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영본색 12호
2021-10-07 한로

안녕하세요 이하오입니다. 

  중국의 건국 기념일인 국경절 연휴가 10월 1일부터 10월 7일까지 일주일간 이어졌습니다. 중국 극장가는 긴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 영화를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오늘 중영본색에서는 국경절 중국 극장가 풍경과 선전 영화 두 편 <장진호>, <나와 나의 아버지>, 그리고 은약흔 감독의 신작 <안녕, 소년>을 소개합니다.
1. 국경절 중국 극장가는 빨간맛
  일주일간 이어지는 국경절 연휴는 춘절, 여름방학과 함께 중국 영화계의 3대 대목 중 하나입니다. 중국 건국을 기념하며 공산당에서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벌이는 국경절 연휴, 극장가에서는 매년 가장 공들여 제작한 선전용 영화를 공개합니다

  올해 국경절에는 선전 영화 두 편 <장진호 长津湖 >, <나와 나의 아버지 我和我的父辈>를 포함해 <피피루와 루시시의 깡통소년 皮皮鲁与鲁西西之罐头小人>, <물에 뛰어든 다섯 소년 五个扑水的少年> 10여 작품이 개봉했습니다. 모두 중국 국내 작품이고 명절용 어린이 영화가 많습니다. 올해 국경절 연휴 기간의 박스오피스는 45억 위안을 넘기며 역대 최고의 국경절 흥행성적을 달성했습니다.

올해 국경절도 중국 극장가는 선전 영화가 점령했습니다. 상위 두 편 <장진호>와 <나와 나의 아버지>의 시장 점유율이 90%를 초과합니다. <장진호>는 개봉 일주일만에 흥행수익 30억 위안을 넘기며 올해 중국 박스오피스 3위에 올라섰고, <나와 나의 아버지>는 10억 위안을 넘겼습니다. 반면 상위 두 작품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의 수익은 각각 5천만 위안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에 도전한 남고생들의 이야기 <물에 뛰어든 다섯 소년>은 웰메이드 청춘물로 높은 평가와 평점을 받았지만, 최종 흥행수익 1억 위안을 넘기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연휴 기간의 시너지를 얻기 위해 국경절에 맞추어 개봉했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났습니다. 국경절에는 선전 영화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2. 70년 전에도 지금도 미중갈등은 진행중

  <장진호>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입니다. 선전 영화의 베테랑 황건신(黄建新) 감독이 총감독을 맡았고 천카이거(陈凯歌), 서극(徐克), 임초현(林超贤) 등 중국 대표 액션영화 감독들이 공동연출했습니다. 주연배우로는 오경(吴京), 이양천새(易烊千玺), 주아문(朱亚文) 등이 출연하며 역대급으로 화려한 제작진이 구성되어 많은 기대를 모았습니다.

왼쪽부터 황건신, 천카이거, 서극, 임초현 감독
  영화 <장진호>는 두 형제를 주인공으로 장진호 일대에서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미군과 전투를 벌인 중공군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갑작스럽게 작전을 명령받고 장진호로 떠난 중공군은 홑겹 군복 차림으로 영화 40도의 혹한과 마주하고 폭격기와 탱크, 기관총 등 신식 무기로 중무장한 미군에 맨몸으로 맞서 싸웁니다. 미군이 추수감사절을 기념하며 따뜻한 칠면조 요리를 먹고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는 동안 중공군은 눈 덮인 바위 사이에 몸을 숨기고 꽁꽁 언 감자를 나눠먹는 모습을 과장해서 보여줍니다. 영화 <장진호>에는 한국군과 북한군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군을 상대로 중공군의 의지와 애국심이 승리했다"는 것만 거듭 강조합니다.

  영화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미중갈등의 배경을 71년 전 장진호로 옮겨놓고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미국에 대한 반감을 부추깁니다. 국경절을 맞아 영화관을 찾은 중국인 관객들은 영화 <장진호> 속 날카롭게 하늘을 가르는 미군의 전투기 소리에 탄식하고, 미군을 상대로 4:1 육탄전을 벌여 승리하는 중공군의 모습에 환호합니다. 

  <장진호>는 엄마 아빠와 함께 온 어린아이부터 노년층 관객까지 모든 세대를 망라하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개봉 8일 차에 접어든 10월 7일 기준 34억위안 수익을 달성했으며 장기적으로는 올해 중국 박스오피스 1위인 <안녕 이환영 你好,李焕英>의 수익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장진호>가 세시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일일 상영 횟수가 훨씬 적은 것을 고려하 더욱 놀라운 성적입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9월 24일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하와이에 안치되어있던 장진호 전투의 국군 전사자의 유해를 모셔오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난지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한 분단상황과 이념갈등, 주변 국가들의 세력다툼이 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3. 변화하는 중국의 선전 영화 <나와 나의 아버지>
  2019<나와 나의 조국 我和我的祖国> 2020 <나와 나의 고향 我和我的家乡>에 이어 올해는 <나와 나의 아버지 我和我的父辈>가 개봉했습니다. 나와 나의시리즈는 3년 연속 국경절 기간에 맞추어 개봉되고 있는 선전 영화,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감독이 제작한 단편을 합치는 옴니버스 형식입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는 중국의 유명 배우 오경(吴京), 장쯔이(章子怡), 서쟁(徐峥), 심등(沈腾)이 각각 단편의 감독 겸 배우를 맡아 화제가 되었습니다

