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마주할 때마다 여러 감정을 느낍니다.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외국어는 높은 확률로 태생부터 그 언어를 써온 사람들만큼 자유롭게 쓰기 어렵습니다. 그 당연한 명제에서 오는 좌절감 속에서 낑낑거리며 애쓰다 보면 어쩐지 초라해지는 느낌도 들죠.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외국어를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 한국어와 다른 문법 체계도 흥미롭고, 언어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문화나 사고를 흘겨볼 때면 새로운 발견을 한 것처럼 재밌기도 하고요. 공부는 괴롭지만, 더듬거리더라도 외국어를 말하는 저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외국어 화자의 말투를 따라 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말투나 몸짓, 표정 같은 요소도 따오게 됩니다. 그렇게 어설픈 모방을 계속하다 보면 어쩐지 그의 성격 일면까지 나에게 맞닿는 느낌이 들어요. 또는 내가 상상하는 그 외국인의 모습이 슬며시 제가 내뱉은 언어에 녹아들기도 해요.
외국어를 말할 때의 발성이 한국어와는 다르다는 대화를 친구와 나눈 적이 있습니다. 목소리나 발성 차이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굉장히 재밌었는데요. 우선 프랑스어와 영어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프랑스어는 목구멍 뒤로 넘기며 먹는 발성이라 웅얼웅얼 들리고 영어는 입 밖으로 뱉는 언어라 좀 더 크고 당차게 들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친구는 각 외국어를 말할 때마다 성격도 바뀌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듣다 보니 제게도 해당하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저는 우선 프랑스어를 말할 때 목소리가 살짝 낮아지는 편입니다. 평소 제 목소리가 가는 편이라 생각해서 은근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요, 불어를 말하는 제 목소리는 한 톤 낮게 들려서 개인적으로 불어 말하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불어를 말할 때는 뭔가 말투를 질질 끌기도 하고(?) 어쩐지 불만이 섞인(ㅎㅎ) 목소리가 된달까요. 이건 제가 느끼는 프랑스인의 모습을 그대로 가져온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영어를 말할 때는 친구의 경우처럼 조금 더 활기차지는 것 같아요. 괜히 제스처도 커지고, 눈을 굴린다든가 표정도 다양해져서 스스로도 재밌습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건방져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확실히 성격도 조금 더 직설적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외국어에 능숙하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맥락을 짚어내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해서 말할 수 없어서 한국어에서는 자연스럽게 남용하던 쿠션어도 외국어에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같은 이유로 타인의 말 또한 두세 번 곱씹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준인데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성격도 조금 더 직관적이고 쿨해지지 않았나 추측합니다.
언어만 바꿨는데 목소리는 물론이고 성격까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지 않나요? 마치 다른 자아로 바뀔 수 있는 도구가 생긴 느낌이에요. 반대로 생각해 보면 언어가 얼마나 많은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인지 새삼스럽게 놀랍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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