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문제가 아니라 실존하는 문제를 푸는 방법
2022.8.1 | 488호 | 구독하기 | 지난호
안녕하세요!
미라클레터 쓰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혁신하는 미라클레터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에서 특파원 생활 3년을 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지난 7월 1일부터 근무를 시작했어요. 약 한 달간 있으면서 자주 들은 문장을 하나만 꼽아보라면, 아래와 같아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두텁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말씀하신 현실의 벽을 전하자면, 

  • 사람 고용하고 유지하기 너무 힘들다 
  • 규제가 너무 무섭다 
  •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등등이었던 것 같고요.

직장 다니시는 분들이 말씀하시는 현실의 벽을 전하자면, 

  •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 학벌 지역주의 파벌 등이 여전하다
  • 회사 문화가 절대로 안바뀐다 

쉽지 않죠. 너무 힘들고, 너무 무섭고, 너무 잔인해서.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현실을 뛰어넘지 않고 외면하게 되면, 급격하게 힘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인 것 같아요. 내가 문제해결을 외면하면, 그걸 보는 남들도 힘이 떨어지는거죠. 만일 삼성전자 경영진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상상해 보세요.

"삼성전자는 반도체 말고는 먹거리가 없어. 그게 현실이야."
"응 맞어. 그런데, 삼성전자는 어떻게 그 현실을 넘을 수 있을까?"
"글쎄. 답이 없는게 사실이지.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그러게. 근데 우리 반도체만 해도 잘 먹고 잘 살잖아?"
"그건 그래. 앞으로도 10년은 문제 없겠지? 우린 메모리 반도체 최고잖아!"

만일 삼성전자의 리더십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구성원들은 급격하게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리더십이 벽을 넘을 생각과 의지가 없는데, 구성원인 우리가 왜 힘들게 벽을 넘어야 해? 

결론: 대충 살자! (Mediocrity)

이렇게 되는거죠.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대충 살자' 라고 결심하는 이유는 바로 리더십이 현실의 벽을 직면하지 않고 외면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거에요. 개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잔혹한 현실에 직면해 있을 때, 당사자가 그 현실을 뛰어넘지 않고 외면하려고만 한다면, 본인이 힘이 나지 않는 것은 물론 주변에서도 그 사람을 도와주려 하지 않을 거 같아요. 중요한 사실은, 조직이든 개인이든,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급격하게 힘이 떨어지게 되면서 '대충 살자!'에 이른다는 사실이죠. 그럼 절대로 벽을 넘을 수 없겠죠! 결국 벽을 넘으려면 벽을 정면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이에요. 상상으로 만든 가짜현실이 아니라 진짜현실 말이에요. 

오늘의 에디션 

  1. 잔인하고 힘들고 무서운 현실
  2. 잔인해도 이겨낼 거란 믿음
  3. 힘들어도 진짜를 향할 용기 
  4. 무서워도 끝까지 듣는 끈기 

    잔인하고 힘들고 무서운 현실 

     <도박묵시록 카이지>라는 애니메이션의 대사

    잔인한 현실의 벽


    대표적으로 제가 다니고 있는 신문산업은 진짜현실이 아니라 가짜현실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세상은 디지털로 변화해 나가고 있는데, 많은 신문사들은 기존의 '신문'이라는 플랫폼을 구독하는 사람들이 당분간 유지될 거라는 통계치를 믿었죠. 당장 지하철에만 가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즐비한데, 편의점에서 1000원을 주고 신문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거라는 '상상'을 현실이라고 믿었던 거 같아요. 아마도, 현실을 바라본다 하더라도 해결할 방법이 쉽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 생각돼요. 하지만, 그렇게 진짜현실을 직면하지 않고 가짜현실을 믿은 결과, 지금 신문사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아래 그림처럼 참혹해요. 


