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 디자인 학과 재학 중 신발 디자인에 빠져 1학년 때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한 학부생을 만났습니다. 단순한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걷겠다고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승우 님은 어떤 계기와 전략으로 졸업 전 독일 adidas의 본사 최종 면접까지 볼 수 있었던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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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S
EP.1 전공과는 다른 신발 디자인, 어떻게 시작했나요? EP.2 첫 커리어, adidas 선행 디자인 워크샵 EP.3 김승우의 짚신 [Jip - Sin] EP.4 혼자서 작업하는 신발 디자이너 EP.5 자유분방한 사람이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하는 법 EP.6 이런 사람도 방황을 했을까?
INTERVIEWEE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4학년 김승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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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 전공과는 다른 신발 디자인, 어떻게 시작했나요?
요즘은 워낙 디자인 분야 간 경계가 모호해 판가름 하는 게 의미가 있나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제품디자인이나 UX/UI로 갈리는 공업 디자인 학과에서 신발 디자이너로서의 진로를 개척하고 계신 것이 조금은 특별하다 느껴집니다. 계기가 무엇인가요?
승우 : 어릴 때 축구 선수를 준비했던 게 시작인 것 같아요. 유치원생 시절 축구를 너무 좋아해 즐겨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선수나 유니폼 그림도 많이 그리곤 했죠. 자연스럽게 중학생이 되어 축구 선수를 준비했었는데 여차여차한 이유로 그만두게 됐어요.
20대가 되어 디자인 학부에 입학하고 자유 주제 과제가 주어지면 ‘어릴 때처럼 축구화, 유니폼이나 한번 그려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네덜란드 유니폼 디자인이나 축구화 스케치를 했던 기억이 나요. (1학년 때요.) 이렇게 기회가 될 때마다 축구와 관련된 작업들을 이어왔고, 더 넓은 바리에이션을 줄 수 있는 신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신발디자인을 시작하게 됐죠.
일찍이 같은 학과 동기들과는 다른 분야로 뛰어드셨는데, 신발 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 먹을 당시 다른 길을 걷는다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나요?
승우 : 사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감정에 대해서는 '그냥 버티는 수밖에.'라는 답 뿐이었어요. (조금 꾸며서 말하면요.)
제가 느끼기에 그 질문은 '너는 보통 외로움을 어떻게 해결해?'와 같은 질문과 비슷한 거죠. 한 번 고립된 상황에 빠지면 고립을 해결해 줄만한 외부인이 오기 전까지 해결할 수 없잖아요, 하지만 저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발 디자인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에 두려워 할 틈도 없이 이를 악 물고 무작정 외부로 사람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이것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앞뒤 가리지 않고 찾아야 한다는 감정이 컸어요.
신발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승우 : 한국 디자인 진흥원에서 '해외 취업 멘토링'이라는 프로그램을 해요. 해외 각지에서 활동 중인 한국 디자이너들 40~50명 정도가 멘토로 참여하는 큰 매칭 프로그램이죠. 그래픽, UX, 건축, 패션, 제품, 가구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오기 때문에 그 많은 디자이너 분들 중 나의 포트폴리오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디자이너 분을 멘토로 배정 받아요. (그분들 모두 다니고 계신 회사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나이키, 세실리만즈, 심지어는 루이비통까지 으리으리했어요.)
저는 그때 나이키에서 일하시는 디자이너 분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고,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지내요. 또 이런 활동과 별개로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 연락이 닿게된 인연들도 있습니다.
P.S. 광고는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이 워낙 좋다보니, 다들 한번 신청해보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요. 특히나 저처럼 하고싶은 분야에 대해서 주변에 인사이트를 얻을 사람도, 인프라도 없는 사람이라면요.
실력적으로도, 인프라적으로도 부족한 상태에서 신발 디자인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셨는데 어떻게 이 분야에 대한 열정을 끊임없이 유지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네요. 특히나 20대 땐 ‘단순히 좋아하니까 포기할 수 없었다.'라는 사람보단, 무섭다는 것만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싶거든요.