왼쪽부터 2019년 <나와 나의 조국>, 2020년 <나와나의 고향>, 2021년 <나와 나의 아버지>
  <나와 나의 아버지> 국가와 가정을 주제로 네 가지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네 가지 이야기는 각각항일전쟁 시기 기마부대에서 함께 싸운 부자 △ 60년대 양탄일성(两弹一星: 원자탄, 수소탄, 인공위성) 제작 임무에 동원된 한 가정개혁개방 초기 중국 첫 TV 광고를 제작한 부자 △2050년에서 현재로 파견된 로봇 아빠와 만난 아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선전 영화에서는 중국 정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과제가 잘 드러납니다. <나와 나의 아버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가치의 전환”“과학 기술”입니다. 2019년 <나와 나의 조국>에서는 국가발전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며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올해 <나와 나의 아버지>에서는 한층 더 경쾌한 분위기로 실패를 딛고 발전하고자 하는 미래지향적 가치를 드러냅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달라진 가치를 “과학 기술”을 통해 실현하고자 합니다. 특히 항공우주기술 개발의 과거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우주산업 강대국을 향한 중국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 과학기술의 과거와 미래를 다룬 단편. 왼쪽부터 <시>, <소년행>
  <나와 나의 아버지>는 상영 8일 차 흥행 수익 10억 위안을 넘겼습니다. 시리즈 전작 <나와 나의 조국> 31억 위안, <나와 나의 고향> 28억 위안의 수익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입니다. 그러나 시리즈를 거듭하며 작품의 형식과 연출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과 중국의 변화하는 가치와 과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나와 나의’시리즈 가치를 증명합니다.
4. "빠링허우"의 기억 <안녕, 소년>
  올해 4월 초 중국에서 개봉한 <내가 날 부를 때 我的姐姐> 9월 한국에서 개봉 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내가 날 부를 때>는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어린 남동생의 양육을 떠맡게 된 누나의 이야기로, 중국의 남아선호사상과 출산 제한정책 등 중국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내가 날 부를 때>의 은약흔(殷若昕) 감독과 장자풍(张子枫) 배우 조합의 신작 <안녕 소년 再见,少年>이 8월 말 개봉했습니다.

왼쪽부터 <내가 날 부를 때>, <안녕 소년>
  <안녕, 소년>은 2000년대 초 폐쇄된 광산 근방의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우등생 여학생과 문제아 남학생의 우정을 다루었습니다. <안녕, 소년>은 매끄럽지 못한 스토리와 산만한 연출 그리고 남자주인공의 어색한 연기로 형편없는 흥행성적과 관객 평점을 받았습니다. #소년범죄, #학교폭력, #우등생 소녀와 문제아 소년 등 동일한 소재를 다룬 2019년 영화 <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와 스토리, 연출, 연기 등 모든 방면에서 비교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녕, 소년> 작품의 의미는 2000년대 초 중국 사회상 재현에 있습니다. 지역의 광산들이 문을 닫아 실업자가 늘어나고, 중국의 대입 시험(高考)이 7월에서 6월로 당겨지고, 신종 감염병 “사스”가 발생하여 등교가 제한되는 등 당시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빠링허우(80后) 관객들은 <안녕, 소년>에 대해 “영화를 보니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어수선한 것은 영화가 아니라 저 시대였다. 또 다른 나의 이야기를 본 것 같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빠링허우인 은약흔 감독이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세심하게 새겨넣은 결과물입니다. 

  한편 <내가 날 부를 때>의 완성도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안녕, 소년>에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극장 개봉일은 <내가 날 부를 때>가 <안녕, 소년>에 비해 5개월 앞섰지만, 제작 시기로는 <안녕, 소년>이 인뤄신 감독의 첫 연출작입니다.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한 작품을 거치며 놀랍게 성장한 감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인 감독이 귀한 중국 영화계에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지닌 은약흔 감독의 등장이 반갑습니다.
  중영본색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 이슬이 맺히는 시기 “한로(寒露)”가 다가왔습니다. 국경절 기간 내내 비가 내리던 북경은 기온이 10도까지 뚝 떨어져 단풍이 채 무르익지도 않은 푸른 나무 사이로 패딩과 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급격히 변하는 기온에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중영본색 연재가 어느덧 꼬박 반년이 되었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관심과 응원 덕분에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더 재밌고 유익한 소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발행인 이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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