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박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미국 철학자 토머스 네이글의 이 사고실험은 의식을 다루는 연구에서 두루 인용됩니다. 의식이 주관적인 경험이라면, 박쥐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박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침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식의 문제가 해명하기 ‘어려운 문제’인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네이글의 사고실험은 인간이 자신을 기준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환원주의에 제동을 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된다는 것’을 모델로 삼아 ‘박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일지 가늠해보는 ‘의인화’의 오류를 범합니다. 이는 주로 ‘기능’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어둠 속에 살면서 음파 탐지를 통해 공간을 지각하는 박쥐의 청력은 ‘인간에게 있어서 시력과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고 여기는 것을 대표로 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이런 식의 의인화를 경계하는 것에는 또다른 함정도 도사리고 있습니다. 예컨대 ‘박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이 아닌) 박쥐에게는 ‘어떤 것’이라는 사실까지 배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박쥐 역시 나름대로 세상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부인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돌덩어리조차 마음을 지닌다’ 보는 범심론은 한때 서구 과학으로부터 조롱을 받았지만, 오늘날엔 과학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합니다. 무언가의 가치를 사고나 지능과 같은 ‘기능’에 고정하고, 이를 ‘존재’의 완고한 전제조건으로 삼아왔던 인간중심주의의 해체가 그 밑바닥에 있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우주의 본질 그 자체인 가치 경험을 묵살시킬 권리가 없다”고 했던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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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인공지능이 언젠가는 인간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대장균은, 돌덩어리는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좀비라 할 지라도 의식이 있다고 여겨야 할까요? 애초에 근본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가리켜 '의식이 있다'고 말하는 걸까요? 미국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앨런뇌과학연구소 소장)는 의식 연구의 선봉에 서 있는 학자로 꼽힙니다. 그가 2019년에 내놓은 <생명 그 자체의 감각>은 그가 바탕으로 삼는 '통합정보이론'(IIT)을 중심으로 자신의 의식 이론을 종합적으로 펼치고 있는 책입니다. "대장균은 의식을 가질 수 있어도 인공지능은 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에서 보듯, 지은이의 이론은 기존의 통념을 과격하게 무너뜨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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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의식은 경험"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해, 경험의 부인할 수 없는 속성들을 만족시킬 메커니즘을 수학적으로 따져봅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주관적 경험은 어떤 시스템이 스스로에 대한 '인과적 힘'에서 비롯합니다. 부분들이 만들어내는 정보의 합보다 시스템 전체가 만들어내는 '통합정보'(Φ)의 양이 더 클 때, 우리는 그 시스템에 의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같은 통합정보이론은 경험이 인지나 지능 같은 '행동'이 아니라 '존재'에서 온다고 주장합니다. 인간 같은 인지력이 있거나 인간 같은 사고를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름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것이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입출력 시스템인 인공지능은 의식을 지닐 수 없는 이유, 사고 능력이 전혀 없지만 대장균이 의식을 지닐 수 있는 이유라 합니다. 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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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코흐는 1998년 6월 철학자인 데이비드 차머스와 내기를 한 적 있습니다. 차머스는 의식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게 "어려운 문제"라고 한 사람인데, 코흐는 그에게 "앞으로 25년 안에 누군가 뇌에서 의식의 특정 신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내기를 걸었죠. 그 내기에 담긴 의미를 짚어주는 기사들을 공유합니다.