    종이신문의 이용률은 2011년 45%에서 2021년 9%로 추락했어요

    정말 잔인한 것은, 신문사들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채 "그런 현실은 오지 않을거야"라는 상상으로 버티는 순간, 현실이 바로 그의 뒤통수를 때려 버렸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해, 현실은 조금도 상상으로 자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대사처럼, "세상은 너희들의 엄마가 아니다. 기다려 주지 않아"라는 말이, 참 잔인하죠? 

    힘든 현실의 벽


    현실에서 자신의 힘을 100% 발휘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것 같아요. 미라클레터를 쓰는 저만해도 지금 이렇게 금요일 저녁에 연인들이 삼삼오오 앉은 커피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하물며 매일 전력질주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자신만의 가짜현실을 찾는 것 같아요. 오늘 회사 내에서 전력질주를 하지 않아도 용서해 줄 회사 내의 친한 상사가 있다면? 매일 힘들게 보내지 않아도 같은 학교, 같은 고향 선배가 회사 내에 있어서 그 분의 발탁을 받은 다음, 회사 내에서 호가호위 할 수 있다면? 한때 '신이 숨긴 직장'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어요. 금융 관련 공공기관 중에서 정말 연봉 높고 평생 다닐 수 있는 곳들이 있었죠. 한번 입사하기만 하면 편하게 다닐 수 있는데, 매일 현실을 직면하면서 전력질주를 할 필요가 없는 곳들이었어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벌><출신지역><신의직장> 등과 같은 가짜현실들이 중요한 목표인양 쫓아다녔죠. 편하니까요. 하지만 진짜현실인 자신들의 <실력><경험><도움을 주고받는 인맥>등은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리고 퇴직시기를 맞게 되니, 먹고 살 길이 막연해 졌죠. 아무것도 할 줄 아는게 없고, 할 수 있는게 없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거에요. 매일 전력질주하는 삶이 너무 힘들다보니, 가짜현실을 통해 조금 편한 길을 찾았던 것 뿐인데, 결론은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어진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죠. 힘든 현실의 벽을 외면한 결과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제일 무서워요. <범죄도시2>의 손석구 배우님

    무서운 현실의 벽


    어떤 회사의 CEO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들이 많이 나가서 참 힘들어요. 내가 그렇게 잘 해 줬는데...급여도 많이 주고, 스톡옵션도 많이 줬는데, 회사가 상장하고 나니 다 주식 팔고 떠나버리더라고요. 속으로 정말 마음 많이 상했어요." 하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이 회사의 직원들이 나간 이유는 직원들이 배신자라서가 아니라, 회사의 CEO에서부터 시작되는 문화가 잘못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저는 "어쩌면 이 CEO 분께서 무서운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CEO 님은 <직원들이 나빠>라는 가짜현실을 통해 <사실은 내가 문제야>라는 진짜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이 떠올랐어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 같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 한 사람을 손가락질하며 "회사가 힘들어 진 것은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라고 욕하는 것이 무서워서 우리는 가짜현실 뒤로 숨는 것인지도 몰라요.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현실의 벽


    이처럼 현실의 벽은 다양하고 힘들고 무섭고 잔인한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가짜현실을 만들어서 진짜현실을 숨기려 하는 경향들이 생기고요. 하지만 가짜현실을 걷어내고 진짜현실을 마주하기 시작하면, 놀라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곤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말이죠....



    잔인해도 이겨낼 거란 믿음

    뉴욕타임즈 디지털

    "우리는 대충하지 않을 것이다"


    전 세계 신문이 디지털로 전환되기 시작하던 2012년. 미국 신문사 뉴욕타임즈를 소유한 셜츠버거 가문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을 냉정하게 보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변화를 원했죠. 하지만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는 몰랐어요. 그들은 영국 BBC의 CEO 였던 '마크 탐슨'을 주목했어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고 하죠. 


    "그는 절대 대충하지 않을 것이다." (He will never fall into mediocrity)


    아무리 세상의 흐름이 디지털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셜츠버거 가문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의 벽을 대충 외면할 생각이 없었어요. '마크 탐슨' 역시 자신이 만일 CEO가 된다면, 절대로 대충 임기 때우고 넘어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는 만일 한다면 정말 제대로 해 보고 싶었죠. 그런데 회사의 오너가 정말로 그런 변화를 원하는지가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셜츠버거 가문이 진짜 변화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봤죠. 그리고 결론을 얻었어요.


