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불교, 1%의 소수일지라도. (김현경)

「언박싱 동남아시아」는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로, 현대 동남아시아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 뉴스레터는 여행과 미디어를 통해 접해온 동남아시아 도시와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쉽고도 깊이 있게 풀어내고자 기획되었습니다. 기획과 집필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연구자 네트워크reSEArcher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2호
- 2026. 06. 22. -
인도네시아 불교, 1%의 소수일지라도.

김현경 전북대학교 동남아연구소

서문

<언박싱 동남아시아> 뉴스레터 2호에서는 김현경 연구원의 연구를 통해 인도네시아의 불교를 소개합니다. 아시아에서 불교는 비교적 익숙한 종교이지만, ‘인도네시아의 불교’라는 표현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의 국교가 이슬람이라고 오해할 만큼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은 매우 크며, 특히 자카르타를 비롯한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 모스크와 하루 여러 차례 울려 퍼지는 아잔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다양성을 떠올릴 때, 대표적인 관광지인 발리의 힌두교 정도를 함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는 힌두교뿐만 아니라 불교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비록 전체 인구의 약 1%에 불과하지만, 불교는 인도네시아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여섯 개 주요 종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인도네시아의 불교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소수 종교인 불교의 존재와 실천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종교적 관용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며, 때로는 긴장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인도네시아가 다수 종교의 강한 영향력 속에서도 ‘다양성 속의 통합’을 어떻게 지켜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불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박준영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

‘동남아시아의 불교’라 하면 어떤 나라들이 떠오를까요? 불교를 주요 종교로 삼아 많은 사원과 불상들이 여행자들을 사로잡는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같은 나라들이 먼저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런 동남아시아 대륙부의 나라들로부터 바다를 건너 만날 수 있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 있는 나라, 취임 선서를 하는 대통령의 손이 이슬람 경전인 쿠란 위에 놓이는 나라,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에서 불교를 이야기할 때 그 생각의 공간에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나라 중 한 곳일 겁니다.

 

그런 인도네시아에도 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불탑, 보로부두르(Candi Borobudur)는 인도네시아 불교를 넘어 인도네시아의 위대한 과거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오래전 인도네시아에는 불교왕국들이 번성했고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로서 현대 불교의 모습은 ‘역사적 불교’의 그림자 뒤에 가려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를 공부하고 불교 신자이기도 한 저에게도 그 그림자가 드리워져 오랫동안 인도네시아 불교는 보로부두르로만 상상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 장막은 석가모니불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인도의 마하보디 대탑을 순례하던 길에 인도네시아 승려와 순례객들을 우연히 마주치며 걷힙니다. 그리고 그 길로부터 인도네시아 불교가 거대한 불탑 안에 잠들어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자각과 함께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얻은 것들 중, 소수 종교인 불교 공동체가 인도네시아의 ‘다양성 속의 통일’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원이라는 이야기를 이 글에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도네시아 불교 문화유산 보로부두르 © 김현경

