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9. 노가리 클럽 : 일상의 환기가 필요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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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아, 진짜 __생각하지 말아야지.' 에서 __의 빈칸을 채운다면 무엇을 쓰실건가요? 저는 아마 '일' 을 쓸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글감을 찾는 훈련을 계속한 탓일까요(아님). 다 쓰지 못한 원고나 일이 남아있는 날이면 몸은 퇴근을 했지만 머리는 퇴근을 하지 못한 퇴근인지부조화 상태가 오기 일쑤기 때문입니다. 화면은 꺼져있지만 가까이 귀를 대보면 잔잔하게 CPU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노트북같은 상태랄까요.
그런데 그럴때마다 일 생각을 떨쳐내려고 습관적으로 '일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만 생각해야지..' 하고 염불을 외웠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결국 일 생각만 하다가 다시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쓰면서도 현대 직장인의 공포 특급 그 자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과학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특정 생각이나 욕구를 강박적으로 억누르려고 할수록 그것이 쉽게 떠오르고, 행동으로 옮기는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인데요. 이걸 조금 어려운 말로 강박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 합니다. '웨그너의 흰곰 실험'이라고도 불리는 이 실험은 자신의 사고나 마음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처음에는 성공할 수 있지만, 이것이 실패하게 됐을 때는 과장된 표현으로 훨씬 더 극대화 돼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입니다. 이걸 알게 됐을 때 제가 일중독이 아니라는 걸 확인 받은 기분이라 일면식도 없는 과학자에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__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__을 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는거냐!'라며 분통을 터뜨릴 구독자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__이 아닌 다른 것을 하시면 됩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하기 보다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잠이 오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 호에서는 노가리 클럽 부원들이 혐생이라고 부르는 '흰곰'을 잊기 위해, 찾은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희는 온통 초록빛으로 물드는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책 <내 기분이 초록이 될 때까지 >을, 윻은 다시 한 번 금지된 이야기의 공범이 되고 싶어진 창작가무극 <금란방>을, 슬은 매일 밤 우리가 돌아가는 '집'에 대해 다층적 시선을 던지는 책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소개합니다. 오늘도 퇴근하고 싶다를 외치며 월요병에 시달리고 있는 K-직장인들에게 이번 편을 바칩니다. 노가리 클럽 아홉 번째 영업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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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이의 창가에 화분을 놓는 마음으로 추천하는
신시아의 에세이 <내 기분이 초록이 될 때까지> by. 희
길진 않지만 회사 생활을 몇 년 해보니, 사람마다 ‘나 지금 힘들구나’를 깨닫는 척도가 다 다르더군요. 누군가는 몸에서 신호가 와서 병원 가는 길에 깨닫고, 누군가는 도저히 타인을 만날 체력이 없어 주말 약속을 취소하며 깨달아요. 저의 척도는 식물이에요. 내 몸이 시들어가는 건 스스로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은데, 집에 있는 식물이 시든 걸 보면 불현듯 깨닫죠. “내가 물도 못 챙겨줄 만큼 바빴구나.”하고 말이죠. 부랴부랴 온 집안에 있는 화분을 꺼내 와 물을 흠뻑 주고, 흙이 벌컥벌컥 물을 흡수하는 소리를 들으며 ‘제발 죽지 말아 주라, 제발…’하며 애원하는 게 요즘 루틴입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잘 버텨주고 있는 반면, 작은 히메몬스테라는 여전히 맥을 못 추고 고개를 이리저리로 푹푹 꺾고 있었어요. 현생이 바빠지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치하게 되더라고요. 지난 주말, 서울 자취방에 엄마가 놀러 와 화분을 보더니 슥 데려가 물을 솨아 내려주었어요. 그동안 히메몬스테라를 살려보려고 노력할 땐 별 반응 없더니, 엄마가 물 한번 흠뻑 주니 거짓말처럼 쌩쌩하게 살아나더라고요.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신기해서 화분에 뭘 해준 거냐고 물어보니 엄마의 대답은 매우 간단했어요. “물을 줄 거면 오래오래 흠뻑 줘야지. 잠깐씩 주는 걸로는 안 돼.”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이라 허무했지만, 무언가 해결된 듯 속이 시원했어요. 그동안 식물은 스스로 지쳤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척도이기도 했지만, 식물에 물을 주고 잎사귀를 매만져 먼지를 닦아주고, 분무기로 시원하게 물을 뿌려주는 과정을 거치며 지친 마음을 힐링하는 해결책이기도 했거든요. 틈틈이 쉬어도 시들한 마음은 왜 되살아나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데 시간을 흠뻑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급하게 잠깐씩 돌봐서는 살아나지 못하던 히메몬스테라처럼, 내 기분도 급하게 잠깐씩만 들여다봐서는 좋아질 수 없었던 거였죠.