    "그들은 진짜현실에 대응한 뉴욕타임즈의 변화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었고, 또한 그런 변화가 반드시 가능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뉴욕타임즈가 디지털 전환을 할 수 없다면, 전 세계 어떤 신문사도 디지털 전환을 할 수 없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회사의 소유주와 회사의 경영진은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됐어요. 셜츠버거 가문은 확신을 갖고 있었고, 마크 탐슨은 대충하지 않는 철저한 실행(Discipline)을 갖고 있었죠. 하나의 팀을 이룬 두 존재는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아래와 같은 성과를 만들어 냈어요. 

    뉴욕타임즈 디지털구독자의 증가 추이

    진짜현실을 극복한다는 신념 

    2012년 당시 대다수 미국 신문사들은 진짜현실을 마주해서 이길 수 없다는 체념을 하고 있었어요.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소셜미디어들이 마구 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가짜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었어요. 뉴욕타임즈 역시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었을 거에요.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전환을 하지 않아도 세계 최고의 언론사니까 괜찮을거야"
    "뉴욕타임즈는 온라인 노출을 하지 않아도 가장 신뢰받는 저널리스트들이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뉴욕타임즈는 지금도 돈 잘 버니까 괜찮을거야" 

    라고 말이죠. 사실, 뉴욕타임즈야 말로 이런 위안을 할 자격이 있는 언론사였죠. 뉴욕타임즈는 충분히 가짜현실에 안주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유주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거에요. 그들은 가짜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짜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애당초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진짜현실을 극복할 수 있어"라는 믿음이 있다면,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전환 안해도 잘 살 수 있어"라는 가짜현실 따위 필요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믿기로 했어요. 뉴욕타임즈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진짜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요. 

    대충하는 낙관주의에 대한 증오 

    뉴욕타임즈 오너 그룹이 이런 신념을 불태우고 있단 사이, CEO인 마크 탐슨은 제임스 스톡데일 (James Stockdale) 장군의 아래와 같은 말을 되뇌이고 있었어요. "신념을 갖는 것은 좋다.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 말이다. 하지만 그 신념을 내가 맞닥드리고 있는 잔인한 현실을 아그작아그작 씹어가며 마주하겠다는 철저한 실행(discipline)정신과 혼동해선 안된다." 스톡데일 장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 8년간 풀려나오지 못했던 인물이에요. 무수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결국 풀려날 것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죠. 하지만 그는 포로로 잡힌 기간 동안 견디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들이 가진 특징을 이렇게 한 마디로 요약했어요. 

    "그들은 모두 낙관주의자들이었어요."

    그저 모든게 잘 될 거라고만 믿는, 그러나 현실에서 철저한 실행정신을 갖지는 못했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현실의 벽을 견디지 못했다는 거지요. 뉴욕타임즈의 CEO가 된 마크 탐슨은 경영진의 신념과, 현실의 벽을 넘자는 뜻을 끌어 안았지만, 절대로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만 보지는 않았어요. 그는 디지털 전환을 하기 위해 회사 내부의 반발과 싸우고, 기자 중심의 조직에서 개발자와 디자이너 등 협업 중심의 조직문화로 바꾸었죠. 기자보다 더 돈을 많이 받는 개발자들을 채용하기도 하고,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기자들을 포함한 구성원 전원이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디지털을 활용했어요. 결과요? 뉴욕타임즈는 경쟁사인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에 비해 2022년 1분기에 매출격차가 전년 동기에 비해 더 커졌어요. (기사링크) 오늘날 디지털 전환에 가장 성공한 신문사의 사례 또한 뉴욕타임즈가 꼽히고 있죠. (근거) 아무리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현실 파도가 몰려온다 하더라도, 그 파도(진짜현실)를 외면하려고 가짜현실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저 파도 저거 저거 .... 저거 따위 내가 넘을 수 있어"라는 신념과, 실제로 파도를 넘기 위해 현실을 아그작 아그작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는 철저한 행동(Discipline)이 따른다면 극복할 수 있어요!  