인도네시아 불교는 2억 8천만 명이 넘는 인구 중 87%가 이슬람을 믿는 압도적 다수가 있는 종교 지형 내에서 약 1%에 해당하는 소수 종교입니다. 매우 수가 적고, 규모 역시 아주 작지만 불교는 이슬람, 개신교, 가톨릭, 힌두교, 유교와 함께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지위를 보장받는 6대 ‘주요’ 종교에 포함됩니다. 나아가 인도네시아 불교의 ‘중요한’ 역할은 인도네시아의 국가 모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 속의 통일’(Unity in Diversity)은 14세기의 마자빠힛(Majapahit)이라는 고대 불교 왕국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당시 불교와 힌두교라는 두 개의 다른 종교가 섞여 공존하던 전통이 오늘날 다문화 사회인 인도네시아의 통합 원리로 계승되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인도네시아의 불교 왕국들은 불교라는 단일한 종교적 전통이 지배적 지위를 확립한 왕국이 아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불교 왕국인 스리위자야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설한 고대 마따람, 싱하사리, 마자빠힛으로 이어지는 왕국들은 대승불교와 힌두교뿐만 아니라 금강계 밀교와 자바의 토착 문화를 뒤섞으며 혼합주의적 종파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각 불교 왕국들은 서로 다른 시대적 조건과 구조 속에서 혼합주의의 전통을 형성했고 이를 정치, 사회, 문화적 통합의 도구로 썼습니다. 해상제국 스리위자야는 불교를 문화교류와 대외적 네트워크를 확장시키는 매개로 활용했고, 대승불교와 밀교, 힌두교와 자바문화를 연결하는 다원주의적인 개방성을 유지했습니다. 고대 마따람 왕국은 불교 왕조 사일랜드라와 힌두교 왕조인 산자야가 토착문화와 결합하여 함께 공존하는 정치를 이루어냈습니다. 이 흐름이 절정에 이른 마자빠힛 왕국 시기의 시인, 음뿌 딴뚤라르(Mpu Tantular)는 문학작품 속에 “비네까 뚱갈 이까”(Bhinneka Tunggal Ika)라는 구절을 남겼습니다. 불교와 힌두교가 형식은 달라도 같은 진리를 가리킨다는 맥락에서 쓰인 이 구절은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뜻으로, 700년을 지나 국가 문장에 새겨진 인도네시아의 정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종교의 혼합과 공존, 정치적 통합과 사회 안정이라는 현대 인도네시아의 가치들은 고대 불교 왕국에서 먼저 실험되고 제도화되었던 것입니다. 불교 왕국의 혼합주의적 종교 전통과 다원적 통치의 경험은 한시에만 이루어진 일이 아니라 연속성을 갖고 축적된 역사적 지층입니다. 불교 왕국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스러지고, 이슬람이 발리를 제외한 인도네시아 전역을 감싼 뒤에도, 현대 인도네시아의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가치는 바로 이 풍부하고 견고한 지층 위에 서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양성과 그 안에서의 통합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불교의 전통은 거대한 유산들을 남긴 과거의 불교 왕국들뿐만 아니라 현대 불교가 갖는 혼합주의적 특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는 다양한 불교 종파들이 공존합니다. 부다야나, 마하야나, 뜨리다르마, 테라바다, 니치렌쇼슈, 마이뜨레야, 딴뜨라야나 젠포 종까지, 그 기원은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난 것부터 중국, 일본, 스리랑카, 태국, 티벳까지 뻗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고 제각각으로 보이는 이 종파들은 교리적 기원과 형식에서 모두 차이를 보이지만, 그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인도네시아의 지역 문화, 타종교의 전통 그리고 토착 의례와 결합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인도네시아화’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다야나(Buddhayana)는 가장 인도네시아적인 불교 종파입니다. 상좌불교(테라바다), 대승불교(마하야나), 금강계 밀교를 모두 껴안은 이 종파는 1950년대 아신 지나라끼따(Ashin Jinarakkhita)라는 최초의 인도네시아인 승려에 의해 창설되었습니다. 창설자 아신 스스로도 서로 다른 전통에서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고, 특정 불교 전통 중 하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닌 모두를 포괄하는 방식을 지향하며 이것이 바로 ‘인도네시아다운’ 불교의 정체성임을 표방합니다. 중국계 화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뿌리내린 마하야나(Mahayana)는 도교와 자바 문화를 포용했고, 뜨리다르마(Tri Dharma)는 불교와 유교, 도교를 하나의 지붕 아래 공존시킵니다.

  

이 혼합주의는 단순히 문화가 섞이는, 적응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소수 종교로서 살아남고 또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인 전략이자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각 종파가 형성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누구를 포용할 것인가’, ‘어떤 불교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교리적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불교에서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고 있는 구조는 각각 다른 정치적 맥락에서 종파의 기반을 구축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차별화된 전략의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인도네시아 불교도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계 공동체는 종파의 형성과 발전에서 매우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계 공동체를 껴안지 못한 종파는 정통성을 지닌 불교 교리에 뿌리를 내려야 했고, 반대로 중국계 공동체에만 기댄 종파는 ‘외부에서 온 종교’, ‘특정 공동체만의 종교’라는 시선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종파는 중국계의 문화를 전면에 끌어안으면서 인도네시아적인 색채를 덧입혔고, 어떤 종파는 모든 경계와 장벽을 지우는 통합을 선택했으며, 또 어떤 종파는 교리적 정통성은 지키되 의례와 실천의 차원에서만 토착과 지역의 색채를 입혔습니다. 각 종파가 각자의 고유한 전통을 창조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요소들을 혼합하는 방식은 종교적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건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각 종파가 선택한 혼합의 방식은 달랐지만, 그 선택들이 모여 인도네시아 불교의 다채로운 다원성을 만들어냈고 동시에 이것이 바로 불교가 인도네시아 사회의 다원주의적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남고 기여해 온 방식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불교 사원 © 김현경

