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사 레터 84회 (2022.1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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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시사> 구독자 여러분. 저는 시를 쓰는 고명재입니다. 여러분은 시 읽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는 시집을 보면 마음이 곶감처럼 환해져버려서 자꾸만 아껴 읽게 되어요. 겨울에는 그래요. 물렁한 곶감에 이를 앙 깊숙이 박은 채, 차가운 수정과를 들이켭니다. 그게 바로 겨울의 맛이죠. 바깥이 너무 추우니까 사랑의 단물을, 입속에 밝은 맛을 채우는 거죠. 또한 겨울에는 이야기가 별미죠. 창밖이 시리고 냉혹할 때, 우리 안엔 이야기가 꿈틀거려요. 그래서일까요. 러시아의 소설들은 유독 길지요. 또 북유럽의 동화들은 얼마나 아득한가요. 오늘 저와 함께 읽을 시들도 그래요. 겨울이니까 일부러 긴 시들을 골랐어요. 그럼 지금부터 이불을 곱게 펼치고 귤을 까고 편하게 엎드린 뒤에 시 속으로 조용히 떠나볼까요. 눈을 밟는 기쁨으로 시를 펼치고 사박사박 나란히 걷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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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시인이 사랑하는 첫번째 시💘
백 (장혜령,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
어젯밤 꿈속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시를 읽고 있었는데 그것의 마지막 행에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이라 적혀 있었다. ‘그대는 발자국 없이 눈길을 가는가, 그대는 지워지기 위해 걸어가는가.’ 내 문학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게 시 안으로 들어가라 했다. 나는 그렇게 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전나무 가지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새를 불러들이는 사내의 휘파람소리가 들렸다. 가지에서 후드득 눈이 쏟아졌고 새가 날아올랐다. 시의 첫 연이었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선생은 말이 없었다. 나는 머지않아 나 자신이 두번째 연의 첫 행임을 알았다.
한 여자의 곁이었다
여자는 새였다
나의 왼편에 있었다
여자의 날개를 뜯어
어린 새들에게 먹였다
나는 얼굴을 붉히며 나를 읽었다. 새의 흰 날개가 하늘을 채웠고 거대한 수정 하나가 끝없이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는 소년이었고, 새는 속삭임이었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위가 항아리 속처럼 어두워져갔다.
낯선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여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을 발하는 꽃 아래 있었다. 그녀는 겹겹의 문(門)에 대해, 입구를 열면 다시 새로운 입구가 열리는 꽃의 내부에 대해 말했다. “새의 날개를 닮은, 고요히 물결치는 백(白)의 입구로 들어가라.” 그녀가 말했다. “그것이 너의 내부다. 너의 문장 속으로 들어가라.”
그것은 희었고 내 앞에서 슬픔처럼 부드럽게 벌어지며 열렸다. 나는 걸었다. 빛의 계조(階調)를 따라 어두운 흰빛에서 밝은 흰빛으로, 점점 더 밝은 흰빛으로. 이마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내 문학 선생을 바라보았다. ‘발자국 없이 눈길을 가는가, 지워지기 위해 걸어가는가.’ 선생의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이 희부윰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선생은 내리는 눈 속에 서 있었다.