    힘들어도 진짜를 향할 용기

    김항기 고위드 대표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텐데


    많은 분들이 매일 회사에서 부딪히는 힘든 과제들을 이기기 힘들어서, 직장 내에서 학연, 지연 등을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경험들을 과거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회사에서 실력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까지 해야 해?", "그렇게 해서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거야?" 등과 같은 말들을 꽂아대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이건 힘든 진짜현실을 피하기 위해 <학벌><출신지역><10년 묵은 과거성과> 등과 같은 가짜현실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닌가 해요. 


    스타트업 '고위드'의 대표 김항기 님은 최근 제가 만난 어떤 분들보다 가짜현실 속에서 벗어나서 진짜현실로 다가가려는 노력을 실행하는 분이 아닌가 해요. 대학을 졸업한 그는 증권사 영업사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대충 일하고 싶진 않았던 것 같아요. 증권사 지점영업을 하면서 트레이딩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돈을 벌었지만, 그는 그렇게 번 돈이 가짜현실이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해요. 주식에 묶어둔 돈이 금융위기를 지나며 50% 이상 없어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죠. 결국 진짜현실을 직면하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결심한 그는 증권사 법인영업 사원으로 일하게 해달라고 졸랐고, 애널리스트들을 따라가며 회사를 탐방하기 시작했어요. 


    애널리스트로 일하게 된 이후에도 그는 가짜현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대신 그는 코스닥 성장기업들을 담당하면서 공단들을 돌아다니며 CEO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어요. 투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진짜현실들을 찾아나선 거죠. 2009년부터는 동부증권의 스몰캡 팀을 이끌고 애널리스트들이 현장을 방문해 탐방한 내용들을 기행문처럼 소개하는 'Run & Hit'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여기엔 쉽게 보기 힘든 진짜현실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김항기 당시 동부증권 팀장이 발간한 2009년 보고서  


    자산운용사 대표에서 스타트업으로 


    이후 1조원을 굴리는 알펜루트자산운용이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요. 이 회사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는 스타트업에 주력으로 투자를 진행했는데요. 마켓컬리(2020년에 지분 전량 매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뤼이드, 작심독서실 등의 포트폴리오 회사들을 갖고 있기도 했죠. 이처럼 2010년대 이후 새롭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이유에 대해 그는 "돈을 버는 것보다는 좋은 기업을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어요. 저는 이 말이 "가짜현실이 아니라, 진짜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라는 말로 들렸어요. 실제로 그가 살아왔던 궤적들이 그랬어요. 예를 들면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정신차리고 공부를 시작한 계기가 이래요. (중앙일보 기사


    "(군대에 가니) 돈은 없는데 열심히 사는 똑똑한 사람들을 보면서 컬처쇼크를 받았다. 나는 쓰레기구나. 이대로 사회에 나가면 이런 사람들이랑 붙어야 하는데 백전백패겠구나를 깨달았다. (이후) 무섭게 공부했다." 


    어쩌면 부자 아버지의 후광이라는 가짜현실 뒤에 숨을 수도 있었지만,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과 맞부딪혀도 이길 수 있어야 한다는 진짜현실을 직면하기로 한거죠. 덕분에 SKY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지만, SKY 대학 졸업장이라는 가짜현실 뒤에 숨어서 현실을 직면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어요. 아버지의 도움 전혀 없이 말이죠. 

    김항기 대표가 애널리스트였던 2011년 당시 코스닥 상장사 대표들을 6개월간 만난 뒤 쓴 보고서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해요


    투자자에서 창업가로?  


    그리고 심지어 투자자에서 창업자로 변신을 해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죠? 미국에서는 투자자로 일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창업을 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에요. (Y컴비네이터 회장으로 일하던 샘 알트만이 '오픈AI'라는 스타트업의 대표가 된 경우가 대표적이죠) 하지만 한국에서는 투자회사 대표로 일하던 사람이 스타트업 경영의 길로 가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아요.