현지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불교도들은 종교부의 불교총국장부터 작은 사찰의 신도들까지 하나 같이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종파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테라바다도 있고, 마하야나도 있고, 뜨리다르마도 있고, 부다야나도 있다. 한자음으로 경전을 읽는 곳도, 산스크리트어로 경전을 읽는 곳도, 인도네시아어로 경전을 읽는 곳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인도네시아 불교도다.” 이 말 속에는 단순한 소속감 이상의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불교도들은 종파가 다르고, 경전을 읽는 언어는 달라도 ‘인도네시아 불교도’라는 더 큰 범주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는 구조 속에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 단체들 사이에서도 이 다원주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인도네시아의 주요 불교 단체들은 윤리강령에서 “다른 종파에 대한 비판과 행동을 삼가고”, “다른 종파의 교리도 건설적인 관점에서 배울 것”을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파와 실천이 하나의 공동체 안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내부의 다양성은 ‘사회정체성 복합성’(Social Identity Complex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복합적일수록 – 다양한 집단에 걸쳐 있는 것으로 인식할수록 – 내부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수용이 더욱 수월해지고, 이것이 외부의 다름에 대해서도 더 높은 관용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다양한 종파의 인도네시아 불교 신자들의 ‘불교도’라는 정체성에 대해 갖는 소속감과 인식을 통해, 개인의 정체성이 복합적일수록 다원주의에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된다는 이 이야기가 집단의 차원에서도 설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불교 공동체들은 내부적으로 높은 복합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외부의 다름에 대한 경계가 짙지 않은 것입니다. 불교 내부에서 먼저 다양성을 존중하고 협력을 실천하는 문화는, 종교 간 관용이라는 더 넓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힘이 됩니다.

  

인도네시아 불교 공동체가 다른 종교와 함께 다원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은 매해 반복되는 구체적인 의례들에서 쌓여갑니다. 부처의 탄생과 깨달음 그리고 열반을 함께 기리는, 인도네시아 불교의 최대 명절인 와이삭(Waisak)에는 많은 불교도들이 보로부두르에 모여 불을 밝힙니다. 와이삭은 단순히 불교 신자들만 참여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이슬람, 기독교, 힌두교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행사의 기획 단계부터 의견을 나누고,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축제로 열립니다. 불교 의식과 함께 자바의 전통 예술 공연들이 어우러지고, 이웃 주민들이 불교 신자의 집을 방문해 축하를 전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사이 와이삭은 공동체 간 연대의 공간으로 확장됩니다.

 

특히, 와이삭 기간 동안 종교 간 연대는 국제 뚜동(Thudong) 순례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뚜동은 고행을 통한 수행을 의미하는 빨리어 두탕가(dhutanga)에서 유래한 용어로, 승려들이 부처의 고행을 본받아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가는 순례 의식입니다. 이 국제 순례에 참여하는 승려들은 와이삭 3개월 전부터 태국 방콕 혹은 발리에서 출발하여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에 이르는 약 3천 킬로미터의 길을 걷습니다. 도보 순례 행렬이 보로부두르를 향해 갈 때, 그들이 지나는 자리마다 환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승려들은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교회, 가톨릭 성당, 불교 사찰에서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그 길목에 있는 마을의 공동체들이 음식을 제공하고 잠자리를 돕습니다. 순례 행렬을 호위하는 것도,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지역 주민들의 몫입니다. 마치 마라톤 대회에서 도로 양옆에 선 시민들이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듯, 행렬이 지나가는 길을 따라 나란히 선 지역 주민들이 고된 길을 걷는 승려들에게 꽃을 건네며 응원의 마음을 보탭니다. 승려들이 한 마을에 도착하면 이슬람 단체 엔우(Nahdlatul Ulama)의 지역 간부들이나 가톨릭 사제들이 승려들의 발을 씻겨주는 의례를 행하기도 합니다. 그 장면들을 지나온 승려들은 말합니다. “인도네시아의 관용은 순례를 거쳐 온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이슬람의 금식월인 라마단 기간에도 불교 공동체의 나눔과 연대가 함께 합니다. 금식을 실천하던 무슬림들이 해가 지면 먹는 가벼운 음식, 딱질(takjil)을 불교 사찰에서 무료로 준비해 나누는 일이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집니다. 사찰 앞을 지나는 시민 누구에게나 건네는 이 작은 나눔은, 종교의 경계를 넘어 이웃으로서 사회적 연대를 구축하는 실천으로 기능합니다.

