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오늘 이야기는 1999년 27세의 젊은 노동자의 안타까운 사연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지금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봅니다. 오늘 기사는 류현철 작가님의 두 번째 글입니다.

이 많은 업무상 질병을 누가 다 판정할까?

- 16호 -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는게 이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인 줄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이제 이 고통과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저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한 노동자의 자살에서 시작된 산재인정제도의 변화

 

1999년 6월 22일, 산재로 치료받던 27살 청년 노동자 이상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는 1994년에 경남 창원 대우중공업 국민차 사업부에 입사했습니다. 1999년 2월 업무 중 발생한 요통으로 산재 지정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됩니다. 증상은 좋아지지 않았고 다리로 뻗치는 통증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입원치료‘ 종결을 종용하였고 결국 이상관은 육체적 고통과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유서로 전하고 자살합니다. 이상관의 죽음은 산재보험 제도와 운영에 대한 그 동안 누적된 사회적 분노를 폭발시키게 되었습니다. 


어느 산재 노동자의 죽음과 패배했으나 승리한 투쟁(2003년, 일터)

고 이상관 자살 책임자 처벌을 위한 160여일 투쟁 극적으로 타결(1999년, 민주노총)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이 어려웠던 시대

 

요즘에야 노동자들이 추간판탈출증이나 회전근개파열과 같은 진단을 받게 되면 근골격계질환 산재 가능성을 쉽게 떠올립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였습니다. 2021년 기준 업무상 질병 인정건수는 20,435건이며 그중 신체부담작업은 6,459건 요통은 5,058건입니다. 그러나, IMF 구제금융의 시기였던 1998년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건수는 1,288건이었고, 그 중 신체부담작업으로 인한 경우가 72건, 사고성 요통은 51건에 불과했습니다. IMF 시기의 일상적인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속에서 강요된 노동강도의 강화는 근골격계 질환자들을 양산하고 있었지만, 이들을 위한 보상(compensation)의 경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이상관 투쟁’은 근골격계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노동현장을 주목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노동자들의 근골격계질환 집단 요양투쟁에 수많은 안전보건전문가들이 지원에 나서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근골격계 직업병과 근골유해요인조사, 노동자가 현장을 바꾸는 무기?!(2020년, 일터)


 

산재보상률 감소로 산재예방의 성과를 평가했던 산재보험행정

 

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의 산재승인절차와 요양관리가 독단과 전횡에 가깝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당시는 안전보건 행정의 성과 평가가 업무상재해 승인통계에 기반한 산재발생률의 감소와 연동되던 시절이었습니다(지금도 안전보건관리 전문기관 평가는 그렇게 합니다). 그 결과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실질적인 산재 예방행정보다는 통계상 산재발생률에 영향을 미치는 분모를 늘이거나 분자인 업무상 재해 승인 건수를 관리하는 정책적 편향이 생기기도 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 근로복지공단의 보수적인 실무지침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직업환경의학과(산업의학)과 의사들도 여러 산업보건 전문가들과 함께 산재요양제도 개혁을 위해 사회적 목소리를 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요양관리규정“의 문제점에 대한 산업의학도들의 입장(2005년 민주노총 홈페이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운영되기 시작하다.

 

업무상 질병의 산재보험요양결정의 신뢰성 문제는 2006년 12월 노사정 합의에 의해 독립적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질판위)’를 구성하기로 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질판위는 2008년 7월 개소 이후에도 상당기간 논란이 지속됩니다. 그러나, 2012년 민주노총이 질판위에 대한 참여를 결정한 이후, 질판위는 사회적인 신뢰성을 점차 확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업무상 재해 승인에 있어서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법원 판결 기준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직업성 암이나 희귀성 질환에 대한 전향적인 판단이 내려졌고, 업무관련성 추정의 원칙이 도입되기 시작하고, 업무관련성 평가 특별진찰 제도도 생겼습니다. 말도 탈도 많은 질판위였지만 업무상 질병 산재요양 승인 건수와 신청 건수의 급격한 증가가 변화와 진전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만 합니다.


길어지는 요양승인 처리기간, 급증하는 심의 건수

 

최근 업무상질병판정위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요구는 신속성의 문제입니다. 당장에 생계와 고용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업무상 질병에 대한 요양승인 절차가 수개월 이상 소요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업무상질병 처리건수는 2018년 12,975건에서 2022년 28,796건으로 4년만에 2배를 초과하여 증가하였습니다. 이 떄문에 2022년 기존 6개 질판위에 추가하여 2곳의 질판위가 신설되었습니다. 추정의 원칙의 적용과 재해조사절차 개선으로  업무상질병 판정에 소요되는 기간은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긴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질병산재 ‘황유미’들의 733년…기약없는 역학조사, 피가 마른다, 한겨레 2023년 3월 6일자

한겨레, “기약없는 역학조사...피마르는 산재 인정” 기사 관련 고용노동부 언론보도설명

 

2022. 5. 22 근로복지공단 보도자료에서 발췌. 2022년 판정건수는 17,222건이었다.


