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LETTER

지난 한 세기 동안 형상과 기능에 집중되어 왔던 디자인


20세기 중반까지 디자인은 주로 형상과 기능에 집중되어 왔다. 1930년대부터 세계 디자인사에 주요 사조로 꽃을 피웠던 아르데코 Art Deco의 세 가지 특징은 고급스러움 luxury, 매혹스러움 glamour, 풍부함 exuberance로 꼽히는데, 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듯이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미학적인 의미로서 그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후 1950~70년대는 세계 2차 대전 이후 경제 재건과 대량생산으로 인해 산업디자인이 더욱 각광받던 시기였다. 현대 디자인사에 '더 적게 하지만 더 좋게 (Less but better)' 라는 역사적인 코멘트를 남긴 독일의 산업디자이너 디터 람스 Diter Rams가 주로 활동하던 시기도 위 시기와 겹친다.

 

그러나 20세기 말부터 더욱 복잡해지는 비즈니스 상황과 기술발전에 따른 인터페이스의 다양화 등으로 디자인은 물리적인 영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용자에 대한 총체적인 경험 그리고 사고하는 모든 영역에 접목되게 되었다.

1925년 파리 국제 박람회에서 선보인 아르데코 스타일의 대표적인 디자이너 에밀 자크 룰만Émile-Jacques Ruhlmann의 그랜드 살롱Grand Salon
아르데코 건축 스타일로 유명한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1930년에 완공되었다. ©Esteban Chinchilla

디자인은 사회의 여러 난제들을 해쳐나갈 수 있는 사고의 툴

리처드 뷰캐넌 Richard Buchanan은 1992년 <디자인 사고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재들 Wicked Problems in Design Thinking>을 통해 디자인은 어렵고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라고 밝혔는데, 그가 2001년 제시한 <디자인의 순차적 4단계 모형 4 orders of design>을 통해 20세기 말부터 진화하고 있는 디자인의 변화를 이해하기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리처드 뷰캐넌의 디자인의 4단계 모형, 2001년 MIT 프레스를 통해 발간된 디자인비평잡지 Design Issues의 기고에서 위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였다.  리처드 뷰캐넌은 카네기 멜론 디자인스쿨의 학과장으로 일하였고 현재 웨더해드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디자인사와 디자인 담론에 정통한 학자이다. ©Design Issues

1단계 디자인은 그래픽을 통해 디자인이 기호와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였고, 2단계 디자인은 제품, 가구와 같은 유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3단계는 UX, 서비스 디자인 등의 분야로 사람이 그들의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지막 4단계는 시스템과 주변 환경을 모두 포괄하는 형태의 디자인으로 위에서 언급된 3가지 단계의 디자인이 모두 포함된다. 예를 들어 공공 정책이나 조직 설계를 디자인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디자인은 이제 복잡한 비즈니스 세계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난제 해 있는 여러 문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고의 툴이다. 교육에 대한 접근성 상승,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사회적인 포용성 증가 등의 가치를 목적으로 디자인이 이뤄질 수 있다.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디자인, 그 역할의 확대

하지만 디자인은 지난 한 세기동안 그 타겟이 편향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로즈 아일랜드 디자인대학(RISD)의 전 총장인 존 마에다 John Maeda는 지난 반세기의 디자인을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집중해 왔다’ 고 평가했다. 좋은 디자인을 ‘총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를 최대로 만족시킬 수 있는 편의성과, 심미성, 안전성 등을 탑재한 제품과 서비스는 대체로 많은 기술과 노동력이 탑재된 소위 ‘비싼’ 제품이기 때문이다.


2007년 전시되어 세계 여러 디자이너들에게 임팩트를 주었던 뉴욕의 쿠퍼 휴잇Cooper-Hewitt 디자인 뮤지엄의 <90%를 위한 디자인>은 지금까지 편향되어왔던 디자인의 관점을 소외되었던 세상의 90%에게 시선을 돌린 좋은 사례다. 전시에서 제공된 통계에 따르면 세계 65억 인구 중 약 90%에 해당하는 58억 3천만명의 사람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제품과 서비스에 거의 또는 전혀 접근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중 절반은 깨끗한 물과 음식을 정기적으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 분석부터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인 시스템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디자인은 위생, 안전, 환경 등 현대사회가 지속가능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생산적인 툴이 될 수 있다.   

