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에 대하여[풀칠 162호]

안녕하세요 풀칠러님. 11월의 주제인 ‘밥’에 대한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해외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한식 매거진을 만들고 계신 풀칠러 윰마토 님이 보내온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앞으로도 ‘다섯 번째 수요일’이 있는 달에는 이렇게 풀칠러님들과 함께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볼까 합니다.

아래는 윰마토 님이 보내주신 인사말입니다.

🍅 : "안녕하세요 싱가포르에서 한식을 요리하고 있는 윰마토라고 합니다! 영감이 이어져 보이는 창작물이 되는 순간들이 좋아서 요리를 시작했고, 출판과 디지털 아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생생한 현실감과 묘한 유머 코드가 담긴 풀칠의 오랜 풀칠러로서 11월 호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요즘은 내년에 오픈하게 될 막걸리바에 들어갈 모던 한식 메뉴를 만들고 있는데요,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지만 한식의 뿌리가 살아있는 음식을 싱가포르에서 퍼뜨릴 수 있어 행복하기도 해요 :) 늘 음식을 가까이 하다보니, 밥은 단순히 끼니 혹은 탄수화물보다는 꽤 두터운 친밀감을 느끼고 있는데요, 함께 그 이야기들을 나눠보려 합니다."

*<풀칠> 12월의 주제는 '끝'입니다.

**12월에도 <풀칠러클럽>은 계속됩니다.

요리를 밥벌이로 하는 내겐 밥이라는 게 어떤 마음이 담긴 물건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 마음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그러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중고 마켓에 내놓았을 때의 찡한 마음과 비슷하다.

온 마음을 다해 요리에 다가가면 오히려 너무 과한 맛과 식감이 담긴다. 기껏 마음 한가득 담아 줬는데 ‘너무 과해’라는 말로 돌아오다니. 미운 생각이 들어 접시째로 비닐봉지에 쏟아 넣어 대충 묶어 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니 뭐든 적절한 것이 좋다. ‘모든 걸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조화로운 맛과 잘 어우러진 식감을 가진 한 접시가 완성된다. 얼떨떨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을 한껏 웅크려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싶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요리들을 하나씩 완성해가다보면 그것이 꼭 ‘마음의 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도 나올 정도로 골몰했던 것이 한 접시로 정리돼 나오면 아주 오랫동안 참은 변비가 해결된 느낌이 든다. 요리들이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순간, ‘꼭 너의 역량을 다 해내고 사라져’라는 왠지 슬픈 작별 인사를 보낸다.

요리에 마음을 담는 정도를 조절하는 법에 익숙치 않았던 시절에는 자주 몸이 아팠다. 마치 뼈가 마시멜로로 변한 듯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바쁜 점심 시간이 끝나면 온몸에 요리의 흔적이 남는다. 각종 재료를 끓이고 튀기고 굽는 과정을 증명하는 흔적이다. 그런 상태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나의 체력도 떨어지고 요리의 맛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요리에 담아내는 마음 하나로 12시간의 근무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것이 욕심이었다. 늦느니 일찍, 부족하느니 여유 있게 임하는 성격으로, 마음을 덜하느니 더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잘못이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늘 그러한 상황이 반복된다.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너무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몇 번이고 복기를 한 탓에 온몸에 도파민이 퍼졌다. 자주 날밤을 샜다. 명상 영상이나 지루한 책들을 활용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균형을 놓쳐버린 것을 되돌리기에는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영상 기술을 배워보고 싶어 온라인 클래스들을 둘러보다 충동적으로 클래스와 영상 편집 프로그램 구독권을 샀다. 노트북도 애초 계획된 문서 작성용이 아닌 영상 편집용 노트북을 샀다. 한동안 통장에 찬바람이 불었지만 나는 지르는 용기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애써 변명했다. 연애 반대편에서 평형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다. 하지만 기울어진 균형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기울어진 균형은 그것을 기울게 한 무언가를 향한 정반대의 마음을 통해 돌려놓을 수 있다. 나를 잠 못들게 했던 행복감과 도파민은 시간이 지나며 연애가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편안함이 되었다. 잠도 잘 자고 삼시 세끼도 잘 챙겨 먹게 됐다. 클래스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손대지 않은 지 오래고 노트북으로는 문서 작성만 하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다시 밥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밥심’은 밥으로 얻는 힘일까, 밥을 향한 마음일까.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밥으로 신체의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나는 밥을 통해 마음의 방향과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밥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밥 먹을 시간이다.

야망백수 : 좋아하는 걸 적당히 좋아하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적당히 좋아해야만 ‘완성도’라는 게 생기는 건 참 얄궂은 일이고요.

풀칠을 보내기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넘어가는데요, 분명 뭐라도 쓰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에세이 당번이 되면 그 주 월요일부터 몸이 욱신욱신거리기 시작합니다. 메일을 보내는 수요일에는 말씀하신 대로 뼈가 마시멜로가 된 것 같고요. 겨우겨우 메일을 보내고 나면 가뜩이나 혼탁한 세상에 이렇게 또 어지러운 글을 보탰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좋아하면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부끄러움이 제겐 쉬이 떨쳐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였달까요.

그런데 이 부끄러움을 일종의 가늠자로 삼을 수도 있는 거였군요. 풀칠러님이 내어준 이야기 덕분에 부끄러움을 재주의 부족이 아니라, 내가 마음을 쏟고 있다는 정황증거로 한번 해석해 봅니다. 너무 제 입맛대로 짜 맞추는 것 같긴 하지만 이 생각이 지금 제겐 든든한 한 공기 밥처럼 느껴지네요. 밥심으로 계속 가다보면 언젠간 온 마음을 쏟으면서도 남들 보기에 과하지 않은 그런 노련함을 얻게 될 날도 오겠죠.