 산재보상 행정부담의 급속한 증가

 

2008년에 설치된 질판위에 대한 당시의 시대적 요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었습니다. 이제 시대적 요구가 ‘신속성’으로 확장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구조는 나름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업무상질병에 대한 사회적 합의수준이 향상되면서 객관성과 공정성이 크게 후퇴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객관성과 공정성’ 시비는 줄어드는 추세고, 산재로 승인되는 사례의 폭은 늘어났습니다. 승인 가능성이 높아지자 신청건수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산재행정을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노동자들의 업무가 과중해지고, 소진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공공행정 노동자들의 시간과 영혼을 갈아 넣는 방법으로 버티고 있으나, 이것도 곧 한계에 부딪칠 것으로 보입니다.

 

 

각 사례마다 의학적 판단과 사회적 판단을 각각 내리는 질판위의 효율은?

 

업무상 질병 판단에 대한 새로운 구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현행 질판위는 노·사 및 전문가 단체에서 추천된 직업환경의학과 및 임상과 의사, 변호사, 노무사, 산업위생 전문가들로 구성됩니다. 위원들은 개별 사례들에 의학적, 법리적, 철학적으로 검토할 뿐만 아니라 산재보험의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기능까지 각각의 자신의 관점에 서서 따지며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개별 사안들을 모두 이런 방식으로 판정을 내리다 보니 따져야 할 것도 물어야 할 것도 많으며 작업 환경과 관련해서 온갖 주변 정황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게 됩니다. 700명이 넘는 각 전문영역의 판정위원들이 개별 사례들을 각자의 지식과 철학 수준에서 판단하여 표결하는 구조가 과연 적절한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업무상질병 ‘기준’ 위원회로 전환이 필요합니다.

 

이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 업무상질병‘기준’위원회로 변화를 모색해야 할 듯 합니다. 새로운 위원회는 다음의 전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구조이어야 합니다.

 

1) 업무상질병의 판정은 신속한 판단이 가능해야 합니다.

신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제안되고 있는 추정의 원칙 확대 적용은 산재 여부에 대한 판단은 통상’의 행정 절차로 수행됨을 전제로 가능할 것입니다. 개별 사례들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진단과 노출평가의 적절성, 산재로 인정해야 할 노동자의 사정, 사회적 편익 등을 따지는 현재의 질판위 체계가 물리적으로 승인기간을 줄여주기는 어렵습니다.

 

2) 근거에 기반해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을 정립·보완하는 위원회가 필요합니다.

행정적 판단 절차 수행과 별개로 충분한 사전 연구를 통해서 다양한 의학적, 역학적 자료와 해외 사례를 검토,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려를 통해 업무관련성 추정의 기준을 제시하고 산재 신청과 승인 통계를 기반으로 이를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산재의 승인 기준(추정의 원칙)은 사회적 ‘합의’기준이라는 관점을 유지해야 합니다. 의학적이고 역학적인 근거들은 주어진 재원과 사회의 수용성을 고려하여 산재 승인을 통해 얻어질 사회적 이득이 높은 대상 질병군 및 노동자군(정책적 우선 순위) 선정을 위한 참고자료로 기능해야 합니다.

 

3) 담당자들이 행정적 판단을 잘 내릴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교육해야 합니다.

잘 훈련된 담당자라면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추정의 원칙 틀(종사직업 또는 직무, 근무 기간, 유효기간 3요소를 제시)을 만들고, 이 기준을 충실하게 적용하도록 행정적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기준’위원회는 일선의 행정 담당자들을 교육하고 전문성을 높이는 업무를 담당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행정적 절차를 단시간 내에 처리해주어야 노동자들도 재심의나 행정구제, 재판 등 높은 심급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적 여건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준의 경계선에 있어 행정적 판단이 어려운 사례들에 위원회의 판단을 구하도록 합니다.

 

4) 산재여부 판정에 매몰되어 온 사회적 비용을 산재 예방으로 연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학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보건관리 수준향상과 산재 예방이라는 사회적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면 폭넓게 승인하는 추정 원칙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의 직업병 사례에서 보듯 갈등으로 인해 소모되는 사회적 자원과 비용을 줄여 예방을 위한 활동에 투입되도록 하고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기준 적용을 통해 얻어지는 예방의 효과를 산재 신청 증감을 모니터링하여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학조사가 개별 사안의 산재 승인 여부를 다투는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개입의 지점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무책임한 과잉진료 혹은 무차별적인 검사로 증상 없는 상병을 만들고 불신과 그에 따른 비용을 초래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판단과 조치를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제도, 이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가능합니다.

 

완벽한 제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제도의 한계로 비롯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제도의 완성도를 높일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행동과 활동 또한 당연한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제도를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 정책적 설계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 이해 당사자들이 이제 테이블에 앉을 시간입니다. 산재보험기금은 수십조에 이릅니다. 정책 의지, 실질적 개입과 개선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지금껏 질판위로 할 만큼 했습니다. 새로운 구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지체될수록 힘겨워지는 것은 바로 산재보험과 노동조합이 지키고자 했던 노동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업무상질병판정위로는 할 만큼 했다. 매일노동뉴스 2021년 5월 27일자

 

*본 기고는 2021년 5월 27일에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보완된 글입니다



글쓴이: 류현철(재단법인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구조적 개선에 대한 류현철 작가님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모아 다음 호에 반영할 예정입니다. 
많은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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