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사법개혁 3법이 시행되고 두 달. 헌법재판소는 재판소원이 접수된 사건 651건 중 523건을 사전심사에서 각하했습니다(5월 13일 기준).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심리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는 뜻입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법원의 재판이 ①헌재 결정에 반하는 취지로 이루어졌거나, ②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③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여' 기본권을 침해한 경우 재판소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전심사로 시민들의 기본권 침해가 외면당할 수 있고, 심사 기준이 모호해 자의적인 심사로 변질될 수 있다¹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번에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4월 28일, 처음으로 사전심사를 통과한 재판소원 1호 사건은 '녹십자 백신 입찰 담합 사건'입니다.²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녹십자는 질병관리청이 발주한 백신 구매 입찰에서 1순위로 낙찰됐는데, 이 과정에서 담합 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시정명령을 내렸고, 녹십자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 처분이 정당하다고 보아 녹십자 측의 청구를 기각했고, 대법원도 심리 없이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문제는 대법원이 앞서 열린, 같은 사건의 형사재판에서는 녹십자 등 제약사 6곳의 공정거래법 위반(담합)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했다는 점입니다. 녹십자 측은 같은 행위에 대해 형사소송에서는 무죄가 확정됐는데, 이에 반하는 행정소송 판결 내용을 대법원이 별도의 심리 없이 확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합니다.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을 피청구인으로 지정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재판소원 청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대법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에 따라 새로운 처분을 해야 합니다.
¹ 김진한 변호사·전 헌법연구관 기고, '재판소원 제도와 사전심사 제도', 법률신문, 2026. 4. 25.
² 1호 사건에 이은 2·3호 사건은 각각 '참고인 신분으로 압수수색을 받는 과정에서 영장 사본을 교부받지 못해 제기된 소송', '도로 건설을 위한 토지매매 계약 관련 소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