승우 : 솔직히 신발 디자인에 처음 관심을 갖고 혼자서 뭔가를 시작한 순간 그냥 직관적으로 든 생각은 ‘나 진짜 못 하네. 진짜 너무 못한다. 큰일 났다.’ 였어요. (웃음)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더라고요. ‘단기간에 뭔가를 해결하려 하지 말자.’ 어차피 은퇴하기 직전까지 신발 디자인을 하려 선택한 거고, 마음 먹었을 땐 학교를 다닌 기간보다 다닐 기간이 더 많았거든요. 40대까지, 혹은 프로젝트 전체를 관장할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10년 정도는 더 해야 할텐데, 그 장기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조급해하지 말자. 어차피 계속 할 거고, 해야 하니까.. 이런 생각이었어요.
처음 이 분야에 스며들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승우 : 첫 번째로는 학교를 정말 적극적으로 이용했어요.
수동적으로 과제만 따라갔더라면 자기 계발이란 걸 할 수가 없었겠죠? 제가 재학 중인 공업 디자인 학과같은 경우, 커리큘럼이 굉장히 세분화 돼 있어 이걸 기회 삼았어요. ‘어떻게든 나는 이 커리큘럼 속에서 신발 혹은 신발과 연관된 관점을 지닌 프로젝트를 하고야 만다.’라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저는 지금 포트폴리오의 반 이상 정도가 다 과제를 디벨롭한 것에서 나왔어요.
두 번째는 뻔하지만 개인 작업을 많이 했죠.
개인 작업은 신발디자인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날부터 지금까지 안 한 적이 없을 거예요. 물론 잘 안 될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계속 했고 꾸준히 문제점을 보완하려 했어요.
세 번째는 인턴 지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사실 이건 포트폴리오 때문이었는데.. 인턴을 넣어놓으면 급한 마음에라도 포트폴리오를 만들 것 같아 작업열을 올릴 수단으로 사용한 격이죠. (웃음)
포트폴리오라는 게,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라 생각하면 정말 한 2025년쯤에나 만들.. 그러니까 포트폴리오를 쫓기듯 만들 수 있도록 인턴을 지원하고 스스로 지금 안 만들면 망한다는 상태를 만든 거죠. ‘와 일단 넣긴 했는데 이 상태로는 망하겠다. 뭐라도 만들어야 해!' 보통 제 포트폴리오는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웃음)
저는 해외 기업, 글로벌 기업에도 인턴 지원을 넣고 그 압박감을 통해 연습을 많이 했어요. 심지어는 그 압박감조차 연습이 됐고요. 이렇게 세가지는 꾸준히 해왔던 것 같습니다.
개인 작업으로는 어떤 것들을 하셨나요?
승우 : 넓게는 작업을 하고, 작업한 것들을 알리기 위한 일을 가장 많이 했죠. 인스타그램을 잘 활용했습니다. 신발 디자인은 업계가 좁으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김승우라는 애가 신발 디자인 분야에서 뭔가를 하고 있단 걸 알리고 싶었어요. 열심히 올려서 지금은 알릴 정도는 된 것 같아요.
어느정도의 인프라가 생긴 걸까요?
사실 거창한 건 아닙니다. 제품 디자인같은 경우엔 @renderweekly나 @yankodesign 처럼 제보를 하면 심사 후 큐레이팅해 디자이너를 태그해 피드로 올려주는 대형 계정이 있어요. 저도 @conceptkicks , @forty_two_and_a_half , @futures__factory , @draftkicksnetwork , @lacelessdesign 같은 계정들에 큐레이팅이 되었었죠. 이 계정들 말고도 정말 많은 디자인 큐레이팅 계정들이 있는데, 작업물이 그중 하나에 큐레이팅 되어 올라간 경우에 알릴 정도는 됐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검색창에 #footwear를 검색했을 때 제 작업물이 나오는 정도까지도 아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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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선행 워크샵 합격 메일
EP.2 첫 커리어, adidas 선행 디자인 워크샵
가장 처음 갖게된 커리어가 무엇이었나요?
승우 : 아디다스에서 주최한 선행 디자인 워크샵 (Adidas advanced concept camp)이에요. 19년도 7월에 참여했던 활동이고, 2학년 2학기 직전 즈음이었죠. 군대에 있을 때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발 디자인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찾아 여기저기 연락했는데, 한 친구에게서 아디다스 선행 디자인 워크샵이란 게 있다고 알려줬어요. 포틀랜드에 있는 아디다스 북미 본사에서 주최한 것이었고, 저는 군대에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시험 과정을 간단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승우 : 1차가 서브 미션 실기와 함께 자신의 동기 부여를 설명하는 3분짜리 영상을 찍어 보내는 것, 2차는 오로지 실기만 보는 것이었어요.