2026년 중부자바 투동(Thudong) 순례에 참가한 비구와 사미승 일행이 중부 자바 스마랑의 한 모스크에 들러 휴식을 취하던 중 주민들과 모스크 관리인들로부터 음식과 음료를 받는 모습

인도네시아 불교 공동체의 실천은 종교 간 화합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환경보호, 의료봉사, 헌혈 운동, 빈곤 구호 등과 같은 활동들이 불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이 활동들은 종교 정체성을 내세우기보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활동에는 불교 신자들만 아니라 다른 종교 신자와 단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그 혜택 역시 모두에게 돌아갑니다. 인도네시아 불교 공동체는 내부의 다원성과 자비와 연민이라는 불교의 가치가 종교의 경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서로 다른 종교 간 가르침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보편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연대의 토대로 삼는 것입니다.

  

1%에 불과한 작은 공동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소수는 다수의 동의가 있어야만 그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적 위치에 놓여 있어 관용의 수혜자일 수밖에 없다는 비판,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한 처지에서 타협과 수용과 이해는 당연한 전략일 뿐 특별할 일이 없다는 의견도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현대 인도네시아에서 불교는 소수 종교로서 다원주의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존재만으로도, 즉 1%에 불과한 사람들이 모인 종교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도네시아의 다원주의는 이미 더 풍부해집니다. 그리고 나아가 인도네시아 불교가 갖는 축적된 관용의 지혜와 내적 다원주의의 경험은, 소수 종교가 민주적 사회의 핵심 가치인 다원주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함의를 넌지시 알려줍니다. 종교 간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역 공동체 안에서 타종교와 함께하는 협력을 실천함으로써 관용을 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객체에 머무르지 않고, 관용을 창출하는 주체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 소수라고 할지라도 능동적으로 공존의 문화를 형성하고 다원주의적 가치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고대 불교 왕국들이 쌓아 올린 토양이 품고 있던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씨앗, 내부의 다양성을 껴안은 지혜, 타종교와 함께 나누는 의례들과 이웃으로서의 실천들, 이 모든 것이 인도네시아 사회 내에서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공존, 그리고 다원성의 실현에 기여하는 자양분이 되어왔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불교도들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오래된 약속을 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며 더 넓은 ‘우리’를 상상해 온 인도네시아 불교계의 경험은, 더 다양한 문화들과 서로 다른 의견들이 풍요로움보다 위태로움으로 다가오는 오늘 우리 사회가 돌아봐야 하는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먼바다에 떠 있는 큰 섬나라의 아주 작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만 가까이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이 떠오르는 이야기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그것이 아무리 눈에 띄지 않고 미미하더라도 그 의미를 바라보는 일, 그래서 적고 또 작은 소수에 관심을 갖는 일의 반짝거림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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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rewer, Marilynn B. & Kathleen P. Pierce. 2005. “Social Identity Complexity and Outgroup Toleranc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31(3): 428-437.

  • Chia, Jack Meng-Tat. 2018. “Neither Mahayana Nor Theravada: Ashin Jinarakkhita and the Indonesian Buddhayana Movement.” History of Religious 58(1): 24-63.

  • Oka Diputhera. 2010. Soedijito Kusumo (ed.). Agama Buddha Berkembang di Indonesia [인도네시아 불교의 발전]. Okaperseri Arya Suryacandra.

「언박싱 동남아시아」의 발행 주체인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는 원고 발행 과정에서 필자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센터는 필자와 원고의 취지와 내용에 대해 충분히 소통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일부 내용은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동남아시아센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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