눈을 떴을 때, 흰 작약 한 송이가 머리맡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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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를 걸어도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것, 그러나 지나고 보면 가슴이 완전히 변해 있는 것. 그게 바로 시와 꿈과 삶인 것 같아요. ‘지나고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했어.’ 저는 이런 말을 할머니에게서 종종 듣고는 했어요. 시를 쓰거나 읽는 일도 그런 거 같아요. 흔히 문학 선생님들이 그런 말을 하고는 하죠. 시를 정말 깊이 사랑하고 싶다면 “시 안으로 들어가라”. 흥미로운 건 이 시의 ‘나’는 정말 그렇게 해요. 말 그대로 시 속으로 들어가버리죠. 처음에는 망설이며 뒤를 돌아도 보고, 자신이 “두번째 연의 첫 행임을” 깨닫기도 해요. 그렇게 나는 시를 통해 “한 여자”가 날개를 뜯어서 자식을 키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맞아요. 이렇게 “나를 읽”어내는 일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기도 해요. 그런 “겹겹의 문”을 하나씩 열며 “백(白)의 입구”를 드나드는 우리가 있어요. 시 속에서 나는 소년이 되기도 하고 낯선 여인의 무릎에 누운 유년도 되어요. 그런데 이 모든 여정은 무얼 뜻하는 걸까요. 이 과정은 시쓰기일까요. 시 읽기일까요. 아님 꿈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일, 겹겹으로 이어지는 ‘삶’일까요. 이렇게 시 속의 '나'는 아름다운 세계를 “낭랑한 목소리”에 힘입어 드나듭니다. 그리고 시 밖으로 천천히 나오면, 나를 이끈 문학 선생이 눈을 맞고 서 있죠. 참 아름다워요. 스승이 열어준 길을 넘어서 자신만의 생을 드나드는 일이요. 거기서 또 한번 눈을 뜨면 머리맡에서 “흰 작약 한 송이가” 흔들리지요. 그렇게 삶은 슬프고 눈부시게 아름답지요.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아름다운 길. 저도 할머니랑 한 번만 더 걷고 싶네요. 그게 허락되지 않아서 시를 쓰는가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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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우.시.사. 소식🤍
💛오늘의 시믈리에, 고명재 시인의 미니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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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을 위해 고명재 시인의 미니 인터뷰를 준비했어요. 첫 시집 출간 소회부터, 시에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 특별히 아끼는 시 등 궁금하실 내용을 전부 여쭤봤습니다. 시인의 답변이 궁금하다면 아래 버튼을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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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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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시인이 사랑하는 두번째 시💘
나의 도시 (허수경,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나의 도시들 물에 잠기고 서울 사천 함양 뉴올리언스 사이공 파리 베를린
나의 도시들 물에 잠기고 우울한 가수들 시엔엔 거꾸로 돌리며 돌아와, 내 군대여, 물에 잠긴 내 도시 구해달라고 울고
그러나 나의 도시들 물에 잠기고 마치 남경 동경 바빌론 아수르 알렉산드리아처럼 울고
도서관에서는 물에 잠긴 책들 침묵하고 전신주에서는 이런 삶이 끝날 것처럼 전기를 송신하던 철마도 이쑤시개처럼 젖어 울고
나의 도시 안에서 가엾은 미래를 건설하던 시인들 울고 그 안에서
직접 간접으로 도시를 사랑했던 무용수들도 울고 울고 울고
젖은 도시 찬란한 국밥의 사랑
쓰레기도 흑빛이었다가 흰빛이었다가 보랏빛 구릿빛 빛 아닌 살갗이었다가
랩도 블루스도 기타도 현도 방망이도 철판도 짐승의 가죽으로 소리 내던 북들도 젖고
유전인자 관리하던 실험실도 잠기고 그 안에서 태어나던 늑대들도 잠기고
나의 도시 나의 도시 울고 그 안에서 그렇게 많은 전병이나 만두를 빚어내던 이 방의 식당도 젖고
생선국 끓이던 솥도 고기 튀기던 냄비도 젖고 젓가락 숟가락 사이 들락거리던 버스도 택시도 어머니, 연을 끊지요, 라는 내용이 든 편지도 젖고
나의 도시 나의 도시 잠기고 물에 들어가면서도 고무신 하나 남기지 않고
나의 도시 도시의 장벽마다 색소병을 들고 울던 아이들도 젖고
나의 도시 나의 도시 당신도 젖고 매장당한 문장들 들고 있던 사랑의 나날도 젖고
학살이 이루어지던 마당도 폭탄에 소스라치던 몸을 쟁이고 있던 옛 통조림 공장 병원도 젖고
죄 없이 병에 걸린 아이들도 잠기고
정치여, 정치여, 살기 좋은 세상이여, 라고 말하던 사람들 산으로 올라가다 잠기고
물 위에 뜬 건 무의식뿐, 무의식뿐,
