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폭력이란 단어를 자본으로 변경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죠. 자본보다 강한 힘은 없어요. 물론, 자본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명예보단 자본으로 흘러가는 시대이죠.
우리는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자기가 가지고 싶은 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모두 할 수 있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이 있다면 '더욱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죠.
하지만 '자본'이 있다고, 모든 행위에 대해 프리패스가 되지 않아요. 지켜야 하는 선이 있고,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중심축'이 있죠. 그 중심축이 윤리를 기반으로 할 수도 있고, 관습을 기반으로 할 수도 있죠. 다만, 자본을 활용해 나를 지키거나, 나라를 지키는 데는 정당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폭력학교는 폭력이 지배하지만, 사회는 아니다."
그러면 다시 자본을 폭력으로 치환해볼까요? <TEN>의 폭력학교에서 폭력은 '최고의 도구'로 작동해요. 하지만 <TEN>은 폭력에 대해 조심히 접근하죠. 절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아요. 일반적인 사회에서 말이에요. 다만, 폭력학교라는 통제된 변수 안에서만 정당한 행위로 그려내죠.
그에 따라 웹툰 <TEN>은 폭력을 미화하지도 않고, 폭력을 가볍게 사용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나를 지키는 최고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아직 저는 마지막 화를 보지 않았지만, 시즌2로 진입하지도 못했지만, 작가가 어떤 말을 던지는지 대략 추정할 수 있어요.
이은재 작가가 사용하는 '비행기'라는 메타포,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모든 것이 피해자인 '김현'을 중심으로 세세한 묘사가 들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폭력의 세계' 속에서 발버둥 치는 김현의 비극적인 현실, 이 모든 것은 마치 내가 주인공인 김현이 되어 '지옥 같은 현실'을 버티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해줘요. 그래서 그런지 '김현'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학교폭력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나 생각이 되기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폭력이라는 '도구'를 다양하게 변용하면 그것이 곧 '현실'과 마주한 '진실'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저는 느끼게 돼요.
"아, 언제든지 내가 김현이 될 수 있고, 김현처럼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