군대는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기 제한적인 환경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군대라는 환경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합격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승우 : 우선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 보단, 거의 병장 때 잠 좀 줄여가며 마카로 신발 그림을 정말 많이 그렸어요. 마지막 휴가 나온 첫날이 제출날이었는데, 그때까지 그린 신발 그림들을 스캔 후 제출하니까 합격이 되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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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군대에서 그려 제출한 스케치들
다들 포트폴리오라고 하면 모델링, 렌더링에 아트디렉션하고 설명 쓰고.. 이랬던 것같은데 저는 말 그대로 군대에서 수작업만 했기에 제출할 작업이 핸드 드로잉 3개밖에 없었어요. 애초에 양도 없고 실력도 없고 정말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 실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 발 형태가 아니었을까 해요. 신발을 발 형상에 맞는 비례로 그렸느냐,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렸느냐가 중요한데 이 부분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핸드 드로잉을 잘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외는 더 그렇더라고요. 다들 포토샵으로 2D 렌더링에 방송 디자인처럼 할 때 저 혼자 노트에다 색연필, 마카로 스케치를 해 카메라로 찍어 올렸으니 오히려 여기서 비례에 대한 부분이나 핸드 드로잉을 통한 성실함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해요. 오로지 제 추측이지만 추가적으로는 영상에서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을까 싶고요.
영상에서 어떤 간절함이 어떻게 보였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승우 : ‘나 혼자서, 그리고 군대라는 고립된 환경에서, 거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만한 인프라와 선후배도 없는 상태이지만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한 번만 좋게 봐주십쇼.’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멘트도 정말 간절하다는 말이 대부분이었고, 표정도 말투도 간절함을 보이기 위한 연극톤을 구사했어요.
느끼한 거 싫어하는 대구 출신 동기가 있었는데, 그 동기가 “오빠는 대구에 오면 정말 많은 미움을 받을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북미 본사에서 주최한 것이라면 동기부여 설명 영상을 위한 영어 실력도 함께 겸비 되어 있어야 했을 것 같은데 원래 영어를 잘 하셨나요?
승우 : 그때야 영상을 찍어서 보내면 됐으니 번역기를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합격 후 본사 워크샵에 가서부터였고요..
북미 아디다스 워크샵에서는 어떤 활동들을 하셨나요?
승우 : 이 워크샵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였어요.
우선 잠을 안 재우고, [2주 동안 매일 오전 아이디어 발표 한 번 - 오전에 발표한 아이디어를 디벨롭해 오후에 발표 한 번]하는 시스템 속에서 살아야 했어요. 스케줄이 어느 정도로 빡빡했냐면, 전체 워크샵을 진행한 헤드 멘토가 아디다스 디자이너에게 이거 너무 심하게 빡빡한 거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였어요. 근데 사실 놀러 온 게 아니긴 하잖아요.. 거의 2주 동안 관광은 꿈도 못 꾸고 매일 아디다스 본사와 에어비앤비 숙소를 왔다 갔다 하며 컨셉 디벨롭만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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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당시 김승우가 진행한 작업
그리고 저는 당시 영어 실력도 전혀 준비돼있지 않았기에 회화 문제로도 힘들었어요. 다들 미국이나 멕시코 처럼 영어에 익숙한 나라에서 왔는데 저만 아시아에서 왔더라고요. 남들은 저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디자인 자료만 준비하고 끝내면 되는데, 저는 발표 대본도 남들보다 몇번이고 더 외워야 했어요.
대본을 보고 발표하는 건 프로페셔널 하지 않다고 대본을 보지 말고 발표하라더라고요. 매일 밤새 디자인 생각하랴, 대본 외우랴.. 잠잘 시간도 없어 정말 힘들었죠.
언어적 한계 극복을 위해 달리 구사하신 방법이 있나요?
