맛이다, 만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제대로 된 식혜를 먹고 싶어서 그간 캘거리 한인식당을 전부 뒤지고 다녔는데도 못 찾았대요. 한국에서 식혜 맛을 보신 분이었나 봐요. 저는 찾아주는 손님들이 고마운데, 그분들이 또 저한테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내 추억의 맛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니 참 근사한 일이죠.
5. '우리' 음식은 맛도 좋지만, 건강하고 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역시 이 맛은 음식을 대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네요. 우리만의 음식 철학이 있을까요?
사람들이 건강하게 먹으면 좋겠어요. 먹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을 구성하고, 그런 내 몸에 내 영혼이 담기잖아요. 저는 모든 음식을 인공조미료 없이 만들어요. 조미료를 많이 쓴 음식을 먹으면 미각이 둔화돼서 점점 더 안 좋은 음식만 입에 당기는 악순환이 일어나요. 평소 좋은 음식을 먹는 게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브런치 만드는 일도 잠깐 해봤는데, 제 신념과 다른 일을 하니까 몸이 아프더라고요. 아무래도 브런치 메뉴는 건강하기보다는 설탕을 잔뜩 넣어서 혀에 착 감기는 게 많잖아요. 저희 말고도 캘거리에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하는 식당들이 많이 생겼으면 해요.
6. 사업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많으실 텐데, 어떤 마음으로 지속하고 계실까요?
저는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음식을 해요. 가령 미역죽은 원래 없었고, 일반적인 메뉴도 아닌데 꼭 필요하니까 팔아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추가했어요. 산후조리식으로 필요한 분들이 있잖아요. 그것도 여기 미역으로 만들어보니까 맛이 안 나서, 한국에서 미역을 공수해 와요.
식혜도 마찬가지예요. 색다른 디저트이기도 하지만 단유하려는 산모들이 찾는 경우도 많거든요. 시중에 파는 건 너무 달아서 많이 마시기 힘드니까요. 사람마다 다들 딱한 사정이 있어요. 온 식구가 한꺼번에 아파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아픈 사람들이 죽을 주문하면 집에 있는 된장국이며 반찬도 손에 잡히는 대로 같이 싸드리고 그래요. 그분들이 입맛도 없고 힘들었는데 덕분에 잘 먹었다고, 기운이 난다고 말씀해 주시면 그게 감사하고 가장 보람되지요.
막 오픈하고 처음에는 생각보다 주문이 많이 들어와서, 혼자 사는 노인 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단체에 전액을 기부한 적도 있어요. 역시 저한테는 잘 먹고 건강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요. 신상품으로는 해독주스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제가 가진 재주가 다른 분들의 건강과 행복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7. 마지막으로 저희 구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문화센터는 100% 봉사자 분들의 노력으로 운영된다고 들었어요. 캘거리 한인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멋지고 대단하세요! 한글책 도서관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저도 힘껏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