“(…중략) 이게 바로 그 ‘풀멍’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식물과 햇빛을 그저 바라보는 일로
나는 치유받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들이 몰아치면
누구나 번아웃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번아웃을 치료하는 데에는
식물과 햇빛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그 일에는 ‘시간’이라는 비용이 필요하다.”
-책 본문 중 일부 발췌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 받은 후 너무 좋아서 엄마에게도 빌려줬었는데, 마침 엄마가 이 책을 돌려주며 히메몬스테라도 되살리고 제 기분도 되살려준 것 같았죠. 책은 회사에서 13년간 일하다 번아웃이 와 퇴사를 한 후 식물을 키우기 시작해 식집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신시아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이미 식물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당장 화원으로 달려가고 싶으니 주의해야 해요. 아직 식물에 대해 잘 모르겠는 분들은 크게 매력을 못 느낄 수도 있어요. 희귀 식물을 보고 환호하는 내용, 베란다에 튤립 화분 50개를 두게 된 사연, 질 좋은 토분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내용 등이 담겨있거든요.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분명 식물을 통해 기분이 나아지는 누군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물과 햇빛을 줄 타이밍을 놓쳐 시들어가고 있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내 기분이 초록이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내 기분을 가장 오래, 가장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밖에 없어요. 아직 식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더라도, 이 책을 시작으로 스스로의 기분을 돌보는 데 시간을 들였으면 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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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머릿속이 복잡한 당신을 위해
창작가무극 <금란방> by. 윻
정말 요즘처럼 정신이 없는 때가 있을까 싶습니다. 얼마나 정신이 없냐면 꿈에서조차 일 관련 내용으로 꿈을 꾸고 있다면 믿어지시나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소위 말하는 각잡고 봐야하는 것들은 슬슬 피하게 됐습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낀건 얼마전이었습니다.
혐생이 채 마무리 되지 않은 채로 본 공연이 너무 별로인 걸 깨닫자마자, 그걸 보고 있는 시간과 체력이 아까워 인터미션 때 공연장을 나와 근처 술집에서 배를 채우는 저를 발견했답니다. 체력과 여유가 있던 예전이었다면 끝까지 다 보고 왜 별로인지를 한참 떠들었을텐데 말이죠. 현실을 피해 도망치는 곳이 공연장이었는데 그곳마저 혐생이 바짝 따라붙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의외의 곳에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말 그대로 정신을 쏙 빼놓는 공연을 보면 되더라고요. 가령 <금란방> 같은?
한국형 창작가무극 <금란방>은 금주령이 시행된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에 있었을 법한 밀주방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금란방은 신분·연령·성별의 차이를 넘어 모든 것이 가능하고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는 조선 최고 힙플레이스죠. 여기 당대 최고의 *전기수 이자상과 그의 낭독기술이 절실한 왕의 서간 관리자 김윤신, 이자상을 흠모하는 철없는 매화,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인 윤구연이 얽히고 섥혀 대혼돈의 카오스로 흘러가는데요. 보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극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컨셉이었습니다. '술'과 '이야기'를 금지한 '조선 시대'. 이걸 은밀히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서 1차로 취향 저격을 당해서 허겁지겁 극 소개를 읽어내려갔죠. 그러다 그걸 클럽 분위기로 꾸며놨다고 해서 2차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신없고 뭔지 전혀 모르겠는 이 극은 대체 뭘까' 라는 마음에 오랜만에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관극 직전까지 가슴이 떨리더라고요.