승우 : 제가 정말 외로움을 타지 않는 성격이라 누군가와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괜찮은데, 처음엔 조금 외로웠어요. 한 2~3일 동안은 '혹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인종 차별인가? 아니면 나의 문제인가? 혹은 이 시스템의 문제인가?'와 같은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웃음)
그러다 제가 원체 넉살이 좋은 편이라 어느 순간 그냥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시도하니, 나중에는 참가자들과 밤에 술 한 잔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어요. 영어를 아예 못하는 건 아니다 보니 사석에서는 손짓으로 가리키기든 구글 번역기로든 소통했죠. 그런데 발표할 때는 정말 답이 없었죠. 발표는 일종의 면접같은 거고 전문가 분들께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받으니 말이 막히는 순간에 번역기를 돌릴 수도, 바디 랭귀지를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여하튼 나머지는 그냥 넉살로 이겨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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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 김승우의 짚신 (Jip - sin)
가장 소개하고 싶은 작업으로 [짚신 (Jip-Sin)]을 뽑아주셨어요. 한국의 전통 짚신을 모티브로 작업한 신발 컨셉 디자인이라 하셨는데 어떻게 기획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승우 : 첫번째는 사실 좀 전략적인 부분이 컸죠. 포트폴리오에 민족주의적인 게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사실 지금까지 한국 기업에 포트폴리오를 낸 적이 없어요. 항상 자의 반, 타의 반에 의해 해외 기업을 목표로 했는데, 한국의 전통 모티브를 한국인이 볼 땐 지루할지 몰라도 외국인이 볼 땐 쿨한 인사이트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두 번째는 제가 원래 과거의 것에 관심이 많아요.
다른 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 설명하자면, ‘정릉’이란 동네을 주제로 디자인한 신발 컨셉이 있어요. 정릉이란 동네의 다양한 특성을 콜라주로 조합해 신발을 디자인했는데, 이 프로젝트도 그렇고 짚신 프로젝트도 그렇고 저는 잘 정돈된 느낌보단 약간이라도 흠이 있는 느낌, 지나치게 규칙적인 것보다는 불규칙적인 것, 매트한 것보다는 재질감이 있는 게 좋아요. 생각해보면 제 성향도 그런 것같아요. 너무 트렌디한 것 보다는 과거의 것을 제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게 좋고.. 이거 너무.. 저 너무 뭔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말하나요..?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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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우의 '정릉' 컨셉 신발 디자인
다시 돌아와, 짚신 (Jip - sin)이 승우님께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승우 : 이 작품을 완성하고 기분이 참 좋았던 게 있어요. 다들 자기 기준에 ‘디자인은 이래야 멋있는 거지.’라는 거 하나 즈음 있잖아요, 이 작품이 그때까지 제가 디자인한 것 중 최초로 제가 생각한 멋진 디자인에 근접한 것 같았어요.
‘내가 이런 작업을 하고 싶었구나.’라는 걸 그때 느낀 거죠. 그렇게 오랫동안 개인 작업을 하고 포트폴리오를 디벨롭해왔는데, 이 작품을 한 작년 말에서야 이걸 느낀 거예요. 저에게는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었기에 그 순간을 기억하려 영상까지 찍어뒀었어요.
또, 이에 부응하듯 3개의 기업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아직 연락 중이기는 하지만 그중 하나가 K2였고요, 태광실업이라는 나이키 이노베이션 팀의 한국 지사에서도 왔어요. 한국엔 나이키 디자인 팀이 없고 r&d 제휴사만 있는데 그를 맡고 있는 부산의 회사예요. 다음은 살로몬이라는 프랑스 브랜드의 아웃도어 스포츠 스타일 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한창 연락을 진행하다 비자 문제로 잠시 중단이 되었고 7월달에 다시 한 번 연락하기로 한 상태죠. 이 작품으로 이렇게 연락을 받게된 것도 인스타그램의 신발 디자인 큐레이션 계정을 통해서 였는데, 다시 한 번 인스타그램을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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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만들며 겪었던 시행착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승우 : 거의 완성 직전까지는 다 시행착오였던 것 같은데요.. 두 가지 측면의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컨셉 및 스토리텔링 디벨롭에 대한 시행착오였어요.
결국 제가 열심히 하고자 하는 건 대상을 내 관점으로 바라보고 재해석 한다는 건데, 마냥 제 식대로만 바라보지 않고 직관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으며 재해석해야 되잖아요. 오로지 자기 표현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짚신이라는 대상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 가능하게 재표현하지?’라는 질문에서 대답을 만드는 게 어려웠어요. 그냥 뭐 ‘짚신처럼 꼬아서 만든 신발입니다.’이럴 수는 없잖아요. 처음부터 이야기를 만들며 빌드업 하면 어땠을까 했어요. ‘대상이 있고 대상의 특징이 있는데, 내 생각에 이 대상의 중심적 특징은 이거야. 그래서 나는 이런 걸 만들어볼게.’ 와 같이 맥락을 잇는 스토리텔링 없이, 내가 추구하는 관점의 설득력에 대한 생각만 하다보니 전체 논리를 점검하고 수정하는 데는 정말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제작과 관련된 거였어요.