건덩거리는 입술을 위로 올리고 죽은 무의식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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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는 아름다운 ‘언어’가 아니라, 그냥 ‘목소리’가 아닐까요. 저마다 다르고 저마다 유일한 우리의 목소리. ‘언어’가 아니라 ‘울리는 소리’ 그 자체의 힘이요. 용감하게 우는 사람. 용기로 울기. 이게 가능하다는 걸, 저는 허수경 시인으로부터 배웠어요. 그 왜소하고 조그마한 체구 속에 “서울 사천 함양 뉴올리언스 사이공”을 가리지 않고 싸안아주는 거대한 팔이 있어요. 여기에는 국경도 직업도 인종도 없어요. 모든 것이 물의 둘레 안에 있어요. 이 ‘신적 규모’의 거대한 슬픔은 “나의 도시”라는 마음의 공유지로 표현되는데요. 이 도시는 “바빌론 아수르 알렉산드리아” 같은 찬란한 옛 문명도, 현재까지 빛나는 “도서관”(문화, 역사)도 포함해요. 또한 “유전인자”를 관리하는 실험실(과학)에도 “생선국 끓이던 솥”과 “숟가락”(섭식 행위)에도, 결연을 다짐하는 자식의 편지(마음)에도 “나의 도시”는 존재하고 그는 울어요.
그러니 이 시의 서술어는 계속해서 이어지죠(울고, 젖고, 잠기고). 어떻게 죽음과 사랑을 끊어낼 수 있나요. ‘~한다’라는 형식으론 차마 끝낼 순 없죠. “시엔엔” 뉴스에서 그는 무얼 마주한 걸까요. “거꾸로 돌리며 돌아와, 내 군대여”라며 하소연해도 막을 수 없는 처참한 일들을 바라보면서. 시인은 ‘울고’ ‘젖고’ ‘잠기고’라는 빈약한 술어로 시를 겨우 이어갈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이어져온 수 세기가 인간이에요. 이렇게 이어져온 수 세기가 심장이에요. 최근에도 우리 심장은 부서졌지요. 그때마다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용감하게 울 수밖에요. 마음을 모아, 진실로 계속 젖을 수밖에요. 그렇게 “찬란한 국밥의 사랑”처럼, 가슴이 아파 펑펑 우는 거대한 신처럼, 휩쓸리는 도시처럼, 이 시의 리듬처럼. 우리의 내면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고, 스스로를 꾸짖는 ‘마음의 박동’이 있어요. 그게 바로 시라고 여기, 미래가 있다고. 저는 감히 그렇게 믿어보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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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믈리에는 올해 첫 시집 『감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로 독자분들을 찾아온 박승열 시인입니다. '첫' 시집다운 치열한 혈기로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시인이 고른 두 편의 시는 무엇일까요? 다음주 수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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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사의 시믈리에가 되어주실 분 🙋♀️💛
우시사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아래 링크의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주세요.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하나씩 꺼내어 우시사 독자분들께 대신 소개해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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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우.시.사.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
💬 얼마 전 여동생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6월 말 진단을 받고 11월 21일 떠나기까지 5개월 남짓 동안의 시간이 거짓말인지, 동생이 부재하는 지금의 일상이 거짓말인지 모르겠는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동생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길지 않겠다 느낄 때쯤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고, 우시사에서 보내주신 이사라 시인의 시를 오래오래 생각했습니다. 동생이 떠나고 없는 지금, 저는 일상으로 돌아와 잘 먹고 잘 웃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지 못하는 부분만 빵꾸난 채로 잘 지내고 있는데요. 이 춥디추운 아침, 따뜻하지만 무료한 회사에서의 오전 시간에 메일함을 열고 우시사에서 보내준 오늘의 시 두 편을 읽을 때 이런 행복 정도는 누려도 괜찮겠지, 생각했습니다. 동생을 보내고서도 너무 잘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 평생 가장 좋았던 친구를 잃고 난 후의 외로움, 막막함 같은 것들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지만 그 사이에도 이렇게 세상의 작고 행복한 것들을 누려도 괜찮겠지,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의견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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