그리고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반짝이는 조명과 귓가를 때리는 음악 사이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관객들을 맞이하는 배우들을 보며 직감했죠. '나 이거 좋아하겠다.'
*전기수(傳奇叟),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노인'이란 뜻. 조선후기,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낭독가를 부르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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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시지 않나요?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관객들을 맞이하는 배우들이라니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제가 이 공연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금란방>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이머시브 공연'입니다.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re)는 '몰입하다', '빠지다'란 뜻의 'Immerse'란 단어에서 출발한 용어인데요. 객석과 무대가 완벽히 분리된 기존의 공연과 달리 그 경계가 모호해 배우가 무대 위에서만 존재하지 않고, 관객 역시 객석에 앉아있지만 않습니다.
이제 하다하다 직접 연기를 하다 온거냐고 하면 그거까진 아닙니다. 사실, 배우와 관객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해도 부드러운 극의 진행을 위해 관객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객석의 배치와 소품, 상호간의 약속을 통해 관객도 극의 일부가 됨을 합의하고, 거기 적극 협조하는 정도죠. 하지만 평소 주변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약 2시간 반을 입을 꾹 다문채 요지부동 관극을 해왔던 저에게는 정말 그것은 엄청난 자유였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가 바로 이 극이 말하는 지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금지하는 것을 금하라' 라는 것이 이 극의 핵심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연의 형식을 설명하는데 긴 애정을 쏟았지만 사실, 내용이 마음에 안들었다면 이렇게까지 길게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금란방을 찾는 사람들은 특출나게 유별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사회가 정한 규범과 형식에 짓눌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욕망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한 사람들이죠. 그리고 금란방은 전기수 이자상과 극중 인물들의 입을 통해 그런 사람들과 사회를 향해 단순히 금기를 깨는 것을 넘어 자유롭게 꿈꾸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극중 배경인 클럽 분위기에 맞춰 배우들과 함께 리듬을 타고, 소리를 지르고, 극중 극의 결말에 대해 관객들이 의견을 내고, 거기 맞춰 흘러가는 공연이라니. 정말 적극적인 관종 ENFP인 저에게 딱 맞는 극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날의 저는 관객이라기보다는 스스로 금란방의 '손님'으로 다녀왔다고 하는게 더 맞는 표현일 정도로 정말 온 몸으로 즐기다 왔습니다. 공연 중간에 배우님이 저를 보고 "오~ 여기 취직하고 싶은 눈빛인데"라고 하셨으니 말 다한 거 아닐까요...? 그 덕인지 정말 오랜만에 오롯이 회사 생각을 하지 않는 두시간을 보냈답니다. 그리고 공연장을 나오며 다짐했습니다. 조만간 드레스코드를 제대로 갖춰 다시 한 번 오겠노라고 말입니다.
혹시, 최근에 머리가 복잡하셔서 무엇을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신다구요. 그렇다면 저와 함께 모든것이 이루어지는 곳, 금란방으로 나들이를 떠나보지 않으시렵니까? 부디 이번 가을이 가기 전 술시, 정동에서 뵙길 정중히 청하나이다.
* 창작가무극 <금란방>은 22년 11월 13일까지 국립정동극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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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고독하기를
에세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by. 슬
독일의 신학자 폴 틸리히는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단어라고 했습니다. 저에게 고독은, 최고의 연료입니다. 남들처럼 땅에 발붙이고 살기 위해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 보면, 배터리가 3.5배는 빠른 속도로 닳아 버리거든요.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도통 나오질 않는 인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집은 언제나 궁금합니다. 집처럼 그 사람의 ‘코어’를 한 번에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오늘의집’이나 핀터레스트로 떠나는 랜선 집들이도 즐겁지만, 그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가 더 묻고 싶습니다. 내일의 여정을 위한 프라이빗 라운지인지, 나의 에고를 표현하는 쇼룸인지. 혹은 피곤함을 처리하는 졸음 쉼터인지요.