    •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배웠던 찐 현실
    • 펀드매니저로 일하며 배웠던 찐찐 현실 
    • 기업가로 일하며 배우는 찐찐찐 현실 


    아래로 갈 수록 그 힘듬의 강도가 100배 씩 늘어나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고 해요. 애널리스트는 투자추천 의견만 내지 실제로 투자를 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주가가 오르고 내려도 책임이 없죠. 하지만 펀드매니저는 애널리스트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이 판단을 내려야 해요. 그리고 그 판단에 따라 수백억, 수천억원의 수익/손실이 왔다갔다 하기도 하죠. 피 말리는 직업이에요! 그런 반면 펀드매니저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이 잘되거나 잘 되지 않아도 책임이 없잖아요. 그건 오로지 회사 경영자의 몫이니까요. 만일 회사가 잘 되지 않을 경우 짊어져야 할 파트너들, 함께 일한 사람들, 믿고 투자해 준 주주들...은 오로지 회사 경영자의 몫이에요. 어쩌면 가장 힘든 극한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죠. 김항기 대표는 애널리스트 -> 펀드매니저 -> 스타트업 CEO 등으로 자신을 점점 더 진짜현실 쪽으로 밀어넣는 선택들을 했어요. 지금 그가 만든 회사 '고위드'는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에게 법인카드를 만들어 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핀테크 영역에서 '토스' 다음으로 가장 투자를 많이 받은 스타트업이라고 해요. (해당 사업에 대해 설명한 기사)


    김항기 대표는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해요. <학벌><지연><과거의 성과> 등의 가짜현실 뒤에 숨는 것은 재미없다고요. 진짜로 벌어지는 진검승부에서 잘해야 진짜로 재미있는 것 아니냐고요. 힘들어도, 진짜현실을 바라보고, 그 벽을 극복하는 용기가, 결국 더 나은 결과로 이끌거라 믿는다고요.


    무서워도 끝까지 듣는 끈기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가 강연하는 장면

    CEO가 강력할 수록 직원들은 숨는다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경영자들이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어요. 그러나 흔히 경영자 분들은 그런 현실을 마주하길 두려워 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러다 보니 진짜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듣는 것보다는 "내가 현실을 가장 잘 알고, 내가 그에 대한 해답을 다 갖고 있어!" 라는 가짜현실 속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경우들이 있죠. 하지만 그럴수록, 직원들은 CEO가 만들어 둔 가짜현실 속에 숨게 돼요. 왜냐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정말 고되고 힘든 진짜현실과 맞서 싸워도 이길까 말까 하는데, CEO가 말하고 있는 가짜현실에 대한 해답까지 만족시켜 줘야 하는 이중고에 처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당연히 가짜현실에 대한 해답을 먼저 만족시켜 주는게 맞아요. 그게 가장 쉽거든요! 그렇다면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진짜현실에 대한 해답은 완전 뒷전이 돼죠.

    CEO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이런 문제는 커지게 돼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세일즈포스를 창업한 마크 베니오프에요. 그는 거의 매년 드림포스(Dream Force)라고 하는 세일즈포스의 연례행사에 기조연설자로 나와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들어요. 또한 스스로를 CAQ라고 부른다고요. CAQ가 뭐냐고요? Chief Answerer of Questions - 질의응답임원 - 이라는 거래요. 저도 실제로 마크 베니오프를 먼 발치에서 본 적이 있는데요. 당시 그는 한 행사 참가자의 주장을 끝까지 듣고 있었죠. 거의 이런 대화였어요. 