마감도비 : ‘꼭 너의 역량을 다하고 사라져’라는 대목을 여러 번 읽게 되네요. 회사에서 제가 해내고 있는 일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해줬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어서요. 참 이상한 일이죠. 원하던 일을 쫓아서 회사를 몇 번 옮겨봐도 잊을만하면 ‘내가 원하던 건 이게 아냐’란 생각이 쫓아오잖아요. 어쩌면 그 이유가 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에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마감을 마치고선 저의 시간을 잔뜩 먹어 치운, 그래서 약간은 저일 수밖에 없는 문서에게 반드시 인사를 건네야겠습니다. ‘꼭 너의 역량을 다하고 사라져’

파주 : 온 마음을 다한 요리에는 과한 맛과 식감이 담긴다니. 세상 모든 일을 관통하는 어느 부분이 있나 봅니다. 제가 해왔던,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고 싶은 게 많아 내용을 죄다 때려넣다 보면 글씨로 가득한 최악의 PPT가 되어 있으니까요.

윰마토님이 기고 요청에 답을 주셨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더랬죠. '요리를 업으로 하다 보니 '밥'이 빨리 해치우고 싶다가도 온 마음을 다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정 반대의 마음이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 사이에 균형을 잘 맞출 줄 알아야 제가 추구하는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해 생각하기도 합니다.'라고요. 저는 이 말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게 꼭 책임감 있는 직업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믿거든요. 앞으로도 윰마토님이 근사한 중도의 맛을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아매오 : 일을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주신 것 같습니다. 주변에 기자인 친구들이 좀 있는데요. 그 친구들도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예전에는 뭔가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것을 대하는 내 태도가 ‘좋아한다’라는 것과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고요. 덕업일치에 성공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겠죠. 어쩌면 좋아하는 만큼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것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잘해내고 싶은 마음, 그 둘의 균형을 잘 잡기 위해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2월의 풀칠러클럽 :
연말정산 글쓰기✍️

벌써 12월입니다. 2023년도 끝나가네요. 풀칠러님은 올해 어떤 일들을 겪으셨나요? 지난 열두 달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으신가요?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통과해온 2023년, 정리는 글쓰기로 함께 해보는 건 어떨까요. 12월의 풀칠러클럽, <연말정산 글쓰기>에서는 올해 열두 달을 열두 편의 글로 정산합니다. 글 한편을 마감할 때마다 풀칠 필진들이 코멘트를 남겨드려요. 모든 마감에 성공하면 깜짝 선물을 드립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에 끝내는 <연말정산 글쓰기>, 같이 해봅시다!

🍚모집인원 : 최소 6명 최대 10명

🍚참가비 : 4만원

🍚일정 : 12/4~12/20

✍️ '연말정산 글쓰기' 더 알아보기

풀칠러A

아맵다!매오! 엄청 귀여운 닉네임이었네요ㅎㅎ 입맛이란 진짜 시간에 따라 바뀌나봅니다. 예전엔 너구리가 최고였는데 신라면이었다가 짬뽕라면, 현재는 열라면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쳐왔어요. 하지만 진순은.... 동의하지 못하겠네요

아매오

안성탕면에서 진라면 매운맛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획기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늘 최대치로 살 수 없지요. 저는 진순 정도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겠습니다. 흐린 눈 부탁드립니다. 흐흐.

풀칠러B

"위벽이 빨갛...". 매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들어왔던 이야기를 올해도 또 들었습니다. 매운 것을 잘 먹는 게 일종의 '자랑'이 된지 오래고, 외국인들도 우리의 매운 맛을 이겨내는 모습(?)을 유튜브로 과시하는 시대 같아요. 세상이 주는, 상사가 주는 매운 맛에 비하면 오히려 유쾌하고 흥분되는 매운 맛이라 함께 나누고 싶은걸까? 라는 생각으로 오늘 밤은 불닭볶음면에 도전해보겠습니다. 오늘의 풀칠 이야기도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아매오

맵기 단계는 갈수록 세분화되고 가장 높은 맵기를 칭하는 표현은 갈수록 과격화되는 세상에서 맵찔이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기생충>에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던 기택네 가족처럼. 반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언젠가 아매오의 매운맛 원정대로 유튜브 콘텐츠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풀칠러C

다른 필진분들은 닉네임이 그래도 직관적인 편인데, 뜻을 알수 없었던 아매오님의 비밀을 알게되어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파주님도 혹시 경기도 파주가 아니라 "파"멸의 "주"둥....이런 식의 반전이 있으려나요?

파주

닉네임 때문에 파주에 살고 있는 거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는데요. 사실은 ‘파주하다’라는 말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한자를 살펴보니 쥘 ‘파’자에 살 ‘주’를 쓰는군요!) 헌데 요즘 저의 꼬락서니를 보면 풀칠러님이 추측하신 대로 파멸의 주둥이 쪽이 훨씬 더 가까운 듯하네요... 앞으로는 스스로를 파멸의 주둥아리, 파파고 주술사, 파괴된 주식보유자 정도로 소개해 볼까 싶습니다. 막상 써두고 보니까 이 편이 더 근사해 보이기도 하네요.

풀칠러D

어차피 기본 2개를 드신다면은, 진순 1개와 진매 1개를 사서 두 개를 한꺼번에 끓여서 드셔보세요! 저는 반순반매로 먹는 걸 좋아한답니다.

아매오

반순반매는 무슨 맛일까요? 궁금해지네요. 사실 두 라면은 같은 ‘진라면’이지만 엄연히 따지면 완전히 다른 음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맛의 베이스가 다르거든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경상도식 빨간 소고기무국과 일반적인 맑은 소고기무국의 차이랄까. 한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