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똥’이나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도 배꼽 잡고 웃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 코드를 잘 잡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가 내 머리 위에 똥쌌어?'라는 동화가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줄거리라도 머리 위에 똥 싼 범인을 찾는 것이 평범한 물건을 훔친 동물을 찾는 것보다 재미있으니까.
웹소설에서도 간혹 이와 비슷한 작품이 등장한다. 작품의 완성도가 뛰어난 것은 아닌데 유치하면서도 보는 사람이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이 소설도 그렇다.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제목만 봐도 ‘먼치킨’ 주인공이 적을 손쉽게 썰어버리며 자신의 영지를 키워나가는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마왕을 단번에 잡아 죽이는 대마법사 아인 하스터. 마왕의 심장을 재료로 써서 사랑하는 가족이 살아있던 과거로 회귀한다. 비록 대마법사로서의 능력은 초기화되었지만, 미래 지식을 훤히 꿰고 있는데다가 이미 도달했던 경지를 다시 밟는 셈이라 엄청난 속도로 강해진다. 그 과정에서 마을을 침략하려던 오크를 잡아 노예로 부려 먹고, 오크들이 경작하는 농장에 식재료를 생산하고, 그 식재료로 사람이 강해지는 음식을 팔며 마을 사람도 성장시킨다. 각종 마물, 마족, 악의 단체가 마을을 침범했다가 여지없이 단번에 죽어 나가거나 농장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 주된 줄거리.
흔한 전개에 문체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참신한 설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읽는 사람이 헛웃음과 배꼽 잡는 웃음 사이를 오가게 만드는 유치한 개그가 만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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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곱하기 21은?"
아인이 물었다.
순간 흑마법사들이 그리던 마법 공식이 전부 꼬여버렸다.
저도 모르게 6×21의 답을 구하고 말았던 것.
"이런 치사하고 더러운 놈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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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끼리 있을 때만이라도 다크문 시절의 호칭을 사용하도록 허락해주마.
베이션, 앞으로 내가 부재 시에는 네가 마스터다."
"이야, 멋집니다 마스터 베…"
"그 이상 말하지 마!"
베이션이 다급히 대원들의 입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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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막장 전개가 이어지는 소설도 많은 웹소설판. 오크를 부하 삼고 다크엘프의 머리를 빡빡 미는 정도는 새롭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 엽기적인 전개에 피식 웃게 만드는 유치함이 섞이니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식품 마냥 계속 한 회씩 뽑아먹게 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개그를 연료 삼아 계속 읽게 된다고나 할까.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법한 내용이지만, 유머 코드가 맞다면 유쾌한 코미디 보는 기분으로 읽기 좋은 소설. 이렇게 장난치듯 읽는 소설은 너무 길면 지루해지는 법인데, 다행히 ‘이제 슬슬 하차 각인데’ 싶은 7권에서 완결된다. 다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만 봐도 알 수 있듯 기승전결이 치밀하게 짜여진 완결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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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 나 지구로 돌아가면 여기서 지냈던 일을 글로 써 볼 생각이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옮기면 B급 감성 충만한 괴랄한 변태 판타지 소설 취급이나 받겠지만, 어쩌겠어? 소설의 제목을 생각해봤는데,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어때?"
아인이 가츠에게서 들었던 소설의 제목을 곱씹다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라. 작가로 먹고살 생각이면 다른 이야기를 쓰는 편이 나을지도."
(중략)
강철(가츠)은 거대 플랫폼에 연재를 시작했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망작도 이런 망작이 없었다.
마치 기대주를 사놨다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결국 강철은 50권가량으로 잡아놓았던 글을 대폭 줄여 7권으로 마무리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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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소설이랄까.
B급 감성을 좀 더 제대로 살리고, 단편적인 코믹 요소가 아니라 글의 구조적으로 사람 웃게 만드는 내용이 더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괴랄한 변태 판타지 소설'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