이 신발의 밑창, ‘미드 솔’이라 불리는 부분을 실리콘 코드로 만들었는데 사람이 신고 달리면 이게 문제가 되더라고요. 평균 성인 남성, 성인 여성이 팡팡 뛰면 몇 십 kg의 압박이 오잖아요, 그걸 잡아줄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는데 이미 신발을 고정하는 재료로는 끈만을 쓰겠다고 계획한 상태였어요. 원래 같으면 그냥 일반적인 고무나 합성 소재를 쓰면 됐을 것이.. 구조적, 인체 공학적, 설계적 시행착오 때문에 재료 계속 다시 사느라 큰 돈을 날렸죠. 애초에 새로운 신발의 형태를 발견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라 계획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단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조금 더 미래를 걱정하며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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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행착오를 해결하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무엇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나요?
승우 : 첫 번째로는 관련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서요.
절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요. 질문을 안 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까요. 알고 지내던 슈메이커 형님이 계시는데 그분께 정말 많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그분이 계시는 수원 작업실까지 찾아가 이것저것 다 물어봤죠.
두 번째로는 그냥 많이 만들고 스케치하고 다시 만들고 스케치한 것에서요.
목업의 질보다는 양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 과정에서 뭔가 해결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짚신 (Jip -sin)이란 작품을 처음 기획할 때의 가치관과 지금의 가치관에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승우 : 메이킹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저는 재화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슈메이킹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어요. 짚신은 기본적인 재화 방식을 따르지 않은 저만의 접합 방식과 니팅 방식 때문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모든 신발의 기초인 *드레스 슈즈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레스 슈즈 (dress shoes) : 예복용으로 신는 구두. 정장에 신는 구두를 말하기도 한다.
신발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바느질, 미싱, 재료와 패턴 선택을 하니 결국엔 모든 단계마다 타협을 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더라고요. 아무리 특이한 컨셉이 중요하다 한들 이건 정말 기본적인 거라 무시할 수 없어 힘들었어요. 스포츠웨어 회사에 들어가 직접 신발을 만드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 업계에 계속 일하기 위해 전통적인 메이킹을 도외시하고 지나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슈메이킹도 배우고, 가죽도 잘라보고, 패턴도 내보고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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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 혼자서 작업하는 신발 디자이너
혼자서 작업을 하시는 만큼 ‘혼자니까’ 중요히 여겨야 할 요소들이 많을 것 같은데,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승우 : 프로젝트 목적이 뭐냐 - 즉, 프로젝트 목적을 잘 설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과제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어떤 집단에 참여해서 하는 디자인엔 제시해 주는 가이드 라인이나 목적이 있어 그걸 토대로 만들어나가면 되는데, 개인 작업은 가이드 라인이 없으니 그 목적을 혼자서 잘 설정해야 하죠. 목적 설정이 잘 안 되면 작업에서 뭔가를 선택할 때 오로지 감각에 의해서만 판단하게 돼요. 선택의 기준이 없어지는 거죠.
개인 작업의 기준을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계속 선택을 못하고, 그러다 보면 아이디어 디벨롭이 안 돼요. 그래서 프로젝트 초반에 자기만의 브리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혼자 진행하는 신발 디자인의 장점은 뭐라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승우 : 장점.. 고생이죠. 장점이라기 보다는 수능 공부할 때 국/영/수를 공부하는 데 뭐가 장점이냐고 물어보진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학생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거니.. 그냥 신발 디자인이 일종의 과목이라 생각하면 장점이 있다기 보단 계속 혼자서 부족한 점들을 파악하게 되는 것 자체가 장점인 것 같아요.
사전에 저희와 대화를 나눌 때, 혼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신발 디자인 분야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질문을 한다고 하셨어요. 관련 분야가 아닌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인사이트를 얻으시나요?
승우 : 어떤 분야든 좋다고 평가되는 요소들은 결국 같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운송, 신발, 제품과 같은 분야들은 3차원 물체를 갖고 그걸 통해 형태나 기능적인 걸 보완해낸다는 측면에서 크게 같기 때문에, 나머지 디테일한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신발 같은 경우 해외 기업들이 포트폴리오를 볼 때 이미지를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 작업을 디벨롭하고 어떤 관점으로 발전 시켰느냐를 많이 봐요. 때문에 어떤 인사이트든 제 것으로 만드는 걸 중요시 하죠. 그리고 이것과 별개로 일단 뭐든 보고 들어놓으면 써먹을 때가 생기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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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자유분방한 사람이 하루도 빠짐 없이 작업하는 방법
작업할 때의 성향은 어떤 편인가요?