🐟의식에 대한 이론은 매우 철학적인 데다, 연구하는 학자들마다 초점이나 태도가 조금씩 다릅니다. 코흐와 비슷한 면도 있지만 통합정보이론에는 선을 긋는, 영국의 신경과학자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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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소유'와 '이윤 추구'는 당연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집니다. '커먼즈'(commons)란 개념은 나누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제시합니다. 커먼즈 운동을 다룬 두 권의 책을 함께 소개합니다. 커먼즈 연구자 한디디가 쓴 <커먼즈란 무엇인가>는 국내 커먼즈 운동의 사례들을 바탕으로 커먼즈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자기 집을 사려 '영끌'을 하지 않고, 각자의 보증금을 모아 누구나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어보려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빈집' 프로젝트입니다. 자본을 위한 저축을 거부하고 '공동체와 상호부조하고 공유지를 누리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목표로 하는 금융 커먼즈가 있습니다. '빈고'의 실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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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활동이 종료된 '경의선 공유지 활동' 역시 국가가 소유한 땅마저 기업에게 개발을 맡기고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것을 반대하면서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철거민들이 모여 이 공간을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커머닝'한 사례이지요. <커먼즈란 무엇인가>가 이처럼 커먼즈 담론과 사례를 다양하게 연결해서 보여준다면, <예술과 공통장>은 예술 영역에 관련해 실제 사례들을 통해 좀 더 깊은 논의를 펼치는 책입니다. 자본주의적 삶과 사고의 방식에 너무도 익숙해져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마저 고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각자도생 사회에서 새로운 '세계짓기'의 방법이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이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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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commons라는 개념은 '커먼즈', '공통장', '공유지' 등 여러 다른 말로 옮겨지고 있습니다. 연구자들마다 서로 다른 번역어를 제시하는 현상은, 이 개념이 넓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과 그렇기 때문에 쉽게 오염될 수도 있다는 측면을 모두 아우르고 있습니다. 커먼즈를 특집으로 다뤘던 2020년 학술 계간지 <문화과학>의 내용을 함께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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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구병모(48)의 스펙트럼은 넓습니다. 2008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위저드 베이커리>로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을 받았습니다. 60대 여성 킬러로 여성 서사의 지평을 넓힌 장편 <파과>의 작가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감동의 단편 ‘니니코라치우푼타’의 작가도 모두 구병모입니다. 다음 질문도 그래서 별스럽지 않습니다. “콘텐츠 창작자로서 다음 계획은 뭔가요?” 콘.텐.츠.창.작.자.로서. 이 질문을 지난 2년 “두 번이나 들었다”며, 구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제, 메시지가 소설의 필수 요건이 되고, 소설 시 영화 연극 음악 가리지 않고 ‘콘텐츠’라 퉁치면서 재미있으면 된다고 평준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이 소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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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소설일 뿐이네>로 제목이 쓰였으나, ‘독자 모독’으로 읽혔던 구 작가의 신작 중편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작가는 문학 출판계를 꼬집고, 결결이 낯선 한자어와 줄곧 현학적인 글말체를 대중들에게 시전합니다. 작가는 웃으며 “2021년 펴낸 ‘상아의 문으로’보단 쉽게 쓰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만, 이해 쉬운 ‘콘텐츠’, 영상화에 경도된 업계와 독자의 습속에 투항하지 않음으로, 지금의 문학판에 저항하는 것 같았습니다. 속된 말로 ‘읽히면 구땡, 팔리면 장땡’이라는 시장 신화에 맞서 독자들에게 “쉽게 읽히지 않겠다”고 피력한 구병모의 문장론을 극한에 세운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이라 하겠습니다. 이 작품이 혹 실패라면, 그건 모독을 모독으로 읽지 못하는 독자의 실패요, 세태의 실패이겠습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시 ‘그날’, 이성복)는 세계의 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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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1930~2004)는 20세기 탈근대 철학의 기수이자 해체주의 운동에 철학적 엔진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데리다의 철학은 그 언어의 새로움과 사유의 급진성 때문에 수많은 오해와 반감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1992년 케임브리지대학이 데리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겠다고 하자, 일군의 교수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했습니다. 