    "세일즈포스가 탄소배출에 대해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저는 세일즈포스 사용자로서 회사가 더 공격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일즈포스는 뭐하는 겁니까. 사람들이나 잔뜩 모아놓고 말이죠. 참기 힘들군요." (참가자) 

    하지만 마크 베니오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책, '트레일블레이저'에서 발췌) "사람들은 파티, 컨퍼런스, 자선행사에서 저를 밤에 잠 못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그 질문에 대답하느라 저는 구석으로 몰립니다. 심지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농구경기 중간 휴식시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저는 듣습니다. 듣고 또 듣습니다. 그게 제 일이니까요." 베니오프 창업자는 왜 이렇게 듣고 또 듣는 걸까요? 아마 구성원들이 자신보다 진짜현실을 더 잘 알고 있을거라 믿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진짜현실을 CEO가 외면하게 된다면, 정말 일할 마음이 충만한 직원들의 사기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댄 샤흐트먼 교수

    이스라엘이 왜 강한지 아세요?

    CEO가 진짜현실을 직면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갖추는 것은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필수조건이 아닌가 해요. 진짜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 CEO에게 잘 전달될 수 있는 구조 말이죠. 하지만 누구도 CEO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편하게 100%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죠? 자기의 목이 달려있는 문제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누구나 걱정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업을 하는데 있어서 유리한 것 같아요. 최근 제가 만난 이스라엘의 노벨화학상 수상자 댄 샤흐트먼 교수님은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나라"라고 강조했어요. 그는 한국에 1년간 교환교수로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하기도 했었는데요. 그래서인지 한국과 이스라엘의 차이를 잘 안다고 했어요. 

    "한국은 직원들이 CEO의 말을 따릅니다. 그래서 제조업을 굉장히 잘 하죠. 반면, 이스라엘은 직원들이 CEO의 말에 반기를 듭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지적하고, 현실은 현실이라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현실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하는 소프트웨어 등은 잘 하죠." 

    오늘날은 모든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자동차는 '바퀴달린 아이폰' iPhone on Wheels 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고요. 로봇 역시 자율주행 등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구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죠. 그렇다면, 어떤 하드웨어라도 최고 엔지니어 전문가가 짠 구조를 그대로 수행하여 만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는거 아닐까요? 오늘 만든 최고의 제품(하드웨어+소프트웨어)이 내일은 가짜현실이 되어 있고, 진짜현실은 그 제품이 낡은 거라면? 이 제품을 책임지는 총괄담당자는 늘 진짜현실에 귀를 세우고 끊임없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야 하는거죠. 이스라엘 식 문화가 한국에 더 중요해지는 시점이 온 거 아닌가 해요.

    한줄 브리핑 📢
    • 일본, 미국과 함께 2나노 반도체 센터 : 일본이 미국과 함께 2나노미터 반도체 연구센터를 설립한다는 일본경제신문의 보도가 나왔네요. 2025년까지 미국과 일본이 합동으로 대만을 넘어서는 반도체 생산기지를 만들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요.
    • 미국 공화당, 구글에 화났다  : 미국 공화당은 구글이 지메일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자금 모금 캠페인 이메일을 자꾸 스팸처리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 같아요. 차별을 받고 있다며 구글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이 커져가고 있다네요.
    • 전동차 회사 '버드'의 추락  : 미국에서 가장 투자유치를 많이 받은 전동 스쿠터 스타트업 중 하나였던 '버드'의 시가총액이 1500억 달러로 떨어졌다는 소식이에요. 총 투자유치 금액만 8800억원 이상인 유니콘 스타트업이었던 '버드'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네요. 

    오늘 레터를 간단히 요약해 보겠습니다. 


    • 현실은 잔인하고, 힘들고, 무섭다 
    • 하지만 리더가 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조직 구성원들은 급격히 일을 대충하기 시작한다 
    • 특히 가짜현실에 숨는게 아니라 진짜현실을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진짜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면, 가짜현실 따위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 가짜현실을 버리고 진짜현실을 향해 나아간다면 힘들지만 더 많은 걸 얻게 된다 
    • 리더가 진짜현실을 다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래서 구성원들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 


    오늘 레터는 여기까지 입니다. 미라클러님 모두 즐거운 월요일을 시작하시길 바라겠습니다.


    Directly Yours,
    신현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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