승우 : 저는 완전 구체적인 청사진을 짜고 시작하는 것과는 반대예요. ENTP라서 계획이 철저한 편은 아니고요, 조금 더 즉흥적인 편에 가까워요. (웃음)
즉흥적인 본래의 성향을 노력으로 바꾸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아까랑 비슷한 말이지만 저는 예쁘고 멋진 것 보다는 재미있는 것, 재미있는 것 보단 다른 방향으로 해석된 것을 좋아해요. 평소 성향도 그런 편이라 저는 작업할 때 다른 성향이 되고 그러진 않아요.
작업할 때만큼은 꼭 철저히 하는 것이 있나요? 마음가짐이든 계획이든..
승우 : '철저히’와 저는 거리가 있는데, 굳이 지키는 게 있다면 프로젝트 초반에는 질보단 양으로 승부하는 거예요. 레이아웃 짤 때, 레이아웃의 의도를 분명히 해놓는 거죠. ‘목적을 분명히’. 레이아웃, 스케치 스타일부터 아트 디렉션을 하는 것까지 모두 다 하나의 목적 하에 이루어지도록 해요.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편인지, 가끔씩 엄청 열중해서 하시는 편인지도 궁금하네요.
승우 : 저는 늘 해요. 일해야 돼서 하는 거든 아니면 개인 작업해야 돼서 하는 거든, 뭐든지 간에 늘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렇다면 꾸준히 작업하기 위해 별다르게 하시는 노력이 있나요?
승우 : 그렇죠. 동기부여가 확실히 힘들고 지쳐요. 엄청 소모적인 일이고 체력적으로 지치고 남들 놀 때 못 놀고 그렇죠. 그래서 마음 다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하러 작업실에 가서 아무것도 못하고 온 날도 있어요. 작업이 뭣 같이 된 날도 있고, 3일 동안 빌드업한 작업을 다 엎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는 앉는다는 다짐이 있어요. 어떻게 되든 작업은 한다.
자리에는 앉는다는 것 자체가 안 되는 사람들이 진짜 많을 거예요. ‘오늘 안 되네? 그냥 쉬어야겠다.’ 이런 거죠. 진짜 자리에 앉게 만드는 뭔가가 있나요?
승우 : 장기적인 동기 부여, 단기적인 동기부여 다 있죠.
단기적으로는 일단 마감. 어찌 됐건 끝이 있다는 거.
그리고 작업을 마치고 나서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다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내가 너무 재미있는 게 있는데, 그게 내 생계 유지 수단이 된다면..? 이것 보다 좋은 게 없지 않나?’라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돈이라는 건 너무 중요하잖아요, 밥도 먹어야 되고 잠도 자야 되니까요. 누구나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사는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야가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된다면 꽤 괜찮은 삶이겠다. 그런 게 있죠. 하지만 다들 그걸 많이 인지하지 못 하더라고요. 사실 미대는 다른 학과에 비해 일정 정도는 이미 고등학생 때 자기가 좋아하는 걸 선택해서 들어온 특수한 성격이 있잖아요. 그런데 맨날 과제하랴, 사는 게 워낙 바쁘다 보니 내가 이 학과에 왜 들어온 것인 지에 대한 이유를 계속 놓치는 것 같아요. 놓치다 보니 체력적으로 고갈은 되는데 이유를 모르고 그러다 보니 '나 이거 왜 하는지 모르겠어', '나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같은 얘기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조금 안타까운 것 같아요.
아, 그리고 계속 일 이야기만 하다 보니 열정만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오해하실 수 있는데, 작업만큼 쉬는 것도 엄청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쉬지도 않고 '난 열정맨이니까 다 괜찮아!'라 이야기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저 지금 되게 힘들거든요. (웃음) 적합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쉬시나요?
