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를 달성한 애플TV+ 시리즈 <파친코>를 보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원작부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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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손님. 비잉벨
멘탈 스타일리스트. 명상하듯 읽는 뉴스레터 <출근 10분 전>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웹소설, 공연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왔으며, 임진모 선생님께 Mnet 그래미어워즈 중계 자리를 물려 받는 그날까지 <MZ세대 한국인의팝송 100>을 연재 할 예정이다. 
진행. ㅎㅇ
10일에 한 번씩 뉴스레터 <콘텐츠 로그>를 보내고, 격주로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말한다. 어렸을 적 깊이 흠모했던 팝스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엔 싱크였지만, 노래방에서 부르는 영어 노래는 캘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 뿐이었다.
Podcast Episode
EP28. "지금 이 계절 우리가 뽀개야 할 대하소설"

ㅎㅇ 지금까지 2주에 한 번씩 갓 나온 신간 소설을 소개해드렸었는데요. 구간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오늘은 4년 전에 출간 된 《파친코》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오는 3월 25일, 애플 TV+에서 동명의 드라마 시리즈의 공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인데요. '선자' 역의 윤여정 배우, '한수' 역의 이민호 배우 등 캐스팅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킨데다가, 제작비도 어마어마하게 든 프로젝트로 알려졌죠. 


사실 제가 이번 작품의 줄거리를 정리하다가 스크립트에 눈물 표시를 해두었는데요. 이게 도대체 몇 년이에요. 1910년부터 1989년까지를 가로지르는 소설입니다. 애플 TV+ 공식 소개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꿈과 희망을 그렸다"고 되어 있고요.

© APPLE TV+


비잉벨 저는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이라는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 것 같아요. 물론, 드라마에서는 이런 점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고 로그라인을 뽑았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보다 저는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확장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어요. 주인공뿐 아니라 정말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모두의 삶이 어쩔 수 없이 확장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했다면 영상화를 하기가 힘들었겠죠?


ㅎㅇ 맞아요. 등장인물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읽으면서 4대에 걸친 인물들의 인물관계도를 그리다가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또 눈물이 났어요.


작품이 공개 되기 전에 일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시사가 진행 됐는데, 해외 영화/TV 비평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는 전원이 만점을 줬더라고요. 해외 평단에서는 굉장히 좋은 평가를 얻고 있고 저희 둘은 지금 드라마를 보기 직전이라 너무 궁금해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있죠. 


© Rotten Tomatoes

ㅎㅇ 그럼, 이민진 장편소설 《파친코》(2018, 문학사상)이 이루어낸 성과들에 대해 살펴볼게요. 2017년에 출간된 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같은 해 The New York Times, BBC 등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 되었습니다. 그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출간된 지 2년 후인 '2019년 올 해의 책'(favorite books of 2019) 중 하나로 이 책을 골랐고요. 오바마 전 대통령은 "회복과 연민에 대한 강력한 소설이다."라고 한 줄 코멘트를 달았는데요. 이에, 이민진 작가가 "당신은 언제나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사람이다. 역사는 당신의 위대함을 기억할 것이다."라며 훈훈한 코멘트로 화답 하기도 했어요. 


© Engadget

ㅎㅇ 이민진 작가가 《파친코》의 초안을 떠올린 게 1989년이라고 하더라고요. 7세 때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 했고, 중간에 남편분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를 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각 잡고 초안을 검토하게 된 거예요. 소설의 디테일을 구현하기 위해 재일교포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을 여럿 만나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내 초안을 살릴 수 없겠구나'라는 판단이 들어서, 처음부터 새로 썼다고 하시더라고요. 완성까지 거의 30년이 걸린 작품입니다.


이게 저자의 첫 작품은 아니고요. 데뷔작은 맨하탄 금융가에서 고군분투하는 한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 이미지박스, 절판도서)이고, 《파친코》(2018, 문학사상)를 지나, 차기작으로는 한국인의 교육열을 다룬 《American Hagwon》을 집필중이라고 해요. 이민진 작가의 공식표현에 따르면, 'The Koreans' 3부작이 곧 완성되는 셈이에요. 《파친코》의 정성스러운 초안을 엎었다는 것도 그렇고, 대단하지 않나요. 정말 이런 사람이 소설가가 되는 걸까요?