그러니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제목을 보고 책을 바로 빼 들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으론 이런 예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어떤 집을 만들기 위해 애썼고, 취향과 일상을 어떻게 꾸려나가는지 담백한 말투로 들려주는 책이 아닐까?
예상은 첫 장을 넘기자마자 빗나갔습니다. 이 책은 역사서에 가까웠어요. 인생 최초의 집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거든요. 대구 수성구의 고급 빌라에 살던 유년 시절부터 가세가 기울며 점점 작아졌던 집들, 서울의 온갖 동네를 전전하며 자본의 논리에 의해 부서지고 지어지는 것들을 목도했던 기억, 오랫동안 독립은 꿈도 못 꾼 채 동생의 그늘에 살던 시절까지 진솔하게 서술되는데요.
저자가 던지는 여러 질문 중 하나가 제 목덜미를 콱 붙잡았습니다. “왜 엄마에겐 자신의 방이 없었을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도 아빠에겐 서재가, 자신과 동생에겐 방이 있었는데. 엄마는 언제나 부엌과 거실이라는 ‘공용 공간’에 존재했었다는 걸요. 저자의 엄마는 대답합니다. “이 집이 다 내 건데, 내 방이 왜 필요해?”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죠. 모두 가졌단 말은 완벽한 내 것이 없다는 말과 다름 아니란 걸요.
저의 엄마는 차를 좋아했습니다. 아빠와 싸우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엄마는 차를 타고 어딘가 훌쩍 다녀오곤 했는데요. 예전엔 엄마가 리프레시를 위해 멀리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혼자만의 공간 자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대로 울고, 음악을 틀고, 마음을 정리할 공간이요. 우리 집엔 서재 따위 없었기 때문에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아빠의 택시는 자기만의 방이었다가 누군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면 영업장이 되었다가를 반복하며 십 몇 년이 넘게 달렸습니다.
저는 그동안 독립을 하면서 나의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믿어왔습니다. 독립 에세이를 쓰면서 ‘9평 반의 우주’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요. 이전에는 부모님의 집에 ‘포함돼’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주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가면서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제 인생 최초의 집이었던 방 두 개짜리 반지하 방이 떠올랐습니다. 주택에서 아파트로,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동생과 함께 쓰던 이층 침대가 분리되어 각자의 방으로 바뀌었단 사실도요. 안방 화장대와 퇴근 후 욕실에서만 홀로임을 만끽할 수 있었을 나의 어린 부모는, 자식에게 작은 공간이나마 만들어주기 위해 매일 분투했던 겁니다.
제가 기억하는 네 가족의 마지막 집은 2층짜리 주택인데요. 월세를 내고 살았던 우리가 월세를 받게 되었다고 엄마 아빠가 무척이나 설레했던 기억이 납니다. 까다로운 두 사람은 직접 인테리어를 하고, 마당의 시멘트까지 손수 발랐습니다. 시멘트가 마르기 전, 엄마는 그곳에 가족 네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에서 두 분이 헤어지게 되면서 우리 가족은 이제 모두 혼자 삽니다.
저는 ‘우리 집’이 아닌 ‘엄마 집’, ‘아빠 집’이 있는 것이 싫지 않습니다. 나에게 주고자 애썼던 혼자만의 시간을 두 분이 넉넉하게 갖길 바라요. 비로소 본인만을 담아내는 집에서 마음껏 고독하기를. 그리하여 혼자 있음의 고통보단 즐거움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덕분에 고독의 귀중함을 잘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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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입엔영
이젠 정말 그만 우릴 때가 된 by. 윻
한 때 뉴욕과 마놀로 블라닉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던 그 멋진 언니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요. 젊고, 쿨하게 보이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과하게 애를 쓰는 느낌이라 어쩐지 불편하기까지 하더군요. 여기에 산뜻하지 못한 배우 개인의 사정은 뒤로 덮어두고서라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극의 전개와 캐릭터 활용은 한숨이 푹푹 나오더군요. 보면 볼수록 캐리 언니가 오랜만에 예쁜 옷 실컷 입고 싶어서 기획했나란 생각만 확고해졌달까요. 두 번 내린 녹차가 맛있다지만 이건 우려도 너무 우려 이제 버릴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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