승우 : 저는 다행히도 제가 뭘 하면서 쉬어야 할지 알아요. 저 같은 경우 어렸을 때 축구를 하기도 했고 굉장히 활동적인 아이였거든요. 지금도 테이블 리서치하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는 것보단 몸 쓰고 땀 흘리며 하는 게 더 좋아요. 천성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휴식이 필요할 때 계속 걸어요. 예를 들면 정릉에서 광화문 정도까지요. 계속 걷고, 몸을 계속 써주려 하면 풀리는 것 같아요.
걷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해야 하는 신발 디자이너에게 가장 좋은 휴식이자 습관이 아닐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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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이런 사람도 방황을 할까?
말씀을 들어보면 좋아하는 것도 확실하고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잘 쌓아오신 것 같은데, 학교에 들어오기 전이든 후든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황을 하신 적도 있나요?
승우 : 학생 때 전 공부를 안 했어요. 그러니까 3수를 했죠. 고등학생 때까지는 그냥 놀러만 다니는 학생이었던 것 같고, 제일 큰 방황은 사실 군대 가기 직적인 1학년 때 많이 했어요.
저는 대학에 들어오기까지의 기간이 오래 걸린 만큼 디자인 공부를 너무 많이 하고 싶었어요. ‘디자인 진짜 재밌겠다. 나도 이제 국민대학교 공업 디자인 학과니까, 되게 괜찮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구나. 애들도 다 나처럼 생각하겠지? 재밌겠다.’라면서요.
입학하자마자 1학년 때 핀터레스트나 뉴스 속의 재밌는 디자인들을 보곤 너무 신기하고 그랬어요. 너무 재밌어서 동기들에게 '이런 거 진짜 너무 예쁜 것 같지 않아?',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해?'라며 물었는데 생각보다 이야기를 해나가기 어려운 분위기였어요. 저는 심지어 술도 잘 못해 노는 자리에 잘 끼지도 못했고요. 당시 학교 수업에도 배울 점이 없다고 느껴 불만이 있었기에, 나에게 배울 거리를 주는 사람도, 배움을 함께 하는 친구들도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실망은 많은대로 욕심만 가득해진 상태에서 또 실기 경력은 적으니 계속 ‘뭔가를 해볼까? 잠깐만 아직 아닌 것 같아.'라는 생각이 반복됐어요. 열정은 있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는 상황들이 많았죠.
더불어 신발 디자인 쪽을 택하게 되셨으니, 공업 디자인 학과 자체에 대한 회의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승우 : 우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학 교육은 선행 연구가 주 과제이기 때문에 현재에 가치 있는 것보단 미래적인 가치를 찾았고, 당연히 자연스럽게 4차 산업혁명이니 뭐니 제가 관심이 없는 걸 시켰어요. 한창 농업 디자인, 로봇 디자인, 메카트로닉스, 미래 먹거리 등에 주를 두더라고요. 그러니까 '필요한 것'들을 시키는 학과라고 느껴졌어요. 모든 산업디자인과가 그렇긴 하지만 우리 학교가 특히 더 심하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게 뭐가 중요해?’라 생각했다기 보다, ‘그게 중요하다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닌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컸죠. 안 그래도 스스로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는데, 학과마저 굉장히 딱딱한 수업들로 구성되다 보니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학과 내 작은 워크샵도 진행했었어요. 제가 보기엔 분명 저와 같거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을 것 같았거든요. 뭔가를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거대한 집단을 끌고 가는 건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으니, 오히려 짧고 다양하게 많은 걸 경험할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획했어요. 그 회의감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가장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승우 : 선배들을 통해서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게 떠오르네요. 학교라는 집단이 내 커리어 혹은 내 실력 향상 혹은 내 공부에 기여한 것이 있느냐라 물었을 때는 솔직히 없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같아요.
나름대로 방황하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는 저학년 때 하지 않아 후회되는 것이 있나요?
승우 : 사실 반대 얘기인데.. 학교 밖에서 내 걸 찾아야겠단 생각이 강하다 보니, 오히려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너무 안 하지 않았나 해요. 그때 제 기준 다른 친구들이 하는 작업은 재미가 없었어요. 사실 지금 봐도 재미가 없어요. 근데 재미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세상을 봐야하는 게 아니잖아요. 어찌 됐건 그 친구들은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던 거죠. 비록 제가 느끼기에 개성이 없고 아이디어가 재밌진 않아도,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한 결과 어느 정도 기초적인 부분은 잘 숙달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어요. 사실 업계에서 공업 디자인 학과 사람들이 일 잘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런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안 들었거든요. 저는 교수님들께서 요구하시는 걸 이해할 수 없었고, 제가 원하는 걸 교수님 들께서 제공해 줄 수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어요. 여튼 저학년 때 조금이라도 당장 해야 할 것들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덜 혼란스러웠겠다 싶은 건 있어요.