반대자들은 데리다를 “모든 학문 분과가 기초하고 있는 증거와 논증을 폐기하는” 자, “올바른 해석과 잘못된 해석의 구별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자, “사실과 허구, 관찰과 상상, 증거와 편견의 구별을 부정함으로써 학문과 과학기술과 의학을 완전히 헛소리로 만드는” 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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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과연 어떤 철학을 한 사람이었을까요? 미국 캘빈대학교 철학 교수 제임스 스미스가 쓴 <자크 데리다>는 이 철학자에게 들러붙은 온갖 ‘신화’를 걷어냄으로써 그 참모습에 다가가는 데리다 안내서입니다. 이 책을 통해 데리다는 ‘타자’의 존재를 동력으로 삼아 사유를 밀고 나간 타자의 철학자이자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관심을 시종일관 견지한 실천적 사상가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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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문천-글을 울리는 샘’을 아시는지요? 현재 17만7천여 명의 구독자를 지닌 이 유튜브의 운영자는 최근에 군에서 전역한 젊은이라고 합니다. ‘언어를 중심으로 한 지식 콘텐츠’를 표방하는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중세국어 중앙 악센트로 낭독한 ‘정읍사’, 15세기 3성조 발음에 따른 세종어제훈민정음 발음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중세 한국어가 정확히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낭독을 들으면 현대 한국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중세 한국어의 모습을 어렴풋이 만날 볼 수 있습니다. 그 향문천이 쓴 첫 책 <향문천의 한국어 비사>는 그의 주력 분야인 역사언어학 방법론으로 한국어의 역사를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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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세 한국어보다 훨씬 더 자료가 희박한 고대 한국어에 관한 흥미로운 주장들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한자어 ‘한’(韓)의 유래, 현대 한국어가 신라어를 계승한 것인지 여부, 주격 조사 ‘~가’가 임진왜란 뒤 일본어에서 전파되었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입니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한국어 화자들의 언어 생활은 한자가 아니면 이두나 향찰 같은 음차 표기로나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에 고대 한국어에 관해서는 정확한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젊은 유튜버 향문천은 나름의 근거 자료와 논리를 동원해 가며 고대 한국어에 관한 참신한 주장을 여럿 내놓습니다. 언어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놀라울 정도로 전문적이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하지만, 공인된 학설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고 책을 읽는 게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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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설산에 사는 거대 유인원 예티와 친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유진 박사. 그는 끝내 예티가 좋아하는 쌀국수를 만들어 예티를 포획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어 예티로부터 야수성을 없애고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집니다. 수저와 포크를 쓰게 하고, 칠판을 가져다놓고 글씨를 가르치고…. 이런 시도가 결코 성공할 리 없다는 건 짐작하시겠죠? 그렇다면 예티와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유진 박사는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또, 유진 박사는 그렇게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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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책이 되고, 책이 여행이 되는 공간
메종인디아 트래블앤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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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종인디아’는 서울 방배동 막다른 골목에서 동네사람들과 여행자들이 함께 꾸민 어린 왕자의 계단 옆에서 8살이 되었어요. 이 ‘인도의 집’에 들어오는 초록문 앞에는 인도의 국조인 공작을 그려 놓은 ‘랑골리’(쌀가루에 색을 입힌 인도 전통 미술)가 있어요. ‘오시는 분들을 환영하고 축복한다’, ‘손님은 곧 신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인도의 놀라운 매력에 빠져서 ‘주제가 있는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한 지 시간이 꽤 많이 흘렀던 어느 날, 이 막다른 골목의 오래되고 낡은 회색빛 계단이 그저 좋아서 겁없이 그 옆에 책방을 차렸어요. 오랫동안 하던 여행업에 문화공간 트래블카페, 책방을 더한 후 8권의 책을 낳은 출판사까지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여행이라는 종합예술을 이제 조금 완성한 기분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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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조와 은호
다들
똑같다 그러는데
아니다
완전 다르다
수업 시간에 바꿔 들어가도
우리 반 선생님도 옆 반 선생님도
모를 거라 그러는데
말도 안 된다
성격이랑 목소리
얼굴까지 다른데
도대체 어디가 똑같다는 걸까
그래, 이 초콜릿이 증거다
둘이 다르다는 증거
곧
한 사람은 초콜릿을 받고
한 사람은 못 받는다
📖김개미 동시집, <선생님도 졸지 모른다>(문학동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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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등 기탄없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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