뉴욕의 쿠퍼 휴잇Cooper-Hewitt 디자인 뮤지엄의 <90%를 위한 디자인> 전시 ©Cooper-Hewit Museum

사회적 역할을 담은 작업물의 구체적인 사례로 덴마크 출신의 설치예술가이자 건축가, 디자이너인 올라푸 엘리아손 Olafur Eliason의 두 가지 프로젝트를 예로 들 수 있다. 아이스워치 Icewatch 프로젝트는 기후위기의 경각심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한 설치 조형물 전시로 2015년 파리에서 열린 UN 기후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그린란드에 떠나니는 80톤 무게의 빙하 12조각을 실제로 가져와 시계 모양으로 배치했다. 사람들은 빙하 조각을 만져보기도 하고 빙하 조각이 서서히 녹는 모습을 보며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직접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리틀 선 Little Sun 프로젝트는 전기가 없이 살아가는 전 세계 12억 명의 사람들에게 자연 에너지를 활용하여 저렴하면서도 실용적인 조명을 제공하기 위해 2012년 엔지니어 프레드릭 오테센 Frederik Ottesen과 개발한 프로젝트다. 실제 소비자인 에티오피아 지역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실용성과 휴대성을 높였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지난 10년간 약 140만 개가 전세계에 공급되었다.

  기후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임팩트 있게 전달한 올라푸 엘리아손의 아이스워치 프로젝트 ©Studio Olafur Eliasson
빙하를 실제로 만져봄으로써 관객에게 체험효과를 극대화 했다. ©Studio Olafur Eliasson
조명의 한쪽은 태양에너지 충전을 할 수 있다. ©Studio Olafur Eliasson
리틀 선 프로젝트에 따르면 전기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세계 12억명이나 된다. ©Studio Olafur Eliasson

안전을 고려한 디자인, 모두의 의무 

 

2012년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중 하나가 미국 코네티컷 주의 샌디 훅 초등학교 Sandy Hook Elemantary School에서 발생했다. 6,7살의 어린 아이들과 교직원들까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사고 이후 이 학교는 2016년 완전한 재설계를 통해 다시 세워졌다. 학교의 재건축을 총괄한 건축사무소 스비걸스 파트너스Svigals + Partners의 리드 건축가 제이 브로트먼 Jay Brotman은 MSV 4호 제작을 위한 인터뷰에서 "모든 사고를 완벽하게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예방 디자인을 통해 최소한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품 디자인, 건축 등 설계에서 안전을 고려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우선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안전이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지역에서 홍수 피해를 대비한 설계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고, 총기 소지가 금지된 지역에서 총기 사고는 공간 설계 시 주요한 고려 요소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사고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안전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을 지닌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고, 향후 안전사고 발생 시에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디자인된 샌디 훅 초등학교의 모습. 학부모들이 처음에는 모두 철통같은 요새를 만들자고 했지만, 교육 환경에 대한 깊은 토론 끝에 지금과 같이 따듯한 느낌의 학교를 디자인했다. 물론 안전에 대해 많은 부분을 강화했다. 사진제공 : Svigals + Partners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제품 또는 공간의 포용성 결여로 인해 안전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장애인, 어르신 등이 사고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오감 중 어느 한 부분 이상 제약이 있다면 사고를 인지하고 대피하는 데 치명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화재 시에 빠른 대피가 필요한데,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집 안에 혼자 있게 된다면 매우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장애인 뿐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 혹은 독거노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제품과 공간을 디자인할 초기 단계에서부터 반드시 이러한 사용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차량 사고시 빠르게 탈출을 해야하는 데 지체 장애로 인해 한 손으로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초기 디자인과 설계 단계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한다. ©Clark Van Der Beken 
김병수 미션잇 대표, MSV 발행인  

사회적으로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들까지 디자인을 통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미션잇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을 공부했다. 현대 사회 문제를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MSV를 발행하며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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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를 만나는 MSV 뉴스레터에서는 매거진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달 드립니다. 핵심적인 키워드는 ‘디자인의 사회적 가치 Design for Social Value’와 ‘포용적인 디자인 Inclusive Design’ 그리고 ‘접근성 Accessibilit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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