비잉벨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이민진 작가의 사명인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한국인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으신대요. 그런 질문에 답변하는 이민진 작가에게서는 즐겁고 행복한 듯한 인생이 전해지고요. 물론 한국인이라서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걸 넘어선 인류애가 느껴져요. 


ㅎㅇ 각 분야에서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 했거나, 하고 있는 이들이 그걸 창작의 요소로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죠. 하지만, 《파친코》는 혼란을 겪는 나의 이야기 혹은 내 주변의 이야기로만 한정 지은 게 아니라, 엄청나게 긴 시간을 아우르는 대하소설의 포맷으로 풀어내고 있다는게 다른 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었고, 시작할 때는 심리적 장벽이 있었는데요. 비잉벨님께서는 단숨에 다 읽었다고 제게 알려주셨잖아요. 전반적인 감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비잉벨 사실, 읽기 전에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을 다룬 콘텐츠에 어느정도 익숙하다고 생각 했거든요. 서럽기는 하지만 문학이 꽃 핀 시기였고, 저희세대가 그 시절의 문학을 교과서로 배우면서 자라나기도 했죠. 근데 일제강점기에 조선 땅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중에 우리가 들은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었던 것 같아요. 사명을 가지고 만주로 떠난 독립운동가들, 동경으로 간 엘리트 유학생들이자 활동가들처럼요.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아냈던 '서민의 이야기'를 어디서 봤을까 하니 단번에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이 소설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달리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비잉벨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역시 '선자'였어요. 이 소설에는 선자가 태어날 때부터 노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외동 딸로 태어난 선자가 사랑 받고 자란 딸이라는 설정이 참 좋았어요. 어려운 시기에 고국을 떠나 오사카로 넘어가서도 나름 무탈히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었던 힘이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민진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한인 가정의 모습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요즘은 정상 가족 담론에 집착하지 말아야 된다는 이야기가 오고 가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랑의 힘으로 유지되는 가정에 대한 로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이상향을 잘 보여주는 게 선자라는 인물이죠.


ㅎㅇ '선자'가 가장 인상적이셨군요. 이어서, '한수'가 어떤 캐릭터인지도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비잉벨 '한수'는 '선자'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남자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했지만 자신이 가진 건 또 포기할 수 없는 그런 남자이고요.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자기 욕심 때문만은 아닌 게, 그는 야쿠자(일본 조직폭력배)의 사위거든요. 가지고 있는 걸 포기했다가는 위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어요. 그만큼 지켜야 하는 것도 가져야 하는 것도 많은 인물인데요. 그렇다고 선자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는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왜 한수라는 캐릭터가 좋았을까에 대해 고민해봤는데요. 한국 문학 속에 '김첨지'라는 상징적인 인물이 있잖아요.

ㅎㅇ 설렁탕을 사다주면서, 왜 먹질 못하니 라고 하는.

비잉벨 맞아요. 현진건 <운수 좋은 날> 속 인력거꾼이요. 저는 한국 콘텐츠에 김첨지 감성이 은은하게 퍼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한마디로 후회하는 남성상이죠. 아내와 딸, 가족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는 걸 아는 남성상. 문학 뿐 아니라 가요에도요. "그대의 생일날 따뜻한 밥 한 번 못 사주고"(김건모 '미안해요') 같은 것들이요.

하지만, 한수는 확실히 김첨지가 아니에요. 선자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주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일견 멋진 인물인데도 백마 탄 왕자님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달까요. 그 이유는 한수를 향한 선자의 태도 때문인 것 같아요. 선자는 '이 사람이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니'에서 비롯된 배신감 때문에 헤어진 후로 단 한 번도 한수를 받아주지 않죠. 60년동안 철벽을 치는 거예요. 선자의 삶에는 로맨스가 끼어들 틈이 없죠. 먹고사니즘이 너무 중요한 인물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 두 사람의 관계성이 거의 60년동안 이어져요. 60년 동안 팽팽하게 썸을 타는 거예요. 