학점도 챙기지 않으셨나요?
승우 : 학점은 1학년 1학기 때 1.98, 2학년 때는 2.21, 3학년 때는 1학기 때는 3.3, 2학기 때는 3.5 정도였어요. 3.8 이상으로 학교와 친해지는 건 도저히 할 수가 없었어요. 전혀 안 챙겼죠. 전혀.
무슨 이유로 챙기지 않으셨고, 그에 대한 후회가 있나요?
승우 : 후회 없어요. 재미 없었고, 하기 싫었어요.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명확한 목적 의식이 없으니 '원하지 않은 걸 왜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되게 많았죠. 전역 이후인 2학년 2학기나 3학년 때는 학교 외적인 일들에 더 신경을 많이 썼어요.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개인 작업을 하고, 디자이너 분들 만나러 돌아다니고, 피드백을 받았어요.
혹시나 챙기지 않은 것에 대한 단점이 있었나요?
승우 : 살짝 가오가 떨어진다? 이건 성실성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성실하지 않았죠. 그런 부분이 조금 약점이 된 거요. 근데 또 그렇게 치면 작업은 항상 하긴 하는데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거 말고 남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크게 갖지 못했다. 배양하지 못했다. 이 정도인 것 같습니다.
취업을 할 때 한국에는 학점을 많이 보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대비해 학점을 열심히 챙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국계 기업에서는 학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편인가요?
승우 : 외국계 기업에서는 내 학점을 물어보지 않아요. 제 나이도 모르고요, 학점을 기입하는 란이 있지만 증거도 요구하지 않아요. 이게 바로 제가 포트폴리오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죠. 그리고 기업 내 여러 사람들의 말에 의거하면 결국 디자이너는 실력으로 보여줘야 해요. 심지어 언어도 그래요. 지난 번 아디다스 최종 면접에서 2등으로 아깝게 떨어져서 인사팀에 "저는 제가 커뮤니케이션이 아직 충분히 유창하지 않은 걸 알고 있습니다. 혹시 안 된 것이 이것 때문인가요?"라 물으니까, "당신이 언어적인 측면에서 부족하다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디자인적 역량 중 당신의 작업 그 자체는 제일 좋았는데, 당신이 팀플레이 측면에서 1등에 비해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라 하더라고요.
결국 판단 기준은 일과 관련된 것인 거죠. 근데 사실 언어는 중요한 것 같아요. 어쨌든 소통을 해야 하니까요.
결국엔 취업을 하고 싶어하시는데, '남이 요구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갖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하셨어요. 사실 취업을 하시면 계속 남이 요구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이런 태도들이 영향을 줄 거라 생각하시나요?
승우 :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제가 맞춰나가야 하는 부분이죠. 다행인 건 적어도 제가 스스로 약점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회성 모드라는 게 있으니까요. 사실 맞추면 맞출 수 있는데, 지금은 하기 싫다 이거죠. 그러나 직장에 들어가면 맞춰야죠. (웃음)
승우 님처럼 활동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이것 만큼은 꼭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해주실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승우 : 열심히 하는 친구들은 아까 제가 말한 성실히 뭔가를 이행한 친구들이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고요, 저는 뺀질거렸어요. (웃음) 저는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 정도를 드리고 싶어요.
자기 계발서 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그게 더 이득이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요. 시각 표현은 못하는 애들이 잘 없어요. 포트폴리오는 다들 화려해요. 여기서 편차를 줄 수 있는 건 '무언가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봤고 그걸 어떻게 시각화 했느냐.'인 것 같아요. 얼마나 멋지게 표현되느냐는 건데, 자신이 경험하고 재밌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면 잘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이건 거의 팩트인 것 같아요.)
해야 돼서 했기 때문에 재밌는 게 나오는 경우는 없었으니, 재밌는 걸 하기 위해 자신이 재밌다고 느끼는 게 뭔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 이렇게 못하지? 난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계속 해야 하는 생각은 결국 정말 길게 보고 성장해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 사이에서 어떤 혼란스러움이든, 좌절이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은 계속 느껴야 할텐데, 버티려면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야 하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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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는 생각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존재합니다.
독자 분들과 함께 후기를 나눠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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