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8일  (No. 724)
AI 결과물은 너무 훌륭해서 문제!

광고 촬영을 앞둔 사진작가에게 고객이 콘셉트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그는 그 이미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죠. 야구모자를 쓴 사람의 얼굴은 그늘에 가려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눈동자만은 선명하게 빛났거든요. 사진작가는 실제 조명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장면임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AI가 만든 이미지였기 때문이죠.

문제는 고객이 이 이미지대로 촬영을 해달라고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작가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장면을 재현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죠. 

자, 이 상황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경고는 이미 여러번 나와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뭘까요? 인간보다 AI가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내서가 결코 아닙니다. 아이디어가 충분히 성장하기 전인데도 AI가 사람들에게 완성된 아이디어처럼 보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AI의 진짜 위험은 인간의 사고를 대신하는 데 있지 않고 '사고가 끝나기도 전에 완성된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광고 분야에서 미드저니를 사용하는 크리에이터들을 1년간 관찰했습니다. 생성형 AI는 사용자의 명령에 반응하지만 동시에 사용자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도 내놓습니다. 크리에이터는 AI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것을 더 밀어붙이고,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고삐를 당겨 통제하죠. 그러다 보니, 창작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AI로 일방향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AI 사이의 반복적인 협상' 양상으로 변합니다.


이것만 보면 AI가 창의성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다고 연구자들은 인정을 하는데요, 한 크리에이터가 패션 프로그램 광고를 위해 ‘catwalk’를 요청하자 AI는 예상과 달리 레드카펫이 깔린 보드워크와 번쩍이는 플래시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이런 엉뚱한 결과가 파파라치 콘셉트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발전했죠.

그런데 바로 여기서 역설이 발생합니다. 과거에는 아이디어 생성, 동료와의 브레인스토밍, 디자이너의 시각화, 검토와 수정, 제작이 여러 사람과 여러 단계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면 한 명의 숙련된 크리에이터가 AI와 대화를 반복하면서 이런 여러 활동들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죠. 연구자들은 이것을 ‘process collapse(창의적 과정의 압축)'이라고 부릅니다. 속도는 빨라지지만, 사람 사이의 인수인계, 토론, 해석과 비판의 기회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AI가 만들어낸 이미지는 초안인데도 초안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색깔도, 조명도, 배경도, 인물도 너무나 구체적이죠. 그러면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더 탐색하기보다 “충분히 좋다. 이걸로 하자”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early aesthetic closure’, 즉 ‘미학적 조기 종결’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완성품처럼 보이는 AI 결과물이 고객의 기대를 붙잡아버리고, 이후의 아이디어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좁혀 버리고 만다는 것이죠.

창의성의 적은 '느림'이 아닙니다. '너무 이른 확신'이 창의성의 진짜 적입니다. 인간이 낸 초기의 거친 아이디어에는 빈틈이 많아서 다른 사람이 질문하고, 반대하고, 다른 방향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반면 너무 멋진 AI 이미지는 빈틈을 감춰 버리죠. 그렇기에 결과물이 완성됐다고 착각하고 거기에서 일을 마칩니다. 이것이 AI가 인간들의 창의성을 억압하는 메커니즘입니다.

AI 시대에는 ‘좋은 결과물을 빨리 만드는 능력’이 아닙니다. AI에 의해 완성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미완성이라고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AI가 만든 결과물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전에 'AI가 완벽하게 수행한 것들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 보세요. 그 헛점을 파고드는 것이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완벽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정될 수 있도록 빈틈을 가진 것임을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끝)


*참고논문
Retkowsky, J., Hafermalz, E., & Huysman, M. (2026). Harnessing a" Spirited Technology": How Working with Generative AI Collapses the Creative Process. Academy of Management Discoveries, (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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