ㅎㅇ 한수는 김첨지가 아니다. 선자는 60년동안 썸을 탄다. 이렇게 다시 보니까 강렬한데요.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지점에서는 한수라는 인물이 짜증 나고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자신이 가진 모든 재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선자의 주변 사람들을 조사하니까요. 그래서 선자의 가족 중 한 사람이 한수의 그런 부분에 깊이 빡치고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장면도 있죠.

비잉벨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떠올린 음악은 루나의 '예쁜 소녀'입니다. 이 곡에 "씁쓸한 커피 맛을 알지 않았으면 좋겠어 예쁜 소녀여"라는 가사가 있는데요. 10대 때 첫 아이를 낳고, 생계를 이어나가는 선자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루나는 계속해서 보고 싶은 아티스트인데요. 솔로앨범을 통해 자신이 가진 파워가 음악에 온전히 실리는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그룹활동을 할 때에는 '자 이제 루나 나온다' 싶은 파트가 있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이렇게까지 완급 조절이 잘 되는구나 싶어서 감격했고, 이 앨범을 특히 좋아했어요. 

비잉벨 두 번째 노래는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입니다. 동명의 영화 OST이면서, 김윤아 솔로 앨범에 실린 곡인데요. 이 노래는 책의 중반 이후로 넘어가 장년이 된 선자를 보면서 떠올린 노래에요. 선자는 더이상 젊을 때처럼 바쁘게 일하지 않아도 되죠. 그렇다고 선자가 지금 행복한가 하면 그렇진 않아요. 한수를 향한 60년간의 철벽, 아들과의 어긋난 관계 같은 것들이요. 애플 TV+의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보니까, 장년의 선자 역을 맡은 윤여정 배우가 창 밖을 보면서 허무한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이 노래의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같은 가사와 장년의 선자가 가진 정서를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ㅎㅇ 저 역시 선자를 떠올리며 세 번째 곡으로, 우효의 '당신은 어디에'를 골라봤어요. 우효는 서울에서 태어나 3살 때 미국으로 이주 했고, 지금은 런던에서 살고 있는,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에요. 그래서 한국어 가사로 된 곡, 영어 가사로 된 곡을 두루두루 만드는데요. 우효의 설명에 따르면 이 곡은 "가장 클래식한 한국 사랑 노래"이고, "한국 가요만이 가진 사랑의 언어를 떠올리며 만든 노래"라고 했어요. 80-90년대의 가요를 듣는 것처럼 서정적으로 시작되고 나중에는 처절한 보컬도 들을 수 있는 그런 곡이고요. '당신은 어디에'라는 제목은 말 그대로 선자가 자신의 온갖 주변 인물들을 향해 외쳤던 마음의 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한수도, 가족 중 사랑하는 누군가도, 자취를 아예 감춰버리는 일들이 생겼을 때 그런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 않았을까요. 

ㅎㅇ  마지막 곡은 Crush의 'from midnight to sunrise' 입니다. 오늘 저희가 계속 이야기를 나눈 것 처럼 이 작품이 드라마화 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봤어요. 이미 드라마는 제작 완료 된 후이지만, 트레일러 영상을 보면서 어딘가 장면과 장면 사이의 배경음으로 깔리면 좋을 듯한 가요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중점을 둔 선곡입니다. 4대에 걸친 등장인물들이 매 번 생계를 꾸려 나가야 되고, 돈을 어떻게 벌지를 고민하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이들이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내내 삶에 찌들어 있지만, 밤이 되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에는 의외로 별 일이 없어요. 저는 그게 조금 신기했거든요.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밤에 자고 있다가 공습을 당한다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대응 불가한 상황을 맞는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던 거예요. 낮의 시간과 달리 밤에는 어느 정도 평온함이 유지된다라고 읽혀서, 파친코 속 인물들의 늦은 오후 시간을 떠올리면서 이 곡을 골랐습니다. 이 곡은 아주 차분한 재즈 곡인데요. 어떤 극적인 장면이 나온 후에 전환될 때 이 음악이 깔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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